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3매 |  최갑수

그리운 것들은 모두 해변에 모여

지난 해 연말부터 올해 초, 이십여 일 강릉에서 보냈다. 바다가 보이는 오피스텔을 빌려 살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살아 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되어 그 열망을 실현할 수 있었다. 짐은 단출했다. 여행용 트렁크에 옷가지 몇 벌을 넣었고 노트북과 책 몇 권을 챙겼다.


강릉에서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늘 그렇듯 새벽 3시에 일어나 에스프레소와 초콜릿을 먹었다. 그리고 노트북을 켰다. 하지만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괜찮았다. 여기는 바닷가니까. 바다는 생각하는 인간을 싫어하니까. 베란다 창문을 3센티미터만 열어놓아도 파도 소리가 방으로 밀려 들어왔다. 나는 빌 에번스나 셀로니우스 몽크, 랑랑, 백건우를 틀어 놓고 피아노 사이로 서서히 스미는 파도 소리를 혹은 파도 소리 사이로 번져가는 피아노를 들었다.


그러다 보면 푸른색이 짙어지며 새벽이 왔고 수평선 너머의 하늘이 옅은 분홍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두꺼운 외투를 입고 바닷가로 나갔다. 해변을 따라 난 산책로를 따라 해가 뜨는 방향으로 걸었다. 십여 분을 걸어 가면 조그마한 포구에 닿았는데, 그때쯤이면 해가 떴다. 나는 해를 등 뒤로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숙소 가까이에 근사한 카페가 있었는데, 그 카페에는 다소 옛날스러운 ‘블랙퍼스트 메뉴’가 있었다. 예가체프에서 케냐AA, 과테말라 등으로 매일매일 바뀌는 ‘오늘의 커피’와 주인이 직접 만든 식빵 한 조각, 딸기잼, 삶은 계란, 요구르트와 시리얼이 놓이는 근사한 트레이였다. 나는 이층 통유리 테이블 앞에 앉아 파도를 바라보며 아침을 먹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서였나, 바닷가에 살고 있는 어느 등장인물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매일 바다를 보지만 똑같은 파도는 하나도 없어.” 아침을 먹고 있으면 바다로 나가는 배들이 바다 위에 나타났다. 배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러니까 해 뜨는 방향으로 힘차게 달렸다.


바다가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쓸 때도 있었고, 펴내야 할 책의 원고를 읽을 때도 있었다. 세금계산서 발행을 위해 국세청 홈페이지에 접속해야 할 때도 있었다. 글을 쓸 때도, 원고를 읽을 때도,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때도 ‘여기까지 와서 무슨 짓이람’하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은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일주일 정도 지나자, 바닷가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익숙해졌다는 말은 게을러졌다는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에스프레소와 초콜릿을 먹고, 바닷가 산책을 다녀 와 카페에서 아침을 먹는 것까지는 똑같았지만 일은 하지 않았다. 바다는 생각하는 인간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일 따위나 하러 온 이방인을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일은 서울 쪽으로 멀찌감치 밀어두었다. 노트북을 열다가도 ‘이런 건 해서 뭐하게’ 하는 생각이 들어 얼른 덮고는 책을 폈다. 어느 문학평론가의 시 평론을 읽었고, 어느 소설가가 경주에 산 이야기를 읽었다. 시를 쓰고 싶었고, 경주에 살아 보고 싶었다.


삼십 대 시절,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오래 머문 적이 있다. 몇 번 루앙프라방을 다녀온 이후 루앙프라방에 관한 글이 쓰고 싶어 게스트 하우스 하나를 빌려 살았다. 루앙프라방으로 떠나기 전 새 몰스킨 노트를 사서 ‘이 노트를 루앙프라방에 관한 글로 가득히 채우겠어.’ 하고 다짐했지만 고작 한 페이지 남짓을 썼을 뿐이다. 루앙프라방에서는 그냥 놀았다. 자전거를 빌려 골목 골목을 쏘다녔다. 훗날 ‘목요일의 루앙프라방’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왔으니 다행이다.


