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김달님 작가와의 인터뷰
2023.10.26. 목요일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김달님 작가 인터뷰
* 이번 인터뷰는 2023년 10월 15일 일요일, 마포구에서 대면으로 진행했습니다.


ㅎㅇ :  안녕하세요. 구독자 분들을 위해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달님 :  안녕하세요. 가을의 시작과 함께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로 인사드려요. 지금까지 네 권의 산문집을 쓴 김달님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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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씩 알아차린다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는 9월 12일, 올 가을의 시작과 함께 출간 됐다. 어렸을 적 저자에게 달님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성인이 된 그에게 너는 가을을 닮은 사람이라고 말했다는 에피소드가 이 책에는 있다. 그만큼 '가을'은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이나, 실제로는 사계절 이야기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계절의 경계가 흐려진다고는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김달님이야말로 정말 한국에 살아야 하는 사람임을 느꼈다. 그는 사계절의 변화와 흐름을 느끼는 예민한 촉수를 가지고 있다.


김달님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미디어창비, 2023)


ㅎㅇ :  바빠서일 수도 있고, 어떤 이유로든 계절의 변화에 무감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요. 사계절의 변화를 캐치하고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면 뭐가 좋을까요?

달님 :  '이맘 때'가 많이 생기는 게 좋아요. 농사를 짓는 분들은 계절을 좀 더 촘촘하게 읽는다고들 하잖아요. 예를 들면 겨울이 지나고 땅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는 때, 농작물을 심기 좋은 때, 과일이 잘 익어가는 때, 수확하기 좋은 때에 맞춰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요. 우리도 다르지 않아요. 봄볕을 뒤집어쓴 것처럼 버드나무잎이 돋아나는 때, 자주 가는 책방에 비파나무 열매가 열리는 때, 친구가 사는 동네에 무화과나무가 열리는 때, 우리집 앞에 계수나무잎이 떨어지는 때, 이런 식으로 이맘 때들을 기억하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풍경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은, 금목서 향이 나는 때죠!


ㅎㅇ :  요즘 SNS에서는 '금목서 향 맡을 일이 없는 서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보이더라고요. 같은 시기를 살고 있더라도 이곳에는 없지만 그곳에만 있는 것들이 있죠.

달님 :  오늘 걷다 보니 서울의 가로수는 플라타너스가 진짜 많은 거예요. 엄청 큰 이파리가 거리에 많이 떨어져 있더라고요. 부러 몇 개를 밟아봤더니 기분이 좋았어요. 창원의 거리에는 메타세콰이어나 은행나무가 많거든요. 이렇게 또 '이맘 때 서울에는 플라타너스 잎이 많이 떨어지는구나' 하고 기억할 수 있게 됐어요.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실감이 좋은 것 같아요. '플라타너스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데 내가 걷고 있다'라거나 '금목서 향이 많이 나는 동네에서 이동하는중이다'처럼요. 


ㅎㅇ :  전작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수오서재, 2022)를 보니, 글쓰기 수업에서 '지난 열흘 동안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던 장면 두 가지'를 과제로 내주신다고요. 이 질문에 대해 지금의 달님 님 버전으로는 어떤 답변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달님 :  제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들이 결성한 밴드 '잔물결'의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 갔던 게 떠오르네요. 그동안 정식 발매 전의 데모곡을 반복해서 들었는데도 그날따라 유난히 노래가 좋은 거예요. 이 모든 걸 제 친구들이 다 만들어 냈다는 게 멋지게 느껴지고, 무엇보다 제가 이들의 시작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게 행운처럼 느껴졌는데요. 쟤들은 자신들이 어떤 모습인지 볼 수 없잖아요. 그걸 내가 바라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잘 기억해 줘야겠다, 라는 책임감도 생겼고요. 잔물결은 오는 11월, 데뷔앨범 [꿈은 없던 일]의 발매를 앞두고 있는데, 친구들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걸 이렇게 깨끗한 마음으로 바랄 수 있어서 그게 참 행복하다고 느껴졌어요.


