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들이 관심 있는 ‘마음’


2022년을 돌아보는 글을 쓸까 하다가  ‘마음’에 대해 쓰던 글을 쓰려 한다. ‘산의 속마음’을 구독하는 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 그들의 SNS를 돌아다녔다.


'나에게 1만 원이라는 금액을 들여 잘되기를 바라는 분들에게 나는 어떤 글을 드려야 할까?' 그렇게 살펴보니 ‘마음’, ‘좋아하는 것’, ‘느낌’과 같이 ‘마음’을 위주로 일어나는 것들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고 느껴졌다.


그들의 주제에 마음을 담아
글을 쓴다면 어떨까.


허투루 쓴 글보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주제로 글을 쓴다면 그들 마음에 가장 와닿을 수 있는 그런 글이 되어주지 않을까.


감정, 마음. 서로 같은 것인가


마음에 대해 쓰려다보니, 감정이라는 단어들과 헷갈렸다. 마음과 감정은 서로 다른걸까? 같은 걸까? 사전에는 ‘어떠한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을 감정이라고 하였다. ‘정(情)’ 그 글자 안에 마음 ‘심’자가 들어가 있다.


곧 감정이나 마음이나 서로 비슷한 것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 안에 일어나는 그 어떤 것들. 외로움, 헛헛함, 허탈감, 서운함, 슬픔, 기쁨, 가벼운 즐거움, 눈물이 뜨겁게 올라오는 감사 등등.

성공한 사람들이 ‘마음’을 따라 살라고 했던 이유는 무얼까?


20대 초반을 지날 때 크게 궁금했던 질문은 '왜 무대 위의 연사로 오르는 유명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음을 좇아 사세요>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걸까?'

'마음을 좇아 산다는 게 뭐지?', '느낌을 따라 살라는 건 또 뭐야?',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세요' 는 건 또 무얼까? '무언가를 좋아하는 감정이란 뭘까? 느낌이 뭘까?' 하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들. 학교 교육과정에서는 배운 적이 없어 알지 못하던 '마음', '느낌'과 같은 단어들이 담긴 질문이었다.


‘마음’이 무언지 배우지 못했던 가족환경


다른 가정은 어떤지 모르겠다. 나는 ‘마음’이라는 단어를 쓰는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이나 감정, 느낌들을 잘 표현하는 환경에서 자라지는 않았다. 속이 상하거나 마음에 안들면 소리를 지르거나, 큰 소리가 나거나, 뭐가 날라다녔다.


내 마음이 어떤지 스스로 알아야하는 메타인지가 있어야 ‘내가 지금 힘들구나, 아프구나’ 등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행동들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마음이 힘들다는 게 뭐지?’, ‘느낌’이라는 게 뭐지?’하는 마음 알아차림의 기초 과정을 아예 배울 기회를 만나지 못하고 자랐다.


거의 야생 속에서 길러진 소년과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했을까. 그러면서 고함을 듣거나, 거친 표현을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내다보니, 마음 안에 여러 생채기가 많이 일었던 것 같다.


질문과 생각이 없던

무지성 10대 학생


맨 앞자리에 앉아 선생님의 눈빛과 말을 살펴 듣고 모조리 다 메모하는 녀석이기도 했다. '학생이 성적이 좋으려면 앞 줄에 앉아야지!'라는 말을 어디서 듣고선, 앞에서 셋째 줄 안에는 꼭 앉아있던 녀석.


'왜 좋은 성적을 받아야하는가'에 대해 단 한번도 생각이란 걸 해본적이 없던 것 같다. 그저 어른들이 시키니, 주변 환경이 그런 모습을 바라니 거기에 아무 생각 없이 맞춰 지냈다.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대로, 양 떼가 농장에 쳐진 울타리 안에서만 살아가듯이 무지성의 모습으로 살았다.


집에 돌아가면 수많은 스트레스가 기다렸다. 어느 훌륭한 집안처럼, 책을 읽거나 이런 저런 마음이 오가는 정다운 토론, 대화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부 해!' 내 안에 어떠한 생각이나 질문이 피어날 틈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집에 들어오면 컴퓨터를 켰고, 그저 신나게 이러저러한 게임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 옆에 불려가 EBS 교육방송을 듣기도, 특수목적반 학원을 다니며 수업을 듣기도 했지만, 집중은 잘 되지 않았다.


