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호 -
목차
1. 필자 소개

2. 2024 프린지 공연 비평
 1) 물
• <우리 집에 왜 왔니?> 프로젝트 묘미
 
2) 루디
• <우리 집에 왜 왔니?> 프로젝트 묘미
• <연극철지남 (Theater 철지남)>
    상상만발극장 1
• <키오스크는 어려워> 프로젝트팀 얼레벌레
• <세레나데> 비브라토

3) 지혜
• <그레이브라운> 극단STW
• <너는 노래를 못하는 걸 알지만 계속한다>
    와비와사비

3. 루디의 프린지 놀루와

4. 지혜의 우졔통

5. 물의 물음표

 
필자 소개
물과 루디와 지혜는 바로 어제부터 오늘까지 프린지 폐막 파티에서 밤을 샜다.
그래서 늦었다.
2024 프린지 공연 비평
 

우리 집에 왜 왔니? / 프로젝트 묘미

초대 없이 방문한 집들이 퍼포먼스

프로젝트 묘미 <우리 집에 왜 왔니?> 8.17-18 @갤러디 아미디 신촌 photo by.양승욱

보고 싶다면 보세요


예술가의 집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관객들. 그리고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문 흰 벽. 네가 무엇을 보고 싶어서 왔든 간에 절대 네가 기대한 것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확고함 앞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이들은 흰 벽 뒤에서 내심 나의 실망하는 표정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이 공연은 그저 현존하는 예술가의 집을 케이크 자르듯 잘라 그 단면을 보여줄 뿐이다. 첫 번째 예술가가 방에 들어온다. 눕고, 일어나고, 팔의 흉터를 들여다보는 게 전부인 지난하고 느린 움직임. 이것이 그가 보여주는 전부다. 미소를 띠며 등장한 네 번째 예술가는 혼자만의 패션쇼를 펼친다. 일상의 사진들로 방을 꾸미며 그때의 영감으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이들의 삶은 특별히 불행하지도, 특별히 찬란하지도 않다.


우리는 타인을 보고 싶은 대로 바라본다. 더군다나 이미 죽어 발언권이 없는 예술가의 집은 여러 이야기를 통해 (주로 비극이나 막장으로) 소비된다. 역시 천재는 괴롭구나, 예술가의 삶은 고독하고 불행하구나. 예술가의 다층적인 고뇌와 삶은 한순간 납작해진다. 한 인간의 삶을 이렇게 밑바닥까지 파고들자면 모든 인간은 불행하고 불쌍할지도 모른다.


 

다음 섹션으로 방을 이동하여 마주한 건 두 번째 예술가의 머릿속이다. 집의 단면이 아닌 예술가의 단면. 한쪽은 타자를 치고, 다른 한쪽은 백스페이스 바를 두들긴다. 쓰려고 하는 자와 지우려고 하는 자, 읽히길 바라는 마음과 읽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한다. 그럼 나는 어느 쪽을 응원해야 하는 거지? 충돌하는 두 자아는 이기고 또 진다. 그럼에도 조금씩은 앞으로 나아간다. 아, 둘이 있어야만 경기가 지속될 수 있으니 어쩌면 예술가에게는 양쪽이 모두 필요한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이 줄다리기가 끝나지 않기를 응원하겠다.

 


창작의 과정 속에서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어디로 갈까. 미완과 어리석음, 창피했던 순간과 엉성하기 짝이 없는 결과물들. 세 번째 예술가는 그것들을 모두 흰 벽으로 덮어버렸다. 지금 이 방에서 관객이 볼 수 있는 건 이미 하얗게 덮여버린 흰 벽뿐이다.

삶에는 왜 리셋 버튼이 없나. 존재하지도 않는 버튼에 손을 대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순간들이 여럿 있었다.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래서 일기장을 자주 찢었다. 인생은 리셋할 수 없지만 공책 정도는 찢어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이 방의 주인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벽을 칠했을까.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상상 속 하얀 페인트를 들고 있는 그의 옆에 선다. 계속해서 이렇게 하얗게 덮어버리다 보면 나도 없어질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다간 나의 색을 잃을 것만 같다. 백지의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일기장 찢기를 멈춘다.

 

세 번째 예술가는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집요정 도비가 이야기를 대신할 뿐이다. 주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유를 찾아 떠나고 싶은 도비. 어쩌면 도비가 이 예술가를 들여다봐주는 유일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유일한 관객. 그렇다면 주인은 영원히 도비에게 양말을 주지 않을 것이다.

