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기억나지.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인데, 사실 그 날 다녀와서 많이 울었다. 너는 모르지.

내가 초등학생 일 때, 우리 집은 그리 부유한 편이 아니었다. 사실 그리 부유한 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그 시절을 기억하기 싫은 나의 방어적인 표현에 가깝고 조금 더 잔인하게 말하자면 우리 집은 많이 가난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인 그 나이에도 가난에서 오는 부끄러움은 알았는지, 매 학기마다 한 번씩은 친구들이 등교하기 한참 전 가장 먼저 교실에 도착해 선생님 자리에 무료 급식 신청서를 올려두곤 했다.

초등학교 6년, 그렇게 총 6번의 운동회에서 엄마는 딱 한 번 내 운동회에 왔었다. 물론 나의 고집으로. 다른 엄마들은 다 온다는데, 왜 엄마는 못 오는 거야? 나도 엄마랑 손잡고 릴레이 달리기하고 싶어. 엄마가 일을 나가야 하는 걸 알면서도 떼를 썼다. 엄마는 결국 나의 고집을 이기지 못했고 운동회에 오기 위해 일을 하루 쉬어야만 했다. 그 하루는 단순한 하루가 아니었다. 엄마의 하루는 우리 세 가족 모두가 하루를 더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가족 모두의 하루나 다름없었다. 엄마는 하루 일을 쉬면 가족의 하루가 준다는 것을 알았다. 

운동회 날, 엄마는 햄을 잔뜩 넣은 김밥과 유부초밥을 만들어 가져왔다. 내 입보다 큰 김밥을 한 입에 넣고 우물우물 먹는 나를 바라보며 1등 하려면 많이 먹어두어야 한다고 입가를 쓱 닦아줬다. 그날 우리는 1등을 하지는 못했지만, 참여상으로 일기장 다섯 권을 받았다. 상품으로 받은 일기장 첫 장에 트랙을 달리는 나와 엄마의 모습을 그리고서는 엄마가 운동회에 왔다고 대문짝만 하게 썼었다. 엄마는 그날 적은 나의 열 글자가 빚 독촉 문서보다도 더 무섭게, 그리고 무겁게 다가왔다고 했다. 하루하루가 무엇이 그렇게도 버거웠는지 나를 위해 단 하루 시간 내는 것조차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이 참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어렴풋이 엄마의 손을 잡고 결승선을 통과하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결승선을 지날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많이 울었었다고 말하는 엄마의 옆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릴레이 달리기를 했었을 때처럼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그렇게 조용히 한 번 더 결승선을 지나쳤다.

덧붙이는 말을 원하지 않는다는 F의 의견을 존중하여 이번 레터에서는 F의 글만을 올립니다. 하지만 구독자 여러분들의 감상평은 F에게도, 저에게도 큰 힘이 될 거예요. 오늘 일기장에 대한 감상은 창작자에게 남기는 편지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샤넬이 성폭력을 다루는 방법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