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 속도로 죽이고, 인간의 언어로 부인한다
전쟁과 야만의 시대에 평화를 고민하다
뉴스레터 #47호를 발행합니다.
올해 들어 세계는 점점 더 전쟁과 야만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만행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는 평화를 위해 어떤 고민들을 해야하는지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뉴스레터 47호를 마련해봤습니다.
정욱식 재단 상임이사는 지난 3월 여자 축구 아시안컵에서 남과 북의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응원단을 조직해 대회가 열리는 호주 현지를 다녀왔습니다. 꽉 막힌 남북 관계에 조금이라도 틈을 내기 위해서 이번에는 기존의 응원방식과는 달리 북의 입장을 존중해 “조선, 이겨라~”라는 응원 구호를 외쳤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은 응원단을 향해 꾸벅 인사를 보냈고, 또 따로 감사의 뜻도 전했다고 합니다. 현지에서의 소식과 사진을 전합니다. 비록 작더라도 이런 민간에서의 작은 날갯짓이 평화의 큰 바람을 몰고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서보혁 통일연구원 상임연구위원은 “적대적 두 국가론” 이후 경색된 한반도의 상황을 어떻게 평화공존의 상태로 전환시킬 수 있을지 살펴보는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서보혁 선생은 이 글에서 평화공존의 개념사로부터 시작해 기타 갈등 지역에서의 평화공존의 성공과 실패의 사례를 살펴보고, 과연 현재의 정세 속에서 한반도는 어떻게 평화공존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탐색해봅니다. 무엇보다 현 정부가 새롭게 내세운 한반도 평화공존론이 어떤 면을 더 고민하고 보완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봅니다.
한편 올해 들어 벌어진 전쟁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AI와 전쟁의 결합입니다.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평화월딩연구소장)는 이 현상이 올해들어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미 가자지구에서 시작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확대되어 온 것임을 치밀하게 분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도 이미 이 국면과 구조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함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 시스템이 기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서늘하게 직시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
|
|
재단 소식
“조선 이겨라”를 외치니 그들이 와서 인사했다
정욱식(리영희재단 상임이사)
|
|
|
경기가 끝난 후에 조선 선수들은 우리를 향해 인사했다. 우리는 그들의 인사에 손을 흔들고 함성을 외치며 화답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사람들도 있었다. 다음날엔 조선 선수단이 호주 동포를 통해 우리 응원단에 감사의 뜻도 전해왔다. 우리가 그들을 ‘있는 그대로의 조선’으로 대하자 그들도 호응한 것이 아닌가 싶다. |
|
|
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
한반도형 평화공존은 가능한가
서보혁(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
|
남북의 경우 일방이 적대적 관계를 선언하고 대화를 단절한 상태에서 과거 교류협력이 활발하던 시기로 곧장 회복하려는 자세는 비현실적이다. 군사적 긴장은 물론 교류협력의 경험을 공존이 아니라 불신의 증좌로 간주하는 일방과의 평화공존은 낮은 수준에서 시작해 상대의 호응이 있기까지 인내심 있게, 일관되게 접근해나가야 한다. 평화공존은 호혜성을 행동 원리로, 상호주의를 행동 준칙으로 한다. 일방의 선의는 그것을 촉진하는 기제가 될 수 있지만 그 원리와 준칙을 대체할 수는 없다. 국제적 차원에서도 국익과 동맹의 이름으로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과 모순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어려운 문제다. 평화공존이 이상과 현실의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특정 상황에서 둘의 균형이 깨질 수 있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평화공존에 기여할지는 믿음의 영역에 가깝다. 요컨대, 평화공존은 대내적으로는 평화 지도력과 평화 지지 여론, 대외적으로는 공존의 상대가 호응할 정도의 호혜성이 성립할 때 실현가능한 연속 게임인지도 모른다. |
|
|
기계의 속도로 죽이고, 인간의 언어로 부인한다
― AI 전쟁 운영체제, 가자에서 이란까지, 그리고 한반도
강성현(성공회대 평화월딩연구소 소장)
|
|
|
알고리즘에게 그것은 표적이었다. 이란혁명수비대 해군 기지에 인접한 군사 관련 시설. 데이터베이스가 그렇게 분류하고 있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 합동 작전 ‘장대한 분노’(Epic Fury)의 첫날, 이 좌표가 타격 목록에 올랐고, ‘처리’되었다. 현실에서 그것은 여자 초등학교였다. 2015년 개교. 인접 기지는 공습 수년 전 이미 폐쇄. 2016년 학교와 기지 사이에 담장이 세워져 별도 출입구까지 설치된 상태였다. 약 170명이 사망했고, 대다수는 어린이였다. 알고리즘은 갱신되지 않은 데이터를 현재의 표적으로 처리했다. ‘오폭’이 아니었다. 시스템은 설계대로 작동하여 학교를 ‘정밀 폭격’했다. 같은 날 24시간 동안 1,000개 이상의 표적이 이런 식으로 ‘처리’되었다. 이 속도는 인간의 판단 능력이 아니다. 기계의 처리 능력이다.
리영희 선생은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베트남전의 “정밀 폭격”이라는 공식 언어를 해체하여 그 아래의 민간인 학살을 드러냈다. 반세기 후, 같은 단어가 알고리즘의 언어로 돌아왔다. 다만 이제 그 언어를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생성하고, 속도가 인간의 검증 능력을 초과한다. 이 글은 그 언어의 구조를 해부한다. 어떻게 AI가 전쟁의 운영체제가 되었는가. 그것이 한반도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