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의 연애담론
  안녕하십니까.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는 게으른 한 주를 보낸 발행인이다. '아 이번주 일기는 뭐 쓰냐'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목요일이나 금요일 즈음 무슨 일이 생긴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는 일, 월, 화, 수요일을 보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날들은 솜사탕이 녹듯이 그렇게 싹 사라져서 입 안의 설탕 맛으로만 남은 그런 기분이다. 그럼 오늘의 일기도 클릭해주셔서 감사하다. 

  아, 그리고 지난주에 질문을 남겨주신 구독자 분이 계셨다. 오늘의 일기는 분량이 긴 편이기 때문에 그 콘텐츠는 다음 주에 가져오도록하겠다. 질문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목요일에 갑자기 라나 델 레이의 싱글이 3개나 나왔다. 6월 초에 싱글 나오고, 7월 초에 앨범 나온다길래 '아놔 겨울에 앨범 내고 앨범이 또 나와? 진짜?' 라고 놀랐다가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유튜브에서 알림이 왔다. 심지어 라나 인스타그램엔 이 세 곡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고 여름에 발매될 잭 안토노프 새 앨범 커버가 올라와있다. 아니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음원부터 똭! 올리고 올린 뒤에도 에센에스에 한 마디도 안하는 아티스트가 어딨냔 말이다. 

  세 곡 ('Blue Banisters', 'Textbook', 'Wildflower Wildfire') 모두 너무 좋지만 그 중 가장 좋았던 곡은 링크를 첨부해놓은 'Blue Banisters'이다. 라나 델 레이 노래답게 가사가 참 문학적인데 이에 더해진 자전적인 부분은 생생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가사 해석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작년에 바질을 심었던 곳 주변에 이 아이들이 씨를 퍼뜨려서 자생 바질이 자라났다는 이야기를 했었던가? 그 친구들이 10개 정도 나 있는걸 발견했는데 화단의 다른 부분에서 또다른 군락을 발견했다. 세상에. 여기에도 10개 정도의 싹이 있었다. 보다시피 너무 다닥다닥 붙어서 자라길래 며칠 전에 바질을 다시 심은 그 주변의 잡초를 뽑고, 이 친구들에게 넓직한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네일샵 선생님 피셜 나는 손톱이 작은데 내 새끼손톱만한 새싹들도 있다. 기특하고 귀엽다. 비를 맞았더니 더 씩씩해진 것 같다. 일용할 양식을 기르는 데에 있어서 항상 진심이지만 이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땅이 주는 신선한 음식 이상의 감동을 느낀다. 비록 농토는 아닐지라도 텃밭을 가꾸며 작은 생태계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밟고 있는 땅에게 감사하게 된다. 
  '오! 미자씨'라는 위트 있는 이름을 가진 오미자 막걸리를 마셨다. 오미자즙의 새콤함을 막걸리 특유의 크리미함이 잡아주는 매력적이지만 너무 기대한 맛이 나서 조금은 아쉬운 그런 술이었다. 직접 만든 레몬 딜 후무스와 참크래커를 곁들여서 먹었다. 참고로 레몬 딜 후무스에는 큐민을 넣지 않았고, 옥상에서 딴 딜을 사용했다. 

  친구와 카톡대화 중, 친구가 ‘낭만적이다’ 라는 표현을 썼다. 낭만적, 로맨틱, 모두 내가 좋아하지만 입 밖으로는 이상할만큼 내뱉어지지 않는 단어다. 그런 단어를 문어보다는 구어에 가까운 카카오톡에서 만나다니, 너무 반가웠다. 친구는 나의 지난 주 일기를 읽고 그 단어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신나고 고마웠다. 사진처럼 술상을 봐놓고 음악을 듣는 내게 그 친구가 해 준 말이었다. 흐리고 비가 오는 그런 밤이었다.

