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잘 이해하던 녀석들은 바라는 목적지에 금방 닿았다.
생각해보면 스스로의 마음과 생각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로 더 빠르게 자신의 삶을 찾는 것 같았다. 마음과 생각을 일치시킨 친구들은 에너지를 모조리 행동에 집중시켜 대단한 성과들을 이뤄내기 시작했다.
한때같이 술 퍼먹고 놀아대던 녀석들 중 자신의 뜻과 생각을 잘 이해하는 녀석들은 그대로 임용고시에 합격하거나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했다. 자기만의 뜻을 세워 밀고 나가더니 자신이 바라는 삶을 하나둘 이뤄 나갔다.
삶의 이유 나도 보다 일찍 알았더라면 나의 삶이 더 많이 달라졌을까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을 가까이하고,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이해하며, 나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이해했더라면.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느낌들을 이해하고 어떤 것은 좋음을 불러일으키며 어떤 것을 싫음을 일으키는지 구분할 수 있었더라면.
그 분별력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더더욱 몰입해, 내 미래에는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판단해나가며 열심히 나를 더 풍성하게 싹 틔웠을텐데. 그랬다면 나의 10대, 20대는 훨씬 더 아름답고 눈부시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아쉬워 하기도 했다.
상대적 박탈감 때문일까,
계속 나만의 답을 찾아가려했다.
그랬기에 나는 시간이라는 녀석을 참 중요시하기도 했다. 무지성적으로 살았던 과거가 아깝고 한탄스럽기 때문. 20대에 와서는,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이왕이면 나를 더 풍요롭고 풍족한 최고의 나를 만들어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빠져 무엇이든 열심히 애쓰려했다.
그 때부터일까 나름대로 책을 계속해서 읽었다. 물음이 생기거나 알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계속해서 답을 찾아나가려 했다.
'선배님은 왜 맨날 왜 라고 물어요?' 라는 어떤 후배의 모습도 생각난다.
대학을 다닐 때, 내가 봤던 건 임용을 위한 교육학 공부 영상이 아니라 지식채널E 라는 EBS 교양 프로그램이었으니. 내 안에 있던 여러 물음표들에 많은 답을 해주었다.
그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교육에 왜 '왜'가 없는지, 사람을 중요시하는 해외의 여러 국가들은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가르치는지, 아이들은 어릴 때 어떻게 자라야하는지 등이 나와있었다. 나의 어릴 적 모습과는 참 많이 달라보였다.
휴학도 두 번이나해서 계속해서 글을 쓰며, 답을 찾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무엇이 한 번의 삶을 가장 아름답게 사는 방식인지 그 답을 캐내려 했다.
마음을 따라 살지 못해왔다는
'결핍과 박탈감'이 도전하는 성격을 만들었다.
내 삶이 좀 늦어졌다는 아쉬움에 나는 이 같은 결핍에 도전하는 것에 조금 더 물불 안 가리는 존재가 되어갔다. 어느 영상 속 위대한 인물들은 내 도전을 부추기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가 했던 한 메시지도 나에게 울림을 주기도 했다. '젊었을 때, 잃을 게 없을 때 하는 도전은 오직 이득만이 기다릴 거라는 얘기.'
그러니 '마음이 진정으로 바라는 일이라면 탱크처럼 직진해 그 일을 부딪혀야겠다' 라고.
연애 앞에서도 탱크같았다.
연애도 그렇게 했다.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다가가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말을 했다. 아마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부끄러움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드는 친구에게 가서는 그저 그렇게 가까이에 앉았다. 술 마시고서는 가만히 그 친구만 바라보기도 했다. 눈이 마주치든 뭘하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마음을 그저 돌직구, 아니 강속구로 던져버리기도 했다.
임용보다 해외
대학 졸업 후에는 내 마음이 임용을 원하는지 아닌지를 알고자 했다. 노량진으로 가 1년이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더 넓고 큰 삶을 살아볼 것인가 고민했을 때 더 넓은 곳으로 가자고 했다.
교사로서의 자격증은 평생 남는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말이 나에게 '그래 너 아직 부족하니까 나가서 더 성장해서 돌아와서 해도 괜찮아!'라고 부추기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으로서 서는 일은 내가 한참을 성장한 뒤에 해내도 괜찮을테니.
한국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기도
당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급여를 최저임금보다 덜 줘도 괜찮다는 법안이 국회에 올라오는 것들을 보며 어이 없어했다.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기가막혔다. 그때는 그랬다. 인간에 대한 존중, 민주주의보다 독재자의 딸이 뽑히는 이 나라에 상당히 실망했었다.
그래서 이 나라에 있는 것보다, 해외를 가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더 짙어졌다. 우리나라에서 배울 수 있는 것보다 '뭔가 다르고 더 나은 것을 배우고 오자'는 생각이 들었다.
10대 20대를 평범하게 보냈으니 조금은 더 다른 선택을 해 나를 더 가치있게 만들고 싶었던 걸까.
대학시절에 EBS 지식 E채널에서 봤던 바칼로레아 시험도 한 몫을 했다.
프랑스의 국가가 '바칼로레아'라는 철학시험을 쳐 온 국민들의 머릿 속에 물음표를 만들어낸다는 사실들이 날 매우 열광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질문을 해나가며 마음 속에 답을 찾아내도록 만드는 시험을, 대학 문제로 내는 나라라니..?!'
프랑스를 생각하다
잃을 게 없던 내게 해외로 간다는 건 상당히 매력적인 옵션이었다. 무전여행, 더 큰 삶, 더 큰 무대를 꿈꾸는 게 더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해외로 가는 것으로 이어졌다. 처음에 생각했던 곳은 프랑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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