ㅎㅇ :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던 또 다른 장면은 무엇인가요? 

달님 :  이번 책에도 자주 등장하는, 거의 매일같이 보는 동료 작가인 수미 언니가 저에게 인사를 해주었던 순간인데요.


ㅎㅇ :  아, 한동안 달님님한테 집밥을 해주셨다는 분이요!

달님 :  맞아요. 며칠 전에 심심해서 "수미 언니, 뭐 해?"라고 물었더니 집 앞 카페에서 혼자 일을 하고 있대요. 책 두 권을 챙기고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서 "언니한테 뛰어갈게"라고 메시지를 보냈어요. 수미 언니네랑 저희 집은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요. 당연하지만, 3분만 뛰고 나머지는 걸어갔어요.(웃음) 카페에 들어가기 직전에 언니가 혼자 작업하는 걸 차창 너머로 슬쩍 봤어요. 언니가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제가 바라보고 있던 혼자만의 작업시간이 굉장히 소중할 것이거든요. 근데 카페에 들어서니 언니가 엄청 반갑게 인사를 해주는 거예요. '저렇게 인사 해주니까 내가 되게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아'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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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씩 인정한다


다 친구들 이야기였다. 김달님이 친구들을 좋아한다는 건 전작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부터 신작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에 걸쳐 꾸준히 발견되는 지점이다. 그는 "제가 친구들을 되게 많이 좋아한다는 걸 이번 인터뷰 준비하면서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김달님이라는 에세이스트를 처음으로 알게 된 계기 또한 그가 동료들과 함께 벌인 ‘어떤 요일’ 프로젝트였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여러 작가가 담당한 요일마다 주간 에세이를 연재하는 방식이었다. 다른 요일 작가의 글이 궁금해서 이 프로젝트를 구독했던 나는, 김달님의 ‘오늘도 못한 일'이라는 제목의 연재를 따라 읽기 시작했다.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에는 당시의 연재 원고가 일부 들어있다.


ㅎㅇ :  바다 수영하기, 친구들보다 늦게 자기 등을 못하는 스스로를 자기 객관화 하는 장면들이 재미있게 읽혔습니다.

달님 :  저는 못 하는 게 많은 사람이에요. 그 못함을 최대한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고요. 하루는 친구 앞에서 음정이 제대로 안 맞는 노래를 부를 일이 있었는데 부르고 나니 되게 재미있는 거예요. 나도 웃고, 걔도 웃고. 같이 웃으니 좋았어요. 이런 게 못함의 유용함인가 싶었죠.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제가 무엇을 잘하는지보다 무엇을 못하는지가 저 자신을 더 잘 설명해 준다고 느꼈어요. '그럼 내가 못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적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하게 된 거죠.


ㅎㅇ :  이렇게 '잘 못하는 일'에 대해 들여다보고 쓰는 경험은 어땠나요?

달님 :  약점은 자책으로 이어지기 쉽지만 글로 써보니 계속 못 해도 괜찮다는 걸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무언가를 못 하는 나를 나부터 재미있게 바라보면 다 되는 거구나 싶었거든요. 그리고 '못하는 나' 역시 '나에게서 엄청 중요한 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ㅎㅇ :  잘 못 하는 일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신 건 아니었군요.

달님 :  맞아요. 계속 수영 못해도 된다. 물에 젖는 느낌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척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못 하는 걸 반대로 아주 잘하는 친구들이 있으니 걔네한테 의지해서 살면 되는 것 같아요. 또 제가 ‘길 찾기’도 잘 못하는데요. 친구들을 잘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ㅎㅇ :  안그래도 저희가 주고받은 메일에서 달님 님의 마지막 문장이 "잘 찾아가겠습니다"였는데, 오늘 인터뷰 장소까지 잘 찾아오셨네요!

