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 스우파 | 댄스 챌린지
SNS 댄스 챌린지를 보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켜면 수많은 릴스·쇼츠가 쏟아져요. 다양한 영상 중에 인기를 끄는 콘텐츠는 단연 댄스 챌린지죠. 그런데 댄스 챌린지를 보다 보면 종종 마음이 불편해져요. 여성을 희화화하거나 성적 대상화 한 춤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지거든요. 하지만 결국 춤이 주는 자유분방한 에너지가 좋아 계속 콘텐츠를 챙겨보게 돼요.

 소조  파란, 혹시 댄스 챌린지 즐겨보시나요?

 

 파란  원래 틱톡은 잘 안 보는데, 아이돌을 좋아하다 보니 그때그때 올라오는 신곡 댄스 챌린지는 거의 챙겨보는 편이에요. 그런데 최근 한 댄서들이 그룹 ‘뉴진스’의 ‘Hype Boy’ 안무를 조롱하듯 과장하여 추고 그것을 SNS에 올린 것을 보고, 일부 남성들에게는 여전히 ‘여성적인 춤’이 희화화할 대상이라는 사실이 씁쓸했어요.

 

 소조  맞아요. 여자 아이돌 춤은 마치 ‘진짜 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파란  최근에 ‘스트릿 맨 파이터(이하 스맨파)’의 책임프로듀서가 제작발표회에서 성별 고정관념을 드러내 논란이 되기도 했죠.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와의 차이점을 묻는 말에 “여자 서바이벌은 질투, 여자들의 욕심이 있었다면 남자들은 의리, 남자들의 자존심이 많이 보였다”라고 말했어요.

 

 소조  스우파’가 잘된 이유는 유능한 여성 댄서들이 자신의 실력을 무기로 내세워서 진취적이고 당당한 승부를 펼쳤기 때문 아니었나요? 프로그램에서 의도적으로 경쟁 구도를 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참 아이러니한 인터뷰네요.

 

 파란  혹시 ‘호감도의 덫(Likeability Trap)’을 들어보셨나요? ‘여자는 상냥하다’는 편견이 여성을 덫에 빠지게 한다는 뜻이에요. 여성은 자랄 때 조신함과 친절함을 갖춰야 한다고 배우잖아요. 여성은 ‘너무’ 강해 보이면 독하다 비난받으니까요. 하지만 또 ‘너무’ 친절한 여성은 무시당해요.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덫에 빠지게 되고요. 이 때문에 유능한 여성들이 회사와 집, 공공 영역에서 인정을 요구하는 걸 어려워하죠. 그런데 이 덫에서 벗어난 예시가 바로 ‘스우파’ 댄서들이에요.

 

 소조   ‘스우파’에서 댄서들은 상대 팀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실력을 스스럼없이 뽐내고, 솔직하게 인정 욕구를 드러내며 ‘호감도의 덫’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줬어요. 시청자들은 당당하고 멋있기를 선택한 여성 댄서들에 환호했고요.

‘스우파’의 댄서들 ©MLB 공식 유튜브 

 파란  ‘스우파’는 춤에 대한 성별 이분법적 인식에서도 벗어나고자 했어요. ‘비보잉(B-Boying)’이라 통용되던 브레이크 댄스는 언제나 남자의 전유물이었는데, ‘비걸 옐(B-Girl Yell)’이 멋진 브레이크 댄스를 선보이면서 당연시되던 인식을 뒤엎었어요. 또, 남성 댄서와 협연하는 ‘맨 오브 우먼’ 미션에서 크루 라치카프라우드먼은 고정적이었던 남녀 댄서의 역할을 탈피했습니다.

 

 소조  멋있네요. 언제부터 ‘여자 춤’과 ‘남자 춤’이 암묵적으로 구별되었을까요? 생각해보면 오래전부터 ‘여자 춤’과 ‘남자 춤’은 구별되어왔던 것 같아요. 여성들이 연회에서 곱게 차려입고 남성 관료들의 여흥을 띄우기 위해 춤을 출 때, 남성 장군들은 용맹과 기개를 보여주기 위해 검무를 추는 장면을 생각해보면요.


 파란  그렇네요. 성별에 따라 춤이 구별되는가 하면, 그 춤을 추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경우도 빈번했잖아요. 특히 복장에서 이 같은 권력관계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소조  맞아요. 탱고에서도 남자들은 주로 어두운색의 멋들어진 수트를 입고 춤을 추는 반면에, 여자들은 화려하고 정열적인 빨간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춤을 춰요. 또 밸리 댄스에서는 배를 다 드러내고 골반을 강조하는 옷을 입고요.

