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라고 무시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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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를 왜 하느냐면요
경향신문 뉴스레터
2023.03.02. 목요일
독자님, 휴일 잘 보내셨나요? 저는 이번 주의 큐레이터 허남설 기자입니다.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한 지점을 건드린 기사를 좋아해요.

오늘은 노동조합을 이끌어본 50대 여성 노동자 권승미씨의 이야기를 준비했어요. 권씨는 2019년 말 20여명 노동자를 모아 노조를 처음 결성했고, 이제 그 노조는 80여명에 달하는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권씨를 만난 조해람 기자의 말을 들어보니, 권씨는 금융업계에서 일하다 결혼·출산으로 경력단절을 겪고 생산직으로 다시 일하기 시작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 여성의 노동 경로를 거쳤다고 해요.

권씨의 이야기는 노조가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왜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경향신문 기획 <"노조, 왜 해?" 물으신다면> 첫 회에 담겼습니다. 기사는 약 3분 분량이에요.
☑️ 천안의 한 식품기업에 다니는 생산직 노동자들은 약 3년 전만 해도 관리자들에게 '아줌마'라고 불리며 무시당했다.
☑️ 상여금 절반 삭감을 계기로 '아줌마'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20명이 결성한 노동조합은 이제 80명으로 불었다.
☑️ '아줌마'들의 노조는 용역직원들의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했고, 마스크 등 소모품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름을 찾은 '아줌마'들
2023.02.27. 조해람·김지환·민서영 기자
권승미 화섬식품노조 신미씨앤에프지회 지회장. 권도현 기자
‘아줌마’들은 늘 위축돼 있었다. 2019년 12월12일까지는.

‘아줌마’들은 충남 천안의 식품기업 신미씨앤에프 공장에 다녔다. 신미의 주력 상품인 유부는 유명 식품 대기업들의 유부초밥에도 쓰였다. 그러나 대기업 브랜드 유부초밥에 납품된 OEM(주문자위탁생산) 유부처럼, ‘아줌마’들도 이름이 없었다.

매일 오전 7시쯤 공장에 출근하면서부터 원래 이름은 지워지고 모두 ‘아줌마’가 됐다. “아줌마! 여기 치워!” “이것 좀 옮겨 아줌마!” 기계 소리가 왕왕대는 3층 생산현장에서 관리자들은 소리치곤 했다. 하얀 위생모와 위생복을 입은 100여명의 ‘아줌마’들은 겉으로도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당시 ‘아줌마’들은 하루 10시간씩 주말도 없이 3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이었다. 일회용 위생모나 마스크 같은 소모품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더 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2016년의 어느 날 권승미씨(54)가 화장실에서 본 건 세면대에서 일회용 부직포 마스크를 빨고 있는 동료의 뒷모습이었다.

“언니, 뭐하세요!”

“계속 사서 쓰긴 힘드니까….” 언니는 말했다.

‘아줌마’들은 늘 위축돼 있었다. 의사소통 창구가 없던 시절이었고, 참다 참다 사무실에 말을 하면 찍혔다. 권씨도 2016년 어느 겨울날 곤욕을 치렀다. 규정상 2명이 하도록 돼 있는 작업을 1명에게 시킨다며 사무실에 따지고 다시 작업장에 오니 관리자들이 권씨를 둘러쌌다. “아줌마, 그렇게 안 봤는데 당돌하네?” “감히 사무실에 다녀와?”

대부분 중년 여성인 직원들은 공장을 그만두면 갈 곳이 없어 ‘끽 소리’도 못 했다. “내가 아쉬워 다니는 직장이라 고개를 숙일 수밖에요. 우리 스스로도 기가 죽어 있었어요.” 권씨가 말했다. 화를 삼키면 속이 쓰렸다. 힘든 노동에 예민해져 서로 싸우기도 했다.