달님 :  제가 있던 곳에서 지도 앱을 확인해 보니 쭉 직진이어서 다행히도 잘 왔죠…. (웃음)


책을 읽다가 가장 놀란 순간은 '백만분의 일의 확률'이라는 챕터에서였다. 이 이야기는 어느 날의 새벽 여섯 시부터 여섯 시 반까지 30분 동안 벌어진 대화를 다룬다. 새벽에 기차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올라탄 택시에서 기사님과 나눈 대화문이 길고 상세하게 복기 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대화문을 쓰는 데 취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쓰기의 노하우를 청했다.


ㅎㅇ :  누군가와 나눈 대화를 잘 기억하고, 그걸 지면에 왜곡 없이 옮겨 적는 방법이 있을까요?

달님 :  상대의 말을 기억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면 먼저 대화를 향한 집중력을 굉장히 높이려고 하고요. 가능하면 메모를 해두어요. 택시 기사님과 대화 할때도 중간중간 메모를 했어요. 그러고는 다음 행선지로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직전에 나누었던 대화들을 더 긴 분량으로 기록해 두었어요.


ㅎㅇ :  대화와 기록 사이에 시차가 크지 않게끔 하는 게 중요하겠네요.

달님 :  제 글에 다른 사람들이 들려준 말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아마 오래전에 들었던 말일 경우 제가 정확하게 재현해 내지 못한 말들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부분은 잊어버리기도 하고, 일부분 다르게 기억했을 수도 있고요. 그럴 때는 세부 사항이 조금 다르게 적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상대가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을 때의 마음을 해치지 말자 라면서 주의하려는 편이에요. 가장 좋은 건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고 확인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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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씩 그러나 너무 좋아한다


사람 이야기를 잔뜩 하다가 우리는 갑자기 밴드 실리카겔 이야기를 했다. 나는 9월의 철원에서, 10월의 부산에서 실리카겔 무대를 보며 가을을 나는 중이었고, 11월에 열릴 실리카겔의 단독 콘서트를 티켓팅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인터뷰 직후 가까스로 취소표를 잡았다). “우리 콘서트 절대 없어 포도 / i do it i do it 넌 맛 없는 라따뚜이 / 혹 배가 아프다면 고소해” 슈가는 ‘MIC Drop’(2017)에서 이런 랩을 들려준 바 있는데, 이는 공연 예매 사이트(특히 인터파크)에서 예매 가능한 좌석이 보라색으로 표기되어 있고 그것이 덕후의 눈에는 마치 포도송이에 달린 포도알처럼 보인다는 걸 인지한 결과 쓰여진 가사다. 김달님은 매일 할머니를 보러 요양병원으로 가는 생활이 반년 가까이 이어지던 어느 날, 방콕에서 열리는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다녀온 날에 대해서도 이번 책에서 들려준다.


© HYBE, 현재 예약 판매중인 [FACE] LP


ㅎㅇ :  3월에 지민의 첫 솔로 앨범 [FACE]가 나왔는데, 이 앨범 어떻게 들으셨을지 궁금해요. 객관적인 입장으로든, 팬심을 담아서든요.

달님 :  그 때가 한참 많이 우는 날들이었는데요. 지민의 솔로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이 제 슬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던 것 같아요. 요즘 아이돌들은 워낙 많은 걸 보여주고 팬들과 공유하지만 사실 팬인 제가 알 수 없는 시간이 훨씬 많을 거잖아요. 그런데 이번 앨범은 제가 모르는 그 시간, 지민이 보낸 지난 시간을 솔직하게 보여주려 노력했던 앨범처럼 들렸어요. 자기 이야기를 이렇게 보여주려고 노력 했구나, 이 친구는 계속 좋아할 만한 사람이다.


ㅎㅇ :  이 음반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트랙을 꼽아주실 수 있나요?

달님 :  일단, 저는 지민의 퍼포먼스를 좋아해요. 제가 'Fake Love' 지민 개인 직캠을 보고 입덕 했거든요. 그래서 솔로 앨범에서 'Set Me Free Pt.2' MV가 정말 좋았어요. 스타일링이나, 표정이나, 춤 추는 모습이나 두루두루요. 그리고 ‘편지'라는 곡이 있는데요. 음원으로는 들을 수 없고 CD에만 들어 있는 히든 트랙이거든요. 그 노래의 가사도 참 좋아해요.


