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먹고 사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라잎스페이퍼 시즌2
라잎스페이퍼는 2022 지역문화예술교육 기반 구축 지원사업 참여 단체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담은 뉴스레터입니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와 더불어 이들이 가진 관계, 태도, 관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각 단체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7월 29일부터 11월 18일까지 매주 금요일 두 팀의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본 뉴스레터는 청년협동조합 뒷북의 조합원 충현, 소똥, 혜진이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우주비행사 지은과 과학자 정아의 미니어처>
문화플랫폼열무 인터뷰: 멀티 유니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 인터뷰이: 신지은, 장정아
* 인터뷰어 : 혜진, 소똥
* 인터뷰 편집: 혜진

💬 음성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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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우리가 우주에 가보지는 못하겠지만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다른 우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런 멀티 유니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열무였으면 좋겠어요.” -지은

한 존재를 하나의 우주로 대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우리는 그 우주에 함부로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우주는 완전한 미지이므로. 안산 일동로의 노란 건물 1층, 문화플랫폼 열무에는 여럿의 우주가 있었다.

고양이라는 우주
식물이라는 우주
어린이라는 우주.

우리는 서로의 우주에 결코 가까워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불가함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새로이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SF 영화 속 열무를 상상해 본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중력은 조금 느슨해져 있다. 우주비행사 지은은 프로의 몸짓으로 열무의 우주를 유영한다. 과학자 정아는 익숙지 않은 헤엄으로 안경 너머 세계를 바라본다. 서로의 우주를 궁금해하고 지켜봐 주는 안전한 우주 공간. 

낯선 우주를 탐험하는 열무의 이야기는, 역시 SF일 수밖에 없겠다.
💭 여러분과 여러분의 단체를 소개해주세요. 각자가 열무에 합류하게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진심으로 환영하는 열무>
정아
저는 장정아라고 하고, 안산에 계속 살았어요. 이게 본업인지 늘 헷갈리긴 하는데 연극을 하고 있어요. 극작가이고요. 저 자신을 예술가로 칭할지는 왠지 계속 고민되는 지점이 있어요. 그런데도 왜 극작가로서 계속 연결해오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나마 이게 견딜 만한 일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선생님과는 작년에 한 포럼에서 처음 만나게 됐어요. 알고 보니 접점들이 있어서 소용돌이에 빨려들 듯 이야기가 오고 갔어요. 굉장히 즐겁게 얘기를 할 수 있었고, 그렇게 계속 얘기를 하다 보니 오늘날이 되었어요. 이런 인연으로 열무에 합류해서 올해는 어린이 작가들과 책을 만드는 과정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지은
그 포럼에서 장정아 선생님이 방을 잘못 들어와서 저희 방으로 왔어요. 한 선생님께서 장정아 선생님이 안산에 있으니 나중에 연락 한번 해봐라, 참 좋은 사람이고 글을 잘 쓴다고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사실 연락을 꼭 해라가 아니었는데. (웃음) 정말 방을 잘못 들어온 이유로 만났어요.

혜진
두 분은 운명이었네요.

지은
신기해요. 다시 되새겨봐도.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이다라는 걸 더 이상 별로 규정을 안 하고 사는 것 같아요. 남이 저를 어떻게 소개했는지 궁금했는데, 최근에 어떤 선생님께서 저를 NGO 출신의 예술교육 실천가라고 소개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 그렇구나~ 했어요. 남들이 볼 때는 그런 모습이구나. 개인적으로는 작년까지 항상 어느 자리든 아이들이랑 만나고 있는 신지은입니다, 이렇게 소개하고 있어요.
💭 '보통의 특별한'이라는 수식어로 열무를 표현해 주셨습니다. 열무가 생각하는 보통의 특별함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은
사실 보통의 특별함은 오랫동안 제가 전 직장에서 실천했던 생활문화사업의 모토였어요. 정아 선생님은 보통의 특별함 이란 말을 떠올렸을 때 무슨 느낌이 드는지 그리고 열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지네요. 이번 기회에 들어야겠어요. 우리가 수다 떨면서 이런 얘기 하면 좀 어색하니까. (웃음)

