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의 업종이 뭔지 아세요? 바로 ‘제조업’입니다. 그래서인지 마티는 기획편집만큼이나 제작에 열을 올립니다. 알라딘 북펀드가 끝나고 출간을 앞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 칸타타의 경우, 종이를 고르고 인쇄소와 제작 타결을 이루기까지 한 달은 더 걸렸을 거예요. 그 싸움과 시련을 직관하실 분은 조스바의 글에 주목해주세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 칸타타가 제작에 들어간 지 근 한 달이 돼가는 와중에 다른 신간이 또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나는 성을 가르칩니다를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만난 이유정 선생님의 성교육은 ‘다음’을 가르칩니다인데요, 출간 예고를 죽순이 전합니다. 모베와 팔랑이 외근과 인쇄 감리로 바빴던 오늘, 퐁퐁이 풋노터스 픽 코너를 가득 채워주었어요. 
벌써 저녁 8시가 넘었네요. 이제 배를 채우러 가봐야겠어요, 총총.

종이 싸움의 시작, 그리고 시련
🦈 조스바
바흐의 교회 칸타타를 모조리 담아낸 책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후기를 쓰는 지금,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기를 기도하며 실물을 만나길 고대하고 있어요. 이 책은 디자인과 제작이 이인삼각으로 움직인 작업이었어요. 왜냐하면 요구사항이 까다로운 책이었거든요. 나열하자면,

1.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킬 본문 종이를 찾는 것.
2. 판형과 두께에 맞는 천의 면적을 계산하는 것.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 칸타타는 독어 원문과 한글을 함께 넣어 글의 분량이 상당하고, 시처럼 각 문장의 길이는 짧지만 페이지마다 많은 행이 들어가야 해서 가로는 좁고 세로가 긴 비율의 판형으로 결정했습니다. 두껍고 좁은 판형의 난점은 펼침과 넘김이 편한 본문 종이를 찾는 것입니다. 일단 얇아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사전처럼 착착 넘어가도록요. 안 그러면 가로 폭이 좁아서 본문을 펼쳤을 때 종이가 빳빳하게 서요. 한마디로 페이지를 넘겼는데 자꾸 되돌아오는 사태가 발생하는 거죠. 정수리에 나는 짧은 돼지털은 늘 꼿꼿하게 서 있지만, 좀 긴 머리카락은 눕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종이가 얇으면 비침이 심한 편이에요. 낭창낭창하면서 뒤 비침도 적은 종이는 많지 않습니다. 수입지나 국내 고급지 가운데 괜찮은 종이는 있었어요. 다만, 출판물로 자주 쓰이지 않으니 규격이 다양하지 않아서, 128*225mm라는 바흐 교회 칸타타 판형에 맞는 종이가 진짜 드물었습니다. 결이 안 맞는 종이를 극구 고른다면 종이 로스(loss)가 엄청나요. 제작 담당인 팔랑은 지문이 닳도록 계산기를 두드렸고, 마침내 본문은 한솔제지의 고급지 '캠퍼스'로 결정했어요. 이 종이는 비침이 적고 촉감이 매끄러우며 빛 반사가 거의 없기에 가독성이 굉장히 좋아요. 『보리 국어사전』 본문 종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모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양장 표지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 천을 골라야 하거든요. 두 종류의 천 가운데 고민했어요. 처음엔 성경의 동방박사와 별 이야기가 담긴 가사를 떠올리며 네덜란드 판 히크(Van Heek) 사의 '매직'(magic)이라는 아주 독특한 천을 골라두었습니다. 호기롭게 샘플을 구했는데, 실물을 보니 거룩하고 묵직하게 빛나는 별의 느낌보단 강력하고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느낌이라 얼른 다른 안으로 선회했죠. 다음 후보는 같은 회사에서 생산되는 '하프 린넨 라이트'(halflinnen light)라는 천인데요. 바흐 LP 박스 패키지를 아시는 분은 익숙하실 거예요. 린넨은 루터교의 금욕적이고 절제된 분위기를 풍겼고, 바흐의 음악과 종교를 같이 떠올리게 만드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마음에 드는 천을 마침내 찾았는데! 시련은 끝나지 않습니다. 하프 린넨이 다른 종류의 천보다 작더라고요! 가로 면적이 270mm 정도 부족했습니다. 다시 팔랑이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어요. 저의 심장박동과 똑같았죠. 
팔랑은 인쇄소와 몇 날 며칠 전화하며 가능한 길을 찾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사이 저는 다른 천을 다시 뒤적거렸어요. 아주 부드럽지만 색감이 창백해서 최종 후보에선 제외했던 천이었죠. 된다, 안 된다,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인쇄소가 낭보를 가지고 왔습니다. 무척 조심스럽게 재단하면 간신히 가능할 것 같다고요. 하지만 작업이 오래 걸릴 거라고, 한 달은 달라고 하더라고요. 하프 린넨 천을 쓸 수만 있으면 간이고 쓸개고 내어놓을 판이었고, 인쇄소에서 혹시 마음을 바꿀까 싶어 얼른 괜찮다고 했습니다. 

띠지에 넣은 별은 'holy stars'인데, 칸타타를 합창하는 모습처럼 보이도록 정렬했어요. 바흐가 믿었던 루터교는 차별과 위계 없이 성경을 읽고 부를 수 있게 히브리어 또는 라틴어를 독어로 번역해 널리 배포했는데요, 이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 칸타타는 한국어로 독자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독일어로 듣고 한국어로 느끼는 경험이 바흐 감상을 더욱 충만하게 만들어줄 거예요.

