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다양한 사건들을 만들어내지만 우리가 그것을 해석하고 또 이해하려 애쓰고, 거기에 적절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경험으로 탈바꿈하니까요.
—올가 토카르추크 <다정한 서술자>

어느새 해의 끄트머리에 와 있습니다. 이맘때만 되면 돌림노래처럼 중얼거리게 되죠. 시간이 언제 이렇게 갔지?
계속 황망한 기분으로만 있을 수는 없으니 마음을 추스르며 연말의 의식을 치릅니다. 월간소묘 레터를 오래 봐온 분들이라면 아실 거예요. 12월 테마는 언제나 ‘연말정산’이죠. 온갖 다양한 사건들을 다시금 제 앞에 펼쳐놓고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작은 의미를 길어 올려요. 멀리 떨어져 있던 것들이 서로 가까이 하고, 중요해 보였던 것이 사소해지고, 스쳐 지나간 것이 새롭게 각인되는 경험. 그것이 제 삶으로 다시 쓰입니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인간이 “영혼과 육체, 그리고 서술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어요. 한 해 동안 영혼과 육체로 빚어낸 사건들 앞에 이제 서술자가 현현할 시간이고요.
이번 편지에서는 우선 연말정산의 단초가 될 오후의 소묘의 사건들을 전합니다. 달별로 레터에서 소개한 책과 서점을 정리하고, 날별로 그간 펴낸 책과 행사를 기록했습니다. 이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해 줄 서술자는 제가 아닌 여러분일 거예요. 여러분의 서술자가 들려줄 이야기를, 저는 기쁘게 기다리고 있을게요.

1월의 책_ 아니 에르노 <얼어붙은 여자>, 아나 크리스티나 에레로스/비올레타 로피스 <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
2월의 책_ 박보나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3월의 책_ 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조제 조르즈 레트리아/안드레 레트리아 <전쟁>,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4월의 책_ 카렐 차페크 <정원가의 열두달>, 강혜빈 외 <사랑에 대답하는 시>, 김선진 <농부 달력>
5월의 책_ 바실리 칸딘스키 <점·선·면>
6월의 책_ 대니 샤피로 <계속 쓰기>, 김선진 <버섯 소녀>
7월의 책_ 진고로호 <미물 일기>
8월의 책_ 신유진 <창문 너머 어렴풋이>, 파니 뒤카세 <곰들의 정원>
9월의 책_ 이미화 <영화관에 가지 않는 날에도>
10월의 책_ 고수리 <마음 쓰는 밤>
11월의 책_ 문이영 <우울이라 쓰지 않고> 
— ✲ —
2월의 서점_ 책방 시나브로
4월의 서점_ 플라뇌즈
6월의 서점_ 북새통문고
8월의 서점_ 스페인책방
10월의 도서관_ 구산동도서관마을
1월 10일 <허락 없는 외출> 3쇄, <할머니의 팡도르> 4쇄 발행 | 13일 <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 출간(발행일 21.12.31) | 19일 <두 여자> 전시 & 오후의 소묘 브랜드전 오픈 X 비플랫폼 | 20일 소묘 에디터 온라인 북토크 X 비플랫폼
2월 3일 <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 역자 온라인 북토크
3월 16일 <구름의 나날> 출간(발행일 22.3.21)
4월 18일 <사랑의 모양> 출간(발행일 22.4.20) | 22일 <구름의 나날> & <사랑의 모양> 역자 온라인 북토크
5월 25일 <섬 위의 주먹> 4쇄 발행 | 27일 <버섯 소녀> 북펀드 오픈
6월 4일 <버섯 소녀> 전시 오픈 | 22일 <버섯 소녀> 출간(발행일 22.6.21), <버섯 소녀> 2차 전시 오픈 X 사슴책방
7월 20일 <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 2쇄 발행
8월 2일 <곰들의 정원> 출간(발행일 22.8.8) | 24일 소묘 에디터 북토크 X 중랑상봉도서관 | 29일 <레몬 타르트와 홍차와 별들> 출간(발행일 22.8.30)
9월 1일 <꽃들의 말> 3쇄 발행 | 7일 소묘 살롱 | 18일 <곰들의 정원> & <레몬 타르트와 홍차와 별들> 역자 온라인 북토크
10월 26일 <우울이라 쓰지 않고> 출간(발행일 22.10.31) | 28일 <인생은 지금> 5쇄 발행
11월 5일 소묘 살롱 | 15일 <마녀의 매듭> 출간(발행일 22.11.22) | <우울이라 쓰지 않고> 저자 북토크 X 작업책방 씀
12월 10일 소묘 살롱 | 14일 <하얀 방> 출간예정(발행일 22.12.9)
✶ 연말정산 이벤트 ~12월 23일
레터 하단의 [답장하기]를 통해 오후의 소묘와 얽힌 올해의 특별한 날을 소개해 주세요.(예: 오후의 소묘 책을 선물받은 날, 소묘가 소개한 책방을 산책한 날, 책의 발행일과 내 생일이 같다! 등등 ;)
이름과 연락처 남겨주신 분들 중 추첨을 통해 올해 마지막 책이 될 <하얀 방>을 선물로 보내드릴게요.
한 해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오래 새로운 이야기 써나가요.  
[…]

