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절의 고요입니다.
의자가 아무리 많아도
채송화 앞에는 절대
의자를 갖다 놓지 말자

채송화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발바닥에 오르는
전기를 기다릴 수 있게

지금 채송화에
하양 노랑 자줏빛
꽃 전구가 켜져 있다면

방금 전까지
채송화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발바닥 전기를 찌릿찌릿
채송화에 주고 간
한 아이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게




이안, 채송화


이지(李贄, 명나라 사상가ㆍ비평가)는 "견문이 들어와 사람을 주재하게 되면서 타고난 본바탕인 동심이 사라진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여덟 살, 제도 교육에 내던져진 순간부터 나는 동심의 세계에서 추방당했다.

어떻게 하면 되찾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모어가 아닌 표준어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방인임을 감추려고 아등바등 장만해온 의자를 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



의자에 앉은 채로는 채송화에게 갈 수가 없다. 채송화에게 가자면 내 낡은 몸을 태워 얻은 발바닥 전기가 필요하다. 채송화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의자처럼 딱딱해진 나를 연소시킬 때,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내 안에 영원히 살면서 내가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는, 내가 빼앗긴 아이.

두터이 자란 이끼를 들어내면 거기 생흙처럼 남아 있는 본바탕으로서의 동심이 드러난다. 오늘의 나를 태운 자리에서 채송화가 피어난다.

어른이 되느라 하나씩 늘려온 의자를 치우고 날것으로 직면한 자기의 본바탕, 그것을 채송화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만났다. 그때, 채송화 꽃잎은 찌릿찌릿, 더없이 유난하였다.

그 아이 손을 잡고 올해는 무슨 시를 길러볼까. 흰 구름 속에서 어렵사리 구해온, 두 번 꽃이 핀다는 목화 이야기를 길러볼까. 세상의 모든 그 아이들에게, 이미 오래전에 빼앗겼으나 되찾은 이야기를 찌릿찌릿, 들려주고 싶다.





이안, <동심, 단 하나의 진실>





안녕하세요, 시절의 고요입니다. 여러분은 '어린이'하면 어떤 마음이 떠오르시나요? 특별히 기억나는 과거의 경험이나 어린이와의 인연이 있으신가요? :)


저는 스무 살 즈음 만났던 초등학교 1학년 친구들이 떠오릅니다. 친구 따라 얼떨결에 동네 성당의 초등부 교리 교사를 맡은 적이 있어요. 선생님들은 사회 경험이 적은 저를 배려하여 학생 수가 가장 적은 초등학교 1학년 반을 배정해 주었습니다.


제가 교리를 알았을까요? 허헣.. 전혀요. 공부는 잠시 내려놓고 8명 남짓한 친구들과 열심히 놀기를 택합니다. 매주 필요한 주제를 챙겨가되 구연동화처럼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어요. 하지만 뜻대로 진행되진 않았죠. 밥상만큼 낮은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면 아이들은 쉴 새 없이 호기심을 쏟아 냈기 때문입니다. "몇 살이에요? 남자친구 있어요? 이 반지는 뭐예요? 방구 꼈죠!"


연달아 질문하는 와중에도 귀는 쫑긋 세우고 있었던 건지, 동화 속 주인공에게 궁금한 질문을 치고 들어올 때면 웃음이 나기도 했어요. '아이들은 다 듣고 있는 건가? 말을 조심해야겠군..!'이라는 다짐도 하게 됐지요.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11월이 되었습니다. 다음 달 예정된 크리스마스 공연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 친구들과 뭘 준비해야 할지 막막한 거예요. 대부분 장난기가 많고 에너지가 넘치니.. 신나는 춤을 추기로 합니다. 당시 유행하던 댄스곡을 골라 매주 작은 골방에 모여서 연습했어요. 같은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고, 어려운 동작은 아이들 신체에 맞는 움직임으로 바꾸고, 양옆 친구의 손을 잡으며 비뚤거리는 대열도 맞춰보았지요. 약 두 달을 노력한 결과, 완벽하진 않지만 1절은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되었습니다.



