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도서관 조금주 관장

다른 관장님들에 비하면 도서관에서 일한 경력이 길지는 않다. 한국에서 사서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 대학의 문헌정보학과를 나와 도서관에 취직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학부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지는 않았다. 학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석사도 국문학 석사를 했다. 국문학 박사 1년 차에 출산 휴학을 했다가 그만두게 됐다. 그 뒤로 10년을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동안 문화센터에서 일본어와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 경험이 계기가 됐다. 일본어와 국문학을 배운 게 도움이 되는 전공을 찾았고 미국 대학원에서 도서관학과에 해당하는 문헌정보학을 공부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그렇고 일할 때도 그렇고 온갖 서점과 도서관에 다녔다. 한국에 있을 때도 휴가 때마다 전 세계 도시를 돌아다니며 도서관에 가봤다. 미국에서 공공도서관과 대학은 최고 시설을 자랑한다. 외국인이라고 차별하는 것도 없다. 누구나 거리낌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미국 외에도 중국, 일본, 싱가포르, 유럽의 도서관들까지 관종을 초월하여 다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도서관을 다닌 사람이 나일 것이다. 바티칸 도서관에 간 한국 사서는 나밖에 없을 것이다. (웃음)

중국과 미국, 싱가포르, 핀란드의 도서관은 최첨단 기기들을 들여놓는다. 투어를 통해 기기가 구현되는 과정과 방식까지 볼 수 있었다. 실내 공간의 구성과 도서관의 새로운 트렌드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시카고 인근 위성도시의 공공도서관들은 너무 잘 돼있다. 세금을 어마어마하게 쏟아 넣은 티가 났다. 2015년과 2019년에 두 번 들렀는데 5년 만에 확 바뀌었더라. 공공도서관들의 규모도 엄청나게 크고, 인테리어는 독특하고, 기술과 장비가 화려하다. 시대 변화와 트렌드에 민감하다.

사실 조사를 시작하고 논문을 작성한 것은 우연이었다. 나는 어쩌다보니 강남 3구의 도서관에 모두 근무해봤다. 송파구에서 가장 이용률이 높은 송파어린이도서관, 강남구의 대표 도서관인 도곡정보문화도서관, 그리고 지금은 서초구에서 이용이 가장 많은 반포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다. 도서관 일이 너무 힘들었다. 이용률이 높다보니, 이용자 요구도 많고, 직원 한 명이 상대해야 하는 이용자의 수가 많았다. 가장 힘들었던 게 인력과 관련한 부분이었다. 인력 충원은 도서관장이 할 수 없는 일이지 않나. 그래서 서울 25개 권역의 도서관 실적을 비교 분석해 구청에 인력 충원을 요청할 요량이었다. 근거 자료를 만들다보니 예전에 인구 분석 조사에 응했던 기억이 났다. 소득부터 식구 수, 학력까지 많은 부분에 대해 답했었다. 이 통계와 도서관 운영의 기본지표들을 연관 지어 상관관계를 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원래는 명절마다 도서관 여행을 다니는데 코로나 때문에 가지 못했었다. 추석 때 작업을 해봤는데 막연하게 생각했던 예상과 결과가 정확히 일치해서 깜짝 놀랐다. 소득과 학력, 공공도서관 이용의 상관관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 자료를 공개하는 걸 껄끄러워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인 만큼 공개하는 게 맞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흘렀다. 현재 도서관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객관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장서가 더 필요한지, 인력이 더 필요한지 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은 격차 문제다. 애초에 사람들은 이렇게 격차가 심한지 실감하지 못한다. 모두 자기가 가는 지역구의 도서관만 가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 도서관을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인구가 적으니 도서관의 변화나 격차도 느끼기 어렵다. 사람들이 느끼지 못했던 서울시 자치구 공공도서관의 1위와 25위의 격차가 이렇게나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도서관의 격차는 지역사회의 문화 향유 기회의 격차로 이어진다. 문화 복지의 격차로까지 가는 문제라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이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전국적인 도서관 통합 및 분산 시스템이 필요하다. 해외 도서관을 다니며 이 통합 네트워크 시스템의 중요성을 봤다. 핀란드의 경우 헬싱키 인근의 도시를 모아 만든 '헬멧'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뉴욕과 보스턴도 마찬가지다. 중앙도서관이 하나 위치하고, 나머지는 모두 분관인 시스템이다. 중앙도서관과 분관도서관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지금 한국의 공공도서관들은 제각각 운영되고 있다. 서초구 도서관 카드가 따로 있고 강남구 도서관 카드가 따로 있는 식이다. 네트워크가 다르다. 그 뿐 아니라 사립도서관, 작은도서관, 교육청 도서관은 또 별도의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통합 네트워크가 있으면 이용자가 원하는 자료가 어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지 알 수 있고, A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B도서관에 반납할 수 있다. 요즘은 어플 하나만 있으면 쉽게 책을 빌릴 수 있다. 통합 네트워크가 있으면 모든 도서관에서 상호대차로 책을 빌려볼 수 있다. 핀란드의 헬멧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320만 점의 책을 빌릴 수 있다. 이용자의 정보접근 폭이 어마어마하게 넓어지는 것이다.

