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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3매 |  최갑수

잠언 같은 건 셔츠 윗주머니에 둡시다

어제는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 마셨습니다. 마지막을 들른 선술집에서는 손님들이 다같이 모여 노래를 불렀습니다. 호텔로 돌아와 물 한 병을 마시고 잠들었다가 이제 겨우 일어났네요. 커튼을 여니 창밖에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또 어디를 가게 될까요? 어제는 그냥 그대로 좋은 하루였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술을 마시고, 틈틈이 인생에 관한 잠언을 수첩에 메모했습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가로등 아래를 서성이던 어둡고 슬픈 그림자 하나가 모퉁이를 돌아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라진 그림자가 서성이던 자리에 서서 그냥 가끔 맛있는 것이나 먹으며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면 되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잠언 같은 건 셔츠 윗주머니에 고이 넣어두고서 말입니다. 그 왜, 제프 다이어가 이렇게 말했잖아요. “마흔이 지나면 온 세상이 오리가 지나간 자리의 물결처럼 되는 거야. 마흔이 지나면 인생은 원래 낭비하기 위해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 하고요. 뭐 어쨌든, 우리가 가진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오늘은 또 어딜 가게 될까요? 뭘 먹게 될까요? 뭘 마시게 될까요? 여행을 와서는 여행만 생각합시다.

최갑수는 시인이자 여행작가다. 쓴 책으로 『어제보다 나은 사람』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등이 있다. 지금 일본 후쿠오카 야메시의 어느 호텔에서 조식을 건너 뛰며 이 레터를 쓰는 중이다. 그의 인스타그램 @ssuchoi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 혼자라는 즐거움 |  류진

탈 것 안에서 혼자 앉는 낙

얼마 전 성수동에 들어선 4층짜리 문구점에서 산 카드 한 장을 액자에 정성스럽게 끼웠다. 에드워드 호퍼의 <293호 열차 C, Compartment C, Car 293>(1938) 가 그려진 카드다.  창 바깥엔 풍경이 지나가고, 2인 좌석에 혼자 앉아 책을 읽는 여인. 그것을 볼 때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라도 되는 양 시선을 오래 그 그림에 둔다.

 

매달 비행기와 기차, 배에 몸을 싣던 시절이 있었다. 9할은 출장이었다. 대개 사진작가나 업계 사람들이 동행이었지만 상황이 허락하는 한 혼자 앉기를 고수했다. 대인 기피증이나 껄끄러운 사이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일행에서 떨어져 나와 멀찍이, 혼자 앉는 것. 그걸 참 좋아한다.

 

왜 모난 애처럼 구냐고 묻는다면- 앉고 싶은 곳에 앉을 수 있으니까. 동행과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겁지만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창가든, 복도든 원하는 자리에 홀로 진치는 것이 더 좋다. 이 별난 취향은 아주 친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날 때도 고수한다. 어쩌다 뜻이 맞아 원하는 좌석이 겹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대개나도 복도 자리’ ‘나도 창가 자리타령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럴 때 그럼 굳이 같이 앉지 말고 따로 앉을까?” 하고 말하면, 나의 양보를 기대했던 친구들이 뜻밖의 일격이라도 맞은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나한테도 정말로 소중한 시간이라 포기하고 싶진 않다.

 

가장 좋아하는 탈 것은 모든 연결이 단절되고, 영공이 시시때때로 바뀌며, 자아가 부유하는 것만 같은 기묘한 시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비행기다. 기체가 상공에 완전히 안착하고 안전벨트를 풀어도 좋다는 기장의 메시지가 들리면 가장 먼저 태블릿을 꺼낸다. 벼르고 별렀지만 할 일들에 치여서 미루거나 보다 만 영화들이 그 안에 들어있다. 옆 사람이 심심하지 않도록 이따금 말을 건넬 필요도 없고, 딱히 중요하지도 않으며 별 관심도 없는 대화 주제에 말을 보태지 않아도 되는 자유 속에서 집중하고 싶은 것에 실컷 몰입한다. 그러다 영화가 지겨워지면 책을 꺼낸다. . 디지털 기기가 (거의 모든) 인류를 독서 불능자로 만든 시대에 이라니.

 

비행기는 한때는 나도 독서광이었어.’라고 으스대지만 지금은 읽다 만 책들의 무덤 속에서 사는 독서 불능자들의 재활원이다. 평소 책 한 권 안 읽는 디지털 중독자 중 약간의 죄책감 -이렇게 책을 손에서 놓고 살아도 되나?’-을 가진 이들도 비행기 안에선 유물이 된 그 종이 덩어리를 꺼내서 단 몇 장이라도 뒤적인다. 땅에선 도통 진득하게 이어 나가지 못하는 독서가 그 비좁고, 어둡고, 건조해서 눈까지 따가운 기내에선 왜 그렇게 달콤할까?

 

읽는 행위가 슬슬 지겨워지면 쏟아지는 생각에 골똘히 몰두한다. 그러다 주섬주섬 노트를 꺼내거나, 메모장 앱을 켜고 홀린 듯 글을 쓴다. 기면증을 앓는 이가 자다 일어나 무의식 상태로 집 안팎을 배회하듯- 이 모든 프로세스는 내가 아주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도 획득하지 못한루틴그 자체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일, 바꿔 말하면 나 자신과 만나는 이 일련의 과정이 왜 유독 탈 것안에선 더 쉬울까? 진부하게 알랭 드 보통의 이름을 들먹이고 싶지는 않지만 그가 한 말에 답이 있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꽤 긴 시간 동안 혼자, 비행기나 기차, 배 안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초점 잃은 눈으로 뭔가를 응시하며(혹은 어떤 것을 보고 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 상태로) 의식의 흐름 속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는 자신을 만난다. 나는 종종 그 지점에서 진짜 나라고 생각되는 어떤 존재에 머문다.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는 느낌. 아주 중요한 감정이나 관념들에 안착한 기분.

 

그게 대관절 뭔 소린지 잘 모르겠다고? 그럼 당신은자신과 만난 적이 없는 사람. 긴 시간 탈 것 안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에 잠만 자는 사람. ‘그거 난데?’ 하는 이라면 책 한 권, 떠오르는 것을 끄적일 노트 한 권과 펜 한 자루 챙겨서 국경을 넘는 기차나, 12시간짜리 비행길에 올라 보시길. 홀로 앉아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 낸 당신에게 뜻밖의 선물이 기다릴 거라 확신한다. 내가 아닐 수도 있는 나를 벗어나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 말이다.

류진은 패션 잡지와 여행 잡지에서 월급을 받으며 살다가 내 시간을 내 뜻대로 쓰고 싶어서 프리 워커가 됐다. 그게 절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엔 혼자 살고 혼자 일하는 삶을 잘 꾸리기 위해 더 많이 보고, 읽고, 겪고, 쓰고, 부딪히며 산다.  @nomad_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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