 

노을이 지는 시간에 온전히 노을을 즐길 수 있는 이들은 없다고 도비는 말한다. 대다수가 회사, 지하철, 학원, 연습실 등에 갇혀 있는 시간. 그 순간 하늘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어둠으로 덮인다. 예술가도 마찬가지일까. 아무도 봐주지 않는 그 찰나의 순간 그들은 가장 아름다운 걸까. 그들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이들을 바라볼 여유가 우리에겐 없는 것일까. 오늘 우리가 목격한 예술가의 삶은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나.


  루디
우리 집에 왜 왔니? / 프로젝트 묘미

이동형 퍼포먼스극

  프로젝트 묘미 <우리 집에 왜 왔니?> 8.17-18 @갤러디 아미디 신촌 photo by.양승욱

너네 집에 왜 갔더라….?


공연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갤러리 아미디에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가장 큰 메인 공간과 그 뒤의 작은 공간, 그 공간 뒤 아주 작은 공간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공연이다.

 

<1>

갤러리 아미디 메인 공간. 바닥에는 소파와 한 남자가 있다. 남자는 소파에 눕는다. 앉는다. 자신의 손을 바라보기도 한다. 벽에는 나무, , 도시 풍경 등이 담긴 영상이 나온다. 어두운 공간에서 그저 한 남자와 영상만이 아주 느리게 흐른다. 그렇게 17분이 지나간다. 그는 관객을 집에 초대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왜일까?

 

작품 의도를 살펴보자.

우리는 종종 죽은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 그들의 생가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예술가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누군가의 해설과 편집을 통해 그들은 소개된다. 또한 예술가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들이 사용했던 물건과 머물렀던 공간이 공개된다. 살아있는 예술가라면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무엇을 공개하고 싶을까?”

 

이 공연은 제목부터 관객을 집에 초대한 이유를 알려줄 것 같지만, 사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예술가의 집에는 아무것도 없다. 소파와 흔한 풍경이 보일 뿐이다.

우리는 종종, 아니 자주 예술가에게 특별함을 기대하지만, 그도 그저 사람일 뿐이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에게 던져진 물음표에 적극적으로 답한다.

나도 그냥 사람일 뿐이야.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

 

<2-1>

메인 공간 뒤의 작은 방. 좁은 방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긴 탁자가 놓여있다. 탁자 양 끝에는 가면을 쓴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있다. 한 명은 노트북으로 열심히 글을 쓴다. 반대편에 앉은 이는 타자기를 앞에 두고 가끔 백스페이스키를 부서져라 누른다. 그가 백스페이스키를 누르면 노트북 앞의 배우는 글이 지워지는 걸 막기 위해 더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린다. 이번에도 두 배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글을 쓰고 지울 뿐이다.

 

창작의 고통 혹은 시끄러운 의식과 무의식을 단순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마치 슬프다는 감정이 눈물을 흘린다는 행동으로 묘사되는 것처럼 말이다. 슬프다고 모두가 우는 건 아니다. 우는 사람이 모두 슬픈 게 아닌 것처럼.

하지만 많은 이들은 슬프면 운다. 우는 사람은 슬플 때가 많다. 두 배우는 예술가도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직관적이고 일차원적인 모습은 예술가의 것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가 많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일 뿐이다.

예술가라고 꼭 독특한 행동을 해야 하나? 예술가도 그저 사람일 뿐인데.

 

<2-2>

2-1부가 진행된 공간 뒤편 아주 작은 방. 방이라고 부르기에도 작은 공간에서 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리다 멈춘다. 이윽고 그녀는 관객이 있는 공간으로 나온다. 좁은 방은 울기에도 불편했나?

그녀는 자신을 도비라고 설명한다. 도비의 처지는 조선시대의 노비보다 못한 것 같고, 자신은 떠날 거라고 이야기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결국 노비보다 못한 처지의 도비는 자유를 찾기 위해 떠난다.

도비가 떠나고 싶은 장소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예술을 하는 곳인지, 자기 집인지, 예술인지.

집은 편안한 공간이지만 가끔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예술을 아무리 사랑해도 가끔 도망치고 싶을 수 있다.

우리는 예술가에게 무얼 바라고 있나. 예술가는 죽기 직전까지 예술을 해야 하나? 그것이 자신을 무너뜨리는 일이더라도?

