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공연은 끝나지 않았다
공연 티켓과 함께 안내를 받는다. 배우는 없다.
“저기 국밥집이 보이시나요? 국밥집을 지나 ‘훼드라’라는 가게로 가면 공연이 시작됩니다.”
관객은 처음부터 혼자 길을 걷는다. 훼드라에 도착하기 전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그는 우연히 만난 것처럼 자연스레 말을 건다. 최루탄 라면으로 유명한 훼드라라는 가게 이야기를 하며 함께 길을 걷는다.
야외 공연이라도 공연장과 관객석의 구분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 공연은 시작부터 공연장이라는 개념을 허문다. 이미 공연장에 들어섰지만, 공연은 시작되지 않았고 배우와 함께 길을 걷는 느낌이다.
다음 목적지는 신촌 현대 백화점. 이곳에 관객은 나 하나, 배우도 한 명이다. 나머지는 모두 공연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백화점은 공연과 상관없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지만, 공간은 공연으로 가득 차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같이 탄 저 사람도 관객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배우와 관객, 무대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배우는 아직도 공연이 시작되지 않은 것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유리 이야기를 꺼낸다.
“유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리프트를 통해 배우가 튀어 오르며 공연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유리는 사실 자연에서도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볼록한 형태였다, 왜 평평한 유리를 만들게 됐는지, 유리 사용을 금지했던 역사, 유리는 기체도 액체도 고체도 아닌 모호한 상태다 등 한참 동안 유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다시 백화점 1층. 배우는 관객에게 지도를 한 장 쥐여준다.
“이제부터는 혼자 걸어야 합니다. 걱정은 하지 마세요. 문제가 생긴다면 엔젤이 도와줄 거예요.”
관객은 고체인지, 액체인지, 기체인지 모를 유리로 만들어진 커다란 문을 열고 나간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유리와 같은 상태로.
다시 신촌 거리. 지도를 보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걷는다는 건 특별한 감각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냥 길을 걷는 게 아니라 공연을 보는 중이다. 신촌 일대는 모두 공연장이며 누가 배우인지 알 수 없다. 지금 내 앞을 지나가는 저 사람이 배우일 수도 있다. 공연을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길을 걷는다는 개념이 새롭게 다가온다.
첫 번째 목적지로 향하는 길. 어떤 여자가 길에서 혼자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대사를 외치듯 혼잣말하고 있다. 내가 다가가자 살짝 옆으로 비켜 대사를 마저 읊는다. 독특한 사람이다. 그녀가 배우일지도 모르겠다.
한 남자가 친구에게 옛날이야기를 하며 길을 지나간다. 아, 저 사람이 배우인가?
길을 걸으며 담배를 피우는 할아버지. 저 사람은 배우일 리 없다.
돼지 부채를 들고, 돼지가 그려진 가게의 사진을 찍는 커플. 독특한 가게는 아니다. 저들이야말로 배우다!
관객은 자연스레 모두를 의심하게 된다. 거리를 공연장이라고 인식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배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실 누가 배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객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음으로써 거리는 가능성으로 가득 차게 된다. 모호함이라는 건 때론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관객을 홀로 걷게 함으로써 공연장의 크기는 순식간에 확장된다. 배우 역시 한 명에서 주변의 모든 사람으로 확장된다. 결국 관객에게 신촌 거리는 모두 공연장이며 마주치는 모든 사람은 배우가 된다. 관객은 모두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모두를 의심한다. 실제로 연기하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관객은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다. 상태를 정의할 수 없는 유리처럼 아주 이상한 상황이 펼쳐진다.
모두 나를 위해서 연기하는 중이며 나는 사실 블록버스터급 공연의 단 하나뿐인 관객인 셈이다! 어떤 것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거리를 걷는 일이 즐거워진다.
관객은 목적지에서 쪽지를 찾는다. 쪽지에는 “나는 강하고 당당합니다. 인간이란 이 지상에서 가장 고귀한 진리, 행복을 향해 나아가지요. 그 맨 앞에 내가 있습니다.”와 같이 장소와 관련된 문장이 적혀 있다.
지도와 쪽지를 따라가자, 맥도날드에 도착한다. 맥도날드 2층. 거리의 배우들과 다르게 구석 자리에 앉은 배우가 나 여기 있어요~라는 느낌으로 손을 들고 관객을 맞이한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종이에 글을 적는다.
“안녕하세요.”
관객과 배우는 자연스레 필담을 시작한다. 주제와 방향성은 정해져 있지 않다. 관객은 배우와 함께 즉흥 퍼포먼스를 하는 셈이다.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정감.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나누는 느린 대화.
어느 순간 무대가 좁아진다. 신촌 거리에서 맥도날드로 이윽고 배우와 내가 앉아 있는 식탁으로, 종이 위로.
필담을 마치고 배우는 거리로 뛰어나간다. 어디선가 새로운 지도를 들고 온다. 안타깝게도 종이 위는 종착지가 아니었나 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관객은 다시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만 한다. 다시 혼자가 되어 수많은 배우가 기다리는 거리를 걷는다.
지도를 따라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자 전화가 걸려 온다. 이제부터 지도는 없다. 배우가 목소리로 길을 안내해 주기 시작한다.
공연을 보고 있었다는 인식이 돌아온다. 배우라고 생각했던 길거리의 사람들은 풍경이 되고 보이지 않는 배우와 연결되는 경험을 한다. 배우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그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극장은 없지만 사라져 버린 극장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처럼 말이다. 물음표가 떠오른다. 배우는 꼭 실존해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관객을 만날 수 있나?
배우의 안내를 따라 길을 걷자 지붕에 능소화가 아름답게 핀 어느 가게에 도착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배우는 실존했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인다. 처음 보는데도 익숙한 사람을 만나는 듯한 기분이다. 만난 적은 없지만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배우가 존재하지 않았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 존재하지만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사람, 공간. 중요한 건 무엇인가?
배우는 마지막 목적지가 그려진 지도를 건네 준다. 관객은 좁은 골목길을 지나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다. 공연은 끝났다. 정말 끝났다. 하지만 관객은 여전히 공연 속에 존재한다.
공연은 끝나지 않았다. 사실 우리 모두 공연장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배우이며 모두가 관객이다. 주의를 기울인다면 재미있는 지점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무대, 나는 관객이자 배우라는 생각을 품는다면 더 넓은 세상을 만날지도 모른다.
이 공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관객을 걷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도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진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공연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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