  그 단어가 가진 클리셰는 어떻게든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애둘러 말하게 만든다. 워낙 스테레오티피컬한 이미지가 강한 단어이기 때문에 나의 의도와 느낌과 판이하게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이 짙다. 내가 생각하는 로맨틱은 비 냄새와 섞인 풀냄새와 그 축축한 공기, 반스와 컨버스, 내추럴 와인과 동유럽 와인과 간단하지만 맛있는 음식들, 불량한 음식들의 조합이고, 비트가 강한 팝송, 락과 얼터네티브,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과 라흐마니노프의 랜덤 재생이다. 거기에 <오만과 편견>과 BBC 시대극의 형식을 참고한 90년대 피오나 애플과 PTA 커플이 더해진 무언가인데 남들이 생각하는 로맨틱은 <노팅힐>이나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사랑의 인사’, 하이힐과 파인다이닝이고, 배경으로는 꼭 에펠탑이 깔릴 것 같단 말이지. 그러고보니 구독자분들이 생각하는 로맨틱함이 궁금해진다. 여력이 되신다면 피드백 페이지에 남겨주시길 바란다.
  힙숙언니가 맥주 박람회였나, 어디에선가 구한 술들의 조촐한 시음회를 한다고 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동참했다. 시드르 두 종류를 맛봤는데 세상에..! 너무 맛있었다. 비가 왔다가 오지 않았다가 하는 흐린 날이라서 낮술이 더 운치있었다. 만들어놓고 건들지 않은 후무스(이건 큐민 들어간 거다)가 있어서 들고 갔는데 다들 너무 좋아해서 기뻤다. 나는 콩을 좋아하지 않는데 후무스는 세상 좋아한다. 좋은 사람들과 재밌는 대화와 맛있는 술의 조합은 그 순간이 가지는 애정 만으로도 로맨틱하다. 연애감정이 로맨틱함의 필수조건은 아니다. 
  그리고 같은 날,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나면서 해질녘 노을이 가진 빛깔들을 색, 색마다 다 볼 수 있었다. 마지막 사진에서 어릴 때 가지고 놀던 학종이의 색조합 같기도 하고, 죠스바 같기도 한 짙은 핑크빛은 지나가는 무언가를 잡으려는 미련 많은 손길 같이 보였다. 저 빛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 손을 잡아주는 기분이 들었다. 
<발행인의 연애지론>
  상 하던 생각이었고, 금요일 아침에도 그 생각을 했다. 그러던 와중 내가 며칠 동안 답장하지 않은 디엠에 하트가 눌렸고, ‘아차차 답장을 안했네’의 민망함과 함께 들어가보니 ‘애인과 헤어졌는데 내 얘기 좀 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오밤중에 무려 한 시간 반 동안 친구의 애인의 심리상태를 예측하고, 나의 연애 지론을 펼치고, 상대방의 행동의 의미를 분석해주고 나름의 솔루션까지 제안해주었다. ‘야 그렇게 잘났으면 너는 왜 장기간 솔로냐?’ 라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원래 나의 연애는 세상에서 제일 답이 없는 문제지만 남의 연애는 쉽다. 그리고 내가 ‘오늘부터 1일’을 안 한 거지 데이트를 안 한 게 아니다.  

  그래서 앞서 말한 그 생각이란 무엇인가 하니, 유튜버 오마르 님도 비슷한 영상을 올린 적이 있는데 바로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조금 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혼자 있을 때 킬링타임 이외의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유튜브 영상을 정말 재미 있어서 보는 것이 아닌, 혼자서 달리 할 게 없어서 일단 틀고 보는 것, 어떠한 인사이트를 얻거나 좋아하는 인스타그래머의 콘텐츠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죽이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하는 것 등이 모두 이에 포함된다. 예전에 ‘게임이라는 취미의 문제점은 그것이 진짜 즐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 할 게 없어서, 그러니까 그것 이외에는 딱히 할 만한 또는 할 수 있는 여가활동이 없어서 하는 것(그러니까 이와 관련된 교육도 필요하다~)’ 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더 깊은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글은 연애와 데이트는 별개의 행위임과 각 개인이 친구와 애인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음을 전제로 한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사람들은 단순히 혼자 있는 것이 싫어서 누군가를 만나기 때문이다. 시간을 함께 보낼 누군가가 필요한데 주변을 둘러보니 연인이라는 존재는 친구 이상의 긴밀함과 둘 만의 무언가라는 특별함을 두루 갖춘 관계처럼 보인다. 거기에다가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연결된 듯한 운명적인 바이브를 폴폴 퐁기는데 우리 둘을 묶어주는 이 붉은 실은 ‘너는 나만의 것(엘리자벳이 부릅니다 <나는 나만의 것>)’ 이라는 독점성을 부여한다. 게다가 미디어에서 비춰주는 연애란 곧 로맨스라서 연애의 밝은 부분만 부각되며, 이들 연애의 방해물은 당사자들이 아닌 외부에 있다. 하기사 연애의 어두운 부분만 주구장창 보여준다면 그 드라마를 누가 보겠는가?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로맨스는 100년도 더 된 클리셰에 상당히 충실한데 이 클리셰란 것이 유구한 역사를 지니다보니 우리는 어릴 적에 보던 디즈니 애니메이션부터 시작해서 연애가 무엇이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클리셰부터 학습한다. 그리고 자신의 연애가 이 클리셰와 어딘지 모르게 다른 부분을 발견하면 불안해하고, 불만족스러워한다.