 

<3>

다시 메인 공간. 집에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옷걸이에 걸린 옷을 입고 거울을 바라본다. 미소를 짓는다. 옷이 꽤 마음에 들었나?

바닥에는 사진들이 널브러져 있다. 배우는 사진을 한 장씩 천장에 연결된 실에 걸기 시작한다. 공연 시간 대부분을 사진을 고르고 거는 데 사용한다. 어떤 사진인지 객석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그야말로 무용한 일을 한다.

무용한 일을 기꺼이 해내고 무용한다. 사진을 거는 시간보다 훨씬 짧은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인다.

 

예술가는 쉬는 시간에도 독특한 일을 해야 할까? 무용을 하는 사람이라면 쉴 때도 몸을 움직여야 하고 화가라면 언제든 그림을 그려야 하나? 잠을 잘 때조차도 창작의 연속인가?

그녀는 스스로 지루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런 편견에 저항한다. 그녀의 집에는 독특한 물건이 하나도 없다. 그녀도 그저 사람일 뿐이다.

 

<우리 집에 왜 왔니?>는 관객들을 예술가의 집에 초대한다. 하지만 어떤 해답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우리는 그냥 사람일 뿐인데. 무엇을 기대했어?”


연극철지남(Theater 철지남) | 상상만발극장 1

관객이 한 명뿐인 이동형 야외 공연

상상만발극장1 <연극철지남 (Theater 철지남)> 8.16-18 @스타광장 photo by.가림토

아직 공연은 끝나지 않았다


공연 티켓과 함께 안내를 받는다. 배우는 없다.

저기 국밥집이 보이시나요? 국밥집을 지나 훼드라라는 가게로 가면 공연이 시작됩니다.”

 

관객은 처음부터 혼자 길을 걷는다. 훼드라에 도착하기 전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그는 우연히 만난 것처럼 자연스레 말을 건다. 최루탄 라면으로 유명한 훼드라라는 가게 이야기를 하며 함께 길을 걷는다.

야외 공연이라도 공연장과 관객석의 구분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 공연은 시작부터 공연장이라는 개념을 허문다. 이미 공연장에 들어섰지만, 공연은 시작되지 않았고 배우와 함께 길을 걷는 느낌이다.

 

다음 목적지는 신촌 현대 백화점. 이곳에 관객은 나 하나, 배우도 한 명이다. 나머지는 모두 공연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백화점은 공연과 상관없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지만, 공간은 공연으로 가득 차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같이 탄 저 사람도 관객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배우와 관객, 무대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배우는 아직도 공연이 시작되지 않은 것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유리 이야기를 꺼낸다.

 

유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리프트를 통해 배우가 튀어 오르며 공연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유리는 사실 자연에서도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볼록한 형태였다, 왜 평평한 유리를 만들게 됐는지, 유리 사용을 금지했던 역사, 유리는 기체도 액체도 고체도 아닌 모호한 상태다 등 한참 동안 유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다시 백화점 1. 배우는 관객에게 지도를 한 장 쥐여준다.

이제부터는 혼자 걸어야 합니다. 걱정은 하지 마세요. 문제가 생긴다면 엔젤이 도와줄 거예요.”

관객은 고체인지, 액체인지, 기체인지 모를 유리로 만들어진 커다란 문을 열고 나간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유리와 같은 상태로.

 

다시 신촌 거리. 지도를 보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걷는다는 건 특별한 감각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냥 길을 걷는 게 아니라 공연을 보는 중이다. 신촌 일대는 모두 공연장이며 누가 배우인지 알 수 없다. 지금 내 앞을 지나가는 저 사람이 배우일 수도 있다. 공연을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길을 걷는다는 개념이 새롭게 다가온다.

 

첫 번째 목적지로 향하는 길. 어떤 여자가 길에서 혼자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대사를 외치듯 혼잣말하고 있다. 내가 다가가자 살짝 옆으로 비켜 대사를 마저 읊는다. 독특한 사람이다. 그녀가 배우일지도 모르겠다.

한 남자가 친구에게 옛날이야기를 하며 길을 지나간다. , 저 사람이 배우인가?

길을 걸으며 담배를 피우는 할아버지. 저 사람은 배우일 리 없다.

돼지 부채를 들고, 돼지가 그려진 가게의 사진을 찍는 커플. 독특한 가게는 아니다. 저들이야말로 배우다!

