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내년 4월 런칭하는 프로그램 마케팅안을 기획하다 보니까 심정적으로는 이미 한 해가 지나고 벌써 내년 1분기도 끝난 상태가 되었어. 일하다보면 한 분기는 물론이고 연 단위로 마음이 앞서 가곤 하는데, 그럴 때 쉽게 놓칠 수 있는게 계절의 변화같아. 그래서 요즘은 거북목 예방 겸 고개를 의식적으로 들고 다녀. 그랬더니 역시 하늘은 가을하늘인지 높고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조금씩 색이 변하는 나무의 변화도 이따금 발견하곤 해. 최근에 템플스테이 가서 명상 입문 체험을 해봤거든. 명상은 생각이나 감각을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로 가져오는 일이라고 느꼈어. 지금에 충실하자는 말 정말 뻔한데 어렵지 않아? 나를 돌아보고 이후를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나는 지금에 있다는 거 잊지 않으려고 노력중이야. 곧 다가올 가장 좋은 일은 역시 추석연휴겠지! 눕방일기도 추석에 충실하고자 한 주 쉬어갈게. 10/11에 만나!
|
|
|
#피닉스_에덴17 #요약
[아톰] 데즈카 오사무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지만 내 이전 세대의 만화가라서 그런지 사실 그 유명한 [아톰]도 본 적이 없어. 그런데 얼마 전 디즈니플러스에서 데즈카 오사무의 [불새] ‘망향편’을 애니화한 [피닉스: 에덴17]이 공개됐더라고. 50년부터 88년까지 장기간 연재한 사실상 작가의 유작으로, 각 에피소드마다 완결되는 옴니버스 형식인데 9~10권에 해당하는 ‘망향편’이 가장 비극적인 에피소드로 손꼽힌다고 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려진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파격적인 설정이 많아서 그런지 [피닉스: 에덴17]에서도 원작의 주요 설정들이 삭제되거나 각색되었어. [불새]는 시공간을 초월한 불멸의 존재 ‘불새’가 과거부터 미래까지 관망해온 인간의 삶에 관한 이야기들이야. 인간의 행성은 멸망을 반복한다는 다소 관조적인 시선 때문에 성인을 위한 만화라 할 수 있을거야. [피닉스 : 에덴17]은 기술이 극도로 발달하여 우주간 행성을 오가는 미래시대를 배경으로, 지구에서 도망쳐 ‘에덴17’이라는 무인행성에 도착한 ‘로미’(미야자와 리에)의 왕국이 잔혹한 흥망성쇠를 겪는 천여년의 세월을 그리고 있어.
|
|
|
#시대를 앞선 디스토피아
새출발을 꿈꾸며 에덴17에 도착한 젊은 부부 로미와 조지는 물조차 나오지 않는 황폐한 행성에서 수맥을 찾고자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사고로 남편 조지가 죽고 말아. 로미는 홀로 아들 카인을 낳은 뒤 AI로봇에게 육아를 맡기고 카인이 성인이 될 나이에 맞춰 13년 동안 냉동수면에 들어가. 하지만 작동 오류로 1300년 만에 깨어난 로미는 이미 아들 카인이 죽은 지 오래라는 사실, 자신은 그 후손이 일구어낸 번영한 왕국 에덴17의 유일한 지구인이자, 왕비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해. 생명이라곤 카인밖에 없었던 에덴17에서 어떻게 후손이 생길 수 있었을까? 원작에서 인류를 이어나가기 위한 첫 시도는 로미와 카인의 근친상간이야. [피닉스: 에덴17]에선 이부분이 생략된 채 그 다음 단계를 각색했어. 로미가 깨어나지 않자 절망한 카인을 가여워한 불새가 어디에서든 적응하고 어떤 모습으로든 바뀔 수 있고 상대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외계생명체 ‘무피’족을 카인에게 보내줘. 무피는 카인이 본 유일한 인간이자 가장 그리워하는 존재 로미의 모습으로 변해 카인과 자식을 낳은거지. 사전 정보 없이 보다가 뜻밖의 매운맛에 깜짝 놀랐지 뭐야. 이름처럼 모두의 낙원이 된 에덴17은 분명 로미가 조지와 이루고 싶었던 이상향 그 자체야. 하지만 로미는 무피 혼혈들은 겪어보지 못한 외로움, 죽음이 다가오기 전 마지막으로 지구를 보고싶다는 강렬한 그리움에 휩싸여. 결국 카인을 닮은 아이 코무와 도착 이후를 예견할 수 없는 지구로의 위험한 여정을 떠나게 돼.
|
|
|
#인간의 원죄
인간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가득한 [피닉스: 에덴17]은 웬만한 자극엔 심드렁해진 나에게도 당황스러울만치 어두웠어. 아마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 기대하는 전개가 아니어서 그랬던 것 같아. 로미가 지구로 떠난 후도 고향 땅을 밟는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거든. 하늘과 나무, 바다가 사라진 황폐한 지구는 인간이 점령한 행성의 정해진 수순이라는 예견처럼 느껴져. 기후위기와 전쟁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인간의 땅이라면 그들의 행성 혹은 종족에 과연 희망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생존하는 인간의 생명력은 '근친상간을 하면서까지 인류를 존속하거나 냉동수면으로 거의 불멸을 살아가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집착이 의미 있는 것일까'에 대한 질문에 쉽사리 답할 수 없게 만들어.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성경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거라 추측해볼 수 있어. 낙원을 의미하는 에덴은 선악과를 먹기 이전 아담과 하와가 머물렀던 공간이야. 에덴17의 첫 인간인 로미와 조지는 아담과 하와를, 그들의 아들은 아담과 하와의 첫 아들이자, 인간이 낳은 최초의 인간인 카인을 의미함을 연상할 수 있어. 종교적으로 아담과 하와는 인류의 시작을 뜻하지만 인간의 원죄를 상징하기도 해. 결국 지상낙원 에덴17이 멸망하는 것도 원죄를 탄생시킨 인간적인 감정, 욕망이 깃들기 시작하면서부터거든. 원작과 애니메이션의 결말은 다르다고 해. 어느 쪽이 더 비관적인지, 희망적인지 논하기는 애매하지만 [피닉스: 에덴17]에서는 아주 작은 희망의 씨앗을 심어 두었어. 그 감정 역시 인간을 믿어보고 싶은 인간적인 감정 중 하나겠지? 만화방에 들러 원작 만화를 읽어보고 싶어졌어. 양산형 아니메에 질리던 참이라면 독특한 시선을 보여주는 [피닉스: 에덴17]을 한번 시도해봐.
|
|
|
#관람포인트01
극장판으로 <피닉스: 에덴의 꽃>이 재편집되어 11월 3일 공개된다고 해. 결말도 다르다고 하니 한 번 더 챙겨봐야겠어. 국내에서도 극장에서 개봉할지는 모르겠지만 스크린으로 한번 보고 싶어. 4개의 에피소드로 분리된 편집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
|
|
#관람포인트02
<철콘 근크리트> 등 애니메이터로 굵직한 경력을 쌓아온 니시미 쇼지로 감독의 작품이야. 워낙 오래된 원작 작화 고유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현대적으로 잘 표현한 것 같아. 우주가 배경인지라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많아 시각적으로 즐거운 작품이야.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