  ‘사랑에 빠지면 어떤 기분이야?’라는 귀엽고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가지기 전에 연애란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팡팡 터지고, 뒤에서는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언제나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나만의 사람이 생기는, 뭐가 됐든, 어쨌든 ‘좋은 거’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혼자 있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기대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찾는 사람들에게 연인이란 마음 한가운데에 뻥 뚫린 구멍을 메꿔주고 나의 구질구질한 면을 포옹해 줄 수 있는 안성맞춤의 존재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마음을 돌보기 이전에 연애 상대를 찾아나선다.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들이 연애에 관심이 없거나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도 로맨스를 꿈꾼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고독감과는 별개로 혼자서도 꽤 만족스러운 순간들로 하루를 채우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연애 시장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때우거나 의지하기 위한 연애를 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단순한 호감 이상의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고 시작하는 연애가 아닌 ‘혼자 있는게 싫어서’ 시작하는 연애는 고약하다. 연애 상대가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동떨어져 있거나 로맨스의 클리셰에 부합하지 않으면 급격히 흥미가 떨어지고 ‘사귀기 전이랑 너무 달라’, ‘얘는 왜 이러는 거야?’ 등의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결국엔 헤어진다. 그것도 꽤 빠른 기간 내에. 이들은 첫만남과 ‘오늘부터 1일’의 기간도 짧은 편이다. 자신의 마음을 채 알아차리기도 전에 일어나는 호르몬의 농간에 알코올을 쳐서 만든 고백을 입 밖으로 내뱉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썸은 길어지면 안된다. 내 옆엔 항상 누군가가 있어야 되는데 썸이 길어지면 빈자리를 채울 기회를 놓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고백을 하지 않으면 자존심 상해하거나 자신의 매력이 떨어진다고 느끼기도 한다.  어쨌든 저 자리를 공석으로 냅둘 수는 없으니 대충 아무나 그냥 그럭저럭 나쁘지 않으면 일단 앉히고 본다. 저 사람이 누군인지는 사귄 다음에 알아가면 된다. 하지만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얼른 잡아서 앉힌 그 자리는 이별행 급행열차의 어느 한 구석이다. 그렇게 한 명을 태워서 보냈더니 또 빈자리가 생겼고 이 자리를 채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연애 시장에 나선다. 나한테 잘해주는 걸 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고,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몇 번 만나다보면 어느새 썸남/썸녀에서 남자친구/여자친구로 호칭이 바뀌어 있는데 아놔 쟨 또 왜 저래? 또 헤어지고 또 공석을 채우기 위해 나가고 몇 번 얼굴도 보고 술도 마시다가 보면 애인 자리가 채워져 있는데 아 미치겠다 옌 또 왜 저래 우리 헤어지자 아 공석 채워야지, 안녕하세요, 안녕, 연락하지마(...) 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혼자 있는게 싫다는 이유만 가지고 있으면 차라리 양호하다. 의지할 상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연애의 목적이 아닌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상대방에게 이 경험은 꽤 큰 상처로 남는다. 오늘의 주인공은 상대에 대해 가지는 기대가 큰만큼 바라는 것도 많고, 이것이 좌절되었을 때 느끼는 실망감도 크기에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한 행동이 더 큰 스트레스와 상실감으로 돌아오곤 한다. 상대방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이 짧다보니 정말 괜찮은 사람인지, 나와 잘 맞는 사람인지, 저 사람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 파악하기 어렵고, 그러다보니 흔히들 말하는 ‘쓰레기’를 만날 확률도 높다. 빈 자리를 채우는 데에 급급해하다보면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이루어지기 힘든데 여기에 온갖 감언이설과 플러팅이 더해지면 그 판단력은 더더욱 떨어진다(사실 꼬시려고 작정하면 무슨 말을 못하겠나). 이런 상황에서 자존감이 낮거나(자존감의 높낮이에 대한 담론은 뒤로하고, 일반적인 자존감의 특성을 떠올려보자) 타인의 인정을 갈구한다면 파국으로 가는 아우토반에 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빨리 가는데 그 빠름의 정도는 각각 다르다. 브레이크나 제대로 작동하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

