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 노을 앞에서는

영화 <원더풀 라이프>에는 지금의 삶을 마무리 짓고,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해. 이 세계도, 저 세계도 아닌 중간 지점에서 그들은 ‘가장 빛났던 한 순간’에 대한 질문을 받지. 그리고 선택한 그 한 순간을 연극의 형태로 다시금 경험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어떤 장면을 꼽아야 할지 고민했어. 죽어도 여한이 없었던 순간을 가져와 미련 없이 이 생을 끝내는 게 좋을지, 해결되지 않았던 어떤 순간으로 돌아가 모험을 해볼지, 아니면 그저 편안했던 순간을 고를지.


어떤 장면이 좋을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 무대의 배경은 꼭 노을로 하고 싶어. 어떤 장면이 전경이 되든 노을 앞에서라면 다 아름답다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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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모으는 것만큼 아름다운 장면에 속하는 순간을 쌓아가는 게 즐거워. 사실 돈은 늘 수단이야. 나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 아름다운 장면을 위해 필요한 물질과 시간을 마련하는 수단. 그래서 이제 돈 공부도 열심히 해보려고.


아름다움이라고 하면 빛과 밀접한 감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은 빛과 어둠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아. 지금은 어둠을 단순히 ‘빛을 보았으면 감당해야 할 것’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락 같은 어둠도 아름다움의 한 속성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길 바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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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결, 오늘은 이즈음에서 인사를 건네.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


“‘오늘은’이라고 시작하지 않는 일기를 써보세요.”

더불어 날씨를 문장으로 표현하길 요청하셨어. 맑음, 흐림, 눈 대신 ‘따듯한 바람이 하루종일 불었다’, ‘눈이 밟히는 소리가 잘 들렸다’(본가에 있었으면 그 시절 일기를 꺼내 그대로 옮겨 적었을 텐데.. 지금의 나는 그때 나의 문장을 비슷하게도 살릴 수가 없네..!)


우리가 어떤 전형성에서 벗어나길 바라셔서 그런 규칙을 만드셨던 것 같아. 덕분에 그 시절 일기 속에 담겨 있는 나의 하루들이 어떤 틀에 갇히거나 섣부르게 정리되지 않고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아.


‘안녕 결, 민경이야’라는 첫 문장은 익숙함과 편안함을 주지만, 어쩌면 어떤 문장들을 흐려지게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오늘은 가장 손을 높게 들고 있는 문장으로 편지를 시작해 보았어. 그리고 그다음 또 가장 잘 보이는 문장으로 그다음도 또… 그렇게 이 편지가 쓰여졌어. 네게 어떻게 닿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 네가 어떤 걸 아름답다 여기는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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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입춘. 그리고 오늘은 보름이야. 뭐라도 챙기고 싶어 어제 만난 친구들에게 호두를 나누어주고, 오늘 아침에 남은 호두를 망치로 콱 깨부수어 먹었어. 껍질에서 갓 빼어낸 호두는 왠지 더 고소하게 느껴지더라.


이월은 열두 달 중 발음이 가장 편안한 달이야. 입만 살짝 벌려 말할 수 있는 달.

그 이름에 발맞춰 네가 보낼 올해의 이월도 편하고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어.



2023.02.05. 민경

추신. 이번 주말 모아온 아름다운 풍경들을 동봉할게:) 예전에는 풍경을 찍는 내 카메라에 사람들이 있는 게 달갑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사람들과 풍경을 함께 찍는 게 더 좋더라.
답장은 여기로 보내주면 돼,
보내준 답장은 우리 모두 볼 수 있다는 점 기억해줘.
모두들 너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있으니까.
#45-2. 지난주에 받은 답장을 나눌게. 익명의 다정함, 그리고 '접촉 부흥' 아이디어에 대해 물었어. 
"세상은 다정으로 운행되는 집인지도 몰라"

오늘이 입춘이라고 하네! 입춘 아니랄까봐 어찌나 훈훈하던지, 바닷바람이 으레껏 차겠거니 하여 두 겹이나 껴입고 갔더니 덥더라. 가방 속에 꾸깃 넣어간 장갑은 껴지도 못했어. 민경아! 어느 결에 애착이 쉬운 계절이 가고 있나 봐. (‘겨울’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네 덕에 이렇게 따뜻해졌네.)

