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 주부터 오이레터가 정식 발간됩니다. 
첫번째 공식 오이레터(6호)에서는 이의철 선생님의 글을 만나봅니다. 이의철 선생님은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위한 음식 안내서 <기후미식>에 이어, 올해 미국생활습관의학회의 지침서를 번역한 <자연식물식 솔루션>을 출판하였습니다.

오늘 기사는 <이의철의 일터건강관리> 1편입니다. 

직업환경의학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일터 생활습관의학

안녕하세요. LG에너지솔루션 기술연구원 부속의원 원장 이의철입니다. 저는 지난 18년간 직업환경의학 관련 업무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과연, 직업환경의학은 무엇일까요?”


이런 질문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은 직업환경의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을 때 하고 싶었던 일들인가?” 라는 의구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에서 제시하는 직업환경의학의 정의


“직업환경의학은 ‘직업의학(Occupational medicine)’과 ‘환경의학(Environmental medicine)’으로 구분된다.

직업의학은 노동자의 손상과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의학의 전문분야다. 과거에는 산업의학(industrial medicine)이라고 불렀으나, 대상이 최근 1,2차 산업의 특정 직업병뿐만 아니라, 서비스업을 포함한 다양한 직종의 직업관련 질환으로 확대되고, 의학의 개념이 건강증진까지 확대되면서 직업의학(occupational medicin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환경의학은 작업장 외부의 환경에서의 노출로 야기되는 손상과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다루는 의학의 전문분야다. 인간의 건강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대해 연구하고,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건강을 유지·증진하고 질병을 예방한다.

직업의학과 환경의학의 유해요인은 대부분 동일하다. 유기화합물, 중금속과 같은 유해요인은 작업장에서 고농도로 노출되어 직업성 중독(occupational poisoning)을 일으키지만, 환경에 잔류하여 장기간 인간에게 노출될 경우에는 인구집단에서 다양한 질병의 초과발생과 악화에 기여한다.

따라서 직업의학과 환경의학은 유해요인의 노출로 인한 건강장해의 예방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에서 제시하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역할


길게 설명되어있지만, 대한직업환경의학회가 정의하는 직업환경의학의 핵심 사명은 마지막 문장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직업적 혹은 환경적 “유해요인의 노출로 인한 건강장해의 예방”


이 사명을 위해 대부분의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들은 직업적 유해요인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의 건강상태를 정기적으로 평가합니다(특수건강진단).

그리고, 건강 표지자 (간효소수치, 혈중 지질, 혈압, 혈당, 단백뇨, 혈구수치, 청력, 생물학적 노출지표 등)가 적절한 범위를 벗어난 노동자들의 건강보호를 위한 조치(사후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유해요인을 보느라 사람을 제대로 못보는 건 아닐까?


하지만 지난 18년간 필자는 이런 활동을 하면서,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상태 악화에 직업적 유해요인 노출이 얼마나 기여할까?”,

“과연 특수건강진단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건강상태가 유해요인 노출이 사라지면 향상될까?”,

“건강 표지자가 적정 수준을 벗어난 사람들을 찾아내 약물을 복용하게 하고, 간단한 건강관리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과연 얼마나 건강상태가 개선될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의사로서 건강상태가 악화되는 노동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것 뿐인가?”


더 나아가

건강이란 무엇인가?”,

“약을 복용해서 건강 표지자들이 정상 상태에 머물면 건강해진 것인가?”

“과연 직업적 유해요인 노출 없는 노동이 가능한가?”

“혹시 특수건강진단에 매몰되어, 유해요인만 보고 일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못 보는 것은 아닌가?”.



미국직업환경의학회에서 제시하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역할


미국직업환경의학회(American College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 ACOEM)에서는 직업환경의학 및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활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직업환경의학은 일 관련 손상과 질병의 진단 및 치료에 초점을 맞춘 예방의학 산하의 전문의학 분야다.

고도로 수련된 전문가로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임상 치료, 예방, 장애 관리, 연구, 교육 등의 활동으로 노동자의 건강을 향상시킨다.

그들은 일터(workplace)에서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거미줄 같이 복잡한 요인들을 선도적으로 다루는 전문가이며, 모든 유형의 조직들이 피고용인 건강, 일터의 생산성 및 전반적인 경제 발전을 보장하도록 돕는다.”


