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을 끝냈다. 책이 나오기 전 1주, 책이 나오고 나서 2주 정도는 정신없이 바쁘다. 책이 나오기 전 미리 보도자료와 카드 뉴스 등 각종 홍보자료를 만들어 놓아야 하고 인쇄 감리 후 책이 나오면 각 서점 배본과 MD 미팅을 해야 한다. 언론 릴리즈, 서평 이벤트와 작가와의 만남, 사인본 배송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더군다나 나는 1인 출판사라 이 모든 일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서점 출고를 마치고 맞는 첫 토요일. 오전 늦게 사무실에 나왔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휴일에 사무실에 나오는 편이다. 아마 직원이라면 “아휴, 휴일에 사무실엘 왜 가요?”하고 손사래를 치겠지만, 나는 1인 기업(이렇게 써놓고 보니 뭔가 거창하지만 그냥 가게 수준입니다)의 대표이다 보니 사무실과 집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일과 생활을 두부 자르듯 정확하게 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나와 있으면 뭔가 묘한 여유가 느껴진다. 창으로 들어와 회의 탁자를 비추는 햇살의 질감도 다르다. 텅 빈 사무실에서 클래식 FM을 크게 틀어놓고 커피를 마시며 어슬렁거리고 있노라면, 뭐라고 할까……, 긴장과 여유 사이의 중간쯤 되는 감각이라고 할까? 노곤하면서도 달콤한 피로감이라고 할까? 복합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어 좋다.
휴일의 사무실에서 하는 일은 바빠서 미루어 두었던 잡다한 정리다. 책을 내기 위해 작가, 거래처와 주고받았던 메일에 태그를 달아 저장하고, 붉은 사인펜 자국으로 가득한 교정지를 버리고 다음 책 교정지를 그 자리에 갖다 둔다. 내가 써야 할 에세이의 리스트를 에버노트에 백업하고, 노션에 다음 책 관련 스케줄과 기획한 아이템을 리스트업한다. 수첩에 적어두었던 아이템과 메모도 노션으로 옮긴다. 워크플로위의 To do list에 줄을 긋고 지울 것은 지운다. 컴퓨터 바탕화면은 한 줄로 정리한다. 커피를 마시고 케이크를 잘라 먹으며 이런저런 일을 한다.
정리가 대충 끝나간다. 라디오에서는 랑랑이 피아노를 치고 있다. 나는 랑랑의 모차르트를 들으며 오늘 저녁에는 어떤 요리를 할까 하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이번 주 금요일 자 레터 ‘오늘의 요리’에 쓸 수 있는 뭔가면 더 좋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나는 정리를 잘, 그리고 자주 하는 편이지만, 정리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책에서 끝없이 오탈자가 나오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내가 편집증적으로 정리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여기에 이것이, 저기엔 저것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둘 정도로만 한다. 맞다. 나는 '어디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정리를 하는 것이다.
정리라는 것이 언뜻 생각하면 귀찮기만 한 일이지만 ‘의미’를 생각하면 전혀 다른 것이 된다. 나는 왜 정리를 하는가, 보통 여기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보기 싫으니까, 누가 시키니까 정리를 한다. 하지만 어떤 일도 의미가 없으면 공허하다. 일에는 분명 이유와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게 정리란 내가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빨리 찾을 수 있도록 재배치하는 일이다.
랑랑은 퇴장하고 이젠 백건우 선생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몸에는 약간의 노곤함이 희미한 전류처럼 머물고 있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녹턴을 듣는다. 기분 좋은 감각이다. 여행을 막 다녀와서 느끼는 기분과 비슷하다. 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것을 ‘노곤함이라는 여유’라고 부른다. 이건 뭔가를 해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분이다.
자, 이제 일어서자. 손바닥을 탁탁 털며 말끔해진 데스크를 바라본다. 창은 분홍빛으로 물들고 있다. 오늘 저녁은 가쓰오부시 계란말이와 기린 맥주로 정했다. 양파와 당근을 듬뿍 넣어야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