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기어이 이혜원입니다. 기어이팀 전원이 '가상이상'에 몰입하고 있다보니 너무 늦게 뉴스레터를 드리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그럼에도 독자분들을 만나고 준비한 콘텐츠를 보여드릴 수 있는 이 시간들이 저는 무척 행복합니다.
요즘은 ‘가상이상’이 열리는 중이니 VR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보통 주중 하루는 서울의 도심 속 산과 성곽길 등을 트레킹 하며 아날로그적 시간을 보낼 정도로 저는 걷기에 진심입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걸음보다는 산만한 도시를 거닐면서 산책하기를 즐기고, 최전선의 기술을 다루기 위해, 일 바깥의 시간을 자연을 탐닉하는데 할애합니다.
두 다리로 걷다가 미세하게 달라진 나무잎을 보며 계절을 감각하기도 하고, 달라진 밤공기를 호흡하며 생각의 먼지를 털어내고, 근심을 방생하기도 하죠. 일상의 순간이 여행처럼 변하는 마법은 바로 이 순간을 기록하는데 달려있다고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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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t 카페 by Rene Created with Polyc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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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주로 사진, 영상을 기록합니다. 여기에 더해 작년부터는 3차원 스캔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아이폰 12부터 라이다 센서(LiDAR camera) 스캔 기능이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지만, 주변에서 꾸준히 활용되는 것을 의외로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앞으로의 모든 기록은 새로운 디지털 세상의 에셋이자 삶의 에셋이 된다는 생각으로, Polycam (폴리캠) 3D 캡처 앱을 활용해서, 자주가는 카페, 친구와 만난 순간, 산책하다 만난 나무 등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깔끔하게 스캔되고 정돈된 3차원 데이터가 아니지만 흔들린 사진도 향수를 불러 일으키듯 거칠게 담겨진 현장의 빈틈은 그 자체로도 초기 거친 사진들처럼 정감이 갑니다.
봄이 되면서, '3차원 스캔' 기록 취미는 저의 일상을 보물찾기하는 놀이터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점심 산책길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 앞 야외 조각 공원에서 배형경 작가의 '생각하다'를 만났고, 저녁 퇴근 산책길에는 서울역사박물관 앞 '전차 381호'를 만났고, 이것들은 아래처럼 스케치팹(Sketchfab)에도 기록을 해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스캔하면서 스치는 일상의 풍경은 '관찰'의 대상이 되고, 이는 도시를 다르게 '감각'하는 체험으로 이어집니다. 서툰 모양새로 3D 데이터화된 2022년 봄의 광화문은 분명 VR이든, AR이든, 혹은 어딘가의 플랫폼에서 제 삶의 현재를 아카이빙하는 형태로 남겨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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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형경 작가 '생각하다' by Rene Created with Polyc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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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앞 '전차 381호' by Rene Created with Polyc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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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고퀄리티 3D 스캐닝이 가능한 '리얼리티 스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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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ity Scan> © Epic Ga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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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엔 에픽게임즈 일원인 캡처링 리얼리티와 퀵셀이 개발한 '리얼리티스캔(RealityScan)' 베타 버전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빠르고 쉽게 3D 스캐닝을 모바일로 구현하도록 하는 이러한 도구들은 전문가의 영역이라 생각해온 부분을 탈피해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에셋을 만들도록 도와준다고 하죠. 다양한 곳에 활용되어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포토그래메트리(Photogrammetry: 대량으로 촬영된 2D 실사 기반의 3D 모델링 데이터 구축 기술)' 같은 기술적 용어에 지레 어렵고 난해하게 여겼던 것들이 이렇게 일상 가까이에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와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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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 경성 방랑 Kubo, Walks the city 〉 2020 /권하윤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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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로 다가온 2022 뉴욕 트라이베카 이머시브에서 권하윤 작가의 '구보방랑(Kubo Walks the City)'이 소개된다는 얘기를 이미 지난번 ixi에서 소개한 바 있었는데요. 1920년대 경성을 산책하는 구보씨가 도시를 방랑하듯 관객도 함께 체험을 하는 작품입니다. 올초에 재밌게 읽었던 정지돈의 에세이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이 아닌>에서는 구보씨를 '20세기 문학과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된 플라뇌르의 한국형 버전' 이라고 칭했었는데 산책과 구보씨, 그리고 VR로 이어지는 일년의 연결고리는 일상에서 소재를 발견하여 머물지 않고 계속 향하는 창작일의 숙명을 깨닫게 합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 하기에 기록은 그것이 글이든, 영상이든, 사진이든 소중합니다. 그리고 거기엔 '소리'도 물론 포함이기에 최근들어 하이킹을 할 때면 탐조생활의 일부로 새들의 노래소리를 담기도 하고, 어떤 찰나를 랜덤하게 녹음을 하기도 합니다. 남겨진 음성 데이터만으로도 VR로 작품으로 만드는 사례는 <2번 피고인 월터 시슬루(Accused#2: Walter Sisulu)>에서도 볼 수가 있었죠. 예술가가 아니여도 삶을 새롭게 기록하는 이러한 습관은 플랫하고 단조로운 삶을 몰입의 순간으로 바꾸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수년간 계속되어온 만보객 취미를 갖고 스스로를 플라뇌르로 여기고 서울을 방랑하는 저도, 언젠가 다른 매체로 옮겨질 기록을 겹겹이 쌓다 보면, 소멸되는 기억들 사이에서 새로운 창조적 영감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걷기 좋은 5월입니다. 가상이상도 들러주시고, 3차원으로 세상을 기록하는 놀이도 해보시면서, 목적 없이 거닐며 '발견하는 시간'을 만나는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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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스캔 APP에는 폴리캠만 있는게 아니죠. Canvas나 3D Scanner 등 다채롭기 때문에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추천목록을 한번 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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