 

관객은 자연스레 모두를 의심하게 된다. 거리를 공연장이라고 인식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배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실 누가 배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객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음으로써 거리는 가능성으로 가득 차게 된다. 모호함이라는 건 때론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관객을 홀로 걷게 함으로써 공연장의 크기는 순식간에 확장된다. 배우 역시 한 명에서 주변의 모든 사람으로 확장된다. 결국 관객에게 신촌 거리는 모두 공연장이며 마주치는 모든 사람은 배우가 된다. 관객은 모두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모두를 의심한다. 실제로 연기하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관객은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다. 상태를 정의할 수 없는 유리처럼 아주 이상한 상황이 펼쳐진다.

모두 나를 위해서 연기하는 중이며 나는 사실 블록버스터급 공연의 단 하나뿐인 관객인 셈이다! 어떤 것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거리를 걷는 일이 즐거워진다.

 

관객은 목적지에서 쪽지를 찾는다. 쪽지에는 나는 강하고 당당합니다. 인간이란 이 지상에서 가장 고귀한 진리, 행복을 향해 나아가지요. 그 맨 앞에 내가 있습니다.”와 같이 장소와 관련된 문장이 적혀 있다.

지도와 쪽지를 따라가자, 맥도날드에 도착한다. 맥도날드 2. 거리의 배우들과 다르게 구석 자리에 앉은 배우가 나 여기 있어요~라는 느낌으로 손을 들고 관객을 맞이한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종이에 글을 적는다.

안녕하세요.”

관객과 배우는 자연스레 필담을 시작한다. 주제와 방향성은 정해져 있지 않다. 관객은 배우와 함께 즉흥 퍼포먼스를 하는 셈이다.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정감.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나누는 느린 대화.

어느 순간 무대가 좁아진다. 신촌 거리에서 맥도날드로 이윽고 배우와 내가 앉아 있는 식탁으로, 종이 위로.

 

필담을 마치고 배우는 거리로 뛰어나간다. 어디선가 새로운 지도를 들고 온다. 안타깝게도 종이 위는 종착지가 아니었나 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관객은 다시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만 한다. 다시 혼자가 되어 수많은 배우가 기다리는 거리를 걷는다.

 

지도를 따라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자 전화가 걸려 온다. 이제부터 지도는 없다. 배우가 목소리로 길을 안내해 주기 시작한다.

공연을 보고 있었다는 인식이 돌아온다. 배우라고 생각했던 길거리의 사람들은 풍경이 되고 보이지 않는 배우와 연결되는 경험을 한다. 배우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그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극장은 없지만 사라져 버린 극장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처럼 말이다. 물음표가 떠오른다. 배우는 꼭 실존해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관객을 만날 수 있나?

 

배우의 안내를 따라 길을 걷자 지붕에 능소화가 아름답게 핀 어느 가게에 도착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배우는 실존했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인다. 처음 보는데도 익숙한 사람을 만나는 듯한 기분이다. 만난 적은 없지만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배우가 존재하지 않았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 존재하지만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사람, 공간. 중요한 건 무엇인가?

 

배우는 마지막 목적지가 그려진 지도를 건네 준다. 관객은 좁은 골목길을 지나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다. 공연은 끝났다. 정말 끝났다. 하지만 관객은 여전히 공연 속에 존재한다.

공연은 끝나지 않았다. 사실 우리 모두 공연장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배우이며 모두가 관객이다. 주의를 기울인다면 재미있는 지점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무대, 나는 관객이자 배우라는 생각을 품는다면 더 넓은 세상을 만날지도 모른다.

이 공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관객을 걷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도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진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공연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키오스크는 어려워 | 프로젝트팀 얼레벌레

키오스크와 함께하는 관객 참여형 연극

프로젝트팀 얼레벌레 <키오스크는 어려워> 8.16-17 @언더독커피 photo by.우주동물

짝짝짝


공연 시작 전, 태블릿을 머리에 쓴 배우가 관객을 맞이한다. 관객은 키오스크를 통해 공연을 주문하고 영수증을 받아야 공연장에 입장할 수 있다.

태블릿을 머리에 쓴 인간이라니! 인간 키오스크인가, 키오스크 인간인가. 충격적인 비주얼! 시작부터 키오스크는 꽤 어렵구나. 공연에서 어떤 말을 할지 너무 기대된다!!’

 

공연을 시작하자 배우들은 머리에 쓴 태블릿을 벗는다. 그들은 키오스크이며 관객들은 EasyBusy kiosk 3.0 베타 테스터라고 이야기한다. 시작부터 관객은 공연의 일부가 된다.

