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봤어요. 실제로 쓰는 분은.”

“회사 그만두려고?”

“6개월이나? 회사가 괜찮대?”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주변에 알렸을 때 반응들이다. 다들 응원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어릴 때 <뽀뽀뽀>*를 보고 학습이 되어서일까, 다들 아빠인 내가 출근하지 않고 아이만 보겠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는 분위기였다.

* MBC의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 1985년 처음 시작한 장수 코너다.

처음엔 수많은 반문이 들었다. 지금은 1980년도 아닌, 2020년대 아닌가. 내 주변 엄마들은 다 쓰는데? 은행이나 학교는 2년까지도 쓴다던데 왜 6개월도 길다고 하지? 그러고는 이내 깨달았다. 

아, 나 엄마 아니지. ‘아빠’였지. 

휴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기적으로 사 먹는 이유식 배송에 문제가 생겨 고객 게시판에 글을 남길 일이 있었다. 답변이 달렸다는 알림을 받고 글을 확인하자마자 눈에 띈 건 내용이 아니라 나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맘님, 반갑습니다.”

이유식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엄마 오늘도 힘내요’, ‘엄마의 깊이 있는 안목에 보답하도록’, ‘엄마의 육퇴를 응원합니다’… 육아를 시작하면서 매일 쓰게 된 물티슈, 택배 박스, 심지어 기저귀 뒷면에는 이런 문구가 선명히 적혀 있었다. 18개월 아기와 들을 수 있는 백화점 문화센터 강좌들은 모두 ‘엄마랑 아기랑’ 카테고리에 담겨 있어 수강신청을 포기했던 적도 있다. 

휴직을 하고 나니 알게 됐다. 평일 전업 육아의 세계에서 아빠란 존재는 소수 계층에 가깝다는 것을. MBC 예능 <아빠! 어디가?>가 나온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고 아내의 유튜브에 상단에 뜨는 송일국의 삼둥이도 벌써 10살 초등학생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평일에 나와 비슷한 아빠를 마주치기란 쉽지 않은 일임을 말이다. 그 밖에도 각종 육아용품, 교구, 학습지 등의 세계에서 아빠가 주인공이었던 경우는 평일 오후 네 시에 다른 아빠를 놀이터에서 볼 확률만큼이나 적었다. 대부분의 그림책에서도 아빠는 기린, 사자, 곰에 밀려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또 하나 깨달은 건 육아휴직의 숨은 어려움이다. 밥 차리는 것부터 노는 것, 자는 것 모두 내가 주말에 겪던 육아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무엇보다 아이가 절대적 존재인 엄마의 부재를 느끼지 않으려면 나 스스로 100%를 넘어 150% 아빠가 돼야만 했다. (평소 과묵한 편인 나는 휴직 이후 말을 1.5배 더 많이 하게 됐다.)

멀리서 볼 땐 모든 게 쉬워 보인다.

밥은 시판 이유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주기만 하면 되고, 놀이는 날 좋을 때 근처 놀이터에 나가거나 차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낮잠을 자면 옆에 나란히 누워 그동안 못 읽던 책을 보거나 거실에 나와 넷플릭스를 보는 호사도 누리는 상상을 잠시 했다.

이 모든 건 아이가 내 뜻대로 움직여 줬을 때의 이야기다. 차리기만 하면 잘 먹을 줄 알았던 아이는 본인 입에 맞는 반찬이 나오기 전엔 쉽게 입을 열지 않았고, 이런 아이에게 삼시 세끼 양질의 식사를 대접하는 일은 차려주는 밥만 먹고 자란 내게 새로운 차원의 노동이었다. 엄마 없이 호기롭게 떠난 나들이는 엄마의 부재를 나와 아이 모두 절실히 느껴버리는 바람에 조금 더 대화가 될 때 같이 가기로 마음먹게 되었고, 이내 찾아온 춥고 긴 겨울은 밖에 나가길 좋아하는 내게 답답한 집콕 육아를 선사했다. 독박 전업 육아의 세계에서 호사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낯선 영역에서 나와 비슷한 모델이나 레퍼런스가 없을 때 외로움과 막막함은 피할 수 없는 친구가 된다. 아내에겐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내게 아내는 이미 능력치가 다른 사람이자, 그대로 따라 하기엔 어려움이 많은 레퍼런스였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핏이 맞지 않는 롤모델’, ‘선구자’ 정도로 정리하고 싶다.) 

