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이 지나니 창밖으로 초록색이 올라오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새해에는 기록을 열심히 해야지 했던 다짐도 잊히고 듬성듬성 비어버린 다이어리에는 빼곡한 일정 대신 최근 만난 사람들과의 즐거운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햇빛의 기운을 좋아하는 저는 낮이 길어질수록 어딘가 모르게 힘이 솟습니다. 이제 정말 봄이 오네, 싶으니 보고 싶었던 사람들 얼굴이 자꾸 떠오르더라고요.

오늘은 지난 2주 간의 미팅로그를 써봅니다.


2일

<내일은 체력왕>을 쓰신 강소희 작가님과 후배 미라킹님과 맥주 한잔을 했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 얼굴 보고 함박웃음을 짓는 사람들이라 기분이 좋았죠. 근황과 밀린 이야기들을 나누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3일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이하 줄여서 ‘일오나잘’) <어차피 연애는 남의 일>의 저자 도대체 작가님과 함께 오랜만에 떡볶이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작가님과는 2016년에 처음 만나서 <일오나잘>을 만들게 되었고, 책이 너무 잘되어서 좋았던 기억이 많아요. 여러 행사를 진행하느라 함께한 시간들이 많기도 하고, 제가 작가님을 무척 좋아하는 터라 이전 회사에서도 종종 얼굴을 뵙고 이야기를 나눴지요. 요즘 작가님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정말 매일의 에피소드가 흥미진진해서 저는 귀를 쫑긋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야기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늘 가고 싶었던 카페 이미에서 함께 마신 커피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도대체 작가님과 흥겨운 만남 뒤에,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 녹음을 위해 수오서재 황혜란 마케터님을 만났어요(7일자 방송 EP57. 모지스 할머니와 함께 돌아온 '인생의 봄에는 할 일이 참 많습니다'). 황혜란 마케터님은 금요일 퇴근 이후에 만났음에도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책을 팔고 있어서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제 맘속에서도 흥이 나버렸습니다. 5년차 출판사 마케터의 즐거움이 궁금하신 분은 방송으로 확인해주세요.


7일

<아직, 도쿄> <2023 오늘을 채우는 일력>을 함께 작업한 임진아 작가님과 모처럼 마주 앉았어요. 히끄네집에서 샀다는 귀하고 달고 맛있는 천혜향에, 작가님이 직접 그린 그림 스티커들을 붙여 건네주셨어요. ;_;

유유히 이름에 맞게 느긋해 보이는 작가님의 그림과 손글씨. 애정합니다!

퀜치 커피에서 '마포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손뼉도 치고 깔깔 웃고, 조만간 맥주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손을 흔들고 헤어졌지요. 늘 각자의 자리에서 혼자 일을 하고 있지만 랜선으로 연결되고 마주 앉을 수 있어서 기쁜 사이랍니다.


13일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작가님김혜정 그믐 대표님이 라디오 ‘윤고은의 EBS 북카페’에 출연하셨어요(못 들으신 분들은 링크로 다시 듣기!). 프로 디제이인 윤고은 소설가님과도 오랜만에 인사 나누고 스튜디오에서 이야기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장강명 작가님이 직접 프롤로그 일부를 낭독해주셨는데, 다시듣기로도 들을 수 있으니 귀 기울여보세요. 작가님 목소리가 새삼 참 좋았습니다. ㅎㅎ

김혜정 그믐 대표님과 함께 있으면 늘 장난기가 흘러넘치는 장강명 작가님 ㅋㅋ

이후 상암으로 달려가 CJ ENM 담당자님을 만났어요. 영상화할 콘텐츠를 찾고 제작사에 소개하고 중개하는 분인데, 에세이 분야 담당이셔서 저와는 두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에세이를 어떻게 영상화를 하지? 싶은 의문이 들 텐데요, 담당자님이 말씀해주시기를 “감히 상상으로 만들 수 없는 캐릭터”가 있다면 좋다고 하네요.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빌려와 픽션을 가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체가 다른 곳에서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각도 제가 평소에 알 수 없는 영역이어서 즐거운 미팅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당장 소개할 만한 책이 있는 건 아니라서, 방금 만나고 왔던 윤고은 작가님의 <빈틈의 온기>(흐름출판)를 소개해드렸죠. 모쪼록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


저녁에는 21일에 업로드될 팟캐스트 녹음이 있었어요. 이번 출연자는 유유 출판사의 사공영 편집자입니다. 작년 퇴사 후 창업 이야기를 가장 먼저 유유 출판사의 뉴스레터 '보름유유'를 통해 알려드렸는데요, 이번에는 제가 호스트가 되어 인터뷰를 진행했지요. 자신의 일을 무척 사랑하는 분이어서 또랑또랑한 눈빛에 감탄하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유 출판사의 일하는 방식이 궁금했던 분, 신간 이야기까지 알차게 녹음했으니 담주 화요일 업로드를 기대해주세요.


14일

오후에는 다산북스 담당자님들과 미팅이 있었는데요,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큰글자도서를 제작하기 위해서였어요(다산북스 출판사에서는 타 출판사들의 전자책, 오디오북, 판형 변경 도서 제작과 유통을 진행해주는 팀이 있어요). 제휴 계약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대표가 되고 도장 찍는 일이 참 많아요. ㅎㅎ


저녁에는 유유히 첫 행사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북토크를 진행했습니다(어제도 만난 작가님이지만 또 반가웠고, 하루 만에 왜 달라 보이시지 했는데 면도를 하셨다고. 아하. ㅎㅎㅎ) 독자님들이 서른 분 이상 오셔서 1시간이 넘는 이야기에 매우 집중해주셨고 질문도 열심히 해주시고(“표지 속 인물이 작가님인가요?”), 평소에 보기 어려운 우리 책 독자님(유니콘 같은 존재들!)들을 마주해서 매우 기쁘고 뿌듯한 하루였습니다.