강릉에 있는 동안 약속 때문에 서울에 다녀오기도 했다. 새벽에 출발해 미팅을 하고 다시 강릉으로 돌아오면 오후 두 시였다. 고향 친구들과 송년회를 하기 위해 김해에 다녀온 적도 있다. 강릉에서 김해까지, 7번 국도를 따라 내려갔다. 동해와 삼척, 울진, 영덕, 포항을 지났다. 쉬엄쉬엄 가니 5시간이 걸렸다. 술을 마시고 다음 날 다시 포항과 영덕, 울진, 삼척, 동해를 지나 강릉으로 돌아왔다.


오후의 카페에 앉아 있으면 바다로 나갔던 배들이 포구로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시계를 보면 얼추 4시 무렵이었다. 배들은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달렸다. 해가 지는 방향이었다. 갈매기들이 배 위를 떼 지어 맴돌았다. 그때쯤 나는 가방을 챙겨 포구로 갔다. 배가 돌아오는 시간이 내 퇴근 시간이었다. 포구에는 직접 잡아 온 물고기를 파는 난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회를 떴다. 기본 5만 원. 할머니가 우럭과 이런저런 잡어를 한 접시 썰어주었다. 나는 할머니께 반은 회로 썰고, 반은 포로 떠달라고 부탁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포구에서 떠 온 회를 놓고 맥주를 마셨다. 베란다 문을 조금 열어놓으면 차가운 겨울바람이 밀려들었고, 방은 바람에 실려 온 파도 소리로 분주했다. 동쪽 해안의 낮은 짧아서 금방 어두워졌다. 포를 뜬 회는 다음날 미역국을 끓이고 회덮밥으로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또 남은 회는 다음다음 날 회로 먹었다. 숙성이 되어 더 맛있어서 소주가 잘 들어갔다.


어느 날 포구 주위를 산책하다가 점집을 보게 되었다. 문득 호기심이 일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이 지긋한 법사님이 앉아 계셨고, 책상 앞에는 이체 계좌가 쓰인 종이가 놓여 있었다. 나는 카카오뱅크로 5만 원을 이체하고 생년월일시를 말했다.


- 법사 : 남자가 오는 일은 드문데, 무슨 일로 오셨는가.

- 나 : 제주도에 살아보고 싶습니다.

- 법사 : 제주도는 자네랑 안 맞아. 서북 방향으로 가서 살아.

- 나 : 저, 파주에 삽니다. 서북 방향이면 백령도 연평도밖에 없습니다.

- 법사 : 그러면 여기 동쪽도 괜찮으니 속초에서 사는 것도 좋을 거 같아. 가끔씩 나랑 막걸리도 마시고 하면서 말이야. 껄껄껄.

- 나 : 올해 제 운은 좀 어떨까요?

- 법사 : 당신은 그런 거 몰라도 돼.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아. 사람이 뭐 바뀌나. 그런데 당신은 법사를 해도 잘할 것 같은데.

- 나 : 올해는 돈을 좀 벌어야 하는데요.

- 법사 : 남의 말 좀 들어. 휘어질 때도 있어야 해. 제발 올해는 남의 말 좀 듣고 살아. 그러니까 일단 내 말부터 좀 듣고. 속초에서 살아.

- 나 : 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문을 나서며 ‘남의 말을 듣자, 남의 말을 듣자, 남의 말을 듣자’고 세 번 되뇌었다. 그리고 휴대폰 알람에 등록했다. 매일 아침 10시면 알림이 울릴 때마다 남의 말을 듣자고 마음속으로 되뇐다. 이번에 펴낸 책도 전부 남의 말을 들었다. 책 제목은 디자이너, 표지 디자인은 필자 중 한 분, 발행 부수 등은 지인이 하라는 대로 했다.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강릉에서는 그렇게 살았다. 8킬로미터 거리에 경포대가 있었고, 가보고 싶은 막국수 집이 있었는데 가지 않았다. 너무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작 이십 분 거리였는데 말이다. 바다를 산책하고 책을 읽고 포구에서 회를 떠서 소주를 마셨다. 다이소에 두어 번 다녀왔다. 그거면 충분했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파도 소리를 들었다. 바다는 어두웠지만 아득한 바다 한 가운데에서 불현듯 출현해 해변을 향해 밀려오는 파도 소리는 맹렬했다. 잠은 오지 않아 눈을 감고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면, 파도 소리는 먼먼 옛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인천 맥아더공원으로 소풍을 갔던 일곱 살 시절로 나를 데려갔다. 딸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아이의 조그만 손을 잡고 걷던 환한 벚꽃 길로도 나를 데려가 주었다.