정아
흔히 생각하는 개념으로 특별하다는 건 굉장히 소수나 적은 뭔가를 뜻하는 것 같고, 보통은 다수라고 감각되는 단어들이라. 뭘까, 들여다보고 생각해봤는데요. 어떤 개별성을 높게 쳐주는 말이 아닌가. 사실은 우리가 다 특별함은 가지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통이라는 말을 쓴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지은
그렇죠. 그런데 저한테는 시간이 좀 담겨 있는 단어였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시간을 들여서 아이들을 만나는데 거기서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김연수의 수필에 ‘나는 그냥 사과가 아니라 아오리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이다’라는 표현이 있었어요. 되게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 그 말이 너무 좋더라고요.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 하나하나가 그냥 사과가 아니라, 아오리 사과를 좋아한다는 걸 아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보통의 특별함은 시간을 담은 중의적인 의미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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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는 보통의 특별한 언니들의 삶에도 관심이 많다>
 
💭 최근에 열무의 공간을 열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자기만의(단체만의) 공간을 가진다는 것은 퍽 설레는 일인데요. 공간을 선정하시고, 꾸미시면서 가장 염두에 두셨던 점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공간이 되어가기를 꿈꾸시는지 궁금합니다.
혜진
인터뷰 일정 논의로 전화를 드렸을 때, 최근에 공간을 여셨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기쁨이 저한테 전해졌어요. 그래서 초면이지만 집들이 오는 들뜬 기분으로 열무를 찾아오게 됐어요. (웃음)

지은
(웃음) 정말 재밌는 동네에요. 안산도 동네마다 다를 테지만 사실 저희도 이 동네는 굉장히 낯설거든요. 밖에서도 우리를 낯설게 생각할 테고, 우리 역시 그들이 낯선데 이 상황이 또 우리한테 뭔가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합니다.

혜진 
신지은 선생님께서 엄청난 애정을 쏟은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은
가능한 여기 오는 사람들이 존중받을 수 있고 또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따뜻하고 환한 분위기를 의도했죠. 특히 어린이들이 와서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어때요, 예쁜가요?

<정말 밝고 환했는데 역광 때문에 오해를 살 것 같다>
혜진, 소똥

지은
그 말이 듣고 싶었어요. (웃음)

혜진
예뻐요. 기분이 차분해지기도 하고요. 여기 있는 물건들을 구경하면서 아이들도 재밌어 할 것 같아요.

지은
제가 지인이 많은 사람은 아닌데요. 열무의 공간을 열면서 오픈식은 안 한다, 그 대신 물건을 가져오셔라, 이번주까지. 그렇게 공지를 했고 한 분씩 두 분씩 물건을 가져오셨어요. 그 물건들로 이렇게 물건 전(展)을 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물건을 너무 가지고 오고 싶어 하더라고요. 자발적으로.

정아
저도 공간을 꾸밀 때부터 함께 했는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누구든 자신의 물건을 가지고 오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어요. 보통의 특별함과 이어지는 것 같은데, 이런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사실 일상적인 사건이잖아요. 그 물건을 여기에 가져옴으로써 누가 이걸 가져왔대요? 왜 가져 왔대요? 라고 서로 물으면서부터 특별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흙도 가져왔는데, 어떤 선생님이 (비닐 부스럭부스럭)

소똥
아, 흙이에요? (웃음)

<조금 더 오른쪽에 있었던 흙>
혜진
뭔가 했어요, 저도.

지은
10kg짜리 흙이에요, 저거! (웃음)
 
💭 신박한 실험과 도전을 통해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이번 사업을 통해 진행할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해주세요. 여러분은 어떨 때 배웠다고 느끼나요?
지은
우리 동네 지역아동센터라는 곳에서 올해 3년 차로 아이들과 함께 책을 만들어요.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로 책을 만들 수 있도록 장을 만들고 지원하는 프로젝트라고 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이제 3년 차가 되다 보니까 제 안에서 여러 가지 질문들이 좀 깊어져요. 아까 아오리 사과 얘기를 했지만, 아이들을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긴밀하게 작업을 하다 보면 모르거나 헷갈리는 지점도 많이 생기고요.