우리가 베타 테스터라니!! 과연 관객들은 키오스크를 만드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내 행동으로 공연의 방향이 바뀔까? 내가 일종의 배우가 되는 건가! 그리고 무대 중간에 놓인 저건 뭐지?’

 

관객은 자리에 앉아 키오스크 사용에 대한 설문을 작성한다. 관객들의 정보를 시스템에 입력하던 중 시스템에 오류가 생긴다. 키오와 스크는 시스템을 고치기 위해 베타 테스터의 경험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사람들을 무대 중간으로 모은다.

무대 중간의 큰 테이블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압정이 박힌 큰 판과 실이 놓여 있다. 관객들은 키오와 스크의 질문에 따라 실을 상하좌우로 움직인다. 질문이 이어지자 서로의 실이 교차하고 얽히기 시작한다.

이 선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서로 다른 생각들은 얽히고설켜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 우리는 이 실을 풀어야 하나? 그대로 두어야 하나? 빨리 알려줬으면 좋겠다!’

 

얽힌 실의 비밀은 밝혀지지 않은 채 관객들은 자리로 돌아간다. 키오스크와 관련된 질문을 듣고 답변을 작성한다. 예컨대 출근 15분 전 커피를 주문하려는 데 내 앞에 키오스크 사용법을 모르는 어르신이 주문하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질문들이다. 꽤 많은 질문에 관객은 답을 작성한다.

내 대답에 따라 공연이 달라지는 걸까? 그렇다면 충실히 대답해야겠다. 다른 관객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키오스크는 우리의 삶에 어떤 질문을 던질까? 기대 만발!!’

 

배우는 관객들의 답변을 읽는다. 눈길을 끄는 답이 꽤 많다. 분명 재미있는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키오스크는 어려운 건가? 왜 어렵지? 키오스크가 어렵다는 건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나저나 아직도 눈길을 사로잡는 판에 얽힌 저 실은 무슨 의미지? 빨리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린다. 나도 얼떨결에 박수를 친다. 우리의 박수는 지진이 된다. 나의 작은따옴표의 세상이 무너진다. 수많은 기대와 궁금증은 산산이 부서졌다. 공연은 끝났다.

 

기대만큼 큰 아쉬움이 남았다. 뻔하고 직관적인 이야기라도 괜찮으니 기대를 품게 만든 부분에 대한 설명이나 이야기가 있었다면 아주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다.

관객에게 기대를 품게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점에서 이 공연은 대단한 일을 해냈다. 태블릿을 머리에 쓴 배우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인간 키오스크인가, 키오스크 인간인가.


세레나데 | 비브라토

한 작가의 단편을 바탕으로 한 1인극

비브라토 <세레나데> 8.13-15 @주예소 스페이스 photo by.양승욱

다자이 오사무가 남기고 간 숙제


이 공연의 원작은 다자이 오사무의 <직소>라는 작품이다. 유다의 입장에서 예수와의 이야기를 다루는 고백체로 된 짧은 단편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각색한다는 건 꽤 어려운 도전이다. 함부로 손을 대는 순간 다자이 오사무가 아니게 되기 때문이거니와 손을 대지 않는다면 그저 다자이 오사무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자이 오사무를 동경하고, 그의 글을 활용하고 싶다는 욕망을 품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연기에 큰 관심이 없는데도 <직소>를 읽을 때 문장을 하나하나 연기톤으로 따라 하며 읽었다.

추악한 인간이 분노하고, 좌절하고, 더 추악하게 변해가는 기분을 온몸으로 느꼈다. 유다를 코 앞에서 바라봤다. 때로는 유다가 되어 예수를 보았다. 아, 이게 연기의 기쁨인가! 다자이 오사무는 짧은 글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이 공연은 원작을 충실히 재현했다. 재연인가? 사실 원작 낭독극으로 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원작과 비슷했다.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장면들을 현실에서 보는 경험은 꽤 즐거웠다. 하지만 원작이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맞이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책은 우리에게 어떤 시각 정보도 제공해 주지 않지만, 어떤 매체보다 선명하다.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눈앞의 배우가 책보다 선명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책을 읽을 때는 주인공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과 말투와 표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배우의 탓이 아니다. 배우의 연기는 좋았지만, 더 적극적으로 각색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원작과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연기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존재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다자이 오사무가 남기고 간 숙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그의 글은 앞으로도 사랑받을테고 누군가에게 재현하고 싶은 욕구를 심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각색이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웹툰은 드라마가 되고 드라마는 웹툰이 되고 소설은 영화가 된다. 매체에 따른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요즘이다. 세레나데는 1인극이라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냈다. 그것만으로도 이 공연은 큰 의미를 가진다.