먼 먼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이 파도 소리는 나를 어느 훗날로 데려가 줄까. 오래도록 눈을 감고 있었지만 나는 끝없이 어두운 바다 위를 맴돌 뿐이었다. 수평선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수평선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눈을 떠보니 하늘엔 별이 가득했다. 하지만 수평선 너머에는 수평선. 가도 가도 어두운 수평선만 이어졌다. 내가 그리운 것들은 모두 해변에 있었다. 파도는 해변을 향해 맹렬하게 밀려가고 있었지만 나는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최갑수는 시인이자 여행작가이자 편집자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활자와는 관계없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지난해 겨울 강릉에서 그 꿈을 조금이나마 이루었다. 올해는 제주에서 살아 볼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의 생각과 일상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ssuchoi를 들여다 보자.

🍵 나의 첫 차 수업 |  금진방

정신은 뒷짐을 지고 마음은 천천히 걷지요

이렇게 차 선생님이 됩니다


나의 첫 차 선생님은 대학 선배인 J 선배였다. 특파원 발령을 받고 한국을 떠나기 전 또 다른 대학 선배이자 은사님인 K 선생님은 베이징에 사는 J 선배를 소개해주면서 꼭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베이징에 도착해 K 선생님에게 받은 연락처로 연락하자 J 선배는 나를 차관으로 불렀다. 내가 참새 방앗간 드나들듯 다니던 도연당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후에 이곳은 나의 차 고향이 됐다. J 선배 덕택에 차를 알게 된 뒤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차를 마셨다.


한국과 중국에서 모두 차예사 자격증을 딴 J 선배는 차에 관해서는 척척박사였다. 귀찮을 정도로 묻고 또 묻는 나의 질문에도 항상 열과 성의를 다해 답해줬다. 또 귀한 차를 구하면 꼭 한쪽을 떼어 나에게 건넸다. 나도 중국공산당 간부나 유명 인사를 인터뷰하러 갔다가 차를 선물 받으면 늘 차를 들고 J 선배 댁으로 달려갔다.

J 선배의 살뜰한 가르침 덕분에 나는 점점 차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차 우리는 방법을 배우고 차 우리는 것이 익숙해질 때쯤에는 좋은 차를 구별하는 법을 배웠다. 또 계절별로 제철 차가 무엇인지, 나의 취향에 맞는 차가 무엇인지, 다구는 어떻게 고르고 다루는지 등도 배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차 생활은 J 선배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면서 우리는 사제지간師弟之間에서 차우지간茶友之間이 됐다.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처음 차를 접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을 환대한다. 환대 정도가 아니라 돕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왜 그럴까 하고 이해를 못 했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잘 알 것 같다. 차를 마시는 게 너무 좋으니까 그런 것이다. 나 혼자 이 좋은 걸 마시기는 너무 억울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차를 즐기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내가 처음 한 일도 가장 친한 친구를 차관에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에게 차와 다구를 선물했고 차 맛을 구별할 수 있도록 설명도 해주었다. 차에 대한 내 생각도 함께 나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J 선배에게 차를 처음 배웠던 것처럼 어느새 나도 그 친구의 차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놀라운 점은 내가 그의 차 선생님이 됐을 때 비로소 ‘내가 차를 정말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감정을 느꼈다는 것이다. 아마도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지 않을까? 뭔가를 받을 때보다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누군가에 나눠 줄 때 우리는 더 깊은 기쁨을 느낀다. 충족감은 받을 때가 아니라 나눠주고 전해줄 때 더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다인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이를 두고 ‘차의 선순환’이라고 부른다. 초보 다인이 차 선생님에게 차를 배우고, 다시 그 사람이 차 선생님이 된다. 차는 이 과정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건너 전해지고 이어진다.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열심히 차를 권하는 이유는 도대체 뭡니까?