정아
여기서 지은 쌤과 저의 역할은 어린이 작가님들이 책을 만들도록 촉진하는 편집자예요. 매니저처럼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 끈질기게 쫓아다니면서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책들을 보면서 느껴지는 감동이 있어요. 자신의 작업을 종결함으로써 전해지는 감동이요. 저는 제 글을 종결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데, 보통의 아이들이 자기 작업을 종결할 수 있는 힘이 뭘까, 라는 생각도 들어요.

<어린이 작가님의 진지한 집필 활동>
혜진
정아 님은 어떤 순간에 배웠다고 느끼시나요? 

정아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저를 질문하게 하면 그때 배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른다고 생각한 것들도 사실은 정말 몰랐나라고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근데 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새삼스럽게 정말 그래? 라고 하면 ‘아...’ 하면서 오히려 말문이 막힐 때가 있고요. 여기서 만나는 친구들한테 그런 질문들을 하고 싶어요. 제 질문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들을 만들어 낼지는 모르겠지만 24명 가운데 한 명이라도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 신경을 쓰고 싶어요. 잘 안 되고 있지만요.

지은
저 또한 배운다는 건 때때로 질문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 질문이 주로 낯선 것에서 오고요. 이 낯설다는 건 장정아 선생님 말처럼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미처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들이 드러나는 것이고요. 불쑥불쑥. 아, 이거 낯설다, 생각해볼 만한 거네 라는 생각들을 교육 현장이라는 자리에서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 어린이 작가님의 매니저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이던가요?
정아
저는 아직 잘 안 되는데, 지은 선생님이 계속 지역아동센터 친구들하고 지내오시면서 ‘잘하고 못하는 건 없다’를 어떤 명제나 성경처럼 말씀하세요. (웃음)

소똥
암송, 암송. (웃음)

정아
실제로 아이들이 그렇게 알고 있어요. 대단히 좋은 성과라고 생각하는데, 자꾸 저도 모르게 ‘잘했다’가 나오는 거에요. 그것도 거의 무의식적으로.

<’잘했다’를 참기 힘들게 만드는 작가님들의 엽서 작품들>
지은
어려워요, 사실.

정아
칭찬에 대한 저의 표현의 부족, 칭찬을 위한 상상력의 한계를 느꼈어요. 다른 말로 치환하려고 찾은 게 ‘귀엽다’, ‘재미있다’, ‘정말 흥미롭다’ 이건데, 이것 역시도 ‘잘했다’ 와 사실 비슷한 수준의 칭찬인 것 같아요.

혜진
지금 다른 칭찬들을 떠올리려 해봤는데 정말 어렵네요.

정아
네, 매니저로서 적재적소에 독특한 칭찬을 넣어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데 잘 안된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제가 사용하는 어휘가 제한적이라는 걸 체감해요.
  
💭 기억에 남는 어린이 작가님의 작품을 소개해주세요.
지은
이거를 보여드리고 싶은데. 지금은 중학교 1학년이 된 친구인데요. 이게 5학년 때 만든 책이고, 이건 6학년 때 만든 책이에요.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무기력에 빠져 있었어요. 유일하게 곤충만 보고 있어서 그럼 곤충에 대한 책을 만들어보자 했는데 정말 너무너무 힘들게 완성했어요. 제가 이걸 만들어야 하나요? 그러면 저는 네가 계약서 쓰지 않았냐. 하면서요. 그런데 6학년이 딱 되니까 하겠다는 거예요. 먼저.

혜진
오 멋있네요.

소똥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군요.

지은
이 친구가 6년 내내 친구도 잘 못 사귀었어요. 여름에도 항상 긴 바지에 긴 티를 입고 다녀요. 왜냐하면 곤충을 잡아야 해서. 이 친구 생각하면 여러 가지 느낌이 많이 나요. 걱정되는 것도 있고. 그런데도, 이 책을 딱 바라보고 있으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이 아이의 세계가 느껴지는 거죠

소똥
책의 그림이 되게 구체적이더라고요, 상황들이. 새한테 쫓기는 말벌이라든지.

지은
6학년이 되면서 그림도 달라졌어요. 도와주셨던 선생님의 역할도 컸죠.

소똥
그럼 이렇게 책을 만들 때 항상 계약서를 쓰시나요, 아이들과?