교육() 방어력과 새 책 공격력
🌱 죽순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합니다. 백 년을 내다보고 세우는 계획이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솔직히 백 년 동안 안 변하는 게 교육 같습니다. 특히 성교육이 그렇죠. 순결교육의 이름은 사라졌지만, 성교육을 떠받치는 기조는 비슷합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낙태 비디오’를 본 세대로서 성교육 시간은 껄끄럽기 짝이 없었던 한편, 교사도 영상도 싹 무시하고 혼자 노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주로 만화책을 몰래 읽었습니다. 그래도 음경 모형에 콘돔을 씌우는 시연만큼은 기억에 있습니다. 콘돔 끝에 있는 정액받이 부분의 공기를 꼭 빼야 한다던 선생님의 절박한(!) 경고는 유용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콘돔을 청소년이 어디서나 구매할 수 있고, 유통기한이 있다는 건 안 알려주셨죠.
그런데 요즘 성교육 시간에 콘돔 착용 시연을 보여주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해요. “너무 노골적이어서”가 그 이유라고. 곧 출간하는 『성교육은 ‘다음’을 가르칩니다를 쓴 이유정 선생님은 성교육 강사가 하고 싶어도 학교로 ‘민원’이 들어올까 봐 교육 내용을 협소하게 가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한숨을 쉬셨습니다. 그래도 전문강사가 생긴 건 정책적으로 진일보한 것 아니냐고 제가 묻자, 성교육 강사는 ‘국가 공인’이 아니라며 강사 자격의 비밀을 들려주셨어요. (궁금하신 분은 책을 통해 확인!)
성교육은 교육 과정과는 무관한 특별 강의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성교육 의무 시수 15시간 중 상당수가 교과목 시간에 교과 담당 교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생식기관을 배우는 생물 시간, 성차별에 대해 토론하는 사회 시간 모두 성교육으로 쳐줍니다. 따라서 한국 사회 교육 정책의 방향 자체가 ‘반동성애’, ‘반페미니즘’으로 간다면, 성교육도 방향 전환이 어려운 게 현실이에요.
『성교육은 ‘다음’을 가르칩니다는 성교육을 교육 제도의 일부로 보는 큰 시각을 견지하면서, 현장의 모순과 청소년들의 질문에 세세하게 답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성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하는 책입니다. ‘성적 권리’, ‘포괄적 성교육’ 등 최신의 성교육 개념과 담론도 소개하고, 현장에서 저자가 활용했던 활동지와 교육안도 공유해요. 작고 알찬 성교육 백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이 방어력 만렙의 백년지대계에 실금을 내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눈에 띄지 않겠지만, 바람이 들고 나고 물이 얼었다 녹으면서 실금이 길이 될 거라 생각해요. 그 바람과 물은 독자 분들이겠죠. 이 실금을 팽창시켜주세요, 여러분.

* 표지 디자인: 워크스

❝ 음악 〇 〇 
🧼 퐁퐁

📚 출판사
음악 관련 좋은 책을 내는 출판사가 여럿 있지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은 포노 출판사입니다. 턴테이블의 소리를 증폭해주는 연결 단자가 포노(phono)잖아요. 포노 출판사도 '증폭'해주는 책을 만듭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작곡가나 지휘자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책, 음악에 대한 이해와 깊이를 넓혀주는 책을요.

💌 뉴스레터
클래식 음악과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뉴스레터 '글릿'은 꼬박꼬박 열어 보는 뉴스레터 중 하나입니다. 음악과 음악을 둘러싼 일화를 재미있게 풀어내면서, 음악과 관련된 읽을거리 볼거리를 곁들이면서,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음악인을 찾아 소개하면서, 읽는 재미와 듣는 기쁨을 한껏 누리게 해주고 있어요. 
☕️ 카페
보광동 헬카페에 가면 세 번 놀랍니다. 지옥불에서 커피콩을 볶았나 싶을 정도로 중후하고 찐-한 커피맛, 트로트부터 클래식까지 장르를 아우르는 음악(+폭발적인 음량), 기다란 테이블 위에서 존재감을 내뿜는 거대한 꽃더미. 사실 공간을 채우는 모든 요소가 '헬' 그 자체, 끝장을 보는 듯합니다. 몇 년 전 스산한 가을날, 헬카페에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아마도 최대 음량으로 틀어준 적이 있어요. 파토스가 넘쳐 흘러서 하던 일 멈추고 해 질 녘 풍경만 바라보다 왔던 기억이 나요.

🎬 영화
푸줏간에서 사온 고기 포장지가 바흐의 악보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담긴 영화 「바흐 이전의 침묵」. 마음속 영화 장바구니에 담아만 놓고 여지껏 보지 못했는데요.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곳, 제보 받습니다. 디브이디는 파는데, 시디롬이 없어요...

🦈 조스바
서울퍼블리셔스테이블이 새로 이전한 디뮤지엄에서 열립니다. 온라인으로 진행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오프라인으로 만나볼 수 있어요. 글, 그림,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출판물과 굿즈를 판매합니다. 참가사 리스트를 보니 더욱 기대됩니다. '에코백 파티'도 있는데요. 별도의 봉투나 에코백을 판매하거나 제공하지 않기에 쓰지 않는 에코백을 가져와 기증하고, 기증된 에코백을 사용할 수 있어요. 축제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간 열립니다.ᐟ 

🧼 퐁퐁
마포구 염리동에 자리 잡은 '서점극장 라블레'는 해외문학 전문 서점이에요. 그렇다고 문학만 있는 것은 아니고요. 문학을 중심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촘촘하게 연결되는 책들이 한데 모여 있어요.
이곳에 가면 아무 책장 앞에 서서 눈에 들어오는 책 한 권을 꺼내 살펴본 다음, 찬찬히 걸음을 옮겨 보세요. 자연스럽게 책에서 책으로 연결되고 세계관이 확장되는 듯합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구경하다가 한아름 안고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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