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이사이자 수도권생태유아공동체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임미령이라고 합니다. 겨울잠 자던 작은 생명들이 하나둘 기지개를 켜는 계절, 선생님께서도 봄기운 속 바쁜 일상 가운데 따스한 봄날을 느끼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평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께 꼭 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편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영유아 교육계에서 분투했던 한 사람으로서, 그 여정 속에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나 지난 18년간 함께 만들어온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잠시 3분만 시간을 내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7년부터 2004년까지, 저는 칼바람 부는 여의도 국회 앞에서 몇 해를 버티며 유아교육법 제정을 요구하는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유아교육법이, 그때는 없었습니다. 교육의 출발선인 유아기 아이들이 가정의 형편과 상관없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지켜줄 법조차 없던 시절이었지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창립자이자 전 대표자셨던 윤지희(당시 참교육학부모회 회장) 선생님께서, 그 시절 학부모들의 절박한 마음을 대표해 카랑카랑하게 외치던 목소리는 지금도 제 귀에 선합니다.


“유아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권리입니다! 교육의 출발선 평등은 유아기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참으로 기나긴 투쟁 끝에 유아교육법이 제정되던 날, 윤지희 선생님과 함께 감동과 회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은, 어느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든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비로소 만들어졌다는 기쁨이었고, 이 법을 필두로 해서 앞으로 영유아 교육을 언제까지라도 함께 지켜가자는 연대의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2008년, 윤지희 선생님은 송인수 선생님과 함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창립해 대표직을 맡았고, 저도 단체의 영유아사교육포럼 대표로 그 여정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의 오랜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창립된 무렵, 강남을 중심으로 영유아 영어학원이 불붙듯 번지던 때였습니다. 조기 영어 몰입교육의 거센 압박 속에서 아이들은 학습된 무기력과 정서 불안 장애에 시달렸습니다. 영어 발음을 고친다며 어린 아이에게 혀 수술까지 권하던 세태 속에서, “강남에 영어유치원이 하나 생기면, 소아정신과 10개가 생긴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기도 했습니다. 시장의 논리 속에 아이들의 삶이 아무런 거름망 없이 속절없이 망가지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영유아 교사를 길러내는 교육자이자,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유아사교육포럼 대표로서 그 비통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일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빛나야 할 영유아기가 교육을 가장한 경쟁의 실험대 위에서만 흘러가도록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언론에 자극적인 영유아 사교육 실태가 일회성으로 보도되곤 했지만, 그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데이터는 거의 전무했습니다. 그래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연구원들과 함께 ‘우리가 영유아 교육부’라는 책임감을 갖고 영유아 사교육 문제를 단체의 핵심 의제로 삼아, 실태조사와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일에 밤낮없이 매진했습니다. 특히 사립 초등학교의 영어 몰입교육 논란 속에서 조기 선행교육 경쟁이 더 어린 유아기로 내려오는 흐름을 막는 데 전심을 다했습니다. 그렇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매년 영유아 사교육 실태조사와 연구를 이어가며, 연일 보도자료, 토론회,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특히 2017년부터는 조기 유아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법 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사교육 업계의 반발을 의식한 정치권의 무관심에도 아이들을 위한 고독한 싸움을 뚝심 있게 이어갔습니다.

 

창립자들에 이어 2대 대표(정지현, 홍민정) 체제에서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영유아의 발달권과 놀이권을 지키기 위해 보다 넓은 연대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념과 성향을 넘어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유보통합범국민연대’를 꾸리고, ‘영유아의 권리’를 중심에 둔 유보통합 추진 운동을 이어갔습니다.

 

우리가 붙든 원칙은 분명했습니다. 유보통합의 중심은 ‘기관’이 아니라 ‘아이’라는 것.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단순히 행정적으로 합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모든 영유아의 발달권과 교육권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책임지는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유아기에 경험하는 격차는 이후 삶 전체에 지속적으로 깊은 영향을 남깁니다. 저출생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영유아기의 삶을 지켜주는 것은 미래의 생존을 지키는 과제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기관 간 경쟁과 갈등 속에서 아이들과 교사의 일과는 흔들렸고, 갑작스러운 폐원으로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는 일도 반복되었습니다. 교사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소진되어 갔고, 취원율 경쟁 속에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육에 외부 사교육 업체가 유입되며 교육과정이 왜곡되는 문제가 심각해져 갔습니다.

 

그 속에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아이의 출발선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을 붙들고 끈질긴 설득과 연대를 이어갔습니다. 여러 이해관계의 대립 속에 유보통합에 반대하는 항의가 거세게 쏟아지기도 했고, 일부 회원들이 탈퇴하기도 했지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원칙에 타협하거나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2023년 12월, 영유아 보육 업무를 교육부로 통합하는 정부조직법이 제정되었고, 2024년에는 교육부에 ‘영유아교육정책국’이 신설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행정 변화가 아니라, 영유아 교육을 복지의 하위 영역이 아닌 교육의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한 역사적 전환이었습니다.