  똑똑하고 현명한 척하는 어쩌면 건방지고 짧지 않은 비전문가의 지론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당신은 아마 이 글을 비판하기 위한 포인트를 찾고 있었거나 이 글에 어느 정도 공감했을 것이다. 잘난 척의 결론은 뻔하고 진부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라는 것이다. 내면의 구멍이 크지 않다면 혼자서 해결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구멍이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면 전문가와의 상담을 받을 것을 권유하고 싶다. 혹시나 이 발언을 불편하게 생각할 사람들에게 정신과병원과 심리상담은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뭐 이런 걸로 상담까지 받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알게 모르게 수많은 상처를 받고 그 상처들 중의 일부는 아물지 않은 채로 방치되고, 맞지 않는 연고를 계속 발라대서 딴딴하게 곪은 상태일 수 있다. 이 상처가 치료되지 않으면 우리는 원인 모를 문제를 해결하지 위해 맞지 않는 처방을 게속 받을 것이다. 감기 기운이 있는 사람이 따뜻한 음식과 감기약을 먹고 푹 자는 대신에 소주에 고추가루를 타서 원샷하는 것과 똑같다. 현재의 연애가 안정적일지라도 최근에 저런 경험을 했다면 진지하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길 권한다. 이는 당신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일 뿐만 아니라 당신의 애인, 미래의 동반자 그리고 당신의 보살팜과 애정에 예민하게 반응할 당신의 아이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아직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제공하는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알아보자). 그치만 외로운데 어떡하란 말이냐! 라는 질문에는 미안하지만 냉정하게 답하고 싶다. 당신의 외로움은 당신이 해결해야 되는 당신의 문제이다. 인간관계란 것이 혼자서 어떻게 한다고 굴러가고 굴러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당신의 애인은 어쨌든 타인이며, 타인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들엔 한계가 있고, 인간은 원래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고독한 존재이다. 당신의 심적인 문제로 인해 느끼는 외로움을 연인의 관심과 그가 주는 안정감으로 채우는 것은 일시적이다. 금이 간 유리병에 물을 부으면 처음엔 가득 차 있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물은 점점 새기 마련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누굴 만나도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당신의 뒤를 따라다닐 것이다. 
  2019년과 2020년에 뜨거운 성화와 함께 진행되었던 연말 설문조사를 좀 더 자주 만나보고 싶다는 요청에 따라 올해부터는 계절이 끝날 때마다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계절기억하고 다가오는 열기를 맞이하며 이 봄의 햇살을 만끽 해보는 것은 어떤가요? 아래 버튼을 클릭하면 설문 폼으로 연결됩니다. 
  저희 집 옥상 농장의 사진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텃밭을 가꾸면서 들은 깊은 생각들은 <해지면_일기>에, 사진 위주의 시간의 흐름은 블로그에 기록할 예정입니다. 
  감당 못 할 정도로 사진이 쌓이지 않게 자주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작년의 기록도 일부 볼 수 있으니(작년의 기록은 올해의 기록보다 글밥이 많답니다) 구경하러 가보세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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