상호대차로 타관 반납이 가능한 지역구가 별로 없다. 서초구는 상호대차를 지원하고 타관 대출 및 반납이 가능하다. 서초구 대표도서관인 반포도서관에는 대용량도서반납기가 설치되어 있고, 물류 시스템과 비슷하게 구축돼 있다. 이런 시스템을 갖추려면 중앙도서관의 규모가 커져야 한다. 통합 네트워크 시스템이 갖춰지면 한 사람이 대여 가능한 장서 수도 늘어난다. 핀란드나 미국 같은 경우 한 사람이 대여 가능한 한도가 1인 100점까지도 간다. 대출 기간도 한 달 정도고, 2~3번 연장도 가능하다. 사실상 한계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맞다. 책을 다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도서관 하나를 짓는데도 최소 수백억이 든다. 큰 도서관을 지어도 소장 장수가 10만 권을 넘어가기 어렵다. 수백억을 들여 도서관을 지어도 10만 권을 채 갖고 있지 못하는 거다. 각각의 도서관을 연결만 해도 도서관을 많이 지을 필요가 없다. 공동 보존서고 하나만 마련해놓고 물류 창고처럼 쓸 수 있다. 이 보존서고는 멀리 있어도 괜찮다. 네트워크의 혁신이 있으면 장소나 면적의 한계 없이 모든 이용자들이 손쉽게 신간을 보고 읽을 수 있다. 공공도서관이 이 역할을 해야 출판계와 도서관계 전반이 살아난다. 중복되는 책들은 도서관에서 추려내고 오래된 책들은 공동 보존서고에서 빌려볼 수 있게끔 시스템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 면적 크기에 맞는 적정 장서를 소유하고 도서관을 시대에 맞게, 또 이용 환경에 맞게 리모델링할 수도 있다. 모든 걸 혁신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서가 정말 노력을 많이 한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를 지원하고, 스마트도서관, 언택트도서관, 드라이브스루, 안심서비스 등을 통해 대출이 가능하도록 서비스 했다. 우리나라가 사서들의 서비스 봉사 정신이 뛰어나다면 미국, 유럽, 싱가포르 같은 도서관 선진국들의 경우 자료의 양이 정말 많다. 네트워킹을 통해 제공하는 종이책 뿐 아니라 전자 자료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전자책, 논문, 잡지를 다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2019년 가을에 핀란드에 가서 도서관을 훑고 다녔는데 인구가 2만, 3만 명 정도인 도시여도 잡지가 수백 종이 들어온다. 전자 자료로도 접근 가능하다. 해당 날짜의 한국 신문을 핀란드 시골 산간벽지의 공공도서관에서 볼 수 있다. 의지만 있다면 도서관에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한마디로 정보의 격차가 없다.

전자 자료도 중요하지만 인쇄 자료도 그렇고, 일단 자료의 절대적인 양이 많다. 격차를 없애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대단히 노력하는 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도서관을 보는 관점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소방서, 학교, 경찰서, 은행과 같이 공공 도서관도 사회 필수 기반시설이다. 모두가 공평하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 소방서, 경찰서는 어떤 시골에도 다 있지 않나. 그런 식으로 공공 도서관도 제한 없이 제공해야 한다.

코로나 시기 때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교육을 시도했다. 실제로 사서들이 직접 카메라 기술을 배워서 촬영하고 온라인 송출까지도 담당했다. 노인을 대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강의도 하고, 주부를 대상으로 손인형극을 교육해 직접 콘티를 짜고 공연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는 메타버스 게더타운을 만들어 온라인 책 축제도 진행했다. 학교는 세대별, 연령별로 차이를 둔다. 공공도서관은 그런 연령의 제한이 없다. 학교를 벗어난 이들에게도 모두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그들에게 맞는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런 지점에서 격차를 줄이는 데 도서관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구세대다. 구세대기 때문에 책이 익숙하고 책 읽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책으로만 정보를 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서관이 이 새로운 세대에 맞춰 변할 필요가 있다. 어른들은 도서관이 어떤 곳인지 알고, 필요하면 도서관을 찾는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에게는 도서관이 아직 무엇인지 정의되어있지 않다. 새로운 도서관을 새로운 세대에게 맞출 수 있다. 우리가 사서로서 해야 하는 일, 도서관이 해야 하는 의무는 새로운 세대에게 책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것이다.

반포도서관에는 '모야'라는 공간이 있다. 아이들이 모야라는 공간에 와서 스스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궁금한 게 있으면 책을 찾아본다. 지난번에는 모야에 왔던 한 아이가 시를 썼었다. 모야에서는 아이들이 책을 저절로 읽는다. 모야는 초등학생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다. 전주시립도서관에는 '우주로1216'이라는 공간이 있다. 트윈세대인 13세부터 18세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성남에 위치한 '라이브러리 티티섬'도 비슷한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청소년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좋아한다. 이 세대의 아이들을 도서관에 끌어들이려면 도서관이 스마트폰보다 더 재미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새로운 아이들에게 맞는 도서관의 공간을 구축하고, 이 공간을 이전 세대의 도서관과 앞으로의 도서관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면 된다. 자연스레 아이들은 책을 좋아하게 된다.

우리의 미래는 도서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민진 작가의 인터뷰에서 《파친코》를 쓰게 된 계기를 들었다. 13세 자이니치 소년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야기다. 그 아이는 자이니치라는 이유로 굉장한 차별을 받았는데, 미국에서 살았던 이민진 작가는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본인은 엉뚱한 아이었지만 학교 선생님과 도서관 사서들이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줬다고 회상한다. 한국의 행정가들은 공공도서관에 투자하기를 꺼린다. 흔히들 '돈 먹는 하마'라고 표현한다. 공공도서관은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 《파친코》, 한 권의 소설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어마어마하다. 도서관은 누구에게도 차별 없이 무한한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다. 돈이 없거나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긴 시간 머물며 자료조사를 할 수 있다. 도서관은 미래 세대에게 그런 공간이다. 작품을 쓸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는, 하지만 차별은 없는 공간인 셈이다. 수많은 창작가와 수많은 사업가들이 도서관에서 기획안과 계획서를 쓴다. 내가 청소년 공간에 집착하는 이유도 그거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으로 만들어서 자꾸 오게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미래는 공공도서관에 있다.

글 김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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