···



공연 당일. 모든 조명이 꺼지고 노란빛 조명이 무대를 밝혔어요. 빨간 산타 모자와 방울 조끼를 입은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눈부신 조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떡하죠... 어두운 공간, 많은 관객들, 낯선 분위기 때문인지 아이들은 겁을 먹은 것 같았지요.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뜀박질하며 장난치던 친구들이었는데 말이에요. 두려운 눈빛으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고 두리번거립니다. '아이고 큰일 났다...!' 저는 재빠르게 관객석 중앙으로 이동했어요. 간신히 빛이 드는 자리를 찾아서요. 그리고 손을 열심히 흔들어 봅니다.


무대 중앙에 서 있던 한 친구와 눈이 마주쳤어요. 저는 손가락으로 재빠르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곤, 다른 친구들을 가리키며 이곳을 봐도 좋다는 몸짓을 해 보입니다. '괜찮아'라는 마음이 닿길 바라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지요.


노래의 반주가 시작되고 두 달 동안 반복해 듣던 익숙한 멜로디가 공연장에 울려 퍼집니다. 음향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순간 움찔했어요. 연습실에서 듣던 볼륨과는 차원이 달라서 아이들도 얼마나 놀랐을까 싶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서서히 노래에 맞춰 자신이 기억하는 율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연습할 때와는 다르게 주춤거리는 작고 소심한 동작들이었지만요. 어떤 친구는 머릿속이 하얘졌는지 두 손을 허공에 올린 채 양옆으로 흔들거리고 있었어요.


아무렴 어때! 친구들이 볼 수 있도록 저도 열심히 춤을 추었습니다. 평소보다 오바스럽게 큰 동작으로요. 아이들은 더듬더듬 춤을 추다가도 자신 있게 손을 뻗으며 율동을 이어갔어요. 저는 무대를 마주 보고 서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정방향으로 춤을 추었는데.. 이런! 아이들이 저를 따라 하다가 방향이 뒤죽박죽된 것을 보곤 아차 싶었죠.

공연은 다양한 율동으로 무사히 마무리되었답니다. 사실 얼렁뚱땅 춤을 추어도 그 자체로 사랑스럽고 예쁜 모습이었을 거예요. 부모님의 박수갈채와 환호성을 받은 아이들은 부끄러운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무대를 내려왔어요. 그리고 머지않아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였을까요? 어린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의 씨앗이 심어진 시점이.


아이들 앞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그들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는지. 어떤 행동을 따라 하고 어떤 이야기를 흡수하는지.. 궁금했어요. 하지만 제 나이 스무 살. 제가 걸어갈 길도 아득했기 때문에 어린이에 대한 찰나의 호기심은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습니다.



···



그러다 최근 호기심의 씨앗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어요. <회춘 만두>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여든이 훌쩍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몸과 정신이 점점 아이같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요.


'어린이가 청년, 중년을 지나 노년을 맞이할 때.. 그러니까 내가 자라서 결국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거라면, 다시 돌아올 어린이 세계로부터 너무 멀어지지 말아야겠다. 더 빨리 더 높이 자라기 위해 애쓰기 보다 틈틈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투명한 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내가 무엇을 보았고 어떤 이야기를 흡수해서 이곳으로 흘러왔는지 그 뿌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맞이할 노년의 어린 마음을 잘 보듬어줄 수 있도록. 어려지는 모습이 낯설어 스스로를 외면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그 자체로 맑게 빛나서 그리운.. 돌아갈 수 없기에 아득한 오직 투명한 어린이 세계를 향해, 삶의 뱃머리를 조정하고 싶었을 거예요. 어른이 된다는 핑계로 아등바등 쌓아온 의자에서 내려와 채송화에게로 향하고 싶었을지도요. 나의 낡은 몸을 태울 발바닥 전기가 필요했습니다. 이끼를 들어내고 생흙처럼 남아있는 본바탕으로서의 아이를 다시 찾고 싶었을 테니.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어린이 세계로 기울어지는 마음일지도 모르겠어요. 어디선가 채송화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아직 영원한, 그 동심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아주 조금씩 피어났기 때문입니다.

