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만들며 요즘 머릿속에 맴도는 키워드는 경영입니다. 책을 만드는 일과 출판을 하는 일은 다른 것 같습니다
2024년 8월 첫째 주: 30호
안녕하세요. 이예은입니다.

주말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토요일에 평소 가고 싶었던 카페와 서점에 가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봤습니다.

제가 본 영화는 〈더 납작 엎드릴게요〉인데요. 법당 옆 출판사에서 일하는 막내 직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이한 제목, ‘출판사’라는 배경, ‘법당’에 속해있다는 설정 등이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영화에는 녹록지 않은 사회생활의 현장이 잘 담겨있어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았어요.

영화 속 출판사가 그리 멋있지는 않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저에게 출판사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괜히 출판사에서 일하는 제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어요. 물론 영화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지만요.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삶을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만드는 일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삶을 선물하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고요. 아무래도 영화가 그리는 출판사의 현실적인 어려움도 ‘출판’을 흠모하는 저의 마음을 없애지는 못한 것 같네요.

출판계에 종사하는 모든 분께 감사와 응원과 애정의 마음을 전하며, 오늘은 1인 출판사 바람이불어오는곳을 4년 넘게 운영 중인 박명준 대표님이 쓰신 글을 보내드립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출판의 기쁨과 슬픔

박명준

  

《중쇄를 찍자!(重版出来)》라는 일본 만화가 있습니다. 원작 만화를 읽기에 앞서, 만화를 극화한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주연배우의 캐릭터와 연기는, 이 배우가 출연한 다른 드라마를 여러 편 더 찾아보게 할 만큼 흥미로웠습니다. 일본 드라마 특유의 감동과 정성스러움 또한 곳곳에 배어 있었습니다.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어요. 책을(만화책을 내는 출판사가 작품 배경이니, 만화책을) 내고 서점에 배본된 초판이 다 판매되어 출판사에 재고가 떨어지면 다음 쇄를 찍어야 하는데요(두 번째 찍으면 2쇄, 세 번째 찍으면 3쇄). 이렇게 초판 이후 인쇄기를 돌려 다시 나오는 쇄를 통칭 ‘중쇄’라고 합니다. 주인공이 속한 편집부에서 만든 책이 중쇄를 찍게 되었다는 영업부의 전언이 들려오면, 편집부(주인공은 체대 유도부 출신으로, 책을 만드는 편집부에 배치된 말단 사원입니다) 직원 전체가 둘러서서 짝짝짝 손뼉을 치며 “중판출래(重版出来)!”라고 외친 뒤 서로에게 그리고 그곳에는 없지만 중쇄를 가능케 해준 독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초판을 다 팔고 중쇄를 찍는 일의 어려움과 기쁨, 감사와 벅참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세리머니일 텐데, 아주 유쾌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출판인이라면 가슴 깊이 공감할 만하겠지요.

“중판출래!”라며, 매번 그렇게 리추얼을 행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중쇄를 찍으면 출판사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중쇄를 찍지 못하면 출판사를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초판 2천 부를 팔면, 중쇄를 찍을 수 있고 계속 책을 낼 수 있습니다. 2천 부, 그러니까 2천 명의 독자에게 출판의 운명이 달려있는 셈입니다.

며칠 전 티브이에서 〈최강야구〉를 보았습니다. 퇴역 선수팀인 최강 몬스터즈와 현역 야구팀인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렸더군요. 화제의 경기를 직관하기 위해 사직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을 카메라가 훑고 지나가는 장면을 보노라니, 화면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더군요. 이 직관 시합의 표를 구하려는 동시 접속자 수가 45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사직구장 수용 인원을 찾아보니 2만3천 명이더군요. 2만3천 명의 응원과 환호 그리고 뜨겁게 연호하는 관중 앞에 서서 떨며 기뻐하는 선수들 모습에 빠져들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2만3천 명이 책 한 권씩 사주면 23쇄, 베스트셀러가 되겠네!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엄청난 열정과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 이들이 어찌 2만3천 명뿐이겠습니까. 표를 사기 위해 접속한 45만 명도 더 큰 전체의 일부이겠죠. 훨씬 많은 야구팬이 있을 텐데요. 만일 저들이 책을 사준다면, 출판도 저들과 같은 독자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일본을 다녀온 뒤로 일본 저자들 책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일본 근대 작가들이 쓴 소설을 탐독하고 그 가운데 문득 마주치는 기독교적 흔적을 흥미롭게 살피곤 합니다. 동시대 일본 책은 웬만해선 읽지 않았는데(지나친 요약에 깊이가 없다는 편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여행을 다녀온 뒤로 바뀌었습니다. 건축가, 디자이너, 편집자, 출판인이 쓴 최근 책들을 읽어봅니다.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간 일본 어느 작은 출판사 대표의 출판 이야기를 읽는데 제목만으로도 확 끌리더군요. 《재미난 일을 하면 어떻게든 굴러간다》라는 제목처럼 쉬운 낙관론을 펼치지는 않지만, 귀담아들을 이야기가 많습니다. 출판 대국 일본이라지만 그곳의 출판 현실 또한 녹록지 않으며 고됨도 만만치 않은가 봅니다. 출판사 두 곳을 거치며 출판 현실의 어려움을 실감한 저자는, 어려움이 기본값이라면 차라리 ‘명랑한’ 출판을 지향하기로 합니다. 큰 회사가 되기를 꿈꾸지 않고, 그 구조도 따르지 않으며(직원을 계속 늘린다든지, 매출 목표를 매년 상향한다든지 하는), 독자와 함께 가는 작은 출판을 하기로 한 것이죠. 어쩌면 제가 바라던 모습을 찾은 것 같아 반갑고, 기쁘고, 도움이 되었습니다.
책을 만들며 요즘 머릿속에 맴도는 키워드는 경영, 운영입니다. 책을 좋아하고 만드는 일과 출판을 하는 일은 다른 것 같습니다. 후자는 회사를 운영하고 유지하는 일, 즉 경영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제 겨우 4년을 넘긴 출판사 대표로서, 지속 가능한 출판을 할 수 있을지 궁구하고 있습니다. 심각하고 우울한 고민은 아니고요. 이 또한 출판의 과제요 품어야 할 영역이라 여기는 겁니다. “삶의 여정을 담은 즐거운 책을 만듭니다”라는 모토처럼, 만드는 이도 읽는 이도 새로운 여정으로 인도하는 즐거운 출판사가 되어가고 있는지, 지속될 수 있는지 자문하고 그 목표에 접근할 방법을 모색해보려는 것이죠.

