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담 아주 어린 시절을 떠나, 가장 마지막에 가까운 새 학기를 돌아볼게요.

열두 달님은 3월의 꽃말을 아시나요? 혹시 4월의 꽃말은요?

대학 시절 개강을 맞이하며 친구들과 늘 얘기했습니다. 3월의 꽃말은 개강이요, 4월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요. 벚꽃이며 봄 같은 낭만은 온데간데없고 현실에 치인 자조적인 이야기였지만, 지나고 보니 그마저도 다 그때만 누릴 수 있는 말들이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개강에 괴로워도 일찍 강의를 마친 날이면 선선한 날씨에 홀로 걷는 노을 진 캠퍼스가 좋았고, 중간고사에 시달려도 친구들과 도서관이며 동아리방을 전전하던 풍경들이 결과와 상관없이 내가 노력한 순간으로 남아 추억이 되었습니다. 오르막이 심하던 과 건물, 비탈길을 뛰다시피 내려오며 스치던 나무들은 죄다 벚나무였어요. 봄은 늘 그 자리에, 때가 되길 기다리며 곁에 있었죠.

그럴싸한 벚꽃놀이를 즐기지 못해도 봄은 봄이었고, 새 학기는 새 학기였나 봐요.
찬찬히 돌이켜보니 가슴 뛰는 기억들이 꽤 많아요.

열두 달님은 어떠신가요? 이 봄에, 이 새로운 시작 앞에 무슨 생각이 가장 먼저 드시나요?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면 살포시 꺼내어 나누어주신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애틋하게 봄을 이야기했으니, 다음으로 애틋한 소식을 들려드려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이렇게 개화에 비해 이르게 벚꽃을 선물한 이유입니다.

저는 이번 봄, 조금은 긴 시간 레터를 쉬어가려고 합니다.
바로 지난 편지에 1주년을 축하하고서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죄송할 따름이에요.

쉬어가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말씀드리자면, 먼저 제 일상에 무거운 일들이 생겼습니다. 제 일터, 그러니까 회사의 일이기도 하고 제 개인의 일이기도 해요.

저의 생업인 회사 차원에서 깊은 고민과 시간을 들여야 할 일이 생겼고, 또 제 딴에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게 되었거든요. 바빠지는 순간이야 언제나 있었지만, 지난 일 년간 겪어보았던 것들보다도 모든 게 빠듯해졌어요. 레터에 나름의 공을 들이고 있었기에 그 시간조차 아쉬운 날이 찾아왔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다른 이유는 몸뿐만 아니라 제 마음에도 여유가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아무런 기대 없이 열두 달님을 만나기에는 어쨌든 매주 지표가 쌓여가는 레터의 시스템 속에서 보이는 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생각보다, 또 기대보다 크더라고요. 그 간극을 극복해내려면 제가 먼저 더 단단해지지 않고서는 견디기 조금 벅찬 시기가 온 듯합니다.

이렇게 쉬어가는 게 가뜩이나 그동안 잦은 실수투성이였던 저를 아는 열두 달님께 실망이 될 수도, 더 길게 보았을 때 레터의 성장에 해가 될 수도 있을 거라 여겨 많이 망설였습니다.

습관을 들이기는 어렵지만 그걸 내려놓는 것은 참 쉬운 일이라, 아마도 머지않아 제 편지를 읽기 위해 편지함을 들여다보는 일을 잊게 될 테니까요.

다시 돌아왔을 때는 어쩌면 많은 분이 지금만큼도 저를 찾지 않게 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어딘가 부족하고 엉성한 글을 얼기설기 엮어 레터를 질질 끌고 가기에는 주저앉은 마음이 일어서기까지 쉬어감이 필요할 거란 판단이 접어지지 않았어요.

짐짓 굳건한 척하며 열두 달님을 만나왔지만, 제 내면이 이리도 나약하단 걸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그런 노래 가사도 있잖아요.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그러니 우리도 헤어짐이 아니라, 쉬어감이라고 이름 붙여줘요.

당분간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이번 레터는 조금 더 답장이 기다려지네요.

용기 내어, 또 귀찮음을 무릅쓰고 응원해주신다면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벚꽃이 모두 지고, 계절이 바뀌기 전에는 돌아오겠습니다.
우리는 5월 16일에 다시 만나요.
보고 싶을 거예요.

ps. 참, 오늘도 답장 공개는 없어요. 아껴 보고 싶은 답장들이라서, 조금만 더 야금야금 읽을게요. 언젠가 나중에 같이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