 

이처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언제나 영유아 교육의 가장 첨예한 현장에서 영유아의 발달권과 놀이권,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한치의 물러섬 없이 싸워왔습니다. 이제 그 노력은 조금씩 결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25년 국회 발의된 ‘영유아 영어학원 방지법’, 국가인권위원회의 ‘7세 고시’ 개선 권고, 그리고 제정을 눈앞에 둔 ‘유아 레벨테스트 금지법’까지. 이는 단체 창립 이래로 지난 18년간 켜켜이 쌓여온 피땀어린 활동들의 소중한 성과들입니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합니다. 2024년 취임한 3대 대표(신소영, 나성훈)들은 취임 직후, 제게 영유아 부모로서의 마음을 절절히 담아 ‘영유아 적기교육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간 이들을 보아온 저는 지금 어린 자녀를 키우는 젊은 부모이자 시민운동가로서 그 거대한 과제 앞에 서 있는 두 대표들의 마음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잘 압니다. 그리고 지난 활동을 함께하며 지켜본 저는 이들이 정책을 실제로 움직이고 시민들의 힘을 모아낼 수 있는 실력과 끈기가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영유아 사교육 광풍을 멈춰 세우고, 아이들의 발달 속도에 맞게 자라는 토대 위에서 초중고 학령기의 책임교육 체제를 만들겠다는 이들의 계획은 매우 담대한 도전입니다. 그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영유아 교육 운동의 시간이 응축된 결실을 맺어야 하는 마지막 산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이 이 길의 앞자리에 서 주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고맙고 든든합니다. 오랜 시간 이 운동을 함께해 온 사람으로서, 애틋한 마음과 깊은 신뢰를 담아 두 대표의 여정을 온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난도 높은 일입니다. 일단 영유아 교육에 필요한 충분한 국가 재정의 투자가 현저히 부족하고, 관련 정책도 빈곤한 실정입니다. 경쟁적 교육 문화 속에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조차 방과 후, 특별활동 명목으로 사교육식 조기교육이 만연합니다. 공교육의 본질이 흔들리고, 아이들과 교사들 모두 비정상적인 경쟁과 노동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해결하려는 목소리가 현재 교육계 안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 현실 속에 현장 조사와 정책 연구, 입법 활동을 지속하며 영유아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면에 나서서 싸우는 단체는, 대한민국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거의 유일합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이 단체의 대표들과 상근자들이 그 어려운 싸움을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실력과 용기를 가진 사람들임을 믿습니다.

 

제가 경험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그동안 우리 교육계에서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던 자리에서도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나서고 외치는 용기를 선택해온 단체였습니다. 그 정신은 창립자들로부터 지금의 3대 대표 체제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모두가 ‘어쩔 수 없는 난제’라며, ‘내 권한의 일은 아니’라며 눈을 감고 회피하며 지나가기 바쁜 문제를 붙들고, 아이들의 삶을 지키겠다며 한발 앞서 기꺼이 나서 행동하던 이들이 모인 정의로운 단체였습니다. 특별히 영유아의 고통 앞에 늘 깨어 있었고 아이들의 고유한 시간표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소리를 낼 뿐만 아니라, 혈기와 구호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운동의 성과로 실력을 입증하던 이 단체에 현재 더 많은 후원자가 필요합니다.

 

저는 영유아 교육 문제의 둘러싼 어두운 현실 앞에서도, 바뀔 미래를 한발 앞서 내다보고 치밀한 연구와 결기 있는 실행력으로 전진하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활동가들이 재정 걱정 없이 일하기를 바랍니다. 특히 지금 이 어려운 싸움의 한복판에 서 있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시민적 지지 속에서 흔들림 없이 일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온전히 시민들의 힘으로 지난 18년을 걸어온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앞으로도 그렇게 갈 수 있도록 영유아 교육계에 계신 선생님, 원장님, 학부모님, 교수님, 학생분들께서 이 단체의 후원자로서 고되고 외로운 길을 함께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지금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후원회원으로 함께해주셔서, 이 땅의 영유아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발달할 수 있는 교육을 함께 만들겠노라 약속해 주십시오. 아이들의 시간을 시장에 내맡기지 않고, 불안을 경쟁으로 바꾸는 세태를 함께 막아내자고 다짐해 주십시오. 한 아이의 하루를 지키는 일은 결국 한 사람의 평생을 지키는 일입니다. 아이들의 시간이 조금은 더 천천히, 그리고 온전히 흐를 수 있도록 오늘 선생님께서 함께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26년 3월 5일
따스한 봄날이 시작되는 절기에 임미령이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수도권생태유아공동체생활협동조합 이사장 임미령


※문의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나눔국 02-797-4044 (내선 404)

  
사교육걱정없는세상
noworry@noworry.kr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62길 23 유진빌딩 4층 02-797-4044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