 

 파란  불편할 뿐 아니라 성적으로 대상화된 복장이죠. 특히 최근에 쇼츠가 생기면서 춤을 통한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더 잘 드러나더라고요. 더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더 빠르게 퍼지는 특성도 한몫하는 듯해요.

 

 소조  작년에 유행했던 ‘제로투 댄스(이하 제로투)’만 봐도 그래요. 처음엔 그냥 ‘제로투’라는 캐릭터가 춤추는 것을 부르는 인터넷 밈이었는데, 일부 여성 스트리머가 패러디하며 섹슈얼한 코드가 짙어졌어요. 제로투가 점점 인기를 얻더니 결국 공중파 예능에서까지 제로투를 추는 장면이 등장했죠.


유행에 따라 청소년들도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쇼츠를 올리더라고요. 청소년들은 그냥 유행하는 춤을 추는 거지, 자신이 성적 대상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거예요.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그냥 춤인데 뭐’ 하면서 한층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둔감하게 받아들이게 되고요.

 

 파란  그래서 결국 문제가 생기죠. 제로투가 한창 유행할 무렵, 갓 수능을 끝낸 고등학생들이 술집에 모여 있는 영상을 봤어요. 여학생들은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제로투를 추고, 남학생들은 앉아서 춤을 관람하는 영상이었어요. 모여 있던 학생들이 전부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뉴스에 나오게 된 거죠. 눈앞이 아찔하더라고요.

 

 소조  제로투처럼 SNS와 미디어에서 인기를 끌었던 춤인 ‘트월킹’이 생각나네요. 트월킹은 춤이 ‘주체적 섹시’를 보여주는 통로가 된  예시인 것 같아요.

 

 파란  공감해요. 트월킹은 흑인 여성들의 고유문화로, 이들이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는 춤이었대요. 비백인 여성을 향한 사회의 여성혐오적 시선과 ‘걸레 취급(slut shaming)'에 맞선다는 반항적인 의미가 담겨있어요.


 소조  그런데 그런 트월킹이 정말 여성 해방의 기능을 하고 있는가 보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뮤직비디오에서 남성 랩퍼의 배경에 트월킹하는 여성들이 등장하거나, 미성년자들이 sns에 트월킹 영상을 찍어 올리는 장면을 보면요.


 파란  트월킹이 가지고 있던 전복적인 메시지가 너무 가볍게 소비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시선의 대상으로 위치시키는 건 주체적이라 할 수 없어요.


 소조  맞아요. 꼭 주체성을 욕망의 ‘대상’이 되는 방법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걸까요? 욕망 ‘당하는’ 것보다 욕망 ‘하는’ 행위가 더 주체성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스우파’에서는 다른 의상과 무대에서 종종 나타나는 ‘주체적 섹시’에 대한 논쟁이 적었던 것 같아요. 아무리 노출이 많은 옷을 입어도 말이죠.


 파란  ‘스우파’ 속 무대는 대상화보다 주체성이 크게 드러났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물론 논쟁이 일어날 만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그동안 미디어가 비춰주지 않았던 여성의 경쟁과 연대, 그리고 가려져 있던 노력과 열의에 좀 더 주목할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을 빛내주는 일을 하던 댄서라는 직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소조  춤에는 한 시대의 사회 문화적 코드가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종종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보고 문제의식을 느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고요. 우리 사회가 성차별적 문제점을 인지하고 한 발짝씩 발전해왔듯이, 춤도 점점 성적 대상화와 성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라요.

“암만 살 쪄도 난 마름” 챌린지

-오늘의 콘텐츠 | SNS 걸그룹 틱톡 챌린지-

소셜미디어 ‘틱톡(TikTok)’은 20초 남짓한 숏폼(short-form) 콘텐츠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는 그 어떤 영상보다 짧고 빠르게 소비됩니다. ‘틱톡’과 비슷하게 인스타그램에는 ‘릴스’, 유튜브에는 ‘쇼츠가 있습니다. K-pop에서는 이러한 숏폼 콘텐츠로 노래의 시그니처 안무를 짧게 선보이는 챌린지가 주요 홍보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챌린지를 찍지 않는 아이돌은 거의 없어요. 간단하면서도 아주 많은 사람에게 전파할 수 있거든요. 그러나 우리는 영상 속 아이돌의 춤 동작만 향유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든 시각적 이미지, 몸매, 의상, 메이크업, 표정 등을 더 잘 볼 수밖에 없습니다.

