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 기능을 넘어 가치 증명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비교
사실 비교는 나쁜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비교는 우리의 생존과 학습에 필수적인 인지 기능이에요. 어릴 때부터 우리는 비교를 통해 세상을 이해해 왔어요. "이 사과가 저 사과보다 크다", "이 길이 저 길보다 가깝다", "이 방법이 저 방법보다 효과적이다"를 파악하며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생존해 왔죠. 하지만 우리의 에고는 비교를 기능적으로 배움을 위해 사용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비교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 에고가 끼어드는 순간부터 비교는 우리를 배움이 아닌 고통으로 몰아넣었죠.
예를 들어, 나보다 빨리 승진한 동료가 있을 때, 우리는 비교를 그저 가능으로 사용해서 나를 성장시키는 도구로 이용할 수 있어요. 동료가 나보다 뭘 더 잘했고 내가 좀 더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어떤 스킬을 개발했고 어떤 프로젝트를 했는지 파악해서 더 노력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비교와 나의 에고를 결합해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수단으로 사용해요. ‘동료는 인정받았는데, 나는 인정받지 못했어. 나는 루저야. 다들 나보다 앞서가고 있어.’라는 식으로 스스로 불안을 조장하고,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거나,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우리가 놓치고 있는 비교의 맹점
이렇게 비교와 에고가 결합되어 가치평가를 위해 사용될 때, ‘나만의 속도와 맥락’은 사라져 버려요. 우리의 삶은 각기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하고, 가고자 하는 목표와 방향도 모두 달라요. 하지만 비교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런 고유함을 모두 무시하고, 단 하나의 기준으로 모두를 평가하며 줄 세우게 만들어요. 끊임없이 자신과 남을 비교하는 사람은 사회가 주입한 기준에 자신을 맞추고, 비교하느라 정작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내가 원하는 속도는 무엇인지 생각하지 못해요. 자기가 진짜 뭘 원하는지 모르니까 뭘 가져도 진정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늘 어딘가 부족하고 배고픈 상태로 살아가게 되죠.
비교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맹점은 타인의 삶을 겉으로 보이는 결과로만 판단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오기까지 어떤 대가를 치렀고,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지금 그 삶 속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거든요. 우리는 원인도 모르고 과정도 모른 채, 오직 결과만 보고 비교하며 스스로를 괴롭혀요. 친구가 좋은 직장에 다닌다는 결과만 보지, 그 친구가 그곳에서 매일 느끼는 스트레스, 포기한 것들, 잃어버린 시간은 보지 못해요. 누군가의 화려한 소셜미디어 피드 뒤에는 보이지 않는 외로움이 있을 수 있고, 멋진 차 뒤에는 몇 년간 갚아야 할 할부금이 있을 수 있어요. 우리는 이야기의 한 장면만 보고 전체 줄거리를 안다고 착각하며 자신을 괴롭히지만, 사실 우리는 아주 단편적인 삶의 한 모습밖에 보지 못해요. 그 단편을 보고 내 삶 전체와 비교하는 건 그야말로 어리석은 일인 거죠.
월든의 숲에서 배우는 지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비교의 맹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19세기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삶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어요. 그는 28세의 나이에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졌어요.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 홀로 살았죠. 그곳에서 그는 <월든>이라는 책을 썼는데, 오늘 밑미레터에서는 이 책에 나온 소로우의 지혜를 빌려 비교를 멈추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해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한 방법으로 소로우는 세 가지 길을 보여줘요.
첫 번째, 자신만의 리듬으로 걸어라. 소로우는 "만약 어떤 사람이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것은 그가 다른 북소리를 듣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듣는 음악에 맞춰 걷게 하라. 그것이 아무리 느리든, 아무리 멀든 간에."라고 이야기해요. 이 말은 지금도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줘요. 우리는 모두가 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세뇌받지만 우리는 각자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어요. 비교는 우리를 남들의 북소리에 맞춰 걷게 만들지만, 진짜 삶은 내가 듣는 음악에 맞춰 걸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두 번째, 의도적으로 살아라. 소로우가 숲으로 간 건 '의도적으로' 살기 위해서였어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남들이 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살고 싶었던 거죠. 비교는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들어요. 남들의 삶을 기준으로 내 삶을 판단하고,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게 만들죠. 의도적으로 산다는 건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거예요.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것을 원하는가?", "이 선택이 진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나만의 삶을 설계하는 거예요. 비교는 우리를 삶의 표면에 머물게 하지만, 의도적인 삶은 깊이있는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죠.
세 번째, 단순하게 살아라. 소로우는 "단순하게, 단순하게, 단순하게 살아라"라고 강조했어요. 그는 월든에서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살았어요. 필요 이상의 것을 소유하면, 우리는 그것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 에너지를 쏟게 돼요. 그리고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은 것이 필요해지는 악순환에 빠지죠. 비교도 마찬가지예요. 남들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며 그것을 얻으려 애쓰다 보면, 우리 삶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본질에서 멀어져요. 소로우는 삶을 단순하게 만들면, 비교할 것도 적어지고,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내가 비교하며 갖고 싶어 하는 것들이 정말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까요, 아니면 단지 복잡하게 만들 뿐일까요?
물론 소로우처럼 숲으로 가서 홀로 살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소로우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해요. "나는 진짜 내 삶을 살고 있는가?" 이번 추석, 친척들과의 비교 때문에 힘들었다면, 소로우를 떠올려보세요. 그들의 질문은 그들의 북소리일 뿐이에요. 우리에게는 내 안에서 울려오는 북소리를 듣고, 그 북소리를 따라 걸을 자유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