원작을 읽은 사람이 아쉬움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책과 연극은 똑같은 모양을 할 수 없으니까. 좋은 작품이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는 걸 더 보고 싶다.

 

  지혜

그레이브라운 | 극단STW

가정집을 무대로 펼쳐지는 부부 리얼리티 연극

극단STW <그레이브라운> 8.17-18 @몸소리말조아라 센터 photo by.양승욱

사랑은 뭘까?


같은 꿈을 꾸던 친구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이 연극은 함께 배우를 꿈꾸던 두 사람이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며 서로 다른 미래를 바라보게 되는 씁쓸한 사랑 이야기이다.

 

공연이 이루어진몸소리말조아라센터는 거실과 방이 있는 가정집의 형태로 관객들은 거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두 사람의 일상을 숨죽이고 지켜본다. 마치 하루만 네 방의 벽(침대 X)이 되고 싶다는 가사가 실현된 것처럼 관객을 코앞에 두고 리얼한 연기가 펼쳐진다.

 

배달기사로 일하는 남자와 영화 배우로 일하는 여자.

우연한 기회로 공연 오디션을 앞둔 남자와 순탄치 않게 촬영을 이어가는 여자.

일이 고되어도 꾹 참고 일하는 남자, 임신 가능성을 앞둔 여자.

이루고 싶은 게 많은 남자, 매사에 걱정 많은 여자.

얼른 성공하고 싶은 남자와 안정적인 삶을 바라는 여자.

네 꿈에는 내가 없다고 말하는 두 사람.

 

두 사람은 행복한가? 의문이 든다는 건 그래보이지 않다는 거겠지.

 

하지만 두 사람은 사랑을 한다. 그들의 모든 선택에는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행동 뿐. 사랑해서 일했고, 사랑하니까 참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숨겼던 것들을 입 밖으로 꺼냈을 때 상대방을 향하는 원망, 그리고 자신에게 밀려오는 자괴감. 남을 위하는 사람만 있고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사랑하기 때문에 했던 행동이 더 큰 상처로 돌아오면서 두 사람 사이에 한 겹, 두 겹, 벽이 생겨난다. 벽이 켜켜이 쌓이면 그만큼의 시간도 흐른다. 더운 여름, 뜨거운 사랑을 나누던 두 사람에게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한 사람은 반소매를, 한 사람은 코트에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 더 이상 두 사람의 온도가 같지 않다.

 

사랑은 뭘까?

사랑하는 사람과 계속 행복할 수 있을까?

매일 행복하진 않아도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정말, 사랑은 뭘까?


너는 노래를 못하는 걸 알지만 계속한다 | 와비와사비

노란 등불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낭독극, 퍼포먼스

와비와사비 <너는 노래를 못하는 걸 알지만 계속한다> 8.21-22 @갤러리 아미디 신촌
photo by. 와비와사비 인스타그램 @wabiwa.sabi

선생님께 드리는 짧은 편지


선생님 안녕하세요. 공연은 잘 보았습니다.

무대 위는 여전히 좋은 향기가 가득하던가요?

‘초대 받은, 자격 갖춘, 타당한이들의 세상은 행복하신가요?

...

답이 없으시네요. 제가 있는 이곳은 구멍이 나 온갖 악취가 뒤섞여 있어요.

! 그래도 종종 향기로운 냄새를 맡기도 하고요.

 

잘 아시다시피 저는 노래를 멋지게 해내 웃으며 졸업했습니다. 기억하시지요?

제 노래를 그리 탐탁지 않아하셨던 얼굴도 기억이 납니다.

제게는 꽤 멋졌던 노래가 선생님께는 소음처럼 들리셨다고 말이에요.

쿵쾅! 끼익, 번개치듯 노래를 해 낙제하지 않았고, 일직선이 아닌 부드러운 곡선의 형태로 노래를 불러 선생님을 아리까리하게 만들곤 했지요.

 

선생님의 말씀을 꾸역꾸역 씹어먹고 뒤에서 모조리 비워냈던 시간이 있었어요.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살아요. 걱정없이 살고 싶거든요.

