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정원 서른 네번째 뉴스레터 2023.06.13 발행

안녕하세요. <호랑이의 정원>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 <호랑이의 쪽지 34호>입니다. 이번 호에는 어쩐지 호랑이의 정원 멤버들이 여름이면 걷고 싶어지는 홍제천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사실 홍제천변은 언제든 걷기 좋은데 한낮의 여름 땡볕에 걷기에는 좀 힘든 면도 있어요. 그래도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초록 나무와 풀들, 천변의 물소리와 물고기, 오리, 새들과 함께 좀 더 서울에 깊숙히 들어가는 기분이랍니다. 이번 코스는 최근 화제였던 ‘나혼자 산다'의 김대호 아나운서편을 따라 홍제역에서 시작해서 세검정까지 가는 코스로 잡아보았답니다. 걸어걸어 다시 청계천으로 해서 창신동에 가서 불족발까지 먹었으면 완벽한 코스였겠으나, 한 멤버가 지갑을 잃어버려서 부암동께에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왔답니다. (한달 뒤에 찾음! 😍 세상은 따뜻하군요)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풍경이 또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답니다.

홍제천을 따라 북동쪽으로 걷기

홍제천은 북한산에서 시작해서 종로구·서대문구·마포구를 거쳐 한강으로 가는 하천입니다. 홍제동과 홍제천은 조선시대 이 지역에 있던 홍제원(弘濟院)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해요. 홍제천은 모래가 많이 쌓여서 ‘모래내 혹은 한자로 ‘사천(沙川)’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연남동에서부터, 연희동 등 서울 서북쪽의 다양한 지역을 걸치고 있는데 저희가 좋아하는 지점은 유진상가에서 시작해서 부암동쪽으로 가는 코스랍니다. 서대문구청쪽 방향의 폭포가 있는 쪽도 좋지만 물길이 직선화되어서 좀 심심한 느낌이라면 이쪽은 구불구불 물길을 따라 걷는 기분을 더 느낄 수 있어서인것 같아요. 

지난 뉴스레터에서 다루었던 서울창포원 내 대전차 방호시설 역할을 했던 도봉시민아파트(현, 평화문화진지)를 기억하시나요? 이쪽에도 같은 역할을 하는 아파트가 있는데요 바로 홍제역의 상징인 유진상가랍니다. 1970년 주상복합으로 지어진 유진상가의 지하는 필로티 같은 구조로 도봉시민아파트와 마찬가지로 방호시설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답니다. 도봉시민아파트와 똑같이 길다란 모양을 하고 있는데 A동과 B동이 연결된 것이 특징입니다. 50년간 묻혀있던 이 곳은 다시 홍제천이 흐르고 예술작품 전시공간인 <홍제 유연>으로 재탄생했답니다. 홍제역에서 출발한다면 이 곳을 지나쳐 보는 것도 추천드려요. 어떻게 보면 환상적이기도, 어떻게 보면 좀 어둡고 무서운 분위기이기도 하지만 이곳을 지나 밖을 나오면 더 환한 도심속 자연과 마주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거든요. 

1972년 유진상가와 홍제천 일대 풍경 

출처: 국토지리정보원

홍제유연
2004년 청계천 공사 이후 서울 및 각 지자체에서는 천변을 산책로로 조성하는 사업이 전국적인 붐이 있었다고 해요. 예전에는 천변이나 강 주변이 냄새나고 더럽다는 이미지가 강했다면 이제는 깔끔한 산책로, 자전거길, 철마다 바뀌는 조경들로 조성되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존에 복개되었던 많은 천들이 인공적이든 자연적이든 복원이 되면서 천변을 따라 까페 등 번화가가 조성되기도 하고 주민들이 언제든 공원처럼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 풍경으로 자리잡은듯 해요. 인공적으로 조성된 자연들은 또 다른 생태계를 만들어가며 천변을 찾아오는 새와 들풀들, 또 사람들의 이동과 생활방식까지도 조금씩 다르게 바꾸고 있는것 같아요.   