ACOEM의 직업환경의학에 대한 정의



한국과 미국에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역할은 어떻게 다른가?


일 관련 손상과 질병을 언급하면서도, 대한직업환경의학회는 일터에서 노출될 수 있는 유해요인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반면, ACOEM은 최종적인 결과인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일터의 생산성, 경제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한국과 미국의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주로 수행하고 있는 업무나 고용상태와 관련 있는 듯합니다.


한국에서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기업에 고용되어 직접 피고용인의 건강과 생산성을 책임질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산업보건의 선임 의무가 기업활동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의해 무력화된 이후, 그 기회는 좀처럼 마련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들이 건강진단기관 혹은 보건관리전문기관에 고용되어 건강진단 업무 및 건강관리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많은 기업들이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들에게 전문성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아닌 의료기관에 근무하더라도 건강진단 및 작업환경 위해성 평가뿐만 아니라 업무적합성 평가, 업무관련성 평가, 장애평가 등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요구받고 있는 듯합니다. 아래 미국 의료인 구인 웹페이지에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에게 요구하는 업무 내용을 보면 미국의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국 의료인 구인 구직 웹페이지

(Physician/Surgeon, Occupational/Environmental Medicine 선택하여 검색)



직업환경의학을 선택한 이유는?


제가 직업환경의학을 선택한 것은 ‘매향리 미군 사격장 피해주민 역학조사’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의사가 진료실에서 환자만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의 현장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리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된 후 일터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건강 손상을 예방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지금과 같이 1년에 1~2번 건강진단을 하고, 검사 결과 이상 소견이 있는 사람들과 상담을 하고, 약물치료를 권하는 것만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상태가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까?

노동환경이 열악할수록 근무조건이나 환경 개선이 어려운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그 영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업무상 유해요인 개선 이상의 개입이 필요하다


업무상 질병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뇌심혈관질환의 경우 교대근무, 장시간 노동, 업무상 스트레스를 비롯한 다양한 유해요인에 의해 악화될 수 있습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뇌심혈관질환이 발생하기 전에 피재자가 어떤 업무상 유해요인에 노출되었고 그 영향을 미친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 평가합니다. 하지만 순수하게 업무상 요해인자에 의해 뇌심혈관질환이 발생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안타깝게 사망한 피재자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면. 그렇게 자주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약이라도 잘 복용해서 건강진단이나 외래 진료 시 검사 결과가 양호했다면.

더 나아가 열악한 조건에서도 혈압, 혈당, 혈중 지질 수치가 적절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건강한 식습관을 실천할 수 있었다면.

그 위험한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지 않았을까?


단지 유해요인에 의한 건강손상을 예방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수행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해요인의 노출로 인한 건강장해의 예방”은 물론, 일터를 실질적으로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생활습관의학적 개입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생활습관의학회 전문의를 취득하다.


저는 2016년부터 미국생활습관의학회(American College of Lifestyle Medicine; ACLM)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9년 국제생활습관의학 보드 위원회(International Board of Lifestyle Medicine; IBLM)가 주관하는 전문의 시험에 응시해 보드 전문의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생활습관의학을 익힐수록 저는 이 분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필수 역량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해요인 노출에 의한 건강영향과 불량한 생활습관에 의한 건강영향 모두를 예방할 수 있다면, 개인의 건강악화나 질병 자체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게 돼 실질적인 건강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한국에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약물 처방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건강상담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생활습관의학적 지식과 술기가 더더욱 큰 힘을 발휘하고, 의료 제공자로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생활습관의학 참고 웹페이지

미국생활습관의학회(ACLM)

국제생활습관의학 보드 위원회(IBLM)

대한생활습관의학교육원(Korean College of Lifestyle Medicine; KCLM)

대한생활습관의학회 창립 관련 기사



이의철

LG에너지솔루션 기술연구원 부속의원 원장

국제생활습관의학 보드 전문의

저서

- 조금씩 천천히 자연식물식

- 기후미식

공저

- 업무적합성 평가의 원칙과 실제

공역

- 자연식물식 솔루션

- 청소년생활습관의학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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