이유는 딱히 없다. 아니 딱 하나가 있다. 차가 좋으니까. 그런데 이보다 더 선명한 이유가 있을까요?

온전하고 고요하게 나를 만나는 시간


“차는 왜 마시나요?”

차를 마신 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차를 마시는 이유는 열 달 스무날을 설명해도 부족하다. 그래도 몇 가지 추려서 답을 해보겠다.


일단 가장 먼저 심신의 안정 때문이다. 이는 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가장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머릿속으로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차를 마시고 느끼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몸이 고되고 지칠 때, 차 한 잔을 몸속으로 흘려보내면 안온하고 평안한 느낌이 찾아온다. 이 느낌을 정확히 묘사하고 설명하기는 정말 어려운데,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 이해가 빠를지도 모르겠다. 놀랐거나 공포에 질린 혹은 사고에서 막 빠져 나온 주인공에게 따뜻한 물을 건네주는 장면 말이다. 따뜻한 물이 내 몸속으로 천천히 들어오는데, 아니 스민다고 해야 맞을까? 아무튼 그것이 내 몸과 마음의 어느 부분을 아주 따스하게 데우고 다정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신생아가 따뜻한 물에 들어갔을 때 엄마 배 속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평온함과 안도감 비슷하다고 할까? 기사를 쓸 때나 무언가 긴장되는 일이 있을 때 내가 차를 찾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이 반대의 경우에도 나는 차를 찾는다.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막 벗어났거나, 평안한 상태에서도 차를 찾는다. 아니, 긴장할 때나 평안할 때 모두 차를 마신다니 무슨 약장수 약 파는 소리입니까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뭐 사실은 사실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차를 준비하고 차를 내리고 차를 마시는 그 시간은 온전히 고요하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며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니까. 그러니까 차는 그 자체만으로도 마시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바쁜 현대사회’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듣는다. 우리 뒤에 오는 세대들이 지금의 한국 사회를 정의할 때 가장 먼저 꺼내 들 형용사가 ‘바쁜’이 아닐까 할 정도로 모두가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스마트폰, 스마트TV, 노트북, 태블릿 등 현대 문명의 이기는 잠시도 우리의 손을 떠나지 않고 우리의 뇌가 쉴 수 있는 시간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차를 마실 때만큼은 이 모든 것들에게서 멀찌감치 멀어진다. 정신도 뒷짐을 지고 마음도 천천히 걷는다. 그 순간만큼은 시선은 먼 곳을 향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가꿀 수 있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내게 불현듯 다가오는 정지된 시간, 찰나의 정적, 고요한 빛…… 그 순간은 어쩌면 지극히 시적인 멈춤 같은 것이기도 한 것인데,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이것이 차를 계속 찾게 하는 마력이라는 것을 다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베이징에 부임하고 하루도 온전히 쉰 날이 없었던 것 같다. 2017년 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중간에 8개월 동안 한국에 들어온 기간을 빼면 만 5년을 쫓기듯 일상을 살아냈다. ‘살아냈다’는 피동적인 표현을 쓴 것은 삶에 이끌려 이리저리 끌려다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이 혹독한 시기에 만약 차마저 없었다면 나는 그 바쁜 일상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가끔 삶이 세탁기 같다는 생각을 한다. 생활에 쫓기며 더럽혀진 몸과 마음을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그래야 내일 아침에도 표백된 몸과 마음으로 지하철을 탈 수 있으니까. 세탁이 끝나고 헹굼으로 넘어가기 전, 세탁기가 잠깐 멈추는 순간, 그 짧은 정적과 고요의 순간, 우리는 차를 마신다. 자, 이제 세탁이 끝났어. 한숨 돌리자고. 세탁기가 다시 돌아가면 또 정신없을 테니 말이야. 


