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23년 6월 15일 (날씨 ☀️)
제목 : 김피탕의 추억
오늘도 손님이 체크아웃한 방에는 스파이시하고 시큼새콤한 냄새가 가득했다. '역시나...' 테이블엔 먹고 남은 김피탕과 맥주캔이 놓여 있다. 정말로 공주에 방문하는 손님 중 열에 아홉은 김피탕을 드시는 것 같다. 이 정도면 공주는 김피탕의 도시가 아닐까. 우리의 호텔은 '김피탕 체험장'이 되었다. (냄새가 나지 않는 날엔 쓰레기통을 열어보면 역시 남은 김피탕이 고스란히 놓여 있다)
김피탕은 '김치 피자 탕수육'이라는 요리의 줄임말이다.
말 그대로 탕수육에 치즈와 김치, 소스를 버무려 먹는 음식이다. 먹는 방법이 정해져 있어 '찍먹파'는 애초에 접근하지 않는 게 좋다. 공주가 원조는 아니지만(이 음식에 원조를 찾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참고로 원조는 대전이라고 전해진다), 꽤 오래 전부터 공주의 명물이 되었다. 아무리 찾아도 왜,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정말 모르겠다.
고기 위에 모짜렐라 치즈를 돌돌 감고, 소스에 버무려진 김치를 얹어 먹으면 된다. 맛은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오묘한 편이다. 맛이 아예 없지도 않고, 그렇다고 '오! 탕수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야🤩'라고 할 정도도 물론 아니다. 고기튀김과 치즈의 느끼함을 김치가 잡아주긴 하지만, 먹다보면 김치 자체도 물리는 편이다.
호텔의 벨보이로서, 이 김피탕의 존재가 고역인 이유는 맛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대량의 음식물 쓰레기 때문이다. 이미 태생적 비주얼부터 음식물 쓰레기 같은 (안 드셔본 분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김피탕은 그 재료의 풍성함 덕분에 누군가 소스까지 박박 긁어 먹지 않는다면 다 먹어도 처리하기가 곤란하다. 하필 김피탕집 사장님의 인심이 후한 편이라, 주문하면 손님이 짐작한 양보다 1.5배는 더 온다. 김피탕이 입맛에 맞아도 대부분은 다 못 드시고 남기는 편이다. (으아 😫)
사람들은 왜 이렇게 김피탕을 찾을까? 아니, 왜 김피탕만 먹을까? 🤔
인터넷 커뮤니티를 찾아보면 사람들이 김피탕을 꽤나 궁금해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고기튀김과 치즈와 김치와 소스가 합쳐진 이 (끔찍한) 혼종이 과연 어떤 맛을 낼지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치즈가 얹어진 다른 음식, 예를 들면 치즈 등갈비 같은 요리에 비하면 김피탕은 흔하게 접할 수도 없다. (더군다나 이 음식을 해먹는다는 것은 더욱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니까 손님들은 김피탕이라는 이 요상한 물음표를, 특별한 경험을 소비하는 것이다.
김피탕이 인스타용 사진으로는 정말 부적합하다는 사실이 애석할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질적인 조합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기 힘들기에 궁금하고, 체험하고 싶은 무언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제발, 침구류에는 소스를 흘리지 말아주세요. ㅜㅜ
-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