©vandimguzhva/Thinkstock

영감의 실마리


하나, 망설일 시간은 3초면 되는걸

틱톡의 평균 시청 지속시간은 단 3초라고 합니다. 이용자들이 3초 안에 콘텐츠를 계속 볼 것인지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3초 안에 우리 뇌를 빠르게 자극하지 못한다면, 쓱~ 뽕! 손가락으로 스와이핑해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틱톡은 무한히 새로운 자극을 제공합니다. 마치 레버를 당기면 새로운 보상이 주어지는 슬롯머신처럼 말이에요. 참을 수 없는 이끌림과 호기심으로 작동하는 이 머신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3초를 사로잡기 위해 K-pop 산업이 취한 전략 중 하나는 마른 소녀의 몸입니다. 걸그룹의 과도한 다이어트는 꼭 오늘만의 일은 아닙니다만, 최근 더욱 심각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틱톡 챌린지’가 유행한 시점과 아이돌이 뼈까지 마른 몸으로 나타난 시기는 비슷합니다. ‘틱톡 챌린지’는 세로로 된 영상이라는 특성상 머리부터 발끝까지 3초 안에 스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말라야 합니다. 그 찰나에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결국 소녀의 첫인상이 시청 지속시간을 결정합니다. 챌린지의 진짜 핵심은 완벽한 보디 이미지(body image)입니다.

아이브(IVE)의 LOVE DIVE 챌린지 ©KBS Cool FM/Youtube(좌), ive.official/TikTok(우)

둘, 본 스키니 빗치 암만 살쪄도 난 마름

여성 아이돌이 매력적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쏟아부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젠 노오오오오력해서 마른 몸은 별로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Effortless Perfection’, 노력 없이 얻은 완벽함을 추종하는 문화 때문이죠. "본 스키니 빗치 암만 살쪄도 난 마름"이어야 합니다. 요즘엔 걸그룹 식단이나 운동 루틴은 중요하지 않아요. 날 때부터, 뼈부터 마른 소녀 이미지만이 남을 뿐입니다. 정말 말 그대로 뼈를 깎아야만 사랑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물론 몸무게 하나만으로 모든 여성 아티스트를 납작하게 말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그러나 걸그룹의 '암만 살쪄도 마른 몸'을 동경하며, 위태롭게 거울과 저울을 오가는 현실의 여성들을 위해서 '틱톡 챌린지'에 대한 비판은 필요합니다.

©블랙핑크 트위터

에디터의 생각 조각


춤은 ‘정태(停態)’가 아니라 ‘동태(動態)’다

“팔은 많이 안 흔들게요. 살 떨리니까~” 얼마 전 한 여성 아티스트가 팬들에게 인사하며 한 말입니다. 무대 위에서 그는 자유롭고 에너지 넘치는 퍼포먼스를 선보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손을 흔들 때조차 팔뚝 살이 어떻게 보일지 걱정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몸은 ‘움직이는 존재’이지 ‘전시의 대상’이 아니잖아요. 드러나는 갈비뼈, 가는 발목, 접히는 살보다 근사한 퍼포먼스를 위한 노력에 더 주목하면 좋겠습니다. 몸을 조각조각 검열하는 시선에서 해방되었을 때 우린 비로소 자유의 춤을 만끽할 수 있을 겁니다.


위드, 발레 연구가 정옥희 씨의 말로 이 편지를 마무리할게요.


“발레리나의 몸에 대한 칭송을 멈추자. ‘어머, 역시 발레리나라서 아름다우시네요’, ‘우리 딸도 발레 하면 몸매가 좋아지고 팔다리가 길어지겠죠?’ 라며 건네는 말은 찬사가 아니라 이들의 몸을 옥죄고 동여매는 전족이다. 몸에 대한 찬사는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누군가가 칭송받을수록 나머지는 ‘등급별 몸뚱이가 되어 다그침을 당한다. 춤은 ‘정태(停態)가 아니라 ‘동태(動態)’다. 찬사 역시 ‘정태’가 아니라 ‘동태’에 쏟아져야 한다.”

위드, 영업하고 싶을 만큼 멋진
여성 댄스 퍼포먼스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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