많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는 게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 아니냐고 묻는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매우 번거로운 일이 맞다. 그래서 일을 할 때는 표일배(차를 간단히 우릴 수 있는 거름망이 달린 다구)를 이용해 차를 우리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이는 반쪽짜리 차일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차를 마신다는 행위는 차 덩이에서 찻잎을 떼어내고, 다구를 정돈해 준비하고, 물을 끓이고, 차호에 차를 우리고 찻잔에 따라 입술에 가져가는 모든 과정을 일컫기 때문이다. 행동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이어지는 그 순간순간이 모두 차를 마시는 시간인 것이다. 🔖

차를 사랑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차를 마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차를 권한다. 대륙의 식탁 베이징을 맛보다 중국의 맛을 썼다. 미식가로도 유명한 그의 인스타그램 @gold_awesome에는 차를 비롯한 다양한 음식 이야기가 있으니 꼭 방문해보자.

✏️ Words | 맞는데 아니고, 아닌데 맞고


세상일이라는 게 자기 생각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앞뒤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의외로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죠. 더 알려고 할수록 알쏭달쏭 모호해지기도 하고요. ‘삶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요. 때론 맞는 것 같은데 아니고, 아닌 것 같은데 맞더라고요. 내비게이션보다는 기사님의 경험을 믿어 봅시다. - alone&around

📖 Books |  이 고도를 사랑한다

강석경 지음 | 난다 펴냄


소설가 강석경이 경주에 살며 쓴 글들을 엮은 책이다. 강릉에 머물며 읽었다. 강릉에서 경주를 읽은 셈이다.


2014년 처음 출간됐는데, 새롭게 쓴 5편의 원고를 더해 2022년 다시 펴냈다. 경주에서 살며, 경주를 바라보며, 경주에서 사유를 하며 걷는 소설가의 깊은 마음이 있다.


찬란한 경주의 풍경 속에서 때로는 폐허의 빈 들판에서 생의 허무를 쓰다듬는 깊은 마음을 읽으며  다음에는 경주에서 살아보리라 생각했다.


- 책 속에서 -


  • 목표가 없다면 몰입이 없다면 시간은 얼마나 무의미할 것인가. 공부도 일도 사랑도 다 시간의 무의미-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몰입하는 것이 아닐까.

  • “진흙에서 연꽃이 핀다는 거 안 믿어요.” 삶이 진흙 같다고 생각하는 B가 딱 부러지게 말했지만 진흙에서 연꽃이 피기도 한다. 삶의 진흙에서 피는 연꽃, 그건 바로 예술이지.

   

  • 도를 닦는다는 생각 없이 똑같이 반복하다 보면 자기 반영이 먼저 된다. 창작 이전에 자기 실상을 볼 수가 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번외, 바느질 중에 번뇌에 휘둘리기도 하지만 번뇌를 놓고 쉬고 몰입하다가 군더더기가 떨어져 나간다. 일 분, 십 분, 백 분 장시간 인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단순하기 때문에 닦여진다. 그러니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근본 이치를 터득해야 한다.

  • 루소식으로 표현하면 '걷기는 자연 안에 존재하는 방법, 사회 밖에 존재하는 방법'이다. 과연 "혼자 걷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는 동시에 주변 세계와 동떨어져 있다." 경주라는 환경이 나를 만보객으로 만들고, 나는 산책으로 탈현실의 시간을 기꺼이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 가을을 기다리지 않고 어떻게 여름을 견딜 것이며 봄이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긴 겨울을 사랑할 것인가.

  • 오늘도 나는 가을 배반들에 서서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이만큼 걸어왔지만 삶의 무게는 결코 가벼워지지 않고, 언뜻언뜻 다가오는 무의미도 여전히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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