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들은 늘 위축돼 있었다. 2019년 12월12일까지는.
‘아줌마’들은 충남 천안의 식품기업 신미씨앤에프 공장에 다녔다. 신미의 주력 상품인 유부는 유명 식품 대기업들의 유부초밥에도 쓰였다. 그러나 대기업 브랜드 유부초밥에 납품된 OEM(주문자위탁생산) 유부처럼, ‘아줌마’들도 이름이 없었다.
매일 오전 7시쯤 공장에 출근하면서부터 원래 이름은 지워지고 모두 ‘아줌마’가 됐다. “아줌마! 여기 치워!” “이것 좀 옮겨 아줌마!” 기계 소리가 왕왕대는 3층 생산현장에서 관리자들은 소리치곤 했다. 하얀 위생모와 위생복을 입은 100여명의 ‘아줌마’들은 겉으로도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당시 ‘아줌마’들은 하루 10시간씩 주말도 없이 3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이었다. 일회용 위생모나 마스크 같은 소모품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더 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2016년의 어느 날 권승미씨(54)가 화장실에서 본 건 세면대에서 일회용 부직포 마스크를 빨고 있는 동료의 뒷모습이었다.
“언니, 뭐하세요!”
“계속 사서 쓰긴 힘드니까….” 언니는 말했다.
‘아줌마’들은 늘 위축돼 있었다. 의사소통 창구가 없던 시절이었고, 참다 참다 사무실에 말을 하면 찍혔다. 권씨도 2016년 어느 겨울날 곤욕을 치렀다. 규정상 2명이 하도록 돼 있는 작업을 1명에게 시킨다며 사무실에 따지고 다시 작업장에 오니 관리자들이 권씨를 둘러쌌다. “아줌마, 그렇게 안 봤는데 당돌하네?” “감히 사무실에 다녀와?”
대부분 중년 여성인 직원들은 공장을 그만두면 갈 곳이 없어 ‘끽 소리’도 못 했다. “내가 아쉬워 다니는 직장이라 고개를 숙일 수밖에요. 우리 스스로도 기가 죽어 있었어요.” 권씨가 말했다. 화를 삼키면 속이 쓰렸다. 힘든 노동에 예민해져 서로 싸우기도 했다.
2018년, 회사가 마침내 기름을 부었다. 기본급이 최저 수준이라 상여금으로 그나마 숨통이 트였는데 회사가 동의도 없이 상여금을 절반이나 깎은 것이다. 2019년에는 반토막난 상여금을 또 깎으려 했다. 회사는 경영이 어려워졌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이윤은 꾸준히 늘고 있었다.
“아줌마들을 얼마나 무시했으면…. 설명조차 필요없었던 거죠.” 권씨는 한 판 들이받고 퇴사하려 했다. 회사에 ‘부당하다’는 목소리를 더 자주 냈고, 밤마다 노동법을 검색하고 기사들을 읽었다. 그런 권씨에게 ‘언니’들은 말했다. “우리도 싸우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 승미 네가 앞장서주면 안될까?” 퇴사하려던 권씨는 포털 사이트에 ‘노동조합 만드는 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세종충남지부를 찾아 상담도 받았다. 권씨와 뜻을 모은 동료들은 알음알음 다른 동료들을 설득했고, 20명이 모였다.
20명이 ‘노조’가 된 건 2019년 12월12일,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였다. 지회장은 권씨가 맡았다. 망설임 없이 가입원서를 낸 ‘언니’들도 직책을 하나씩 맡았다. 평생 ‘누구 엄마’ ‘아줌마’ 소리만 듣고 살아 온 이들이 ‘수석부지회장’ ‘문화부장’으로 자신을 소개하려니 혀가 꼬였다. 푸하하 웃음이 터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