2월의 신학자
#97 장 칼뱅, 위로의 편지
#98 칼뱅은 '칼뱅주의'라는 말을 증오했다
#99 수산나 웨슬리에게 ‘체험’은 필수였다
#100 100호 특집!
#101 존 웨슬리, '칭의'를 말하다

독자님, 안녕하세요.

편집자 B입니다.

 

처음으로 회사를 다니게 된 친구 한 명이 있었습니다. 신입이었던 친구는 늘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팀장이 친구를 부르더니 이런 말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원래 그런 건’ 없어요. 그러니 항상 ‘왜 해야 하는지’ 질문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어요. ‘왜?’라는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고인물이 되더라고요. 누군가가 ‘그건 그냥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하면, 끊임없이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를 물고 늘어지세요.” 친구는 그 팀장의 조언이 인상 깊었던 모양입니다. 

 

존 웨슬리는 아마도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가지고 살았던 신학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웨슬리 당시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루터나 칼뱅이 말한 이신칭의를 들먹이며 ‘원래 그런 거야’ 하며 자신들의 삶을 정당화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웨슬리는 루터나 칼뱅의 신학을 극복하고자 끊임없이 고민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했습니다.

 

오늘은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신학이란 무엇인가』『신학이란 무엇인가 Reader』에서 웨슬리와 관련된 내용을 발췌해 독자님께 소개합니다. 존 웨슬리가 칭의를 어떻게 설명했는지, 맥그래스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또한 오늘날 우리는 믿음과 행위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101 존 웨슬리, 칭의를 말하다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영국 교회 안에서 메소디스트 운동을 일으켰으며, 이 운동이 나중에 독자적인 힘을 지닌 교파인 감리교회Methodism를 낳게 되었다. 자기에게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인 신앙이 없다”고 생각했던 웨슬리는 1738년 5월 런던의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열린 한 집회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회심 경험을 하였으며, 그 체험을 통해 기독교인의 삶에는 ‘살아있는 신앙’이 필요하다는 점과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웨슬리가 기독교 신앙의 경험적 측면을 강조한 일은 그 당시 영국의 무기력했던 종교와는 분명하게 대조를 이루었으며 영국에서 주요한 종교 부흥을 낳게 되었다.

존 웨슬리의 칭의에 관한 설교는 1746년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이 중요한 설교에서는 ‘회심’과 ‘신생’의 개념을 크게 강조하는 경건주의의 관점에서 기독교인의 삶의 본질을 이해한다.

존 웨슬리의 설교는 멜란히톤이나 칼뱅과 관계가 있는 ‘법정적 칭의’forensicjustification 개념을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라는 개념을 도덕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보았다. 그 개념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실 때 하나님께서 속고 계시다는 사실을 뜻하거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실제로 우리 아닌 다른 사람(곧 그리스도)이라고 여기신다는 것을 뜻한다. 웨슬리는 법정적 칭의 개념을 버리고, “용서와 죄 사함”이라는 좀 더 성경적인 칭의 개념을 따르라고 주장한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의롭다고 받아 주신 사람들에게 속으신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또 사람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생각해 주시는 것도 아니며,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다르게 보아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실상과는 정반대로 판단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며, 우리를 실제 모습보다 더 낫게 평가하시거나 우리가 불의한데도 의롭다고 믿어 주시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극히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판단은 언제나 진실에서 어긋남이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그렇기 때문에 나도 죄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의롭고 성결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빈틈없는 지혜 앞에서 결코 통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나를 다윗이나 아브라함과 혼동하실 수 없듯이, 나와 그리스도를 혼동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이해력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이 사실을 편견 없이 헤아려 보게 하십시오. 그러면 위와 같은 식의 칭의 개념은 이성이나 성경 중 어느 쪽과도 합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분명하게 말하는 칭의 개념은 용서, 곧 죄 사함입니다. 칭의란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의 피로 드린 화해의 제물을 보시고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심으로써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롬 3:25) 행위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 전체에 걸쳐서 가르치는 칭의에 대한 쉽고 자연스러운 설명입니다.

