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티 나는’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꽤 근사하고 감동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후원독자인 님께 편지를 보내는 이 일이 설레고 떨립니다. 감사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이 관계를 어떻게 더 잘 이어갈 수 있을지…. 여러 생각이 드는데요. 무슨 말을 쓸까 한참 고민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제 본 것 같은 친구를 만난 심경으로 제 이야기를 꺼내 보려 합니다. 저는 권력기관 개혁에 관심이 많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검찰개혁’이라는 어젠다를 꾸준히 취재하고 기사로 썼습니다. 계기가 있습니다. 몸으로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딱 10년 전 일입니다. 시간도 잊지 않습니다.

2013년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날이었습니다. 늦은 오후 〈시사IN〉 사무실 제 자리로 “서울중앙지검”이라는 곳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니 날짜를 조율하자고 수화기 너머 상대가 말했습니다. 보이스피싱을 의심했냐고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고소당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2012년 대선 기간 주진우 기자와 함께 ‘박근혜 5촌간 살인사건 3대 의혹’ 기사를 썼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가 고소장을 보냈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검찰은 수사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주진우 기자는 당시 외국에 있어, 제가 먼저 검찰청을 갔습니다.

당연히 무죄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 겁이 났습니다. 갑자기 검찰이 사무실을 들이닥쳐 제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압수수색해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불쑥불쑥 밀려왔습니다. ‘별건 수사’를 당하거나, 취재원이 털리거나, 사생활이 침해당하거나. 뭘 상상해도 끔찍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기사를 쓰는 건 〈시사IN〉을 더 많이 팔려고 하는 건가요, 아니면 박근혜가 정말 싫은 건가요?”라며 검사님은 양자택일 질문을 던졌습니다. “둘 다 아닌데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검사님은 “둘 다겠지”라며 반말투로 대꾸했습니다. 외국이었다면 막대한 손해배상으로 회사가 망하기도 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어떤 제 답변에는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참담하게 만든 건, 저 자신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여러 번 삼켰습니다. 은연중에 검사님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겁니다. 피의자 신분으로 검사실에 앉아 있으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사의 권력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런 스스로가 못마땅했고, 일순간 외로워졌습니다.

그날 검사실에서 저는 배운 게 참 많습니다. 영화에서 재현되는 혹은 취재원에게 전해 들은 ‘수사 실무’를 직접 겪어보니, 왜 검찰개혁이 필요한지 절로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검사님은 유죄를 단정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평상시 검찰이 주장하는 ‘형사사법의 궁극적 목적은 실체적 진실 발견’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고위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과 언론의 역할에 대한 제 말은 공허하게 흩어졌습니다.

그래도 시간의 힘은 셉니다. 10년이란 기간 동안 당시 기억이 조금씩 희미해지던 참이었습니다. 지난해 2월12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요. 치열한 선거운동을 펼치던 윤석열 캠프에서는 ‘열정열차’라는 기차 유세를 선보였습니다. 그 일정은 윤석열 후보의 구둣발 사진으로 많은 분의 머릿속에 남았지만, 제게는 ‘언론사 파산’ 발언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진실을 왜곡한 기사 하나가 언론사 전체를 파산하게도 할 수 있는 강력한 시스템이 언론 인프라로 자리 잡는다면 공정성 문제가 없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혁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윤석열 후보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는 또한 “미국 같은 경우에 규모가 작은 지방 언론사는 허위 기사 하나로 회사가 가는 경우도 많이 있다”라고도 주장했습니다. 익숙한 얘기였습니다. 10년 전 제가 검찰청에서 들었던 검사님의 말씀과 같았습니다.

일견 해프닝으로 지나간 것처럼 보인 이 사건은 윤석열 후보가 윤석열 대통령이 되자 다양한 형태로 변주돼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MBC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을 불허했고, 전용기에서 특정 기자 2명만 따로 불러 대화를 나눴고, MBC 기자의 행태를 문제 삼아 도어스테핑을 중단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대통령 윤석열’보다는 ‘검사 윤석열’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지난 7월27일. 윤석열 대통령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이동관 대통령 대외협력특보를 임명했습니다. 이 특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내며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언론을 통제하고 선거에 개입한 정황으로 논란을 사는 인물입니다. 해당 검찰 수사는 2017년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시절 이뤄졌습니다. 이동관 특보는 일성으로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하는 가짜 뉴스와의 전쟁에 각국 정부와 시민 단체가 모두 그 대응에 골몰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지난한 이야기의 서막같이 느껴지는 장면을 소개하기 위해, 말이 길어졌습니다. 어떤 형태의 정부이든, 권력이 언론의 자유를 강조할수록 오히려 그것이 반대로 가는 경향을 목도하는 요즘입니다. 그렇기에 〈시사IN〉과 같은 언론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는 시절이 아닐까 자문도 해봅니다. 독자님 덕분에 가는 발걸음에 힘을 줘봅니다. 지치기 쉬운 계절이지만, 그래도 힘을 내보겠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