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경험 하나를 고백합니다.

지난 겨울, 저는 미국에 사는 재미교포 2세를 대상으로 한국어 수업을 했었습니다. 수업 중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고, 학생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미국에서 받아온 차별들을 쭉 이야기해줬습니다. 이어 방학마다 한국에 들러 시간을 보내고 온다는 그의 말에 “그래도 한국에 오면 차별 같은 건 없죠?”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학생은 이렇게 답하더군요. “음.. 아닐 걸요.” ‘한국인처럼 생겼지만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받는 차별적 시선은 생각지도 못한 저의 오만한 실수였습니다. 순간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졌고, 저보다 한참 어린 학생에게 연신 사과를 했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나 싶으실 겁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습니다. 관심 가지지 않아도 될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여성 인권 문제와 연결되어있으며, 한국이 향후 숙제처럼 풀어나가야 할 난민 문제와도 관련되어있습니다. 국제사회의 관심 및 외교의 방향이 특히나 중요한 사안이며, 한국 역시 국제사회의 축이죠. 저의 실수는 재미교포 2세가 처한 배경과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에 발생했습니다. 국제사회 역시 아프가니스탄의 배경과 상황, 그들만의 국가적 특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운 실수’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금주 에디터 레터는 저 유스의 반성문이자 국제사회에 던지는 제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아프가니스탄의 입장’에서 고려하기 위해 에디터들이 좋은 글들을 골라보았습니다. 탈레반은 도대체 누구이며 그들은 왜 아프간을 장악한 것인지, 뉴스에 연일 보도되는 ‘탈레반의 여성 억압’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그래서 아프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등 여러분이 궁금해하실 만한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나랑은 상관없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는 생각보다 향후 한국의 역할과 대응을 감시하고, 의견을 내기 위해 ‘오히려 알아야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의 주제는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의 운명’입니다.

2021.08.30.

에디터 유스 드림

소설 같은 구성, 역사성 짙은 문투. 다른 에디터 분이 찾아준 글을 저도 빨려들어가듯 읽었습니다. "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탈레반은 시작된다.", "당신들[미국]은 시계를 갖고 있으나, 우리는 시간을 갖고 있다." 같은 표현에 눈이 가네요.

9/11 이전의 세계는 생경했습니다. 79년 발발한 소련-아프간 전쟁 당시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세력과 친서방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는 아프간의 대소련 투쟁 단체 '무자헤딘'에게 군수 물자를 지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친서방 수니파 국가이자, 파슈툰 족이 다수 분포한 접경국 파키스탄은 아예 정보부가 나서 무자헤딘의 투쟁을 지원했죠. 소련은 개전 10년만에 '제국의 무덤' 아프간에서 퇴패했지만, 90년대 아프간은 지역 군벌이 거점 도시를 두고 싸우는 내전에 빠집니다.

중앙집권적 치안력의 공백. 서방 세력이 지원한 총은 들고 있지만 갈 곳을 잃은 무장력인 무자헤딘. 이런 혼란이 탈레반이 입각한 근본주의적 교리가 힘을 얻을 수 있었던 배경이었습니다. 94년, 기어이 아프간의 중앙 정부가 된 탈레반은 사우디로부터 망명 온 한 테러리스트(오사마 빈 라덴)를 비호해주었지만, 이 테러리스트가 훗날 여객기를 납치해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들이받는 테러를 감행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이후 미국은 탈레반과의 지리한 전쟁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슬람사회의 개혁은 그 구성원들의 감정을 존중하는 속에서 전개돼야 마땅했다. 여성 복장을 개선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우선시한 채 베일 제거를 강요했다. 그래서 저항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에디터 주: 베일은 부르카를 의미한다.)

(...) 아프가니스탄 여성인권 문제는 오로지 탈레반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다. 서방세계의 침략 앞에서 능동적인 개혁의 기회를 상실하고 침략자에 의해 수동적 개혁의 처지에 놓인 이슬람 근현대사도 여성인권 개선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거기다가 외부세계의 몰이해적 태도도 인권 개혁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아프간을 비롯한 이슬람권 여성들의 권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세계 시민들의 연대 투쟁은 무엇보다 이슬람인들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필요가 있다.

탈레반 집권 이후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탈레반 집권기가 아닐 때에도 아프간 사회의 여성 차별은 존재했고, 지난 20년 간 미약하게 이뤄온 발전마저 다시 퇴보할 징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프간 여성 인권은 부르카와 히잡을 벗기는 것으로 높아지지 않습니다. 이슬람 여성 인권에 대한 서구 열강의 단선적인 이해는 이미 여러 차례 반격을 맞은 바 있습니다. 여성 인권 증진을 위해선 무엇보다 이슬람 여성들의 주체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빠진 채 진행되는 논의는 이들의 입장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습니다.

