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얼마 전 소소하게 유행한 ‘학창시절 생활기록부 찾아보기’. 예전 <티비는 사랑을 싣고>처럼 이창명 씨가 학교를 찾아가지 않아도 정부24에서 쉽게 받아볼 수 있더라고요. 40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의 발달 상황을 하나하나 적기란 얼마나 짜증나는 일이었을까 생각하며, 이 부분만큼은 복붙이 아니라 ‘진짜’구나 싶은 몇몇 구절에서는 웃음을 터트리며 즐겁게 읽어봤는데요.

제일 웃겼던 건 고등학교 3년 동안 성장하는 장구 인생 부분이었습니다. 너울가지 참소리패라는 풍물 동아리 활동을 정말 좋아했고 열심히 했거든요. 한번 이야기한 적 있는 것 같은데, 그때 친구들하고 각자 MP3에 우도판굿 음원 넣어다니면서 듣고 했어요. 저는 1학년 땐 ‘전통 음악적 감각이 뛰어’난 학생에 불과했으나 2학년 때는 ‘삼도사물놀이와 호남우도 판굿에서 장구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했고, 3학년 때는 기어코 ‘상장구로서 장구의 멋과 신명을 알’아버렸습니다. 멋지지 않나요… 성적표보다 이런 게 훨씬 기억에 남고 뿌듯할 줄, 저는 그때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능은 매년 축제는 올해뿐’을 되뇌며 열심히 장구를 뚜들겼던 것이겠죠.

두 번째로 웃겼던 부분… ‘통일의지가 굳’은 초등학교 2학년.

그때 미처 몰랐던 건 따로 있습니다. 강산이 몇 번 지난 뒤의 저는 그때와 아주 다른 사람일 거라는 점입니다. 일례로 중학교 ‘진로희망’란에 적힌 장래희망을 보고 깜짝 놀라버렸습니다. 저에게 떠오른 의문은 이땐 왜 이런 게 되고 싶어 했지? 가 아니라 이 직업이 대체 뭐지? 였어요. 여러분 ‘긴급구호요원’이 뭔지 아시겠나요? 저는 진짜 모르겠습니다… 소방관도 긴급구조사도 아니고 긴급구호요원이 뭘까요? UDT 같은 군인이 되어서 세계의 각종 재난 현장에 파견되고 싶었던 걸까요? (딴 소리지만 덱스 유튜브에 사나가 게스트로 나온 걸 보고 하 진짜 UDT 될 걸 심각하게 후회했습니다.) 초등학생 땐 잠시 군인이 되고 싶었으니 그 맥락일 수도 있겠지만… 어린 제가 대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며 장래희망란에 ‘긴급구호요원’을 적었는지 도무지 모를 일입니다. 웬만하면 엄마한테 물어볼 텐데 이건 엄마도 모를 것 같아요.


2학년 때 건축가 쓴 거 보고 3학년 때 엄마도 건축가 써 냈지만 그건 제 잔상입니다.

아무튼 PD와 건축가와 긴급구호요원(???)을 거쳐 고등학생이 된 뒤로는 3년 내내 장래희망란에 기자를 적어내었습니다. 이때부터는 여기에 적어내는 ‘직업’이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기계적으로 휘갈겨냈겠죠. 왜 이렇게 확신하느냐면 이때의 진짜 꿈은 ‘(무슨 글이 됐든) 글 써서 먹고살기’였다는 게 생생하게 기억나기 때문입니다. 저건 또 어떻게 기억하느냐면 대학 때 ‘글 써서 먹고살기는 폐기하고 글 만져서 먹고살기로 선회한다’고 결심했던 게 기억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꿈은⭐이루어져서 출판 편집자로 일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꿈이⭐이루어진 후는 어땠냐면요. 대부분의 꿈이 그렇듯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이런 거였다니 하는 절망과 현타의 시간도 있었지만 또 어떤 꿈들이 그렇듯 이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내가 바랐던 일을 실제로 하게 되었다는 성취감, 희망을 현실로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실제 그 일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컸던 것 같기도 해요. 모든 일은 얼마간의 ‘뽕맛’ 없이 굴리기 어렵지 않던가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I love my job*3”은 그 찰나의 뽕맛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겠고요. 지금은 편집자로 일하지 않고 글을 만져 먹고 살지도 않지만 종종 그 시간들을 떠올립니다. 글로 돈을 벌고 싶었다가, 글 만지는 일로 먹고살고 싶었다가, 결국 그 일을 하게 된 날들. 약 10년에 걸쳐 흘렀던 시간이 제법 행복했던 것 같아요.


