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가 깃든 정원을 나누는 마음
다큐멘터리 <다큐 인사이트 : 인생정원 - 일흔둘, 여백의 뜰> by. 슬
‘우수’라고 하니 <후르츠 바스켓>이란 만화가 떠오릅니다. (이렇게 나이가 탄로 나는 것이겠죠.) 사실 다른 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 나는데 딱 한 장면만 생생합니다. “눈이 녹으면 뭐가 될 것 같아?”라는 질문에 “봄이 돼요!”라고 답하던 장면이요. ‘물이지’라고 즉답했던 감성 결여 문과생은 한참이나 그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더랬죠.
<다큐 인사이트 : 인생정원 - 일흔둘, 여백의 뜰> 편을 보면서 왜 눈이 녹으면 봄이 오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도입부부터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일흔둘 전영애 씨가 비 온 뒤의 정원에서 열심히 노동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 위로 내레이션이 깔리는데요. ‘봄비가 오면 땅이 보슬보슬해져 일하기가 수월합니다.’
1만 평에 달하는 정원은 바라볼 땐 그저 아름답지만, 그 미려함을 지켜내기 위해선 직접 잡초를 베어내고 새 꽃을 심어 돌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살아있는 존재를 건사한다는 건 까다롭기 그지없는 일이죠.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요. 하지만 전영애 씨는 아이처럼 웃으며 말합니다.
“내가 공을 들이고 힘을 들이는 곳이 내 자리입니다.”
나의 수고가 깃든 자리에 결국은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다는 믿음. 세상 물정 모르는 생각이라고 의심해본 적 있었기에, 그렇게 말해주는 어른을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 뭉클해지더군요.
가장 놀라웠던 점은 ‘여백서원’이라는 커다란 공간에서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방은 딱 세 평에 불과하단 것이었습니다. 전기매트와 이불, 몇 벌의 옷, 글을 쓰는 노트북과 키보드. 나머지 모든 공간은 손님들이 방문해 자신의 여백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백’의 사전적 의미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남은 빈자리’입니다. 순서가 보이시나요? 저 역시 여백을 이렇게 이해해왔습니다.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난 다음, 내 것 먼저 챙긴 다음 남는 자리가 있다면 그 여백을 나누겠다고요. 초록빛 뜰을 완전한 공백으로 비워둔 채 타인에게 먼저 내어주기로 택한 노학자의 마음의 정원, 그 크기를 저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다 헤아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여백서원’은 혼자서 관리하는 통에 일반 방문객은 한 달에 딱 한 번만 받는다고 하는데요. <다큐 인사이트>가 다양한 각도로 고아한 정원 곳곳과 맑고 깨끗한 노학자의 얼굴을 잘 담아냈으니, 봄비가 오기 전 꼭 멀리서나마 여백서원을 즐겨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다큐 인사이트 '인생정원 - 일흔둘, 여백의 뜰'은 KBS, 웨이브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