우리 엄마가 ‘나는 가만히 누워 있다가 걸어 다녔다’고 하길래 내가 참 순한 아기였나보다 생각했었는데 네 편지를 읽다 보니 내가 생존본능에 충실하지 못했었구나 반성해본다. 웃자고 한 얘기야. 사실 요즈음에야 아기가 태어나면 물고 빨고 난리지만 한 집에 아이가 적어도 네, 다섯은 되었던 그 시절엔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안아주면서 예뻐해 줄 여유가 없었지 싶어.

접촉이라면 사람이 가지는 오감 중에 촉각에 해당되겠지? 유아기에는 매끈한 거, 거친 거, 말랑거리는 것 등등을 만지면서 촉각 놀이를 하고 의도적으로 물감을 주물덕거리기도 하지. 엄마들은 기겁을 하고. 뒤처리가 감당이 안 되기 때문에. 하지만 성인인 나도 가령 쌀이나 콩 등을 맨손으로 만지작거리면 어쩐지 기분이 좋아져. 손에 분포된 혈관을 자극해서 그런가 봐.

저의를 갖지 않은 한 다가오는 사람을 너무나 좋아하는 애완견을 보면 정말 신기해. 어쩌면 그렇게 좋은 티를 팍팍 내는지 신기하기만 해. 그렇게 극도로 다정함을 표현해 대니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이 그렇게 일방적인 다정을 표현한다면 미쳤거나 바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네가 말한 것처럼 익명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갖는 정도라면 그래서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한 쪽으로 다가 갈 수 있다면, 봄이 언저리까지 다가온 것처럼, 얼마나 좋겠니?

내가 나의 자식들에게는 확실히 다정함의 대상이었겠거니 확신해. 왜냐하면, 나는 엄마이고 특히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는 엄마니까 다정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익명의 다정함의 대상이 되었던 적은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동정심이 없다고는 말 못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못 본 체 못하는 성격이니까 살면서 적지 않게 그러한 대상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나 뿐 아니라 대다수의 대중은 미담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충분하니 세상은 다정으로 운행되는 집인지도 몰라. 뉴스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천인공노할 범죄는 극히 일부분이라 믿으며.

나의 엄마는 땅을 입에 물고 다니신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엄마는 걸을 때 지팡이를 짚고도 허리가 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땅을 보며 걸으시지. 어느 옅은 비가 오는 날 외출 길에 나선 엄마가 한 손에 지팡이를 짚었는데 우산까지 들 수 없어서 비를 맞으며 걸어가고 있었다고 해. 그 때 누군가 우산을 받쳐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이런 것이 익명의 다정함 맞나? 그 기분을 말로 해서 무엇하겠니?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금, 세계 어느 곳이라도 언제라도 접촉 가능한데 한치 사람 마음과 접촉하기가 너무 어려워. 마음으로 닿지 않는다면 물리적 접촉이 무슨 의의가 있을까? 유아가 아닌 이상 성인이라면 마음으로 먼저 닿아야 하지 싶다. 동글동글한 산등성이와 봄을 기다리는 흙빛을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껴. 내 마음이 편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네 질문에 대한 나의 솔루션은 내 마음이 편해지는 훈련하기야.

동장군에게 사로잡혀 옴쭉도 못하던 몸에 기지개를 켜고 세간살이 정리를 좀 해야겠어. 봄은 확실히 설레는 계절이 맞구나. 그래도 아직 가마득하긴 하지만,

다음 주에는 또 어떤 질문으로 민경이가 찾아오겠지? 그때까지 안녕!
*
다정에 대해 물었더니 다정한 답장을 받았네:) 봄에 가까워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답장을 보내주어 고마워. 요즘 거리에서 꽃망울이 맺힌 목련을 어렵지 않게 만나곤 해. 그럼 곧 만날 한밤에도 환한 목련들을 상상하며 기뻐하곤 했는데, 네 답장을 읽으면서도 그런 기분이 되었어. 나누어준 다정한 풍경들, 그리고 내 마음을 먼저 편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모두 마음에 힘으로 닿았어. 남은 겨울이랑도 친하게 지내고, 다가올 봄도 반갑게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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