ㅎㅇ :  책 속에서 달님 님 회사의 환경미화원인 치에코 씨가 적어둔 '치에코 씨의 미화 일기', 투병 과정을 SNS에 기록하는 친구 '정의 회복일기'를 소개해 주셨어요. 달님 님은 어떤 독자인가요?

달님 :  저는 편애하는 독자 같아요. 넓고 다양하게 읽는 사람은 아닌 것 같거든요. 그리고 무언가가 너무 좋을 때 ‘좋다'는 말 말고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그걸 하지 못해서 늘 아쉬워하는 독자 같기도 해요. 최근에 너무 좋았던 건 앞서 이야기한 수미 언니가 쓴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어떤책, 2023)이에요. 거의 모든 페이지에 인덱스를 붙일 만큼 좋은 책이에요. 그리고 최은영 소설가의 《쇼코의 미소》(문학동네, 2016)를 너무 좋아해요. 이것 좀 보세요. 또 너무 좋다고 밖에 말을 못 하죠. 정말 너무 좋아요.


ㅎㅇ :  그럼, 이 책의 제목처럼 조금씩 자라고 있는 사람으로서 도움을 받았던 콘텐츠를 추천해 주신다면요?

달님 :  아침에 듣는 라디오요. 라디오를 들으면 정말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나오거든요. 53년 만에 이자를 다 갚은 사람, 어느 겨울 아침에 어머니가 떠주었던 스웨터를 받아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 회사에서 좋아하는 사람이랑 주말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사람, 카페에서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라떼 아트에 성공한 사람 등등요. 작고 다양한 사람들의 하루잖아요. 그런 것들을 듣고 있으면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이렇게나 많은 삶이 또 이렇게 시작되고 있구나 싶어요. 그게 하루를 잘 살아 보게 만드는 마음을 가지게 해주고요.


ㅎㅇ :  하나 더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달님 :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해준 tvN 드라마 <마더>(2018)요. 마더의 주인공 수진은 가정 폭력 가정에서 자라다가 여섯 살에 아동복지시설에 위탁되었거든요. 친엄마인 홍희가 수진에게 이런 말을 해요. 내가 너를 버린 게 아니라, 내 삶에서 너를 내보낸 거라고. 내 아이를 다른 삶으로 날아가게 하고 싶었다고. 그 대사를 들으면서 나도 나를 낳아준 엄마에 대해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마더>는 그런 마음을 자라게 해 준 드라마입니다.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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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씩, 또 조금씩 자란다


김달님은 70대, 80대의 어르신들의 글쓰기 선생님이다. 그에 따르면, 전국의 도서관에는 '노인의 글쓰기'에 대한 수요가 많은 것처럼 보인다. 그곳에는 글쓰기 수강생 모집 포스터를 보고 온 할아버지, 김달님 책의 독자인 자녀가 부드럽게 떠민 등에 밀려온 할머니가 있다. "버스터미널. 창가 자리에 혼자 앉은 할머니. (...) 대각선 자리에 70대 할머니와 50대 엄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들이 앉았다. (...) 메모를 다시 읽으며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왜 좋았을까. 나는 왜 이런 것들이 마음에 걸릴까. 왜 이런 장면이 내가 알아야 할 삶 같을까."(p.201~204)를 읽으며, 그의 마음이 기울어지는 방향이 궁금해졌다.


ㅎㅇ :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달님 :  저의 최대 관심사는 '노년의 삶'인데요. 제가 할머니, 할아버지랑 자라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항상 내가 어떤 노인이 될지 궁금 했어요. 노인이 되면 어떤 기쁨과 슬픔이 있을까. 지금보다 무엇을 더 많이 알고 있을까. 삶이 허락한다면, 노인이 되는 건 너무 당연한거잖아요. 그런데 그 삶은 내가 살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으니 계속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 같아요. 


