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스우파’는 춤에 대한 성별 이분법적 인식에서도 벗어나고자 했어요. ‘비보잉(B-Boying)’이라 통용되던 브레이크 댄스는 언제나 남자의 전유물이었는데, ‘비걸 옐(B-Girl Yell)’이 멋진 브레이크 댄스를 선보이면서 당연시되던 인식을 뒤엎었어요. 또, 남성 댄서와 협연하는 ‘맨 오브 우먼’ 미션에서 크루 라치카와 프라우드먼은 고정적이었던 남녀 댄서의 역할을 탈피했습니다.
소조 멋있네요. 언제부터 ‘여자 춤’과 ‘남자 춤’이 암묵적으로 구별되었을까요? 생각해보면 오래전부터 ‘여자 춤’과 ‘남자 춤’은 구별되어왔던 것 같아요. 여성들이 연회에서 곱게 차려입고 남성 관료들의 여흥을 띄우기 위해 춤을 출 때, 남성 장군들은 용맹과 기개를 보여주기 위해 검무를 추는 장면을 생각해보면요.
파란 그렇네요. 성별에 따라 춤이 구별되는가 하면, 그 춤을 추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경우도 빈번했잖아요. 특히 복장에서 이 같은 권력관계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소조 맞아요. 탱고에서도 남자들은 주로 어두운색의 멋들어진 수트를 입고 춤을 추는 반면에, 여자들은 화려하고 정열적인 빨간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춤을 춰요. 또 밸리 댄스에서는 배를 다 드러내고 골반을 강조하는 옷을 입고요.
파란 불편할 뿐 아니라 성적으로 대상화된 복장이죠. 특히 최근에 쇼츠가 생기면서 춤을 통한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더 잘 드러나더라고요. 더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더 빠르게 퍼지는 특성도 한몫하는 듯해요.
소조 작년에 유행했던 ‘제로투 댄스(이하 제로투)’만 봐도 그래요. 처음엔 그냥 ‘제로투’라는 캐릭터가 춤추는 것을 부르는 인터넷 밈이었는데, 일부 여성 스트리머가 패러디하며 섹슈얼한 코드가 짙어졌어요. 제로투가 점점 인기를 얻더니 결국 공중파 예능에서까지 제로투를 추는 장면이 등장했죠.
유행에 따라 청소년들도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쇼츠를 올리더라고요. 청소년들은 그냥 유행하는 춤을 추는 거지, 자신이 성적 대상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거예요.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그냥 춤인데 뭐’ 하면서 한층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둔감하게 받아들이게 되고요.
파란 그래서 결국 문제가 생기죠. 제로투가 한창 유행할 무렵, 갓 수능을 끝낸 고등학생들이 술집에 모여 있는 영상을 봤어요. 여학생들은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제로투를 추고, 남학생들은 앉아서 춤을 관람하는 영상이었어요. 모여 있던 학생들이 전부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뉴스에 나오게 된 거죠. 눈앞이 아찔하더라고요.
소조 제로투처럼 SNS와 미디어에서 인기를 끌었던 춤인 ‘트월킹’이 생각나네요. 트월킹은 춤이 ‘주체적 섹시’를 보여주는 통로가 된 예시인 것 같아요.
파란 공감해요. 트월킹은 흑인 여성들의 고유문화로, 이들이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는 춤이었대요. 비백인 여성을 향한 사회의 여성혐오적 시선과 ‘걸레 취급(slut shaming)'에 맞선다는 반항적인 의미가 담겨있어요.
소조 그런데 그런 트월킹이 정말 여성 해방의 기능을 하고 있는가 보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뮤직비디오에서 남성 랩퍼의 배경에 트월킹하는 여성들이 등장하거나, 미성년자들이 sns에 트월킹 영상을 찍어 올리는 장면을 보면요.
파란 트월킹이 가지고 있던 전복적인 메시지가 너무 가볍게 소비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시선의 대상으로 위치시키는 건 주체적이라 할 수 없어요.
소조 맞아요. 꼭 주체성을 욕망의 ‘대상’이 되는 방법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걸까요? 욕망 ‘당하는’ 것보다 욕망 ‘하는’ 행위가 더 주체성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스우파’에서는 다른 의상과 무대에서 종종 나타나는 ‘주체적 섹시’에 대한 논쟁이 적었던 것 같아요. 아무리 노출이 많은 옷을 입어도 말이죠.
파란 ‘스우파’ 속 무대는 대상화보다 주체성이 크게 드러났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물론 논쟁이 일어날 만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그동안 미디어가 비춰주지 않았던 여성의 경쟁과 연대, 그리고 가려져 있던 노력과 열의에 좀 더 주목할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을 빛내주는 일을 하던 댄서라는 직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소조 춤에는 한 시대의 사회 문화적 코드가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종종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보고 문제의식을 느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고요. 우리 사회가 성차별적 문제점을 인지하고 한 발짝씩 발전해왔듯이, 춤도 점점 성적 대상화와 성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