어릴 땐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이나 과학자나 대통령, 하다못해 변호사 같은 꿈을 한번쯤 꿔봤을 법도 한데 제가 꿈꿨던 가장 거창한(?) 직업은, 글쎄요. 기자나 PD가 조금 멋쟁이 같기는 하지만 사실 그땐 기자도 뭔 사무실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 90년대 신문기자를 상상했던 거고 군인도 그냥 개구리 군복 입고 철조망 아래를 박박 기는 모습을 상상했던 거라서요. PD도 자기가 경찰인 줄 아나, 하는 욕을 들어먹으면서 승합차에서 노숙하는 그런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머리 하나로 질끈 묶고 냄새나는 체크 셔츠 입은 그런 거 아시죠. 한번도 간지나고 세련되고 멋진 직업인의 이미지를 떠올린 적이 없네요. 이게 다 어릴 때 키자니아가 없었어서 그렇다.

치열하고 더럽고(?) 몸이 힘들고 활동적이고 바쁘게 전력을 다해야 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막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고 그런 거요. 그에 비하면 실제로 제가 하고 있는 일은 고상하고 몸 편하고 농땡이도 칠 수 있는 일이군요.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게으른 천성에 맞지 않는 꿈을 좇았던 건지, 저런 치열함은 어떤 자격을 증명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건지는 모르겠네요. 이것도 속 편한 이야기긴 합니다. 결국 이 일과 인생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요. 애초에 꼭 이루고 싶은 어떤 미래란 꿈과 희망이 가득하고 선명한 고화질로 그걸 상상할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 아닐까요?


어릴 때부터 쭉, 저는 미래를 상상하고 그려보는 일에 약합니다. 공상, 상상 이런 거 못했고 안 했고 지금도 그래요. 10년 뒤 20년 뒤 제가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을 것 같냐고요? 그냥… 지금하고 비슷하겠죠 뭐. 시발시발 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고는 하하 웃고 주말에는 드러누워 있다가 놀러도 나가고 인생 좋네 이 정도면 과분하게 행복하네 생각하면서요.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 밝으면 다시 시발시발 시작) 이런 삶의 단점은 하고 싶은 게 별로 없다는 겁니다. 이게 왜 단점이냐 하겠지만 진짜 단점 맞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한국 사회(^^;)는 놀랍도록 풍요롭습니다. 물론 이 풍요가 어떻게 분배되고 있느냐는 다른 문제지만… 이 중에서도 제가 속한 세대의 일부는 매우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고 아무리 소박한 꿈을 꾼다고 해도 그건 한 인간에게 매우 행복한 환경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자꾸 니가 원하는 게 뭐냐 하고 싶은 거 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없다고 하면 야망이 의지가 열정이 없다고 뭐라고 하고요. 이것 참 서로 배부른 소리를 주고받으면서 배부른 소리로 서로를 공격하는 모양이 우습기도 하고 어딘지 처량하기도 합니다.

만약 아직도 매년 장래희망을 적어내야 한다면 저는 뭐라고 적을까요? 진짜로 할 말이 없습니다. 당장 이직을 하라고 해도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뭔지를 모르겠는데요… 뒤통수만 벅벅 긁을 뿐… 몇년 전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난 지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고 지금이 바로 내 인생의 리즈 시절인 것 같다고요. 그 리즈 시절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중입니다. 그래서 지금 저에게 꿈이 있다면… 이 시간이 계속 되길! 어린 시절의 제가 알았다면 제법 멋지고 부러운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이번 주에는 긴 추석 연휴가 기다리고 있어요. 푹 쉬시고,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다음주에 다시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