저는 꽤 착한 아이였죠, 선생님?

 

저는 노래를 잘합니다. 노래를 잘 하는 걸 알지만, 이곳에서 만큼은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구멍이 숭숭 난 이 편지를 읽으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출입을 금. 하고 있진 않으니 요령껏 읽으셨길 바라봅니다.

 

덕분에 노래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말이에요!

 

 

나는 노래를 잘하는 걸 알지만 이 글 속에선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익명으로 온 쪽지

 

, 아니오, , 아니오, , 아니오, 아니오, .

당신은 그가 보고 싶습니까? , 아니오.

당신은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까? , 아니오.

당신은 그를 사랑합니까? , 아니오.

당신은 그와 헤어지고 싶습니까? 아니오, .

당신은 그와 보내는 시간이 벅차게 느껴집니까? , 아니오.

당신은 그와의 미래를 그릴 수 있습니까? , 아니오.

당신은 지쳤습니까? , 아니오.

당신른 즐기고 있습니까? , 아니오.

당신은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은 상태인가요? , 아니오.

당신은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은가요. , 아니오.

당신은 그에게 돌아가게 될 것 같나요? , 아니오.

당신은 그가 당신의 미래에 존재해줄 것이라 생각하나요? , 아니오.

, 아니오, , 아니오, , 아니오, , 아니오, 아니오, .



------------------

* 독자들을 위한 추신

‘노래. 가사에 곡조를 붙여 목소리로 나타낼 수 있게 만든 음악.
너는 노래를 하기만 하면 돼. 정해진 말과 음과 리듬의 노래를.
일직선의 기술. 하얀 소리. 좋은 향기 나는 소리.’
 
‘그 무대 밑에 특별히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저그런 아이들. 그러나 시끄러운 말은 많고 맵고 짜고 달고, 한 입 베어무니 거무죽죽한 콧물이 줄줄. 코 풀어 젖은 휴지가 꼬깃꼬깃 산더미처럼.
 
(소리 내어) 선생님, 배불러요. 이제 그만 먹고 싶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그 많은 말들 먹어치워 전부 소화시켜야 했지요. 입 벌려 씹고 삼키고 다시 동그란 구멍으로 뱉어야 했지요. 그래야 교실 바닥 기름칠 하여 제대로 굴러갈테니까요. 소중한 친구도 가족도 학교도 걱정 없을테니까요.’


루디의 프린지 놀루와
⭐️ 축제가 끝나도 프린지를 즐기는 법을 소개합니다 ⭐️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24는 8월 25일을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축제가 끝나도 프린지는 끝나지 않는다🔥


프린지살롱에서 한 아티스트가 말했습니다.

“비평은 공연의 연장이다.”

프린지페스티벌이 끝나서 아쉽다면, 내 감상을 남기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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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우졔통
📮 독자분들질문과 답장을 기다립니다 ! 📮
Q1. 조금 늦게 신청했어요. 이후 메일링 외에도 이전 내용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 걱정하지 마세요! 매주 월요일, 새로운 메일을 발송하기 전에 지난 호를 받아보지 못한 분들께 이전 호들을 먼저 보내드립니다. 혹시 놓친 비평이 있을까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참, 매주 월요일 10시 발송을 목표로 제작 중에 있으나 좀 더 늦어도 우리는 물루지~... 늦어도 예쁘게 봐주세요...

Q2. 프린지 동안만 운영되나요?
- 어제(8월 25일)를 마지막으로 2024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막을 내렸습니다! 프린지 축제는 끝이 났지만 저희에겐 아직 완성하지 못한 비평들이 남아있어요. 앞으로 메일링은 2회차 더 진행할 예정이며 다른 인디스트, 스태프의 비평을 실어 보내는 스페셜 메일링도 계획 중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물의 물음표
🤔 매주 독자의 마음에 심는 물음표 🤔

축제가 끝나니 여름이 다 지난 기분입니다.

덥고 무기력하고 꿉꿉한 여름을 좋아하긴 쉽지 않은데 

어째서 늘 낭만과 청춘으로 미화가 되는 건지 모를 일이에요.

다들 이번 여름을 어떻게 보냈나요.

올해의 여름은 당신에게 어떻게 기억될까요?

 

물 : 좋은 인연 많이 만났고, 행복해서 자주 운 여름이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24 비평 메일링 서비스
비평이 뭔지 우리는 물루지

😘 수신거부 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