“책만 팔아서는 유지하기 힘들어요.”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분들과 직접 인연이 있다면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사실 동네책방의 단골손님만 되어도 충분히 들어봤을 법한 말일 거예요. 책만 팔아서 서점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건 그다지 비밀도 아니니까요. 상황이 이런 터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동네책방은 서점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플러스알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유료 독서모임이나 북토크, 문화행사 등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아요. 그건 책을 판매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동네책방의 핵심 사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플러스알파에 해당하는 건 책이나 디자인과 관련된 외주 활동, 직접 책을 펴내는 출판 활동, 교육 커리큘럼 운영, 술이나 음료 판매 등이에요. 학생운동선수를 위한 학습권 보장 제도 같은 건 없지만 월세와 생활비의 보전을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건 아마 카페 운영일 거예요. 학업과 운동, 카페와 서점, 커피와 책, 원두와 원고..?
 
커피와 책. 저희를 오래 봐오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월간소묘]도 처음엔 커피와 책으로 시작했어요. 매달 추천할 만한 커피 원두를 골라서 정성껏 볶은 다음 그 향과 맛에 꼭 어울리는 책을 함께 보내드리는 정기구독 서비스였죠. 커피와 책이 든 박스에 짧은 편지를 함께 적어 동봉했는데 그게 [월간소묘: 레터]의 기원이 되었고요. 그러다가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정기구독 대신 커피와 책 추천를 담은 뉴스레터로 바뀌었고 어느 순간 커피 이야기가 아닌 다양한 연재 글과 오후의 소묘 소식이 담기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커피와 책을 묶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둘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커피야 짝을 이루는 대상을 다양하게 고를 수 있을 테지만, 책은 독서가 고독한 행위다 보니 무언가와 어울리기 어렵습니다. 술과 책, 이렇게 즐기는 분들도 적지는 않겠지만 어느 순간 술이 책을 압도해 버리기 쉬운 위험한 조합이죠. 담배와 책, 글쎄요,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네요. 쿠키와 책, 손에 뭔가 묻으면 번잡해져서 독서에 집중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그런데 커피와 책은 각자 구축한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부드러운 조화를 이루죠. 특히 책이 중심일 때 커피는 그 향만으로도 독서 만족도를 두 배쯤 높여주는 것 같아요. 혹시 커피를 즐기지 않거나 카페인이 부담스러운 분들은 커피 자리에 각자 좋아하는 차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예요.
 
어쨌거나 이달의 산-책은 커피를 찾아서, 아니 책을 찾아갔더니 커피와 함께였던 곳에 다녀왔어요. 서울에서 KTX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교통의 중심지이자 여자배구 KGC인삼공사의 연고지인 대전을 찾아갔습니다.
 
이름부터 흥미로운 공간인 ‘즐거운커피×한쪽가게’는 처음에 ‘즐거운커피’라는 이름의 카페였다고 해요. 단골손님들이 만든 수공예품이나 작품을 카페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테이블 하나를 따로 빼서 운영하기도 했는데 그 이름이 ‘한쪽가게’였고요. 그리고 카페 시절부터 책을 매개로 한 독서모임 등을 활발하게 운영하셨다고 해요. 그렇게 부천에 있다가 대전으로 내려오면서 책방을 함께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어차피 카페의 일부가 무언가를 판매하는 ‘한쪽가게’였으므로 두 이름을 합쳐서 커피와 책이 있는 공간이 된 거죠. 인스타그램의 소개를 볼까요.
 