만약 육아휴직 사실을 주변에 알렸을 때 회사원으로서의 이야기가 아닌 아빠로서의 경험담을 들었으면 어땠을까? 만약 백화점 문화센터에 ‘아빠랑 아기랑’ 강좌가 개설되어 아이들 나이대가 비슷한 다른 아빠들의 육아 스킬을 엿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내가 사는 동네에 휴직한 아빠가 많아 평일 오후 네 시에 다 같이 라떼 한 잔을 마시며 육아가 지닌 50가지 그림자에 대해 수다를 떨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육아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런 작은 갈증들을 해소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를 거의 하지 않는 내가 대뜸 글 쓰는 뉴스레터 모임부터 참여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것도 육아를 주제로 말이다. 나에겐 너무나 특별하고 치열했던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겐 너무나 지루한 개인사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수 있단 마음으로 용기를 내 아저씨 수다를 펼쳐놓고자 한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 참여하면서 “의무와 책임을 제대로 나눠 가질 때 비로소 공동육아가 시작된다”는 어느 책의 구절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비록 승진도, 성과급도 없는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한 기분이지만(게다가 이 구역의 왕은 아내다), 노동부에서 홍보하는 것처럼 아이와 보내는 24시간이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지만, 지금의 육아휴직 아니 ‘육아이직’을 후회한 적은 없다. 육아의 책무를 아내로부터 넘겨받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평생 아내와 아이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먼저 육아휴직을 했을 때 내가 밥 먹듯이 한 이야기가 있다. (참, 밥이란 존재를 쉽게 여기는 표현 역시 이제는 사라져야 할 때다.)

“이현이 밥 먹을 때 굶지 말고 같이 좀 먹어”

“이현이 낮잠 잘 때 같이 좀 자”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얼른 집에 갈게, 밥 같이 먹자”

“미안해, 남 일처럼 말해서.”

그나저나 휴직한 지 벌써 5개월이 지났다. 아는 게 더 많아져서일까. 6개월이면 육아의 의무를 다 하고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막상 회사로 돌아갈 때가 다가오니 복직 이후 아이가 겪게 될 변화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6개월은 결코 길지 않다.

회사도 다행히 별일 없어 보인다.

어쩌면 애초부터 상관없었던 건 아닐까.

구독자 분들에게 받은 편지를 소개 할게요. 소중한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1.

“이제 막 아이가 두 달째 되어가는 초보 아빠예요. 하루하루 아이가 커가는 만큼 저도 게임 속 캐릭터처럼 레벨 업하는 기분입니다. 분유 먹이기, 졸린 아이 재우기를 습득하고 이제 목욕하기 기술을 배워가고 있어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 메일이 오는 일요일이면 한 주 동안 아빠로서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돼요. 틈틈이 아이 사진과 이야기를 인스타에 올리기도 하고요. 귀한 시간, 귀한 경험을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2.

“육아 이야기를 친구들과도 깊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렇게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채널이 있다니 매우 좋네요. 저는 아들, 딸, 딸의 아빠입니다. 글 쓰는 것에도 관심이 많고요.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연락주세요.” 

→ 저희가 피드백을 수집하면서 다른 개인 정보를 전혀 취합하지 않아 누구신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네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 주세요!  

님, 오늘 보내드린 편지는 어땠나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제안/피드백/질문이있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알려주세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 보낸 지난 편지가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