고요한 집을 채우는
시간과 여정을 소개합니다.
목차
① 터 마련하기 <자연의 터>
② 땅 경작하기 <less comfort, more life>
③ 공간의 역할 <종의 다양성, 농부의 얼굴>
④ 문화의 씨앗 심기 <어린이 세계로>
 미술학원
 음악 학원
 내신 학원
예술의 터
① 터 마련하기
<자연의 터>

이곳이면 충분하다 싶었다. 순수한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했던 동네. 엄마 손잡고 계절을 지나왔던 동네. 이곳은 어린이 세계로 다가가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파트 단지의 식물 이름을 익히거나 꽃 씨앗을 받으러 다녔다. 분꽃, 채송화, 무궁화, 단풍, 개나리, 나팔꽃, 동백... 집으로 돌아와 씨앗을 분류하고 이름을 기록했다. 때로는 떨어진 잎을 책 사이에 고이 갈무리해두었다. 가을 즈음이었을까? 바삭하게 마른 맨드라미 씨앗을 손으로 쓸어내리던 기억이 선명하다.

유치원 입학하기 전에 다니던 어린이 공간의 이름이 <예술의 터>였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었다. <터>라는 어감이 좋았다. 이 정도로 자연이 깃든 터전이면 충분했다.

마지막 결정에 힘을 더한 것은 상가의 학원들이었다. 오래된 건물인 만큼 대부분 오랜 학원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제법 으슥한 이 상가는 신기하게 동네 아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맑은 온기 덕분일까?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피아노, 성악, 미술 학원부터 수학, 영어, 컴퓨터 학원까지. 중고등학생 내신 학원과 사설 독서실도 마음에 들었다. 영혼을 위로하는 배움부터 성장을 위한 배움까지 다양하다는 점이 좋았다.

미술 학원의 창문 너머로 그림 그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피아노 학원의 벽 너머로 들리는 바이엘 연주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마음을 굳혔다. 이곳이면 충분하다고. 어린이 세계로 향하는 터전을 마련하기에 이곳이면 충분하다고 말이다.




땅의 면적은 약 3평. 다행히 천장, 바닥, 벽이 있어서 '공간'의 조건이 성립되었다. 도로 변이지만 그래도 바라던 커다란 창이 있어서 기뻤다. 해는 건물을 등지고 떠올랐는데, 정오가 지나면 맞은편 아파트 창문으로 빛이 반사돼, 실내로 자연의 빛이 들어왔다. 계절에 따라 햇빛이 들어오는 시간과 각도가 달라질 테니 비밀스러운 요소를 관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시 흥이 오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수도와 하수 시설이 있었다. 이미 다른 지역에서 수도, 배관 없는 곳을 경험하고 왔기에, 수돗물이 나오고 물이 빠진다는 조건 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넉넉한 땅이 생겼으니 어떤 형태로 땅을 일궈볼까. 어떤 씨앗을, 어떤 방식으로 심으면 좋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엔 개인적인 공간으로 사용하려고 했다. 자연을 관찰하고 건강한 삶을 연구하는 곳. 다른 학원들이 투명한 유리창 위에 짙은 색깔의 시트지를 발라 가게 내부를 가린 것처럼, 나 역시 천으로 사방을 뒤덮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청소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공간의 형태가 독특해 삼면이 유리창이었는데 덕분에(?) 어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지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대별로 다양했다. 아침이면 옆 가게 반찬을 사러 온 중년의 여성분들이, 점심시간이 지나면 하교한 초등학생 친구들과 어머님들이,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면 퇴근한 주민들이, 밤이면 영어 학원과 독서실을 마친 중고등학생들이 복도를 지나갔다.