ㅎㅇ :  친구들,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충분히 재미 있지 않나요?

달님 :  제 또래는 자신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게 조금 익숙한 세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만,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의 이야기는 제가 노력해야 들을 수 있더라고요. 전 연령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한 적도 있었지만, 가능하다면 수강생 연령 조건을 50대 이상으로 두는 이유이기도 해요. 글쓰기 수업을 기회 삼아 그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으니까요.


ㅎㅇ :  그동안 쓰신 책들은 집에 대한 연대기 같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고등학교 기숙사까지도요.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한 방에 어떤 배치로 누워 있었는지까지 적어두셨더라고요. 지금 달님님께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달님 :  두 집이 떠오르네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집과 결코 떠날 수 없는 집인데요. 먼저, 1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원룸집이에요. 내가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정말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인데 이번 겨울이 지나면 이사를 할 예정이거든요. 하지만,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집이에요.


ㅎㅇ :  그럼 결코 떠날 수 없는 집은 어디인가요?

달님 :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집이에요. 스무 살 때 대학에 가기 위해 그 집을 떠나면서 '내가 이 집에서 보낸 시절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요. 작년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집을 찾아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그 집의 문을 닫고 나오면서 그때 느꼈던 것 같아요. 내가 이 집에서 보낸 시절은 이제 정말 끝나는 거라고요. 그곳은 항상 문을 열어보고 싶은 집으로 남아 있어요.


ㅎㅇ :  이번 책의 가제가 '믿고 싶은 말들'이었다고요. 요즘 영향력을 가진 이들의 헛소리와 괴변이 많잖아요. 믿고 싶지 않거나 듣고 싶지 않은 말들 사이에서는 자신을 어떻게 지켜나가시는지 궁금해요.

달님 :  저는 종교가 따로 없거든요. 사람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사후 세계는 없다고. 첫 책을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이번 책을 쓰는 중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특히 2부에 실린 이야기는 그분들을 떠나보내는 것에 관한 이야기고요. 두 분을 떠나보내면서, 사람은 크든 작든 어떤 믿음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건 우리가 어떤 형태로든 또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견뎌지는 슬픔이었고, 그래야 또 살아갈 수 있겠는 거예요. 그래서 나쁜 말, 상처 되는 말, 비관하는 말들 속에서도 내가 믿고 싶은 건 따로 있다고 생각하려 해요. 프롤로그에서 인용한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려내고 싶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마음과도 비슷해요. 


ㅎㅇ :  끝으로, 네 권의 에세이를 쓰고나서 알게 되신 점이 있나요?

달님 :  제가 가장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한 차례 마무리된 것 같아요.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를 쓰는 동안에는 잘 몰랐는데, 다 쓰고 나니 그렇게 느껴지더라고요. 이제는 정말 다음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제가 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고민하고 있고요. 잘 고민해서 그다음 이야기를 잘 들려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조금씩 자라서 올게요!


* 이번호의 광고주는 '미디어창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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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기 전에

● PILLOW Talks <일상의 작은 혁명>

첫 번째 만남: 관찰의 방법들


필로우 출판사와 독서 공동체 들불이 공동 기획한 워크숍 <일상의 작은 혁명>에 발제자로 참여 합니다. 저와 황효진 뉴그라운드 대표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에 관한 감상을 나누고, 책을 낭독하고, 함께하시는 참여자 분들과 작은 혁명을 찾는 시간을 가져볼 예정이예요. 행사 기간동안 현대미술 전시공간 forever✰(포레버✰)에 방문하시면, 그동안 필로우 출판사에서 출간된 모든 책을 살펴보실 수 있는 팝업 서점도 구경하실 수 있답니다. 워크숍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신청하기' 버튼을 클릭해서 살펴보세요!


•주제 도서: 제니 오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일시: 2023년 11월 11일(토) 오후 2시-4시 
•장소: forever✰(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11 104호)


월요일에는 대중문화를 큐레이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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