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ttle Stiletto, 이 제품의 기획은 스트랩의 실루엣 그 자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My little Stiletto 디자인 개발기 : 우아하면서도, 뾰족하면서도, 진지할 수 있겠는가.

- 디자인팀 팀장 K -

나는 이 실루엣 Silhouette이라는 단어를 스무 살, ‘평면 구성’이라는 대학 1학년 전공 필수 수업에서 처음 접했다. 이 구성 수업은 옷의 기본 패턴을 배우는 우리 과에서 가장 중요한 실기 수업이었는데, 교재랄 것이 따로 없이 미국의 한 유명 패션 학교의 교재를 통째로 제본해 사용했다.

그렇게 우리는 4년 내내 의류 디자인과 관련된 모든 단어와 표현을 외국어로만 배웠다! (서양에서 수입된 학문의 용어가 국어로 정확하고도 세련되게 번역되지 못 하는 것은 비단 디자인학의 문제만도 아니지만 말이다). 실제 패션업계에서는 주로 일본어에 뿌리를 둔, 우리가 알고 있는 영어 단어들과는 완전히 다른 업계만의 용어가 따로 존재하고 있음을 나는 그때만 해도 전혀 몰랐다.

하여튼, 이 ‘윤곽선’을 뜻하는 실루엣 Silhouette이라는 단어의 스펠링이 이렇게 헷갈리고 낯선 이유가 실은 이 단어가 불어에서 왔기 때문이란 것도 한참 후에나 알았다. 그저 당시 나는 ‘이 단어는 자신의 철자인 Silhouette조차 어쩐지 우아하구나’라고 생각했다. 

지난 1월 말 ‘시그니처 진스 SIGNATURE JEANS’ 제품을 런칭한 후 사실 차기작에 대한 고민은 크지 않았다. 우리 디자인 팀은 이미 지난 가을부터 여성 스트랩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갖추어 놓고 있었다.

당시 나는 스마트워치의 사용자의 반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타깃의 스트랩 디자인에 대한 탐구가 충분하지 않다 생각했다. 시장에서 여성용 제품이라 판매되고 있는 슬림 가죽 스트랩의 디자인은 천편일률적이었고, 특히 워치 디바이스에서부터 스트랩까지 이어지는 외곽라인이 무척 가팔라서 못 생겨 보였다. 그렇다.

외곽 라인, 바로 그 실루엣 말이다. 28년 전, 학교 수업에서 교수님이 항상 강조하셨다. 옷을 디자인할 때, 그 옷을 입은 사람의 몸을 어떤 실루엣으로 보이게 할 지가 무척 중요하다고.

그래서 나는 스트랩의 실루엣을 고민했고, 당시 우리 팀은 두 가지 타입을 완성했다. 그 중 첫 번째가 이 제품이다. (또 다른 실루엣은 다음 라인업을 기다려 주시기를!)

주로 20mm 폭의 유니섹스용 스트랩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워치 스트랩 온라인 쇼핑몰의 댓글을 살펴보면 여성 소비자들은 ‘손목이 가늘어 보이게 하는 스트랩’에 대한 니즈를 분명히 표명하고 있었다. 이런 여성들의 요청에 나는 아예 14mm 폭의 워치 어댑터를 사용해서 좁은 폭의 시원하게 뻗는 실루엣으로 응답해보기로 했다. 워치 디바이스의 형태와는 완전히 결별한 듯이 곧장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스트랩만의 단독적인 실루엣을 만들어 보자는 거였다. 그리고나서 꼬리 부분으로 보다 날렵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거다. 그렇게 결정한 후 나는 14mm도 아닌 13.5mm의 스트랩 폭을 결정했다. 0.5mm의 차이가 컸다.

이렇게 제품 실루엣을 정돈하고 보니 어쩐지 뾰족힐, 이름하여 스틸레토힐이 떠올려졌다. 스틸레토힐이라는 이름은 스틸레토 Stiletto, 즉 이탈리아어로 ‘작은 칼’이라는 뜻의 단어에 기원을 두고 있다. 구두 굽이 단검처럼 뾰족하다고 해서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팀원들이 찾아온 스틸레토힐의 역사를 차근히 같이 읽으며 제품의 이름을 결정했다.

“그래, 그렇다면 이 뾰족하고 날렵한 우리의 스트랩에도 ‘스틸레토 Stiletto’, ‘작은 칼’이라 이름 붙이자.”

그리고 이 스트랩에는 또 다른 중요한 스타일링 요소가 있다. 바로 원형 버클이다.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 진화한 20세기 초 이래로 시계의 기본 버클은 네모난 프레임을 크게 벗어난 적이 없다. 손목시계가 이 세상에 등장한 지 100년쯤 흘렀으니 이제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시계 버클을 사용해 봄 직 하지 않을까? 이 동그란 버클이 더해지면서 본 스트랩이 패션 액세서리로서의 정체성을 좀 더 갖추게 되지 않았나 싶다. 언제나 이전에 없던 패션을 두려움 없이 시도해 온 여성들에게 이 새로운 버클을 제안해 보는 바이다.

작년 ‘Sempre Susan’이라는 책을 읽으며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수전 손택 Susan Sontag의 말 하나가 있다.

"I wanted to be serious. 진지하고 싶었어."

이 책의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 Sigrid Nunez에 따르면 수전 손택이 즐겨 쓰던 단어 중 하나가 Serious 였다고 한다.

(선략)“It is harder for a woman,” she acknowledged. Meaning: to be serious, to take herself seriously, to get others to take her seriously. (후략) "여성에게는 더 어려운 일이야."라고 그녀(수잔)는 인정했다. 이 더 어렵다는 것이란 바로 진지하다는 것,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을 말한다.

Sempre Susan 수잔 손택을 추억하며 - page 30 中

나는 이 제품을 기획한 이래로 줄곧 이 스트랩을 손목에 착용한 여성들의 모습을 상상해 왔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항상 ‘어디엔가 몰입하고 있는 여자들’이었다. 몰입하고 있는 여자들은 진지하다. 괜스레 웃지 않는다. 또렷하고 뾰족한 구석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것이 이 스트랩이다.

다시, 실루엣 Silhouette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지금은, 이 단어가 우아하게 보이는 이유가 어쩌면 이 단어의 네 번째 알파벳, h의 존재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h는 불어에서 묵음이다. 불어에서는 영어 h에 기대하는 히읗의 강한 콧소리가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나는 소리 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진지한 사람들이 이 스트랩을 발견해 주었으면 한다. 나도 무척이나 진지하게 이 스트랩을 디자인했다. 디자인이라는 일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