독자와 함께 가는 즐거운 출판. 어쩌면 2천 명(3천, 4천… 1만이면 더 좋겠지만요)의 독자를 만들고, 그들과 서로 기쁨과 의미와 힘을 교류하는 출판에는 어떤 방법이 있을지 모색해봅니다. 길은 여러 가지겠지만, 독자와 함께, 즐겁게, 크게 되려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동안 재미와 의미를 공유하는 길과 방식을 시도하고 찾아보려고 해요.

슬픔 많은 칠 월이었습니다. 책 주문이 연중 최저치를 찍었으니 말이죠. 저희뿐 아니라 주변의 분들도 같은 한탄을 나눠주니, 용수철처럼 다시 일어날 탄력이 생기더군요. 지난 일에 매일 수 없어, 상반기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갈 계획을 세워 봅니다. 알랭 드 보통의 책 제목처럼, 모든 일에는 ‘기쁨과 슬픔’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슬픔도 있지만 기쁨이 더 많은 일. 기쁜 일이 있어서 기쁘기도 하지만 과정과 결과 자체가 기쁨일 수 있는 일. 그래서 계속 책을 만들고 소개하려는가 봅니다. 1년에 몇 번은 “중쇄를 찍자!”며 고개 숙여 감사하는 의식을, 기쁨과 감사로 나직이 외치게 될 것을 바라면서요.
박명준
책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미몽에 사로잡힌 편집자.


지난 호 의견💌

🗣️ 한때 사유마저 노동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독서란 ‘노동’이고, 때로 ‘고행’이다”이라는 말에, 늦은 나이에 책을 읽기 시작해서일까? 읽은 책이 얼마 안 되어서일까? 아직도 독서에 대해 할 말 없는 사람임에도, 무척 공감됩니다. 엔도 슈사쿠가 어느 책에선가 말한, ‘괴로운 즐거움’이 떠오릅니다.


취미 독서는 잊으라는 최재천 교수의 말에, 진작부터 갖고 있던 생각도 힘을 얻어요. 세계 곳곳을 다녀도 아무것도 보고 온 것이 없는 사람이 있듯, 책을 옆에 끼고 사는 어떤 다독가에게서도 독서가다운 면모를 볼 수 없는 경우가 있거든요.


아주 작지만 - 가진 능력만큼 그 크기가 비례할지 모릅니다 - 제 안에 있는, 숨기고 싶은 호승심도 인정해야 할 것 같고요. 호승심을 갖는 것부터가 부끄러울 만큼 너무 터무니없는 능력이라, 그걸 숨기고 싶어 전의식에만 들락날락하던 호승심이죠.


‘노동이고 때로 고행’ ‘취미독서는 잊으라’ 제 안에 새겨질 것 같습니다.


교정자의 매서운 눈과 판단을 염려하며 답편입니다.



〈서사의 서사〉 뉴스레터는 일주일에 한 편씩 발행됩니다. 아래 ‘구독하기’ 버튼을 누르시면 놓치지 않고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 주에도 유익한 이야기로 찾아뵐게요.



오늘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구독자님의 의견이 궁금해요!
〈서사의 서사〉에 바라는 점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피드백을 남겨주세요.



지난 뉴스레터
















편집 강동석 | 일러스트 이예은
복음과상황    |   goscon@goscon.co.kr   |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