'왜'가 없는 채 살아가던  삶은 슬프다.


'왜 공부해야하는지, 왜 삶을 살아가야하는지 등'에 대한 질문들을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내 안에 어떤 도끼가 자라나, 내 안의 무지성을 깨부수고 그 안에 질문과 의식이라는 씨앗을 틔워낼 수도 있었을텐데.

대학생활이라는 자유가

물음표를 낳기 시작했다.


20대가 되고, 대학 생활을 하며 나만의 자유를 만끽하고나서야 질문들이 문득 일어났다. '왜 지금 내가 여깄는거지?', '이렇게 사는게 맞는거야?', '내가 지금 이렇게 느끼는 것들이 나의 <생각>이라는건가?' 등.


어느 교육학 교수님께는 '제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제 생각이 맞는건가요?'라는 질문을 드리기도 했었으니, '아니 얘가 정상적인 애가 맞나?' 싶은 마음이 드셨을 것도 같다.


마치 숨겨있던 내 안의 '의식'이라는게 '나 여깄어! 이제 이 질문들에 답 좀 해보지?'라면서 나에게 문을 똑똑똑 두드리며 여태껏 자신을 무시해온 이유를 따지려는 것 같았다.


마음을 좇아 반항하기 시작했던 20대


그러다 대학생 때부터 나만의 반항이 시작되었으니, 나는 이를 ‘오춘기’라고 부른다. 일었던 질문들을 좇아 마음이 바라는대로, 가슴이 시키는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강의에도 가고 싶지 않아 땡땡이를 치기도 했다. 평가가 있던 날에 안 나가버리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이 가는 대로 학교 도서관에 들어가 ‘마음’이 가는 대로 제목을 보고 손이 가지는 책부터 읽어대기 시작했다.


그때 읽었던 책들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무전여행’ 등등 어딘가로 막연히 떠나버리고, 자유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던 책이었다.


후배가 페이스북 피드 위로 올린 국토대장정 홍보 영상을 보고 가슴에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역경을 이겨내고 끝까지 뭔가를 해본다던 영상이 던지는 느낌과 메시지에 동요되어 한 걸음에 신청서를 써내고, 체력을 길러 스태프로 지원하기도 했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잘 이해하던 녀석들은 바라는 목적지에 금방 닿았다.


생각해보면 스스로의 마음과 생각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로 더 빠르게 자신의 삶을 찾는 것 같았다. 마음과 생각을 일치시킨 친구들은 에너지를 모조리 행동에 집중시켜 대단한 성과들을 이뤄내기 시작했다.


한때같이 술 퍼먹고 놀아대던 녀석들 중 자신의 뜻과 생각을 잘 이해하는 녀석들은 그대로 임용고시에 합격하거나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했다. 자기만의 뜻을 세워 밀고 나가더니 자신이 바라는 삶을 하나둘 이뤄 나갔다.


삶의 이유 나도 보다 일찍 알았더라면
나의 삶이
더 많이 달라졌을까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을 가까이하고,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이해하며, 나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이해했더라면.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느낌들을 이해하고 어떤 것은 좋음을 불러일으키며 어떤 것을 싫음을 일으키는지 구분할 수 있었더라면.


그 분별력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더더욱 몰입해, 내 미래에는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판단해나가며 열심히 나를 더 풍성하게 싹 틔웠을텐데. 그랬다면 나의 10대, 20대는 훨씬 더 아름답고 눈부시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아쉬워 하기도 했다.


상대적 박탈감 때문일까,

계속 나만의 답을 찾아가려했다.


그랬기에 나는 시간이라는 녀석을 참 중요시하기도 했다. 무지성적으로 살았던 과거가 아깝고 한탄스럽기 때문. 20대에 와서는,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이왕이면 나를 더 풍요롭고 풍족한 최고의 나를 만들어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빠져 무엇이든 열심히 애쓰려했다.


그 때부터일까 나름대로 책을 계속해서 읽었다. 물음이 생기거나 알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계속해서 답을 찾아나가려 했다.

'선배님은 왜 맨날 왜 라고 물어요?' 라는 어떤 후배의 모습도 생각난다.