'코너 쪽 유리창을 오픈해 볼까..? 가장 넓은 유리창이 전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적은 유동 인구이지만 주변 환경의 특성에 맞추어 벽을 허물고 적당한 틈을 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았다. 아주 작은 공간이 과연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건네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② 땅 경작하기
<언어를 찾아서>

얼추 청소를 마치고 서울국제도서전을 방문했다. 공간을 설명할 언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언어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이날의 미션! 3평 공간의 정체성을 소개할 수 있는 책을 발견할 것. 대형 서점에서 보기 어려운 독립출판물 부터 구석구석 살펴볼 것. 내가 익숙하지 않거나 모르는 분야의 언어를 우선으로 찾아볼 것.

도서전에는 책의 종류가 상당해서 키워드 위주로 살펴보았다. 직관적으로 가슴에 와닿는 단어나 문장을 골라냈다. 아래는 그날 수집한 문장과 키워드들.


···


퍼포먼스는 문화 전문가의 인정도 필요 없었고
대본도, 저작권 승인도 필요 없었다.
퍼포먼스는 어느 곳에서 어느 때나
불쑥 나타날 수 있다.

예술가는 오직 자신의 몸과 상상력,
관객에게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가 필요할 뿐이다.


- 나선프레스, 독립출판사 -



#생태 #자연 #계절 #식물 #퍼포먼스 #Howtomovethehouse #어린이의자

② 땅 경작하기
<less comfort, more life>

Less comfort, More life.

가장 커다란 유리창에 짧은 문장을 적었다. 마음이 게을러지는 순간마다 꺼내보기 위해 오랫동안 간직해온 문장이었다. 결국 코너 유리창을 오픈했고 가장 큰 유리창은 전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얇은 흰색 천으로 배경을 만들었다.

전시에 필요한 물건, 이 공간에서 쓰일 대부분의 물건들은 모두 당근마켓에서 중고로 구매했다. '어떻게 (less comfort), 어떤 물건(more life)을 채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홍수열* 선생님께 배운 자원 순환의 가능성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제로웨이스트는 아니더라도 레스웨이스트는 실험해 볼 수 있을테니.. 누군가에게 쓰임이 다한 물건으로 공간을 하나둘 채워갔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굵직한 가구나 가전제품은 그렇게 했다.





* 홍수열 : 책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지금 우리 곁의 쓰레기> 의 저자
당근 마켓은 나름 선착순 구매이기 때문에 모든 물건들은 특별한 시간성을 가졌다. 봄, 가을, 겨울에 공간을 꾸렸다면 전혀 다른 물건들로 채워졌을 테니 공간의 이미지나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오직 올해 여름, 그날, 그 시간이 물건의 종류를 좌우했고, 그렇게 거래한 물건들이 모여 공간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 즐거웠다. 완벽하지 않은 각도, 길이, 색감을 모아 낡은 새로움을 표현하는 재미도 있었다. 기성제품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작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물건이 사람으로 기억되는 경험도 특별했다. 평소에 가구, 가전제품, 생활용품을 구매할 때 무엇이 기억에 남았었던가? 인터넷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대부분 공장이나 유통 업체에서 배송되기 때문에 특별한 기억은 거의 없을뿐더러, 모든 물건의 기억이 동일했다. 결제 완료, 네이버 포인트, 배송 문자, 현관문 앞에 놓인 택배, 송장 뜯기, 박스 버리기 등등..

당근 마켓은 말 그대로 직거래였다. 문고리 거래나 택배 거래가 아닌 이상 판매자를 면대 면으로 직접 만나야만 했다. 프로필 온도나 거래 후기를 통해 판매자의 거래 성향을 유추해 볼 수는 있지만, 그 외 요소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단순히 물건을 사러 갔을 뿐인데, 거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기분이 묘해지곤 했다. 판매자의 잔상이나 대화 내용이 기억에 남았기 때문. 비록 거래 시간이 짧았을지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 빈티지 그릇을 구매하고 싶어서 연식이 오래된 물건을 찾아 거래 장소에 나가면, 그곳엔 나의 엄마보다 훨씬 연배가 높으신 어머님이 계셨다. 그들은 하나같이 유리그릇은 잘 담아 가야 한다며 그릇 사이즈에 꼭 알맞은 가방을 함께 챙겨오시곤 했다. "그릇이 쓰임을 되찾아서 기뻐요"라는 말은 비현실적인 동화 속 대사 같아서 가슴에 콕 박히기도 했다. "원래 예쁜 그릇 쇼핑하면 행복하잖아~"라고 넉살 좋게 말씀하시던 어머님 말씀이 맞았다. 그릇을 볼 때마다 거래할 때 들었던 예쁜 말들이 함께 따라다녔다.


