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캐나다에서 온 편지] 이번 레터는 육아휴직 중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정우님이 보냅니다. 아이들이 얼마 전부터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는데요. 도시락을 준비하고 정리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이야기합니다.

마트에서 식빵 두 묶음, 햄과 치즈 슬라이스를 잔뜩 샀다. 식빵을 두 조각씩 토스터에 잠깐 데우고 한쪽 면에 마요네즈를 잼 칼로 쓱쓱 펴 바른다. 그 위에 햄과 치즈 슬라이스를 차례로 올리고 남은 식빵 한쪽을 올린다. 완성된 샌드위치를 사선으로 잘라 지퍼락에 넣는다. 지퍼락 하나를 더 열어 포도 몇 알이나 사과 몇 조각을 넣는다. 물병에 차가운 물을 반쯤 담아 책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이 과정을 두 번 더 반복하면 세 아이의 도시락 싸는 과정이 마무리된다.

아이들 말로는 점심시간이 짧단다. 그 짧은 점심시간마저 담임선생님이 아닌 다른 선생님이 인솔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샌드위치가 적당하겠다 싶었다. 달리 다른 메뉴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를 1, 2년 다니다 온 형들이나 나 역시 대부분의 교과 과정 중 점심은 학교 급식으로 해결했었다. 요새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낮추어 부를 때 ‘급식’이라는 용어를 쓴다고 한다. 밥 한 끼를 어떻게 먹는지가 정체성으로 연결될 정도로 먹는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

며칠 지나지 않아 큰아이가 하교 후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이야기한다. 자기 반 한국 친구 하나는 흰 쌀밥에 어떤 날은 닭갈비를 어떤 날은 계란말이를 싸온다고. 반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몇 명씩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점심 도시락을 한식으로 싸오는지 몰랐다. 그걸 본 나의 아이들 또한 밥을 먹고 싶어할지도 몰랐다. 도시락으로 샌드위치 대신에 밥을 먹고 싶으냐고 물어보니 셋 다 밥을 먹고 싶단다.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 이렇게 쉬울 리가 없지..’ 였다. 기껏해야 세 가지 정도 되는 샌드위치 재료의 재고만 떨어지지 않게 관리하면 문제없을 거로 생각했다니. 왜 아이들 보온 도시락 가방이 커다란 밥통 하나와 (적어도) 두 개의 반찬/국 통으로 구성되어있겠는가. 그만큼 샌드위치와 한식은 들어가는 재료의 가짓수에서부터 비교도 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든 생각은 생소한 음식을 보고 냄새를 맡게 될 같은 반 아이들이었다. 괜찮을까? 얼마 전 보았던 짧은 영상에 용기를 냈다. 

급하게 한국에 있는 가족의 주소로 보온도시락 세 개를 주문했다. 사실 여기서도 어설픈 보온도시락통이나 값이 꽤 나가는 코끼리 표 보온도시락통을 구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겨우 석 달이 지났을 뿐인데도 내가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오랜만에 들어간 마켓컬리 앱에는 내 계정이 휴면 상태가 될 기미가 보였는지 어느새 7,000원 할인 쿠폰까지 들어와 있었다. 냉장/냉동 보관 음식은 주문하지 못하니 주로 즉석밥이나 쓱쓱 그리고 동결건조 청양고추(만세!)와 깻잎 통조림(만세!!)으로 장바구니를 채웠다. 항공배송 중 샐까봐 비비고 김치를 주문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구호물품 상자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 금방 도착했다. 이제 비어있는 반찬 통을 채워야 할 차례이다. 이틀 연속 같은 반찬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하면서. 가뜩이나 저녁 메뉴 선정에도 골머리를 앓는데 말이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얼마나 빈약한지 내가 먹었던 단골 반찬들만 기억날 뿐이었다. 아내와 한인마트에 가서 가장 만만한 진미채와 볶음 멸치를 카트에 담았다. 공룡 모양 치킨너깃은 고맙게도 세계 공통인지 월마트 냉동고 한구석에 고이 진열되어 있었다. 콩나물은 데치고 무는 채 썰어 고춧가루와 참기름에 무친다. 소시지와 야채를 케첩에 볶기도 하고 쇠고기를 재워 불고기나 산적을 만든다. 도저히 메뉴가 생각이 나지 않아 햄이나 달걀을 프라이하고 있다면 유튜브에 들어가 새로운 레시피를 배울 시간이다. 머리를 쥐어짜서 겨우 생각나는 요리 앞에 ‘백종원’을 붙여 검색한다. 요리도 요리지만 “해외에 계신 팀원 여러분”이라는 말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이래서 송해 아저씨가 “전국에 계신 전국노래자랑 가족 여러분 한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오늘도 또 지구촌 곳곳에서 또 새로운 희망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시는 해외 우리 동포 여러분들, 해외 근로인 여러분들, 해외 자원 봉사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오늘도 푸른 대해를 가르는 외항 선원 여러분, 원양 선원 여러분, 모든 항공인 여러분, 대한민국 국군 장병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로 오프닝을 하셨나 보다.

