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점심, 비슷한 연차의 동료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후배는 선언하듯이 본인을 MBTI 박사라고 소개했다.(한 풀칠 멤버의 말에 따르면 어느 조직에나 한 명씩 있는 ‘도사’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후배는 자기 주변 사람들의 MBTI를 다 알아맞힐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는 회사 내 한명 한명을 떠올리며 MBTI를 유추하기 시작했고 해석에 해석을 얹기 시작했다.
“OO선배는 아마 ISFP일거야. 맞아, 맞아. 그래서 그때 전체 회의에서 @#$$%@#$~&.”
뭐, 대충 그런 느낌. 우리의 MBTI 맞추기가 절정에 다다를 즈음, 화살은 그 자리에 앉은 나에게로 향했다.
“선배, MTBI가 뭐에요?”
아니, 다 맞출 수 있다면서? 게다가 나는 제일 쉬운데? 나는 뭐 그런 싱거운 질문을 하냐는 투로 웃으며 대답했다.
“저 인프피(INFP)에요.”
그랬더니 후배가 말 그대로 아연실색했다.
“거짓말이죠? 선배는 누가 봐도 ISTJ에요.”
속으로는 ‘ISTJ가 뭐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아, 그래요? 신기하네” 하면서 짐짓 쾌활한 척 이야기를 넘겼다. 그렇지만 내 머릿속 한편에는 ‘내가 INFP가 아니란 말야??’하는 커다란 절규 비슷한 물음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INFP라는 사실은 그동안 나 스스로를 가장 잘 규명하는 프레임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직장에서의 내 MBTI가 다를 수 있다는 건 생각해본 적 없는 관점이었다. 물론, 자신이 생각하는 MBTI와 남이 생각하는 나의 MBTI는 다를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게 직장 동료가 바라보는 MBTI라면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거 같았다. 회사로 돌아와 나는 당장 (몰래) ‘ISTJ’를 검색했다. 16가지 성격 유형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정리 되어 있었다 : 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
‘음... 내가 회사에서 순교자로 보일만한 일을 한 적이 있었나?’
그 밑에 유형별 위인의 명언을 읽어보니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한 명이면 족한 일을 둘이서 수행하면 될 일도 안 되거니와, 셋 이상이 하는 경우에는 일이 전혀 성사되지 않더군. - 조지 워싱턴>
‘아, 이거지. 이거지!!’ 나는 앉은 자리에서 내적으로 물개박수를 쳤다. 단독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단번에 설득되고 말았던 것. ‘그렇구나, 나는 일에 있어서는 INFP가 아니라 ISTJ 구나’ 새로운 자아를 찾게 된 날이었다.
한순간 ISTJ로 거듭난 나는 좀 더 많은 설명을 찾아보기로 했다. 책임감 있는 현실주의자, 낯가림이 심하다(그렇지, 그렇지), 주어진 업무나 책임을 끝까지 완수한다(예를 들면, 새벽 마감...?), 원칙을 중시한다(그, 그런가?), 실수를 참지 못한다(티가 났나?), 자신이 직접 일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그래서 마감도비를 못 벗어나지), 사고방식이 로봇 같다(?), 그리고 ISTJ 중에 꼰대가 많다.(나, 후배에게 당해버린 건가?)
무척 흥미로웠다. MBTI라는 틀이 아니더라도 ‘회사에서는 내가 이렇게 비춰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조직 내에서 채도가 많이 다운된 회색 인간이었다. ‘넵병’ 말기 환자이기도 하고. 오죽하면 회사 단체카톡방(이 있다. 인류는 아직 전근대적 야만과 작별하지 못한 셈)에서 나에게 ‘넵’ 금지령이 내려졌을 지경이니까.
그리고 말수가 적고 내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 답답한 인간이기도 했다. 한번은 명리학을 공부했다며 주변 사람들의 사주를 봐주는 선배마저 회식 자리에서 나에게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좋은 편인데, 너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 때 와인을 마시고 있었으므로 나는 눈으로는 웃으면서도 손으로는 인스타 스토리에 예쁜 잔에 담긴 와인 사진을 올리고 있었다. 이 조명... 온도... 습도...
그런데 직장인으로서 나의 MBTI가 있다는 사실은 직장에서 나라는 사람이 무색무취하지 않다는 얘기인 것도 같아서 조금 감격스러웠다.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 무언가’로 규정될 수 있는 법이니까. 혼자서 책임을 지려고 하는 나쁜 버릇을 고쳐야겠다는 약간의 훈계도 됐고 말이다. 이제 협력을 배워야지!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에서 극 중 인물인 리어왕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탄식한다. 남도 나를 모르고 나도 나를 모른다는 얘기다. 그전까지 나는 스스로 리어왕을 자처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직장에서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그러나 이제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연극을 하고 있고, 함께 일하는 배우들은 그 사실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연기는 나쁜 게 아니고, 우리는 그저 자신에게 잘 맞는 배역을 맡으면 족할 뿐이다. 그 연극의 장르가 희극이면 가장 좋고.
셰익스피어의 또 다른 작품인 <겨울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내가 본래 정직한 건 아니지만 가끔 우연히 정직할 때도 있다(Though I am not naturally honest, I am so sometimes by chance.)”
나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