···


당근 마켓 직거래는 사실 번거로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버스를 타고 거래 장소를 옮겨 다니며 땀을 뻘뻘 흘렸기 때문이다. 무게가 상당한 제품들은 아빠, 동생, 친구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많이 걸어야 했고 무더운 여름에 할 짓은 아니라고 느꼈다. 그런데 공간에 들어서면 왠지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이야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손이 닿는 곳마다 흐릿한 장면이 떠오르는 건, 인터넷 쇼핑으로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이었다. 편안함을 멀리하니 (less comfort), 의외의 곳에서 삶이 다채로워졌다 (more life).
③ 공간의 역할
<농부의 얼굴, 종의 다양성>

공간도 전시 대도 마련됐겠다, 그럼 이제 무엇을 전시할 것인가?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싶은가? 어쩌면 답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올해 초 <마르쉐 지구 농부 포럼>에 다녀온 적이 있다.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생산자가 궁금해졌는데 농부 님들이 모여 이야기 나누신다니.. 내겐 귀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현장에서 오가는 대화와 섬세한 반응을 살피며 크고 작은 지혜를 귀로 담을 수 있었다. 풀풀농장 농부님이셨을까? "식탁에 올린 음식 중 농부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식재료가 10% 아니, 그 이하만 채워져도 충분하다"라는 말씀이 인상 깊었다.

이후로 늘 실험해 보고 싶었다. 식탁에 올린 음식에서 농부의 얼굴을 떠올린다는 것. 그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무엇이 해결되는 걸까?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나의 먹거리를 되돌아보기까지,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온 건지, 어떤 사람에게 길러진 건지 간신히 궁금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건넬 수 있을까? 나와 가족이 먹는 음식, 땅과 농부, 자연과 생태의 연결고리를 함께 고민할 수 있을까? 현재를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건강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 이 과정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④ 문화의 씨앗 심기
<어린이 세계로>

가장 먼저 매실을 전시했다. 매실청을 담그려고 매실을 사본 건 처음이었는데, 반나절 만에 매실이 무르는 것을 보곤 소스라치게 놀라서 냉장고로 후퇴 시켰다. 매실 전시는 하루 만에 막을 내렸다. 채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그 다음은 감자. 오래 두고 먹어도 괜찮은 채소를 준비했다. 할머니가 서늘한 곳에 신문지를 펼쳐 감자를 널어 두시는 것을 익히 봐왔기 때문에 큰 걱정이 없었다. 다양한 품종이 궁금하여 하지 감자 7종을 주문했다. 마침 운이 좋았다.

감자를 쪄 먹으며 농부님이 보내주신 편지를 읽었다. 감자와 함께 온 예쁜 채소들을 감상하자니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편지의 힘이 컸다. 이 감동을 나누고 싶었다.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


감자를 먹고 전시하고도 여전히 감자가 많이 남았다. 문득 어린이 세계가 떠올랐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의 감자를 어린이들에게 소개하면 어떨까?

하지만 아이들을 초대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다.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 감자를 나누더라도 이상하다고 의심하지 않을 사람들. 순환의 가치를 고민하며 때때로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


며칠 뒤 당근 마켓에 초대장을 올렸다. 허헝.. 자신 없고 부끄러워서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초대장을 만들었다.

이름은 <반짝 여름 감자 시식회>. 오직 동네 어린이를 초대해서 알록달록한 감자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٩(๑❛ᴗ❛๑)۶♡


< 어린이 세계로 >

감자 시식회
coming soo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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