지은
네, 저희 출판사 이름도 있어요. 깔깔 우동이라고 (우리 동네)라고. 등록이 안되어있지만, 아이들은 모르죠. (웃음) 책을 정말 진지하게 만들어요, 저희. 계약서에 어린이 작가님들 사인도 받고요.

소똥
계약서의 내용이 궁금해요.

지은
계약서 문구도 본격적이예요. 작가님들은 갑이고 저희는 진짜 을이에요. (웃음)

<무등록 출판사의 대표이지만 슈퍼 을인 지은>
일동
와하하.

정아
어린이 작가님들은 재료도 좋은 것만 쓰세요. (웃음)
  
🍉 여러분의 식사는 안녕하신가요? 먹는 행위가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예술을 통해 먹고 살만 하던가요?
정아
저는 미식가가 아니어서 사실 김밥천국에서 밥 먹어도 그렇게 슬프지 않은 사람이거든요. 뭐, 맛있는 걸 먹는다는 거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요, 사실은. 저는 떡볶이만 먹어도 굉장히 좋아요.

지은
저는 ‘식’이라는 단어에서 돈이 생각나는데, 일단 저한테 먹는다는 건 적당하게 실용적인 느낌이에요. 맛있는 거 먹으면 좋지만 그다지 많이 찾지는 않아요. 그리고 저는 혼자 먹는 게 좋아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거죠.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일어나서 먹는 아침이에요. 정말 공복을 깨기 위한 브렉퍼스트에요. 또 아침 먹고 정신 차리려면 커피를 반드시 먹어야 해요. 정아 선생님은 밥은 진짜 잘 안 먹어요. 나보다 제대로 안 먹는 것 같아.

정아
원체 잘 안 챙겨 먹는데, 이상한 건 살이 안 빠져요. 안 챙겨 먹고 못 챙겨 먹을 때도 많은데.

지은
(다과를 가리키며) 너랑 나랑 이런 거 얼마나 많이 먹니, 둘이 앉아가지구.

정아
(웃음) 과자를 엄청 먹죠. 작업하면서 건강을 해치는 식습관이 요즘 저에게 있어서 딜레마예요.

지은
난 쾌락이 먼저야. 단 게 더 좋아요.

<손님들을 위해 과자를 외면하는 지은과 정아>
정아
커피 마셔야지만 글을 쓸 수 있는데 또 아메리카노는 맛이 없으니까, 맨날 바닐라라떼 이런 거 먹어야 하고, 초콜릿 먹어야 하고. (웃음) 아몬드도 엄청 먹는데요. 거의 담배 피듯이 이렇게 손도 안 대고 씹어먹거든요.

혜진, 소똥
하하

혜진
아까 신지은 선생님께서 '식'이라는 단어에서 '돈'이 떠오른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식'은 '의'나 '주'보다 일상에서 자주 그 가격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술가 또는 교육 실천가로서 생계를 꾸려오시면서 '식' 또는 '돈'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에 어떠한 변화가 있으셨나요?

정아
문화예술 교육이나 예술 관련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는 게 너무 어려워요.

지은
궁금하지? 이분들은 어떤지?

정아
네, 저도. 두 분은 어떻게 먹고, 수익을 창출하시는지도 너무 궁금한데, 간단히 저만 얘기하면 연극을 해서는 돈을 거의 못 벌어요. 주로 하는 일은 어느 기관의 보고서를 고쳐주기, 누군가의 글을 다듬기. 그러다 보니 이제는 이런 일들을 받기 위해서 내가 작가라는 이름을 유지해야 하겠다고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아르바이트하면서 연극을 하는 것을 밝히지 않으면 제가 살아온 시간이 너무 쉽게 무시되는 경험들이 있었어요. 반면에 예술가라 그러면 또 약간의 동정과 존중의 시선을 보내주더라고요. 제가 헛되이 보낸 시간에 대해 사회적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요. 아무튼 변명거리로 쓰고 있다, 예술을 한다는 거를. (웃음)

지은
원래 그런 거 아니야? 필요할 때 쓰고.

