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튜브 채널 <짠한형 신동엽>을 봤다. 지금까지 0화, 1화의 1부, 1화의 2부까지 총 3개의 영상이 올라왔는데 애석하게도 0화가 제일 재밌었다. 애석하다.
2. 0화에서 주로 나오는 장면은 만취한 신동엽이 길거리나 식당에서 자신을 알아봐주는 팬들과 얼씨구나 즐겁게 대화하는 상황들의 연속이다. 취한 사람에게 사진을 찍자고 하면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을 텐데 '자신과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사람이 먼저 팬이라고 해주면 참 고맙다'며 어깨를 토닥이고 몇 번 본 친구처럼 장난을 친다. 식당 사장님에게도, 종업원에게도 넉살 좋게 농담을 한다. 얼굴이 불콰해진 상태로. 그 모습이 꾸밈없고 자연스럽다. 그래서 재밌었다. 신동엽 본인도 혀가 꼬인 채로 말한다. "유튜브가 이런 건 좋네. 술 마시면서 방송도 할 수 있고."
3. 첫 번째 게스트로는 이효리가 나왔다. 신동엽이 진행하는 유튜브 예능, 그리고 게스트가 이효리. 몇 년 전만에도 상상할 수 없던 조합이 요즘 보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잔뜩 힘든 세트장, 과한 컨셉과 편안하지 않은 분위기. 0화에서 느꼈던 자연스러움은 사라지고 어색함만 남았다. 도대체가 자연스러움이라고는 모르는... 내가 TV 예능을 요즘 도저히 못보는 이유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4. 이번주 까탈로그에 썼던 일화가 있다. 그 얘기를 조금 더 긴 버전으로 쓰고 싶다.
5. 마곡동에는 금고깃집이라는 숙성고기 전문점이 있다. 며칠 전부터 그 식당에 가고 싶었는데, 살짝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쪽 주변이 신도시라 가족 단위로 밥 먹는 사람이 많고, 큼직한 빌딩도 많아서 직장인끼리 회식도 많이 할 것 같아서 평일이든 주말이든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궁금했다. 얼마나 맛있을지.
6. 월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8시쯤에 퇴근을 하고 8시 55분에 식당에 도착했다. 사실 바로 전날 9시 10분에 방문했더니 라스트 오더가 끝났다는 얘기를 듣고 큰 좌절을 한 번 했었다. 다행히 9시 전에 도착을 했는데, 이번에도 주문이 마감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희망 섞인 말 한 마디가 있었다. "발산점으로 가보세요. 거기는 11시까지 영업해요."
7. 발산점은 따릉이로 5분 거리에 있었다. 고기를 먹는 데 길어봤자 1시간으로 예상해서 따릉이를 임시 잠금만 해놓았다. 살짝 긴장한 상태로 2층으로 올라갔다. 4인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20개 정도 보였다. 그 중 1/3 정도가 차있었다. 종업원이 물었다. "몇 명이에요?" "한 명이요." "편한 데 앉으세요."
8. 그 전날 문앞에서 금고깃집 방문을 실패했기 때문에 한이 맺힌 상태였다. 삼겹살 2인분, 목살 1인분을 시키고(사실 목살을 1인분, 삼겹살을 1인분 시키고 싶었는데, 삼겹살은 최소 주문이 2인분이라고 했다), 평양냉면까지 주문했다. 금고깃집의 냉면은 특이하게 국물은 평냉국물인데 면사리는 함흥냉면처럼 쫄깃한 버전이었다.
9. 테이블마다 가림막이 있어서 타인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혼자 고기 먹기엔 최적의 상태. 종업원이 고기까지 직접 구워주니 프라이빗 서비스를 받는 느낌이었다. 요즘 기쁜 일이 별로 없어서 특별히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데 오랜만에 '기분 좋음'을 느꼈다. 말로는 "재테크 망했어." "돈 없어"라고 하지만 배터지게 혼자 비싼 고기를 먹을 정도로 살고 있다는 게 그 당시의 나에게 큰 위안을 줬다.
10. 남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너,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지 않고, "아직 부족해,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다그치기만 하는 경우가. 고기를 먹는 날, 나는 말로는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진 않았지만 비싼 고기를 스스로에게 선물을 줬다는 게 내게 줄 수 있는 큰 칭찬이었다. 덕분에 이번주도 잘 보낼 수 있었다.
11. <짠한형 신동엽>을 보면서 한 가지 맘에 들어온 대화가 있다. 이효리의 마인드다. 이효리는 보컬 레슨을 받기 위해 제주에 있는 보컬 학원에 레슨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장난치지 말라는 선생님에게 인증 사진까지 보내면서. 큰 용기다. 가수 활동을 몇 년이나 했던 이효리가 보컬 레슨을 받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을 거다. 나를 되돌아봤다. 글을 더 잘 쓰고 싶다. 대문호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고, 지금 나의 실력보다 조금만이라도 더 늘면 좋겠다. 이효리의 말 덕분에 주저하지 않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효리도 학원 다니는데, 내가 뭐라고."
p.s. 이미지는 쇼미더머니 중 프로듀서 알티가 래퍼에게 해주는 충고. 뭘 만들든 마음을 흔들거라면 기술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야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