책을 만들기 위해 일을 도모하고, 아이디어 씨앗을 발견하고 키우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널리 알리고, 책을 벗어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기 위해 노력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저는 참 즐겁습니다. 너무 많은 만남이라 자주 내가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더라... 하는 일이 많지만요(기록이 이래서 중요합니다 ㅋ) 그럼에도 마음에 하나씩 남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그 이야기들의 힘으로 또 다음으로 넘어가고 나아갑니다.


책 덕분에 가능한 만남들을 새삼 돌아보니, 마냥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 외에도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군요. 슬슬 유유히의 두 번째 책 원고 마감일(작가님들께서 열심히 작업 중이십니다! 너무 너무 기대돼...)이 가까워지고 있어, 이후로는 또 책상 앞에 앉아 독자님들을 상상하며 작업을 할 겁니다.


언젠가 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께도 마주 앉아 인사를 건넬 날을 기다립니다.

“책으로 만나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상당히 고맙습니다!”

<더 글로리>

작년 12월 30일에 파트1이 공개되었던 <더 글로리>. 기다림 끝에 3월 10일 파트2가 공개되었습니다. 성미 급한 한국인들답게(!) 너도 나도 공개되자마자 정주행을 마친 뒤(아니 자그마치 8화를 내리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열정은 정말!) 스포 당하기 전에 스포를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눈을 질끈 감고 있다가, 금요일 밤, 토요일 오전, 오후에 걸쳐 저도 모두 보고 말았고요.


파트1이 문동은(송혜교 역)이 왜 이렇게도 잔인한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는지, 그리고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발단-전개 였다면, 파트2는 드디어 복수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위기-절정-결말 이었지요. 저는 모든 화를 다 보고 나서, 어딘가에 계실 갓은숙 작가님께 큰절을 올렸습니다(첫 전개만 재밌다가 후다닥 엉망진창으로 끝낸 일타스캔들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어서 더더욱이요!). 드라마는 이렇게 쓰는 거다!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 무언가를 잃어버린 피해자는 영영 그 이전으로 복구될 수 없이 망가져버리는데요, 세상은 하도영처럼 피해자에게 묻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뭘 얻느냐고 그 끝엔 뭐가 있냐고. 그에 대해 문동은을 돕기로 결심한 인물, 주여정(이도현 역)의 대답은 강렬했습니다.


“피해자들이 잃어버린 것 중에 되찾을 수 있는 게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해요? 나의 영광과 명예, 오직 그것뿐이죠? 누군가는 그걸 용서로 되찾고 누군가는 복수로 되찾는 거죠. 그걸로 비로소 원점이고 그제야 동은 후배의 열아홉 살이 시작되는 거니까요.“(13화 중에서)


18년간 악을 쓰고 준비한 그 끝이 폐허에 낭떠러지일지라도, 시간이 멈춘 고통에서 발버둥치느라 산 게 아닌 듯 살아가는 것보다, 나와 같은 고통을 적어도 겪어보게 해야 하지 않겠냐고요. (<친절한 금자씨>도 그렇고 복수 좋아하는 사람 저요🙋🏻‍♀️) 이런 쾌감으로 끝까지 달리고 말았습니다.


문동은의 복수를 돕게 되는 또 하나의 인물 강현남(염혜란 역)의 서사도 너무 좋았습니다. 가정부이면서 아무에게도 의심을 사지 않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중년 여성이라서 문동은의 유능한 조력자가 되는 인물이었고요. 자신의 능력을 하나씩 계발해가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되는 이야기도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희망이 보여 기뻤습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요약 정리 말고, 정주행 시작해보시기를요.

☞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북토크가 마지막으로 3월 28일 저녁 8시 북티크(6호선 대흥역 부근)에서 열립니다. 20명, 무료 모객으로 추첨, 초대합니다. 북티크 홈페이지에서 신청 부탁드려요!


최인아책방 북클럽에서 3월의 도서로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이 선정되어 발송되었습니다. 매달 책방지기 최인아 님의 편지와 더불어 선정된 책 한 권이 발송되는 유료 정기 구독 서비스 '최인아책방 북클럽'은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저자 북토크까지 마련이 되어 있더라고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홈페이지 혹은 인스타그램에서 살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장강명 작가님은 3월 북토크를 30일에 진행합니다(아쉽게도 현장 모객은 진행하지 않습니다).

☞ 오래 멀리 가기 위해서 필라테스를 시작했어요. 삐걱대며 구조 신호를 보내는 관절들에게 그간 너무 했다 싶네요. 잘 돌봐서 같이 오래 가려구요.

_핀카나


☞ 내 일을 갖는다는 것이 일견 자유로워 보일 수는 있지만 남은 돈을 받아 살 때와는 전혀 다른 결의 고됨이 있더군요. 그래서 전 때려쳤습니다만... 아직은 일보다는 저 자신이 소중해서요? 에디터리님은 부디 에디터리님을 소중히 다듬으며 지금처럼 유유히, 독자들에게 스며드는 양서를 잔뜩 내주세요!!

_유유히 사는 독자


☞ 당연히 결제해주시겠지만 반려되어 꽁트로 끝나는 걸 보고 싶은... 은 농담이고, 두 분 다 건강 잘 챙기세요!

_ㅇㄹㅅ

이번 주 유유히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 레터는 위트보이님이 보내드릴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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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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