소똥
먹고 사는 걸 항상 고민하는데, 재작년에는 뒷북에서 상근자로 일했어요. 뒷북에서 알음알음 들어오는 단기 알바나 프로젝트를 하면서 짬짬이 벌었고요. 올해는 서비스 직종의 알바를 하기도 했었어요. 저도 매년 어떤 일을 하면서 먹고 살지, 또 어떻게 찾아야 되지 라는 고민을 항상 하는 것 같아요.

혜진
저도 알바를 정말 많이 해봤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해야하는데 자기소개서가 그렇게 쓰기 싫더라고요.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건 좀 견딜만해서 보디빌딩, 필라테스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요. 외국어 배우는 것도 좋아해서 올해는 집에서 비대면으로 영어를 가르쳐요. 낮에는 라잎스페이퍼, 저녁에는 영어 강사로 생활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정아
아무튼 저는 수익이 전혀 안 되고 있어요.

지은
제가 정아 선생님한테 하는 잔소리의 50퍼센트는 제발 적정한 돈을 받고 있는지 계산을 하라는 거에요. 그거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웃음) 

정아 
일이 없으니까 주면 다 하죠. 단가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은
저는 프리랜서로 산지도 꽤 됐지만, 이전에는 어딘가의 소속으로 월급을 받았었어요. 돈을 벌어야 하는 건 기본이지만, 세 사람의 고민하고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는 나이이기도 하죠. 이 질문을 받았을 때, 하고 싶었던 얘기는 문화예술교육 씬에서 돈 얘기를 좀 더 깨놓고 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돈 얘기를 안 해도 되는 사람들은 이미 그만큼의 돈을 벌고 있다, 그만큼의 명망을 가지고 있다고 봐요. 예술가를 위한 복지 차원에서 기초 제도나 정책은 당연히 바뀌어야 하는데, 그걸 위해서는 많은 젊은 예술가들, 문화예술교육가들이 돈 얘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꺼냈으면 좋겠어요.
  
🙈 여러분의 본캐는 무엇인가요? 자신의 본캐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캐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지은
차마 페이스북에도 적지 못하는 취향이 있어요. 깊이 없고, 이것저것 다 좋아하는데. 피 튀기는 괴기스러운 것들도 좋아해요. 그래서 그런 장르가 넷플릭스에 올라오면 99% 일치라고 나와요. (웃음) 예민하고 민감한 제가 건강한 마인드를 갖게 해주는 잡스러운 취미들이 많아요. 요즘은 동네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주변 동네에서 발견한 것들을 페이스북에 올려요. 돌아다니면서 이상한 간판들, 재밌는 걸 발견하면 사진으로 찍어요. 저에겐 큰 재미예요.

정아
이상한 취향의 수집가이시네요.

지은
그치. 수집을 하려고 생각한 건 아닌데 생각해보니까 나한테는 그 부캐가 최고인 것 같아.

음 그리고 요새 수영을 배우고 있거든요. 몇 주 지나도 저만 정말 못해서 제가 무언가를 이렇게 못하는 게 너무 마음이 상한 거예요. 그래서 아쿠아로빅으로 바꾸겠다고 상담을 했어요. 수영 선생님께 3개월 배워도 이렇게 못하는 사람 있냐고 물었더니, 포기만 안 하면 누구나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뻔한 말이 감동을 줬다기보다는 그냥 좀 더 해볼걸, 이 정도 해보고 안된다고 의기소침하냐? 스스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뭘 못하는 걸 견디는 사람이 부캐인 것 같아요.

지은
되게 멋있는데?

정아
아니요, 사실 잘 못 견뎌요. 저 맨날 노려보면서 저 사람들은 한 번 하는데 왜 이렇게 잘해요? 막 이래요. (웃음)

지은
아니야, 그래서 나는 수영을 안 하잖아, 아예 (웃음). 내 기준으로 보면 정아 쌤은 되게 잘 견디는 사람이야.
  
👚 가장 자신다운 복장을 설명해주세요.
정아
헐렁한 옷이다 싶더라고요. 저 자신도 헐렁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점점 이렇게 몸에 붙는 걸 못 견디겠어요. 삶도 그걸 따라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가 밀착해 오는 어떤 감각이나, 물리적인 밀착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것들도요. 그래도 이제는 저를 조여오는 것에 대해 따르지 않겠다고 표현할 수 있게 되어가는 것 같아요.

