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를 받을 때, 그리고 누군가 내게 뭔가를 상의할 때 묻는다. 네 생각은 뭐야? 어떻게 하고 싶어?
A안, B안, C안.
여러개의 대안 중에 선택하고 싶어하는 리더들이 많다. 경우의 수를 모두 고려하고 싶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보고하는 사람이 가능한 모든 방법들을 충분히 검토하고 고민했는지를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네 생각은 뭐야?'라고 이야기했을 때, '저라면 이 안을 택하겠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은 적다. 왜 그럴까.
결정은 리더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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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신의 의견이 담겨있지 않은 장표를 굉장히 싫어한다. 초점이 반쯤 나가있기 때문이다.
장표를 만들 때, 보고를 할 때, 의견을 낼 때에는 결정은 리더가 하더라도 내 생각을 분명히 하는 편이다. 리더가 내 생각과 다른 결정을 내리려고 할 때에는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를 목소리 높여 이야기했다. 최종적인 결정을 리더가 한다고 해서 담당자인 내 의견이 없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리더가 내 의견과 다른 결정을 내릴 때에는 반드시 그 이유를 물었다. 그 이유가 납득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납득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이유 자체를 설명해주지 않는 리더도 있었고, 가장 최악은 '내가 왜 너에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하지?'라고 되묻는 리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이 내려졌다면 그것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일했다. 내가 반대했던 건이라면 더욱 기를 쓰고 어떻게든 성공시키려고 했다. 그렇게 해야 성공했을 때 얻는 것도 많고, 실패했을 때 리더에게 강하게 챌린지할 수도 있다. 다음 번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당신의 의견 말고 내 의견대로 하게 해 달라고.
만약 리더가 이러한 방식을 계속해서 부담스러워하거나 기분 나빠할 경우에는 미련없이 그 조직을 떠났다. 포기하기엔 아까운 것들이 많았지만 다 버리고 새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는 어떤 사람과 같이 일할 지를 더욱 신중하게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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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진행할 때는 자신의 생각이 있어야 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늘 강조했던 말이다. 최종적인 결정을 리더인 내가 한다고 해서, 담당자인 자신에게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는 안된다. 영혼이 없는 프로젝트가 성공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네 생각은 뭐야? 어떻게 하고 싶어?
이 때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정말로 급박한 상황이 아닌 이상 재보고를 시키곤 했다. 다시 보고할 때에는 굳이 A안, B안, C안이 있을 필요도 없었다. 단 한 가지라도 좋으니 자신의 생각이 있었으면 했다. 그리고 그렇게 보고를 했을 때, 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에? 그게 뭐에요? 그러면 누가 용기를 내서 자기 생각을 말해요?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 한다는 것과 그 의견이 반드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오히려 나는 내가 어떤 의견을 말하든지 간에 내 리더가 무지성으로 내가 하자고 하는 대로 OK한다면 겁나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할 것이다.
다만, 충분히 고민한 의견을 채택하지 않을 때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당사자가 납득할 수도, 납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누군가의 의견을 꺾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잃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반대로 의견을 꺾은 후에 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를 유심히 관찰한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결론이 났다고 해서 일을 성공시키고자 하는 열의가 급격히 낮아졌는지, 다음 번에 보고할 때 더 공고히 준비를 해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지 아니면 '어차피 리더인 내가 결정할 테니까' 대충 정리해서 준비를 하는지.
그러한 것들을 관찰하면 그 사람이 어디까지 커나갈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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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로서의 경험이 쌓여가면서 정말로 당사자가 강하게 의견을 내는 경우에는 그것이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채택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 결정으로 인해 회사가 돌이킬 수 없는 파탄에 이르는 경우가 아니라면 더욱 그렇게 했다.
내 생각이 반드시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뭔가를 하고 싶어하는 경우에는 실제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 해서 모든 건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들여다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해서 리더의 의견을 꺾고 일을 받아간 사람은 그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죽어라고 노력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리더는 어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뭔가 마법같은 비법이 있어서 그것만 읽으면 모든 상황에 완벽한 답을 낼 수 있는 그런 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비법 같은 것이 없다고 해서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결정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하는 행동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같이 일하는 다른 동료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의견이 다르더라도 결정된 것은 따르고, 그 결과를 살피고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팀은 강해진다.
한 번의 실수로 무너지는 회사는 없다. 그러나 실수가 반복되면 회사는 반드시 무너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