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8일, 저는 대한직업환경의학회에서 이주노동자의 건강과 안전보건에 대한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길에 태완이 많이 다쳐서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가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당장 가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서울에 도착해 학회 장소에 막 들어갔을 때 태완이 사망했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새로 개발한 10톤짜리 장비를 테스트 하다가 몸이 끼었다고 했습니다. 온몸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정신없이 발표를 마치고 김제로 출발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 김제 특장차 제조공장에서 30대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저에게 태완은 이주노동자도, 몽골 출신도 아니었습니다. 태완은 이주아동이었고, 한국어밖에 못하는 군포 출신이었습니다. 저는 태완의 성장을 지켜보았고, 태완과 태완 같은 이주아동들이 한국에서 체류하며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아가며 지난 18년간 활동해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태완에게 Taivan이라는 이름이 찍혀있는 외국인등록증이 아니라, 강태완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주기 위해 활동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태완이 떠나버렸습니다. 저는 이제 무엇을 위해 활동해야 할까요.
태완은 저에게 정말 자랑스러운 존재였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였습니다. 제가 죽으면 저를 추억하면서 눈물을 흘려줄 사람이었습니다. 너무도 아까운 사람이 갔습니다. 허망하다, 비통하다, 참담하다라는 말로는 제 심정을 다 표현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태완이 남기고 간 숙제가 있기 때문에 주저앉아 울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태완이 당한 사고가 철저히 조사되고,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자가 처벌받고, 다시는 이런 억울한 죽음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태완은 사고가 나기 일주일 전 차를 사서 군포까지 올라가 엄마를 태워드렸다고 합니다. 태완이 그토록 원했던 바를 이루고 가서 다행입니다. 행복할 때 떠나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제 마음을 다독입니다. “태완아, 늘 그래왔듯이 내가, 그리고 나와 함께 하는 활동가들이, 되게 할게. 너는 아무 걱정하지 마. 국적과 체류자격을 따지지 않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고 있어. 우리 다음에 또 만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