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9화 - 우리 고양이가 삐졌어요

냐불냐불 고양이 에세이 9화

우리 고양이가 삐졌어요

'수이'가 삐졌다. 단단히 삐졌다. 침대 밑에 틀어박혀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퇴근하면 하루 종일 있었던 이불속에서 나와 길게 기지개를 피고 늘어지게 하품을 한 뒤, 욕실 앞 규조토에서 몸을 뒹굴며 ‘으으응⤴’, ‘으응⤵’하는 울음소리를 내던 고양이가 없다. 발라당 배를 까고 만져달라던 고양이. 지금은 눈에 원망이 가득하다.

수이가 삐진 원인은 ‘병원’. 오늘 낮 병원에서 잇몸 때문에 주사 두 방을 맞고 돌아온 수이는 화가 났는지 그때부터 계속 침대 밑에 있었다고 한다. 눈앞에서 장난감을 흔들어도, 츄르를 코앞에 가져가도 반응이 없다. 수이가 반응이 없으니 다른 고양이 '안나'만 신났다. 흔들어 대는 장난감에 갑자기 안나가 등장해, 이쪽으로 저쪽으로 몸을 움직인다. 수이가 먹지 않는 츄르도 모두 안나거다.

‘아니, 내가 진짜 뭘 잘못해서 삐진 거면 반성하겠는 데, 이건 좀 억울한데?’, ‘야, 이게 다 너 잘 되라고…’ 엄마 잔소리 레퍼토리를 머릿속에서 빠르게 훑고 유튜브를 찾는다.

유튜브 검색 창은, 내 고민의 창. 한동안 ‘고양이 잇몸’, ‘고양이 치주염’, ‘고양이 구내염’을 검색했던 창이 ‘고양이 삐짐’, ‘삐진 고양이’, ‘고양이 손절’로 바뀐다. 계속 검색하다 보니, 고양이가 삐졌을 때는 무시하고 눈길도 주지 말라는 데… 아니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 지금 유튜브 속 고양이 박사님들도 모두 고양이들을 안고 쓰다듬고 있잖아요?

“평생 안 나오면 어떡하지? 이러다 우리 ‘고부해’ 신청해야 하는 거 아냐? 침대 밑에서 안 나오는 침대 밑 고양이…”, “차라리 잇몸이 아픈 게 나을까? 사이가 안 좋아지는 것보다? 아냐, 그래도 건강이 중요하지?”, “고양이들은 안 좋은 경험은 평생 기억한다네? 어떡해…”

고민 해결을 위해 열었던 유튜브 검색창이 TV 출연부터 어두운 미래만 자꾸 상상하게 만든다. 몇 년을 쌓아온 관계가 이렇게 무너지나 싶어 눈물이 찔끔 나오려는 데, 수이가 나온다. 화장실에 간다. 땡스 갓, 생리현상. 우린 가만히 멈춰 휴대폰 카메라를 통해 수이를 본다. 쳐다보는 게 들키면 안 되니까. 볼 일을 마친 수이는 침대 앞에서 머뭇거린다. 다시 침대 밑으로 들어가려나 싶을 때, 바로 옆 스크래처에 눕는다. 남편과 나는 도망가지 않도록 조용히 다가가, 수이가 제일 좋아하는 자세를 찾아 정성껏 배를 쓰다듬는다. 이윽고 골골 거리는 소리를 낸다. 이제 좀 안심이다.

“아우, 나 닮았는지, 진짜 잘 삐진다. 너무 오래 삐져있으니까 지친다.”라고 말하는 남편. 오늘 저녁 식사 때, 그러니까 1시간 전에 이미 한 번 삐진 자다. ‘아니,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라는 말이 나오려는 걸 겨우 삼킨다. 그래, 지금 좋으니까 넘어가야지.

잇몸을 슬쩍 보니 조금 나아진 느낌. 입냄새도 덜 난다. 내일 아침, 우린 수이에게 약을 또 먹이고, 바를 테니 수이는 내일 또 삐지겠지. 그래도 오늘처럼 다시 저녁에는 풀린다면 좋겠다. 만약 안 풀린다고 해도 해야지,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니까. 또 한동안 삐져서 침대 밑 고양이로 지내더라도, 네가 아프면 안 되니까.

고양이에 대한 글을 쓰다 보면 결국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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