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편집국장이 모처로 피신했습니다. 위치추적을 피하기 위해 카드 대신 얼마 안되는 현금을 뽑아들고 휴대폰을 끈 채 노트북과 옷가지 몇 개만을 챙겨든 상태였습니다. 변진경 국장의 초딩 두 아이는 엄마가 한밤중에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건지 아침에 잠 깰 때까지 몰랐습니다.
다음은 대표이자 발행인인 제 차례였습니다. 학교 근처에서 밴드 연습중이던 아이에게 긴급 귀가를 명한 후 남편에게 회사 비상망을 공유하고 어디로 움직일지 머리를 마구 굴렸습니다. 그 사이 텔레비전에서는 계엄군이 국회의사당 유리문을 깨고 진입하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고 시사IN 임직원의 단체방에서는 계엄집행관을 맞딱뜨리게 될 경우의 행동 수칙이 두서없이 공유되고 있었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이 영화 같은 상황은 2024년 12월3일 밤. 대통령 윤석열이 느닷없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직후 벌어진 일들입니다. ‘설마’ ‘설마’ 했지만 계엄령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각 언론사를 담당하는 계엄집행관은 포고령에 따라 언론사를 폐쇄하거나 접수하려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충돌은 불가피한 수순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어떤 플랫폼을 통해서든 보도는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편집국 책임자인 편집국장과 회사 책임자인 대표는 어떻게든 구금부터 피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면서 기자들은 ‘정상’적으로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사IN의 일상은 이미 정상 궤도를 벗어나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마감이 바로 다음날이었지만 그동안 준비했던 기사들을 모두 뒤엎어야 했고,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상계엄과 이후의 탄핵, 수사 상황 등을 담아내기 위해 온라인 속보체제, 거리편집국, 유튜브 긴급편성 등이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국회 앞 집회에 나오는 시민들을 위해 시사IN 탄핵 특별판을 2주 연속 발행했고, 이를 배포하기 위해 시사IN 전 직원이 몸과 마음을 모았습니다.
오프라인 주간지라는 한계를 극복한 시사IN의 발빠른 대응은 현장에서, 그리고 온, 오프라인 구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미디어오늘> <기자협회보> 등 다른 매체들로부터도 집중 조명을 받았습니다. 탄핵 국면을 통과하는 사이 시사IN 유튜브는 구독자 50만명을 넘어섰고, 2만부씩 찍은 시사IN 특별판은 SNS 인기템이 되어 지금도 ‘구할 수 없느냐’는 문의가 편집국으로 오곤 합니다. 죄송스럽게도 일찌감치 ‘품절템’이 되었지만요.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는 12월 한달을 겪으며 시사IN은 어려운 상황에서 더 강하게 결집하고 뛰어난 취재력과 돌파력을 발휘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잠재력의 바탕은 조용하고 묵묵하게 시사IN을 응원해주고 기자들의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님 덕분이라는 걸 누구보다 기자들이 온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시사IN 특별판을 들고 여의도 광장의 시민 사이를 오가고 있을 때 “저 시사IN 구독자예요” “저도 시사IN 후원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수줍게 건네며 씨익 웃어주시는 독자와 후원자들을 만나며 시사IN 가족 모두 얼마나 마음이 뿌듯해졌는지 모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이 <민주주의와 그 적들>이라는 표지 제목을 단 시사IN 신년호가 막 인쇄되어 나왔습니다. 헌법재판관 임명 못하겠다고 어깃장을 놓은 한덕수 권한대행(이 책이 독자들에게 도착할 즈음이면 이 직함을 뗐을 수도 있겠군요)의 사진이 들어가 있습니다. 보기 싫은 얼굴일 수 있겠지만... 언론의 기록으로 생각하고 꼼꼼하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얼른 이 불안정한 상황이 마무리되어야 할텐데 2025년 맞이하기가 참으로 갑갑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시사IN이 2024년의 인물로 뽑은 광장의 시민들이 이를 목 놓아 외치고 계시지요. 저희 시사IN도 이 암울한 시국이 서둘러 정리되도록 더더욱 열심히 취재하고 보도하며 님과 더 열심히 소통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시사IN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25년 새해 희망차게 맞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