2018년, 회사가 마침내 기름을 부었다. 기본급이 최저 수준이라 상여금으로 그나마 숨통이 트였는데 회사가 동의도 없이 상여금을 절반이나 깎은 것이다. 2019년에는 반토막난 상여금을 또 깎으려 했다. 회사는 경영이 어려워졌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이윤은 꾸준히 늘고 있었다.

“아줌마들을 얼마나 무시했으면…. 설명조차 필요없었던 거죠.” 권씨는 한 판 들이받고 퇴사하려 했다. 회사에 ‘부당하다’는 목소리를 더 자주 냈고, 밤마다 노동법을 검색하고 기사들을 읽었다. 그런 권씨에게 ‘언니’들은 말했다. “우리도 싸우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 승미 네가 앞장서주면 안될까?” 퇴사하려던 권씨는 포털 사이트에 ‘노동조합 만드는 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세종충남지부를 찾아 상담도 받았다. 권씨와 뜻을 모은 동료들은 알음알음 다른 동료들을 설득했고, 20명이 모였다.

20명이 ‘노조’가 된 건 2019년 12월12일,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였다. 지회장은 권씨가 맡았다. 망설임 없이 가입원서를 낸 ‘언니’들도 직책을 하나씩 맡았다. 평생 ‘누구 엄마’ ‘아줌마’ 소리만 듣고 살아 온 이들이 ‘수석부지회장’ ‘문화부장’으로 자신을 소개하려니 혀가 꼬였다. 푸하하 웃음이 터졌다.
권승미 화섬식품노조 신미씨앤에프지회 지회장의 노조 명찰. 권도현 기자
그날 이후 ‘아줌마’들의 위축된 어깨가 조금씩 펴졌다. 조합원은 순식간에 50명으로, 80명으로 늘어갔다. 사장은 “눈에 흙이 들어와도 노조는 안 된다” “노조만 안 하면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회유했지만 ‘아줌마’들의 결속을 뒤집진 못했다.

회사와의 교섭은 의외로 잘 풀렸다. “우리가 회사를 망하게 하거나 이겨먹으려고 노조 하는 게 아니거든요. 회사는 우리가 임금이나 올려받으려고 노조 한다고 생각했는데, 대화를 해 보니 우리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죠.” 노조는 생산직 절반을 차지하던 용역업체 직원들의 불법파견 문제부터 해결했다. 십수년 일하고도 ‘알바’라며 무시당하던 이들이 정규직이 되니 여기저기 울음바다였다.

회사도 직원들을 ‘파트너’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면서 노사관계도 많이 좋아졌다. 노조와 회사는 일터의 크고 작은 문제를 하나씩 함께 바꿔나갔다. 지금은 마스크·장화 등 소모품을 요구하고, 손수레가 고장나면 바로바로 말할 수 있다. 예전이었다면 지레 겁먹거나 체념하고 속앓이만 했을 일들이다. 4분의 1토막이 났던 상여금도 절반으로 복구했다. 노조 가입을 고민하던 직원들도 변화를 경험하니 생각이 바뀌었다. “노조 하면 정부가 주민번호를 모아 빨갱이로 관리한다”던 언니도 가입했다. 정년을 앞두고 건강이 상했던 언니는 노조의 도움으로 요양휴가를 받아 정년을 채웠다.

노동환경만큼 중요한 변화가 또 있다. 스스로 위축되고 ‘내 앞가림’만 생각하던 직원들이 끈끈하게 뭉친 것이다. 불평불만 대신 ‘우리 회사’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일하게 됐다고 권씨는 말했다.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아줌마’가 아니다. 노조 사무실 벽에는 조합원들의 이름이 모두 적혀 있다. “함께 우산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곳”, 권씨가 생각하는 노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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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사를 읽으면서 권승미씨가 겪은 일의 시점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어요. 일회용 마스크를 빨아 썼다고? "아줌마, 당돌하네?" 이런 말을 한다고? 적어도 100명이 일하는 회사에서?

