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산책 / 만나분식

01. 서촌 홍건익 근처에 위치한 작은 분식집이다. 가게를 알게된 것은 어찌보면 인연에 의한 우연에 가까웠는데, 책방오늘 대표님이 서간이라는 분재가게를 한 번 가보면 좋겠다고 소개해주셨고, 거기서 주기적으로 분재들을 그리러 가게 되어 근처 식사를 떼울만한 곳을 찾다가 알게되었다. 지연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땅과 나와의 관계) 있는 것인지, 근처 홍건익 가옥에서는 후배 M이 전시를 하기도 하였고, 서간위치도 잠시 사무실을 같이 썼던 건축가 R형이 고민했던 사무실 이전 매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되었다. 그러니 을지로에서 사무실을 썼어도 결국 돌아돌아 여기에 올 운이였을 수도 있겠다. 

02. 요즘 참- 뭐랄까 기본적인 집이 없다. 무너져가는 중산층과 궤를 같이하여 멸종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식문화적으로는 '한국적'이라고 할만한 가게는 몇몇 노포빼고는 거의 사라졌다. 그 흔한 백반집들도 어느 순간 한참을 찾아 들어가야 있을 법하고, 최근엔 그나마 찾았던 안국의 백반집도 이상한 연탄불고기집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렇게 자리를 내어주고 새로 생긴 가게들은 어딘가 구성이 극단적인 경우가 많은데, 더 지불한 권리금과, 높아진 월세와, 비싸진 식자재비용, 올라간 인건비들을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결국 메뉴를 간소화하거나 있으나 없으나 별 티가 나지 않는 식자재들부터 절감하기 시작한 것 같다. 사라진 짜장면위의 메추리알과 오이채, 물티슈로 바뀐 따뜻한 물수건, 꽉찬 쇠젓가락 대신 텅빈 속을 지닌 텅스텐느낌의 쇠젓가락으로-

03. 만나분식의 맛은 특별하지 않다. 어릴때 아파트 상가 지하에서 부모님이 늦어 식사대신 끼니를 해결하라고 준 용돈을 들고 먹었던 떡볶이 맛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는 그 맛이 평범 그 자체였고, 특별히 맛집같은 것도 아니였으니까- 지금은 쫄면이라는 식자재를 넣어주는 것에 감사해야할 지경이고, 사라진 파와 깻잎같은 것을 넣어주는 것에 절해야할 것 같다. 그러니까 이집이 특별한 것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하고도 기본적인 떡볶이라는 장르의 원본을 유지했다는 것에 있다. 게다가 가격도 요즘 시대 5,500원이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04. 최근에 즐겨읽는 박찬용에디터의 sns글에서 도쿄 우에노 근처의 오래된 한인식당에 대한 글을 쓴 것을 보았다. 그는 거기서 지금은 한국에서 사라진 한국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워낙 변하지 않은 일본이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고스란히 원형 그대로를 유지한 한식에 반가움을 느꼈다는 이야기였다. 문화는 결국 돌고 도는 것이고, 변하기 마련이지만 지금의 변화들은 변질이 아닌가. 도쿄의 그 식당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원문이 궁금하면 위의 링크를 클릭)

05. 분식의 본질은 뭘까. 나는 편안함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든, 분위기적으로든, 가게 문턱을 들어서는데 부담스럽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많든 적든- 건강한 음식은 아니지만 정식적으로는 치유받는 등가교환의 공간의 거래장소에 돈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배달떡볶이의 편리함보다는 편안함이, 통일된 체인의 맛보다는 그집 그집의 조금씩 다름이 소울푸드를 형성해주는 것이 아닐까. 만나분식을 컬리에서 밀키트로 만나게 되면 조금은 슬퍼질 것 같긴한데, 밀키트도 판다고 하니 가끔 사서 응원해야겠다. 고물가 시대에 원형을 유지하기 위해 주인과 손님들이 힘써보는 가게가 되었으면하는 2024년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