포방교를 바라본 홍제천 풍경

다양한 초록이 있는 홍제천

옥천암 마애불좌상

저희가 홍제천에서 가장 좋아하는 스팟인데요. 홍제천을 따라 홍지문 방향으로 가다보면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답니다. 보도각(누각 이름) 내 마애불 조각에는 흰색 호분이 칠해져 있어 ‘보도각 백불'로 불리기도 하는데 문화재청 정식 명칭은 ‘옥천암 마애불좌상'입니다. 옥천암 옛부터 ‘불암'으로 알려져 있던 사찰로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이 백불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은 이 보도각 백불을 보러 가는 것이 유명한 답사 코스중에 하나였다고 해요. 걸어서 오기도 하고 인력거를 이용해 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20세기 외국인이 남긴 여행기나 그림에서 이 곳의 당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서울의 중심지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기도 했으며. 큰 사찰이 없이 이렇게 특이한 누각건물에 하얀 부처님이 있는 것이 독특하게 보였던 것일까요? 보도각 백불 위쪽으로 올라가면 자그마한 산신각이 있는데 작은 바위에는 산을 지키는 산신과 호랑이, 동자를 새겨놓았답니다. 
그림캡션: White Buddha, 1925년, 엘리자베스 키스

헤르만산더가 촬영한 보도각 백불, 1906~1907년

보도각 백불 현재모습, 2023년

보도각 백불 주변으로 푸른 숲과 산들이 에워싸고 있으며 바로 옆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어 어쩐지 커다란 자연속에서 한낱 작은 존재인 나를 느끼는 기분이랄까요? 자연속에 폭 파묻힌 경건한 느낌을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늘 이정도까지만 걷고 다시 되돌아가는 코스로 많이 걸었다면 오늘은 드디어 쭉쭉 걸어보기로 했답니다. 홍지문과 오간대 수문을 지나 세검정터까지 오다보면 어쩐지 분명 주변 도로에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데 조선시대로 타입슬립을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답니다 하하.

서울도성과 북한산성을 보완하기 위해 세운 탕춘대성의 문인 홍지문은 1921년에 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7년에 복원한 것이랍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 정말 많은 조선시대 문화재들이 복원되었는데요 그래서인지 박정희 대통령이 쓴 수많은 현판들 중에 이곳의 현판도 발견할 수 있답니다. (오른쪽으로 쓴)
또한 인조반정 때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날을 세웠다고 한데서 세검(洗劍)이라는 이름이 유래한 데에서 세운 정자인 세검정은 1941년에 불타서 1977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찍은 홍지문과 오간대 수문 전경 

출처:서울역사박물관

현재 홍지문 모습, 2023년
유숙의 세검정도 부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현재 세검정 모습, 2023년
뽕나무(Morus alba L.)

여름이 가까워질 무렵 홍제천을 걷다보면 곳곳에 심은 뽕나무를 발견할 수 있답니다. 어쩐지 까만 열매를 보면 따먹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는데요. 도심의 뽕나무는 공해뿐만 아니라 각종 수목 관리로 약을 많이 뿌리는 편이라 먹지 않는게 좋다고 하네요..(시무룩)

뽕나무를 볼 때 왜 뽕나무의 열매이름은 ‘뽕’이 아니고 ‘오디’일까 하는 의문이 든 적이 없으신가요?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뽕은 뽕나무의 잎을 가리키는 말이라네요. 후후 요즘은 달콤한 오디를 먹으려고 키우는 뽕나무지만, 원래 뽕나무는 예전부터 누에에게 뽕잎을 먹이기 위해 키우던 나무였답니다. 조그만 누에가 잎을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어 싶겠지만 정말 무서울정도로 빠른 속도로 누에잎을 먹어치우면서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고 해요. 1960~70년대까지도 농촌에서는 집에서 누에를 기르는 누에치기가 꾸준히 있어왔는데요. 그 속도가 상상이상이어서 밤잠을 못자고 가족들이 번갈아가며 누에잎을 줬다고 합니다. ㅋㅋ

저에게 오디는 불국사같은 관광지에 가면 할머니들이 종이컵에 조심스레 몇개 담아 비싸게 팔던 고급 과일로 기억되는데요. 요즘은 시장이나 슈퍼에서 여름철에 팔기도 하고, 뽕나무를 조경으로 심은 곳이 많아서 흔하게 볼 수 있답니다. 안산 주변에는 뽕나무가 많아서인지 여름철 비둘기 똥 색깔이 보라색인걸 볼 때마다 “아 쟤네들 또 산에 가서 오디먹고 왔네" 하며 혼자 슬며시 웃게 된답니다. (뽕나무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다음에 또 얘기할 시간이 있겠죠~ ㅋㅋ)