_존 웨슬리, 칭의에 관한 설교(신학이란 무엇인가 Reader)

존 웨슬리는 ‘신앙에 대하여’On Faith라는 설교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이 신앙이 특성상 분명하게 기독교적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구원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에 대한 거룩한 확신으로, 이러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로운 일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 사람은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든지 용납된다고 사도는 인정한다.” 그렇다면 이런 폭넓은 유신론적 믿음과 비교해서 기독교식의 믿음이 지닌 이점은 무엇인가? 웨슬리에 따르면,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구속된 삶이 베푸는 완전한 유익을 아직 얻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다. 둘째, 그들은 구원에의 완전한 보증을 얻지 못했다. 구원의 보증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게 된다.

이와 유사한 견해를 20세기 문예 비평가이자 변증론자인 C. S. 루이스에게서 볼 수 있다. 『순전한 기독교』에서 루이스는 선과 진리를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은, 비록 그리스도에 대한 표면적 지식이 없다 해도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루이스가 염두에 둔 대상이 철학자들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이론을 다른 종교들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한다. “다른 종교에 속했지만 하나님의 신비한 영향을 받아서 자기 종교에서 기독교와 일치되는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렇게 해서 자신도 알지 못한 채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생각은 예수회 신학자인 칼 라너의 견해와 명백한 유사성을 지닌다.

웨슬리는 칭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의에 의지해 확신을 얻게 된다는 점을 주장하면서도, 성결함에서 성장해 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서방 기독교에서 가장 두드러진 한 운동에서는 십자가를 개인적 ‘성결’holiness의 기초로 보아 크게 강조하였다. 나사렛 교회가 포함된 ‘웨슬리-성결 전통’에서는 개인적으로 성결을 구현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신자의 성결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하며, 성령의 사역을 통해 형성된다. 이 운동은 처음에 존 웨슬리에게서 시작되었다.

웨슬리는 신자의 ‘완전’ 개념을 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포괄적이고 도덕적인 변화가 점차 깊어지는 과정이라는 의미로 이해하였다. 웨슬리는 이 견해를 제시하면서 그가 ‘신비적 저술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저작에 의존하였다(이 범주에는 성공회 사람인 윌리엄 로, 가톨릭 사람인 프랑수아 페넬롱과 프란시스 드 살레, 마담 귀용, 그리고 루터파 경건주의자인 아우구스트 프랑케가 포함된다). 이 사람들에게서 웨슬리는, 참으로 경건한 마음은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사랑을 일깨우는 정신이요, 그러한 정신이 없는 종교는 공허하고 헛된 것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배웠다.

이러한 개념이 미국 감리교회에서 더 크게 발전하였다. 프랜시스 애즈베리는, 신자들은 인생의 어떤 순간에 ‘완전한 성화’에 도달하게 되기를 바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세기 미국 개신교에서 부흥운동이 강조되면서, 기독교인의 삶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전환점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성결 설교’의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이, 칭의를 뿌리 삼아 그 뒤에 나타나는 두 번째 결정적 체험인 ‘완전 성화’에 대한 웨슬리의 가르침이었다. 이렇게 성결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된 한 가지 이유는 남북전쟁에 뒤이은 미국의 도덕적 황폐화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1870년, 남부에 속한 여러 주의 감리교회 감독들이 다시 성화를 강조하기 시작했으며 “지금 이 순간,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널리 성경적 성결을 다시 회복하는 일 외에는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후에 이 성결 가르침이 발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당대의 감리교회 여성 가운데 가장 탁월했던 피비 워렐 파머였다. 파머는 웨슬리의 완전 성화 교리를 몇 가지 수정하여 발전시켰다. 웨슬리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완전 성화를 성령의 두 번째 독특한 사역으로 보았으며, 하나님께서 죄로 가득한 신자들의 마음을 깨끗이 씻으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완전히 채우시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마음의 성결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데 필수조건이 된다. 파머의 주장에 의하면, 이 성결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성결을 이룰 수 있는 능력도 주시는데, 신자들의 믿음에 합당하게 그 능력을 주신다.

웨슬리가 성결을 은사라고 생각한 것에 반해 파머는 의무라는 면에서 이해하였다. 어떤 점진적인 과정이 아니라 한순간에 온 마음으로 이루는 헌신을 성화의 핵심으로 강조한 것이다. 또 웨슬리는 성결을 점진적으로 완성해 가는 것으로 이해하였는 데 반해 파머는 성결의 즉각적인 요소들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파머의 성결 가르침과 나중에 오순절 운동에서 나타난 견해의 유사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여기서 밝혀 둘 중요한 점은 파머가 완전 성화와 성령 세례를 동일하게 여겼으며 성결과 능력이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 주장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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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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