이제 보온도시락 세 개와 밑반찬 스킬은 어느 정도 준비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식을 매일 쌀 생각은 없었다. 기본은 샌드위치로 하되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특식으로 한식을 쌀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안일한 생각이었으니. 샌드위치에 거부감이 전혀 없던 아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들 밥과 반찬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거의 매일.

식사 준비는 아내가 할 때도 있고 내가 할 때도 있지만, 설거지는 웬만하면 내가 한다. 오후 세시쯤 아이들이 돌아오면 밥통과 뚜껑, 반찬통과 뚜껑, 국통과 뚜껑, 물통과 뚜껑, 수저와 수저통 세 묶음이 와르르 싱크대에 쌓인다. 얼른 초벌 설거지로 남아있는 음식물을 씻어내고 식기세척기를 한번 돌린다. 그래야 저녁 먹기 전에 아이들 도시락을 건조대에 옮기고 저녁 그릇들을 식기세척기에 다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락이라고는 아이들 소풍 갈 때 몇 번 쌌던 김밥이 전부였던 나와 아내는 이제 거의 매일 도시락을 준비한다. 메뉴를 고민하고 음식을 만들고 다 먹은 도시락통을 정리하는 이 과정이 반복된다. 음식으로 채워진 도시락통은 비워지게 되고 깨끗하게 닦은 도시락통은 다시 더러워지고 만다. 이것은 창조적인 파괴인가 파괴적인 창조인가. 

이 일련의 반복되는 과정이 약간은 버겁게 느껴지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들의 도시락통을 정리하고 있었다. 점심으로 만든 닭죽을 셋 다 반 정도밖에 먹지 않았다. 속상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다 먹지 않은 이유가 있느냐고. 어떤 아이는 시간이 없어서 다 먹지 못했다고 하고 어떤 아이는 맛이 없어서 못 먹었다고 했다. 문득 도시락이 아이들과 주고받는 편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아이가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시락을 차리고 아이의 손에 들려 보낸다. 아이는 도시락통을 되 갖고 오면서 부모에게 이야기한다. 오늘은 밥이 맛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친구들은 어떤 음식을 싸왔는지. 다음에는 어떤 음식이 먹고 싶은지. 그리고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어린이집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사진과 함께 글을 키즈노트 앱에 올려줬다. 아이와 떨어져 있어도 아이의 하루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아침에 버스를 타고 떠나면 아이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아이의 하루가 어땠는지 알 방법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못 쌀 도시락이 없다.

설거지를 마치고 가지런히 정리된 아이들의 빈 도시락통들을 보면서 아이들과 내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내었음에 작게 안도한다.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를 열어 진간장과 국간장이 각각 따로 있는 걸 보고 간장을 두 종류나 구분해서 쓸 수 있게 된 나 녀석에게 크게 만족한다. 내일은 이 빈 도시락통들을 어떤 음식으로 채울까 생각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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