탈레반은 아프간 부족사회의 전통 마을에서 이슬람법에 따라서 분쟁을 중재하던 이슬람 하위 성직자나 신학생들이었다. 탈레반의 득세는 아프간의 부족사회에서 그들의 전통적 자치뿐만 아니라 나름대로의 사법체계를 의미했다. 탈레반이 극단적인 보수적 이슬람 율법을 강제한 것은 전란의 무질서에서 기인한 극단적인 반동 현상일 수 있다. (...)

오바마 행정부에서 아프간 특사로 임명돼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추진한 리처드 홀브룩은 “우리는 엉뚱한 나라에서 엉뚱한 적들과 싸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카불 공항으로 탈출하려는 아프간 주민들의 아비규환, 탈레반이 20년 전 집권 때 보여준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봉건적 억압 등에 대한 우려는 정당하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탈레반에게 물어서 악마화하고, 바이든 대통령의 철군 결정 정당성을 부정하고, 또다시 ‘반탈레반 무장투쟁’을 주장하는 것은 아프간을 벗어나려거나, 남으려는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건 전쟁을 다시 하자는 얘기이다.

분명 탈레반은 승리했습니다. 세계는 아프간을 필사적으로 빠져나오려는 시민에게 포커스를 맞추지만, 그들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이들도 존재합니다. 무능한 정부가 초래한 거버넌스의 부재보다는, 잔혹하고 체계적이지 않더라도 명확한 지배체계가 갖춰지는 것이 낫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국제사회가 탈레반에 대한 접근법을 재고할 시기가 왔습니다. 무작정 그들을 축출하려 나섰다간 아프간 시민을 또 다른 혼란에 빠뜨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들이 황폐해진 아프간을 재건할 수 있도록,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지 않도록, 자신들과 대립하는 이들마저 포용할 수 있도록. 탈레반을 인정하되, 협력과 견제를 병행하며 긍정적 변화를 끌어낼 고차원적 국제외교가 절실합니다.

여성과 소수민족의 권리를 인정하겠다 말하고, 옛 정부의 협력자들에게 함께 일하자 제안하고. 탈레반은 분명 '달라지겠다'라고 약속하는 중입니다. 이들의 약속이 허언으로 남지 않으며, 아프간이 '정상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기대해도 될까요? 소개해드릴 글의 필자는 아프간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변화할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당분간은 서방의 원조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여성·소수민족·옛 정부 협력자들의 노동력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각국의 투자와 원조를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겠죠.

하지만, 필자는 마냥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합니다. 부족·지역으로 분열된 아프간의 현실 속에서, 탈레반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조직이 아닙니다. 중앙에서 변화를 추구해도 지방에선 따르지 않을 수 있죠. 중앙정부 안에서도 강경파와 개혁파의 대립이 존재합니다. 어쨌든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인 탈레반, 그 안에서 개혁파가 정국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진 않을 겁니다. 결국, 당분간 아프간은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으리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아프간 시민들을 위해, 국제사회가 아프간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현재 한국에 보호를 촉구하는 아프간 난민 대부분은 현지에서 우리 정부에 협력한 통역사, 의료진, 사무직, 엔지니어 등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에 협력한 아프간인과 그 가족 5만~6만5000명을 모두 탈출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20일 성명을 내고 지금까지 난민을 받아주기로 한 나라로 캐나다, 멕시코, 르완다, 우크라이나 등 12개국을 열거하며 국제사회의 협력을 요구했다.

아프간 난민은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이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올해 발생한 아프간 난민 55만명 중 59%가 18세 미만 아동이었다. 지난 5월 말 이후 발생한 난민 25만명으로 대상을 좁히면 전체의 80%가 여성과 아이들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최소한 임산부가 있는 가족, 아동과 그 가족만이라도 받아들임으로써 국제사회가 연대할 수 있는 길을 함께 열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아프간의 ‘정상 국가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필요한 가운데, 한국은 다시 난민 이슈와 마주했습니다. 지난 24일, “난민 받지 말아 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28일 오후 5시 기준 2만 7천여 명이 동의했습니다. “아프간 난민들에게 국경을 열어주세요”라는 청원은 1천여 명이 동의했네요. 난민 수용 찬반 이전에, 난민에 대한 오해와 편견부터 풀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흔히 떠돌아다니는 ‘난민과 범죄’, ‘난민으로 인한 재정부담’ 등에 관한 소문을 팩트체킹한 기사를 소개해 드립니다. 타당한 근거를 기반으로 한 반대와 무분별한 혐오는 엄연히 다르죠. 다시 난민을 마주한 한국, ‘짐작’과 ‘편견’을 벗어나 건강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