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 하나 알려줄게. 나는 겁이 정말 많은 편인데 공포 영화를 좋아해. 하지만 워낙 마이너한 장르이다 보니 함께 봐주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고. 혼자 보기 무서워서 사내에서 공포영화 동아리를 만들려다 실패한 전적도 있어. 그러다 몇 년 전 회사에서 장르영화 기획전을 기획하며 수십편의 공포영화를 검수하게 되었어. 내가 제일 멀리하는 공포물은 좀비물인데, 20석 규모의 시사실에서 홀로 <28일 후>를 보고 난 후로 혼자 공포영화를 못보는 병은 완전히 고쳐졌어. 말이 길었지? 이번주엔 혼자 볼 수 있는 공포 드라마를 추천해줄게.

지난 주 넷플릭스 오리지널 [자정 클럽]을 정주행한 참이야.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의 작품은 다 챙겨보고 있거든.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소개해주자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힐 하우스의 유령]으로 유명하고,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후속작인 <닥터 슬립> 감독이기도 해. 고전 소설을 영화화한 작업이 많은데, 이번 [자정 클럽] 역시 크리스토퍼 파이크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야.


[자정 클럽]은 극 중 청소년 호스피스에 입원한 아이들이 자정이 되면 모두 모여 한 명씩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임의 이름이야. 어른들은 모르는 자정클럽 회원들만의 중요한 약속이 있어. 바로 먼저 죽게 되면 남은 아이들에게 신호를 보내기로 한거지. 그래서일까? 이들이 살고 있는 저택에서는 종종 이상한 그림자와 유령들이 나타나. 아이들은 그들에게서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고, 어른들은 약을 과다 복용한 아이들의 환영이라고 믿지. 그러던 중 주인공인 일론카는 이 호스피스에서 기이한 의식을 치른 후 완전히 병이 나아 퇴원한 한 여성의 비밀스러운 궤적을 찾게 돼. 그 정체를 파헤치는 과정과 아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액자식 구성으로 교차되며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완전히 픽션같던 그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아이들의 삶과 겹쳐질 때 작은 감동을 느꼈어. 하지만 이 외에는 솔직히 전작들에 비해 많이 아쉬운 드라마였어. 시즌2를 기획한 건지 떡밥이 전혀 회수되지 않은 채 마무리 된 것도 그렇고, 아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지루할 때도 있었어. 무엇보다 주인공 캐릭터가 다소 오만해서 감정이입이 쉽지 않았어.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도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의 전작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인장 같은 설정이 엿보이더라고. 자연 깊숙한 곳에 위치해 외부와 단절된 거대한 저택을 중심으로 인물들은 모여들고, 가까운 과거가 시대배경이야. 가족의 형태를 띈 주인공들의 내밀한 사연들에 집중하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그 사연 사이사이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호러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결국은 모두 관계에서 주고받은 상처에서 비롯된 사건들이어서 언제나 결말로 향할수록 슬픔이 이야기를 지배해. 그래서 오늘은 [자정 클럽]보다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의 전작 드라마들을 추천하고 싶어.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힐 하우스의 유령](셜리 잭슨의 동명 소설 원작), [블라이 저택의 유령](헨리 제임스의 소설 [나사의 회전] 원작), [어둠속의 미사]를 순서대로 보면 돼. 하나만 고르라면 역시 [힐 하우스의 유령]이야! 나는 지금 4번째 보고 있는데, n차 관람할 때 작품성이 더 빛나는 작품이야. 처음에는 모르고 지나쳤지만 다시 보면 꼼꼼하게 쌓아올린 복선들이 눈에 들어오거든. 귀신 들린 집에 살았던 한 가족들의 묻어둔 트라우마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그 과정에서 앞서 말한대로 가족 구성원마다의 상처를 들추어 인간의 연약한 면을 돌아보게 해. 공포와 드라마가 가장 좋은 비율로 섞여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둠속의 미사]는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을 담은 오리지널 각본이야. 그런데도 각본이 정말 훌륭해서 감탄하며 봤던 드라마야. 기본적으로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은 대사를 정말 잘 써. 그리고 호흡이 느린 편이라 영화 연출도 했지만, 난 드라마에 더 적합한 감독이란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다소 느린 전개가 어색하더라도 다들 꾹 참고 봤으면 좋겠어. 후반부로 갈수록 연출은 물론 감정도 몰아치거든.


가끔 등장하는 유령들에 소리를 지른적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긴장감 높은 심리 드라마에 가깝다고 생각해. 그래서 공포물에 편견이 있는 사람들일수록 강력 추천하고 있어. 여느 드라마 못지 않게 탄탄한 각본과 신선한 연출, 혼자 봐도 무섭지 않은 정도의 호러의 3박자가 아주 맘에 들거야.

소소한 관람포인트1.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 사단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 사단이라고 해야할까? 그의 작품에 한번 출연한 배우들은 주조연을 망라하고 다음 작품에도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여러 작품을 보다보면 이제 배우들이 너무 익숙해서 아는 사람 만난 것처럼 반갑더라고.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배우는 케이트 시겔인데, 초기작인 영화 <오큘러스><허쉬><위자 : 저주의 시작><제럴드의 게임>을 비롯, [힐 하우스의 유령][블라이 저택의 유령][어둠속의 미사]에도 출연해. 알고보니 감독의 아내라고!
  

소소한 관람포인트2.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 차기작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의 다음 프로젝트를 살펴보자. 먼저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는 넷플릭스에 원제를 검색하면 등록 알람을 받을 수 있게 되어있는 걸 보니 곧 공개를 앞두고 있는 듯해. 에드가 앨런 포의 단편소설 <어셔 가의 몰락>이 원작인 것 같아. 역시 감독의 전작들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총 출동해. 두번째로 [자정 클럽]의 원작 작가인 크리스토퍼 파이크의 [The Season of Passage]를 영화화하고 있다는 소식이야. 둘 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될 예정이래.

소소한 관람포인트3. 형제 각본가 제이미 플래너건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의 형제이자 각본가 겸 배우로 [블라이 저택의 유령]을 시작으로 [어둠속의 미사][자정 클럽]에 각본으로 참여했어.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의 크레딧에서도 볼 수 있어. [자정 클럽]에서 제이미 플래너건의 깜짝 등장을 찾아봐!
레이지 카우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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