한쪽가게(즐거운커피)
읽는 사람을 위한 작고, 조용한 공간.
책과 커피가 있어요.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느낌이 왔습니다. 따뜻한 공간이다. 가게를 잠깐 둘러보는 중에도 잘 꾸며놓은 곳곳에 눈길이 갔어요. 적절한 위치에 자리 잡은 작은 조명들, 체리 원목 톤으로 칠해진 가구들 사이에 놓인 아담한 식물들, 안쪽 서가 바닥의 널빤지 마루, 조용히 앉아 책 읽기 좋은 작은 책상과 의자들, 그리고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 주인장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꾸며졌지만 단순히 그 취향을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을 반기는 마음이 듬뿍 담긴 곳이었습니다. 환대의 공간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  [하얀 방] 12월 14일 출간 예정

🧙‍♀️  [마녀의 매듭]
“마녀나 악녀 이야기 좋아하고 그 안의 모순을 들여다보는 것은 더 좋은데 <마녀의 매듭>이 그런 이야기. (…) 바렌고의 그림 속에서 마녀는 귀여웠다가 사악했다가 웃겼다가 꼴뵈기 싫었다가 좀 불쌍해지기도 했다가 결국에는 짠하리만치 행복한 얼굴이 되는데, 마지막 표정은 가려져 있다. 결말의 알쏭달쏭한 문장과 굳게 닫힌 문은 상상을 부추기는 질문인 동시에 그 근거를 찾아보라는 주문이기도.” _박서영(무루) 역자 후기(?)에서

  • 리뷰로 만나보세요. 
    숲속 동물들의 두려움보다 마녀의 심술이 더 와닿았던 건 나만 나는 나의 매듭 때문이겠지. 누구나 갖고 있을, 가장 어두운 슬픔을 가둬놓은 자기만의 매듭. 마녀에게 날아온 초대장과 한 올 한 올 풀어낸 매듭은 다른 세계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었고, 기쁨의 맛을 머금은 비스킷과 아름다운 포옹의 춤은 더없이 따뜻했으리라. _eggmony 
    
    너무너무 좋아하는 그림작가 모니카 바렌고의 작품. 역시나 개성 있고 위트 있는 긞체가 인상 깊고, 이 포근한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 중의적인 표현으로 무장한 ‘매듭’의 의미도 👍 관계에 있어 어려움은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음을 동화적이게 잘 표현한 작품. _luke_evans_x 
    
    책의 마지막 장면쯤에 ‘내가 마녀였구나‘ 것을 깨닫게 된다. _elinowave 
    
    숲속 동물들이 보낸 초대장에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머리카락에 묶어둔 무수한 매듭을 풀고 저 작은 대야 앞에 웅크려 앉은 마녀가 너무 귀엽다. 머리를 감으며 조금 벌어진 입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상상하게 된다. 다정과 온기 말고 심술의 빗장을 풀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_etrebooks
    
    내안의 마녀가 얽힌 매듭도 풀고 정성스레 빗질도 한다. 그러다 모두 화해하고 해결된 듯 싶어도 끝은 아닌… 참 좋은 그림책 만나서 기쁘다. 강추!!! _jihe_bb
    
    늘 외로운 마녀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우리네 모습과 많이 닮았다. _backhj0811
살롱 노트 <함박눈을 기다리며> 좋았어요 :) ‘모두 하늘에서 방금 내려온 것들’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것이 수증기를 내뿜었다’ 같은 문장에 제 마음에도 함박눈이 쌓이는 듯했어요.

마음에도 함박눈이 쌓였다니, 기쁜 말씀_! 올겨울 눈이 몇 번인가 내렸다는데 저는 단 한 번 싸리눈만 보았어요. ‘함박눈을 기다리며’ 이 글을 다시 가만가만 곱씹어보게 되는 시간이에요. 고맙습니다.  
12월의 편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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