홍제천의 뽕나무
뽕나무 열매 오디  
지칭개(Hemisteptia lyrata (Bunge) Fisch. & C.A.Mey)

생활 식물인? 으로 여전히 어느 단계이상 식물 초보를 벗어나지 못하는 저(어흥)는 지칭개를 볼때마다 엉겅퀴인가? 라고 헷갈리곤 하는데요. 조금 덜 헷갈리기 위해 지칭개에 대해 써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관련 정보를 찾아보니 저처럼 눈썰미가 없는 사람은 (머쓱) 꽃모양이 비슷하게 생겨서 둘을 잘 헷갈려한다는군요.

뭔가 뾰족뾰족 가시가 있는 느낌의 꽃이면 엉겅퀴, 여리여리한 느낌이면 지칭개로 일단 구분 해보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지칭개는 두해살이 풀로, 어릴때 연한 잎으로는 역시 나물로도 먹고 된장국에 넣어도 먹고 약으로도 먹는다고 해요. ㅋㅋ 지칭개의 잘못된 명칭이 ‘지칭개나물'일 정도로 나물계에선 이미 이름이 나있습니다ㅋㅋㅋ 이름이 특이한 지칭개는 여러가지 어원설이 있으나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18세기부터 쓰던 명칭이라고 해요. 평지의 길가나 빈터, 밭둑 어디에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이므로 담에 길에서 만나게 되면 헷갈리지 말고 이름을 불러주기로 해요!

홍제천의 지칭개
엉겅퀴 출처: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접근성

지하철: 3호선 홍제역에서 홍제천 방향으로 도보 5분

버스: 홍제역-서대문세무소 정류장에서 홍제천 방향으로 도보 7분

휠체어 유아차 일부구간 가능

☺호랑이의 친구들☺
아래부터는 호랑이의 친구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 형식의 짧은 글입니다.
란과 생활- 신변잡기
호랑이의 정원 멤버들은 바쁘고 촘촘한 도시 생활속에서 어슬렁거리는 호랑이마냥 들풀을 보거나 동네의 까치와 비둘기의 세력을 관찰한다거나 하는 식의 한량에 가까운 생활을 하머 살아왔는데요. 올해는 어쩐지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느낌으로 바쁘게 살고 있답니다. 그 바쁜 것이 다 생업 활동은 아니지만요 훗 
작년부터 몇달 즐겁게 배운 피아노는 갑자기 학원이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매일 1시에 초등학생들과 더불어 주4일간 피아노를 쩔쩔매면서도 치던 경험은 꽤 좋았는데...왜인지 끈기없는 제 탓도 있지만 제가 시작한 취미활동들은 제가 파괴왕이 된 것처럼 없어지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몇년 전 즐겁게 배우기 시작한 발레 스트레칭은 코로나로 2달뒤 폐강... 최근에는 수영 기초반을 한달 들었는데 기초반이 이번달부터 없어졌답니다 하하
 <어흥>
가끔
결국 지난 뉴스레터에 선언했던 전시보러가기는 처참히 실패하였습니다. 역시 한번 그만둔걸 다시 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거겠죠...사실 이런 다짐을 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습니다.😅 그와중에 슬램덩크 다회차 관람은 차근차근 진행중입니다. 최근에는 호랑이의 정원과 꽤 가까운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아침마다 경복궁역을 지날때면 들뜬 여행객들의 기운에 아침부터 지친 저의 어깨도 살짝 힘이나곤 합니다.
원래 저의 삶은 가끔 식물이야기를 하고 가끔 트위터를 보며 깔깔대는게 전부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요. 요즘 호랑이의 정원 멤버들의 고민은 서촌에서 무엇을 먹을까 입니다. 혹시 맛집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후기🍀
어흥: 지칭개처럼 지쳐가는 나~  (아무말)
유정: 그리고 한달 뒤 잃어버린 지갑을 찾게 되었다는 해피엔딩
호랑이의 쪽지 34호는 재밌게 읽어보셨나요? 독자 여러분의 후기와 관심이 큰 힘이 됩니다. 💪
호랑이의 쪽지
동네의 식물탐험을 중심으로 호랑이의 친구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생각을 담은 쪽지입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받아보던 쪽지처럼 별 내용이 없더라도 받아보는 순간에 살며시 지어지는 웃음처럼 삶에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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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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