이런 일이 유독 권씨의 주변에서만 일어났던 건 아닐 거예요. 권씨의 이야기는 희망찬 축에 속합니다. 동료들과 뜻을 모아 지난 3년 동안 일터를 바꿔냈으니까요.

경향신문 기획 <"노조, 왜 해?" 물으신다면>은 앞으로 노조를 꾸릴 생각조차 하기 힘든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전할 거예요. 영세한 일터에서, 불안정한 계약을 맺고 일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 글을 읽는 구독자님의 이야기가 담길 수도 있어요.

미국 스타벅스 노조는 청년 세대를 'Z 세대' 대신 노조를 상징하는 'U(Union) 세대'라고 부르자고 위트를 담아 제안한 적이 있어요. 청년 노조원이 많은 그들의 자부심을 보여주죠. 미국 청년들은 노조에서 뭔가 희망을 본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노조가 과연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 "노조 있고 없고가 진짜 달라서요"

"기득권 강성노조의 폐해 종식 없이는 대한민국 청년의 미래가 없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노조와 함께 불합리한 임금제도를 개선하고, 만연한 권고사직 관행을 없애며 '든든한 미래'를 설계한 판교 청년들의 이야기입니다.

🔗 노조는 어쩌다 국민 욕받이가 됐을까

지난해 20%대 낮은 국정 지지율에 시달리던 정부, 이제는 30%를 거뜬히 넘어 40%도 바라봅니다. '노조 때리기'가 추세를 뒤집었습니다. 반노조 정서가 확산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소득층 등 사회적 지위가 약할수록 노조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정작 이들이 노조를 더 불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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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의 이야기
📬 지난 2월28일 점선면Lite <강제동원 문제가 풀리지 않는 이유>편에 skheo님이 보내신 의견이에요.

"누구도 명확한 해법을 내 놓을 수 없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생각해 보게 하는 문제 의식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의 부친도 강제동원 대상자였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그것을 징용이라고 했지요. 30대에 징용 가셨다가 귀국 후 40대 초반에 별세하셨으니까 그 원인이 징용도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이미 거의 100년 전의 일입니다. 묻어버리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지요. 계속 물고 늘어지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 skheo님과 아버님이 겪으셨을 아픔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탄광 등 강제동원 현장에서 노동은 무척 고됐을 뿐만 아니라 큰 후유증을 남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살아계셨다면 '피해자'로 명명됐을지도 모를 아버님께 뒤늦게나마 위로를 전하며 안식을 기원합니다.

말씀하셨듯 일제 강제동원 이후 아주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사법적 정의를 구현할 길은 보이지 않고요. 그런 현실을 감안해 '제3자 변제'란 방식이 나온 것 같습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는 칼럼에서 "현실적으로 유일한 해법"이라고 평가하기도 했고요.

윤석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사는 언급하지 않고, 일본을 '파트너'라고 칭하며 '한·미·일 3자 협력'을 강조했어요. 이렇게 균형감 없는 3·1절 기념사는 처음이며, 강제동원 문제를 시급하게 풀겠다는 생각이 지나쳤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정부의 접근법에 대한 논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 같습니다.

📬 지난 2월28일 헤오라님이 보내신 이야기예요.

"기자님의 기사를 통해 우리가 하는 일이 미약하지만 그 미약한 도움이라도 가능하다면 모두가 함께 하면 좋겠다 생각해봅니다.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 하더라도 머리로 이해되지 않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봅니다. 세상에 가치로운 일을 하는 사람으로 오래 남고 싶다는 다짐과 함께요. 좋은 기사 감사드려요."

📝 헤오라님은 어디에선가 가치있는 일을 지향하며 살고 계신 분 같아요. 우선 점선면 레터를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그 레터가 잠깐이나마 헤오라님의 길에 함께 하는 느낌을 드린 것 같아 뿌듯합니다. 함께 오래 남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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