소똥
헐렁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정아
이건 저의 콤플렉스인데, 직업 검사나 심리검사를 하면 규칙 잘 지키는 공무원, 회사원 이런 것들이 나와요. 저는 규칙이 좋아서 지키는 게 아니라 싫어하면서 지키는 류의 인간이거든요. 막 위반하고 싶은데 왜 나는 욕을 하면서 규칙을 지킬까. 불만이 있으면 따지는 게 아니라 ‘말도 안 돼!’하면서 그대로 하는 사람이었던 거죠. 좀 느슨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제가 저 자신을 괴롭히는 쪽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마이웨이 가는 사람들을 감탄하면서 보죠. 하~ 나도 저러고 싶은데 (웃음).

<헐렁한 사람이고 싶은 정아와 직접 제작한 티를 자랑하고픈 지은>
지은
저한테 가장 나다운 옷은 우리 집 잠옷이에요.

정아 
어 그렇네요. 선생님 말씀 듣고 보니까 가장 나다운 옷은 목 늘어난 티인 것 같기도 해요. 막 늘어나 있는.

지은
아니. 난 목 늘어난 티 입고 있지 않아! 그냥 시원한 원피스 입어요. 집에서 입는 제일 편한 복장이 가장 저다운 옷인 것 같아요.
  
💭 열무는 지금까지 어떠한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또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나요?
지은
장르로 얘기할까 우리?

소똥
그래 주시면 너무 좋아요.

지은
로맨스는 일단 아니겠지. (웃음) 저는 우주비행사와 과학자가 떠올라요.

혜진
SF 장르인가요?

<멀티버스 세계관을 가진 열무>
지은
네, 저를 위로해 주는 것 중 하나가 우주거든요. 우리는 사실 미시 단위와 거시 단위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이렇게 가까이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떨어진 세계가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가보지 못하겠지만 우주가 있다는 사실이 저한테 위로가 돼요.

정아
저한테는 연구 보고서인 것 같아요.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과학자의 연구 보고서. 지은 우리가 우주에 가보지는 못하겠지만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잖아요. 다른 우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멀티 유니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열무였으면 좋겠어요.
  
💭 마지막으로, 만약 당신이 라잎스페이퍼의 진행자가 된다면 다음 팀에게 어떤 질문을 해보고 싶나요?
지은
굉장히 신선하다.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다. 저는 아까 얘기한 돈의 문제,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해서는 정말 궁금해요.

정아
저도 동의하는 게, 프로젝트 하면서 다른 분들 만나면 도대체 뭘 해서 먹고사냐고 물어보거든요. 무례하게 느끼실 수도 있지만. 다들 무슨 알바를 하는지, 그걸 어떻게 구했는지, 얼마를 받는지. 그런 것들이 저는 되게 궁금하거든요. 부러워하거나 비교하기 위한 게 아니라 도대체 그 예시를 잘 모르겠어서요. 사람들이 돈을 버는 다양한 방법이 너무 궁금해요, 사실은.

지은
질문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는 거칠고 재미없더라도 단체들의 현장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워크숍이나 결과보고회에 가면 우리가 할 수 있는, 허용되는 이야기가 뻔하거든요. 작년 신박한 실험과 도전에도 재밌는 프로젝트들이 많았었잖아요. 그들이 하는 얘기를 그들의 목소리로 듣고 싶어요. 현장의 이야기가 풍성하게 들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열무 대신 고양이들을 위한 캣닢이 자랄 예정인 화분>
문화플랫폼열무 인터뷰: 멀티 유니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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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의 메시지, 인터뷰를 보며 느낀 생각, 궁금한 점, 함께 해보고 싶은 일, 전하고 싶은 소식 등등
글의 내용은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 인터뷰 기획: 청년협동조합 뒷북 @doitbuk_official
  • 인터뷰 참여: 문화플랫폼열무 @cultureyeolmoo
  • 글: 소재용, 이충현, 김혜진  @sossi226, @dibidibikinkin @khzinnn
  • 디자인: 엄희은 @__heeheeeun
  • 사진: 소재용, 김혜진, 문화플랫폼열무
  • 장소: 문화플랫폼열무
  • 인터뷰 발행일: 2022.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