대학을 다닐 때, 내가 봤던 건 임용을 위한 교육학 공부 영상이 아니라 지식채널E 라는 EBS 교양 프로그램이었으니. 내 안에 있던 여러 물음표들에 많은 답을 해주었다.


그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교육에 왜 '왜'가 없는지, 사람을 중요시하는 해외의 여러 국가들은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가르치는지, 아이들은 어릴 때 어떻게 자라야하는지 등이 나와있었다. 나의 어릴 적 모습과는 참 많이 달라보였다.


휴학도 두 번이나해서 계속해서 글을 쓰며, 답을 찾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무엇이 한 번의 삶을 가장 아름답게 사는 방식인지 그 답을 캐내려 했다.


마음을 따라 살지 못해왔다는

'결핍과 박탈감'이 도전하는 성격을 만들었다.


내 삶이 좀 늦어졌다는 아쉬움에 나는 이 같은 결핍에 도전하는 것에 조금 더 물불 안 가리는 존재가 되어갔다. 어느 영상 속 위대한 인물들은 내 도전을 부추기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가 했던 한 메시지도 나에게 울림을 주기도 했다. '젊었을 때, 잃을 게 없을 때 하는 도전은 오직 이득만이 기다릴 거라는 얘기.'

그러니 '마음이 진정으로 바라는 일이라면 탱크처럼 직진해 그 일을 부딪혀야겠다' 라고.


연애 앞에서도 탱크같았다.


연애도 그렇게 했다.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다가가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말을 했다. 아마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부끄러움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드는 친구에게 가서는 그저 그렇게 가까이에 앉았다. 술 마시고서는 가만히 그 친구만 바라보기도 했다. 눈이 마주치든 뭘하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마음을 그저 돌직구, 아니 강속구로 던져버리기도 했다.


임용보다 해외


대학 졸업 후에는 내 마음이 임용을 원하는지 아닌지를 알고자 했다. 노량진으로 가 1년이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더 넓고 큰 삶을 살아볼 것인가 고민했을 때 더 넓은 곳으로 가자고 했다.


교사로서의 자격증은 평생 남는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말이 나에게 '그래 너 아직 부족하니까 나가서 더 성장해서 돌아와서 해도 괜찮아!'라고 부추기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으로서 서는 일은 내가 한참을 성장한 뒤에 해내도 괜찮을테니.


한국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기도


당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급여를 최저임금보다 덜 줘도 괜찮다는 법안이 국회에 올라오는 것들을 보며 어이 없어했다.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기가막혔다. 그때는 그랬다. 인간에 대한 존중, 민주주의보다 독재자의 딸이 뽑히는 이 나라에 상당히 실망했었다.


그래서 이 나라에 있는 것보다, 해외를 가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더 짙어졌다. 우리나라에서 배울 수 있는 것보다 '뭔가 다르고 더 나은 것을 배우고 오자'는 생각이 들었다.


10대 20대를 평범하게 보냈으니 조금은 더 다른 선택을 해 나를 더 가치있게 만들고 싶었던 걸까.


대학시절에 EBS 지식 E채널에서 봤던 바칼로레아 시험도 한 몫을 했다.

프랑스의 국가가 '바칼로레아'라는 철학시험을 쳐 온 국민들의 머릿 속에 물음표를 만들어낸다는 사실들이 날 매우 열광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질문을 해나가며 마음 속에 답을 찾아내도록 만드는 시험을, 대학 문제로 내는 나라라니..?!'

프랑스를 생각하다

잃을 게 없던 내게 해외로 간다는 건 상당히 매력적인 옵션이었다. 무전여행, 더 큰 삶, 더 큰 무대를 꿈꾸는 게 더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해외로 가는 것으로 이어졌다. 처음에 생각했던 곳은 프랑스였다.

마음에 대해 쓰려던 글,

제 여행 이야기로 이어지네요!


이런 글도 괜찮을까요?

이렇게 글이 진행된다는게 신기하고 재밌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읽는 분들에게는 어떻게 느껴질지
도저히 모르겠네요!
재밌을지, 신기할지, 흥미로울지, 아니면 뚱딴지같은 소리 하는 것처럼 느껴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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