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가정의 달이라는 5월입니다. 따스하고 포근한 시간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문득 가정의 달이라는 말이 별로 반갑지 않은 분도 계시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사연 없는 무덤이 없듯 가정이란 것도 모두에게 이상적으로 좋기만 한 것은 아닐 테니까요. 저도 한 살씩 나이를 먹고 조금이나마 세상 경험을 쌓다 보니 세상에는 무조건 좋아하거나, 무조건 싫어할 만한 건 의외로 별로 없고 각자의 사정에 따라 보기 나름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늘어갑니다. 지난번 편지에서 말씀드린 맥락 con-text 같은 거겠죠.
이제 여러분께 보낼 편지가 두 번 남았습니다. 이 두 번은 그래서 좋은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무언가를 쓴다는 게 홀로 앉아 몸을 이리저리 틀어대며 마른걸레에서 물 떨어지길 기다리며 쥐어짜는 것처럼 기본적으로는 별로 재미없는 일이기 때문에 남은 두 번은 용기도 좀 드리고 싶다는 대견한 생각을 해보았거든요. 사실 쓴다는 행위가 그렇게 고통스럽기만 한 건 아니에요. 분명히 그 이상의 쾌감과 성취감과 보람과 자긍심과 짜릿함과 뿌듯함과 기타 등등을 가져다주는 행위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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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유명한 소설가 김영하도 글쓰기 관련한 광고에서 그렇게 말하더군요. “글쓰기는 전문적인 작가들일수록 어려워합니다. 용기가 생기지 않습니까?”
네, 생기고 말고요. 왕도(王道)라는 건 사실 어떤 영역에서든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이고요. 대체로 묘수나 꼼수나 지름길을 알려주겠다며 기름진 말투로 횡설수설하는 사람은 사기꾼일 가능성이 크죠. 저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이 원고를 쓰면서도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데요. 게다가 그동안 끙끙대면서 몇 자 써낸 글의 수준도 별로 높지 않았잖아요. 그런 제가 잘 쓰는 법을 알려주겠다면서 너무 정색하는 것도 사기 같아서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자기도 어려워하는 일을 남에게, 그것도 살아있는 표정을 바라보거나 생생한 대화를 건너뛰고 글로 전한다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절절하게 깨닫는 중입니다. 그래도 아무튼 맡은 임무가 있으니까 끝까지 한 번 써보도록 해야겠죠.
지난 여섯 번의 편지를 요약하면 아래 정도 되겠습니다.
1) 많이 읽되 자기 주도적으로 읽고 용기와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기
2) 쓰려는 글의 구조와 규모 장악하기
3) 단박에 이루려 하기(초월)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습관으로 쓰기(포월)
4) 씨앗 단어와 육하원칙을 활용하고 왜 쓰는지에 대해 나름의 논거 갖추기
5) ‘잃어버림’의 감각 잘 간직하기
6) 자기중심적 시야를 넓혀 맥락적으로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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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의 주제는 ‘글쓰기는 그래도 어마어마한 쾌락을 느끼게 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중독처럼 글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어떤 게 있을까요? 벌써 그런 매력, 아니 매력을 넘어 마력을 느껴보신 분도 많을 것 같은데요. 아마 가만히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많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계속 무언가를 써대는 거겠죠. 지면이 한정되어있으니 몇 가지만 말해봅시다. 일단 저는 세 가지가 떠오르는데 가벼운 것부터 얘기해볼게요. 하지만 진짜로 말하고 싶은 건 딱 하나인데 그건 마지막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나쁜 일이 아니라는 거죠. 싱겁게 들리겠지만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 대부분이 사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민폐를 끼치고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치며 지구를 아프게 합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일상의 여러 실천과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무해한 점이 훨씬 많지요. 돈도 많이 안 들잖아요. 게다가 오래 통화하기 싫은 사람이 전화했을 때, “나 지금 글 쓰는 중이야.”라고 하면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간단하게 통화를 끝낼 수 있습니다. 있어 보이기까지 하지요.
다음은 무언가를 ‘완전히’ 끝내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완전히 끝낼 수 있는 건 거의 없지만 글쓰기는 다릅니다. 리셋 증후군이라는 말이 떠돌 만큼 우리는 매일 후회하고 다시 시작해보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러나 글은 마침표를 찍은 다음 담배(혹은 취향에 따라 무엇이든)같은 걸 한 대 피우고 다시 책상 위로 돌아와 메일에 파일을 첨부하고 간단한 인사말을 쓴 다음(대체로 ‘이번에도 늦어서 죄송합니다’ 따위 사과의 글을 사실은 매우 밝은 얼굴로 싱글거리며 쓰는 건데요)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죠. 클릭! 거의 오르가슴의 순간이랄까요.(다 쓴 글을 쓱 훑어보며 퇴고하고 있는 저는 앞으로 5분쯤 뒤에 그 쾌감을 맛볼 예정이라는 점 잠시 안내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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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쓴다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인간과 세계에 대해 더 알뜰하고 살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사실 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모르게 더 깊고 섬세하게 우리가 사는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게 되고 나름의 시야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급기야는 바로 그 섬세해진 시선으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죠. 그때 바라본 나라는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요.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기분일까요? 그 모습이 별로 대단치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여러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법을 무의식에라도 습득하게 되기 때문에 스스로 바라본 자신의 모습도 진실할 가능성이 커요. 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일 수도 있지만, 나만 알고 있는 트라우마나 상처나 부끄러운 욕망이나 기억 같은 것이 투영될 가능성이 크죠. 그거면 충분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기 위해 그렇게도 써대는 거 아닐까 싶습니다.
오, 쓰다 보니 어느덧 원고 분량이 다 찼습니다.(심지어 넘쳤네요!) 요즘 화제인 드라마 <파친코>를 추천하면서 마쳐야겠습니다. 이 대단한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하죠.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역사가 우리를 망가뜨렸지만, 뭐 상관없다는 겁니다. 세상살이란 게 마음 같지 않다는 건 당연지사인데 글쓰기라고 뭐 마음처럼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큰일 벌어지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괜찮다고 진심을 담아 말해줄 수 있는 아름다운 5월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달에 마지막 편지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