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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팔아서는 유지하기 힘들어요.”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분들과 직접 인연이 있다면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사실 동네책방의 단골손님만 되어도 충분히 들어봤을 법한 말일 거예요. 책만 팔아서 서점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건 그다지 비밀도 아니니까요. 상황이 이런 터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동네책방은 서점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플러스알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유료 독서모임이나 북토크, 문화행사 등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아요. 그건 책을 판매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동네책방의 핵심 사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플러스알파에 해당하는 건 책이나 디자인과 관련된 외주 활동, 직접 책을 펴내는 출판 활동, 교육 커리큘럼 운영, 술이나 음료 판매 등이에요. 학생운동선수를 위한 학습권 보장 제도 같은 건 없지만 월세와 생활비의 보전을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건 아마 카페 운영일 거예요. 학업과 운동, 카페와 서점, 커피와 책, 원두와 원고..?
커피와 책. 저희를 오래 봐오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월간소묘]도 처음엔 커피와 책으로 시작했어요. 매달 추천할 만한 커피 원두를 골라서 정성껏 볶은 다음 그 향과 맛에 꼭 어울리는 책을 함께 보내드리는 정기구독 서비스였죠. 커피와 책이 든 박스에 짧은 편지를 함께 적어 동봉했는데 그게 [월간소묘: 레터]의 기원이 되었고요. 그러다가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정기구독 대신 커피와 책 추천를 담은 뉴스레터로 바뀌었고 어느 순간 커피 이야기가 아닌 다양한 연재 글과 오후의 소묘 소식이 담기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커피와 책을 묶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둘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커피야 짝을 이루는 대상을 다양하게 고를 수 있을 테지만, 책은 독서가 고독한 행위다 보니 무언가와 어울리기 어렵습니다. 술과 책, 이렇게 즐기는 분들도 적지는 않겠지만 어느 순간 술이 책을 압도해 버리기 쉬운 위험한 조합이죠. 담배와 책, 글쎄요,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네요. 쿠키와 책, 손에 뭔가 묻으면 번잡해져서 독서에 집중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그런데 커피와 책은 각자 구축한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부드러운 조화를 이루죠. 특히 책이 중심일 때 커피는 그 향만으로도 독서 만족도를 두 배쯤 높여주는 것 같아요. 혹시 커피를 즐기지 않거나 카페인이 부담스러운 분들은 커피 자리에 각자 좋아하는 차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예요.
어쨌거나 이달의 산-책은 커피를 찾아서, 아니 책을 찾아갔더니 커피와 함께였던 곳에 다녀왔어요. 서울에서 KTX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교통의 중심지이자 여자배구 KGC인삼공사의 연고지인 대전을 찾아갔습니다.
이름부터 흥미로운 공간인 ‘즐거운커피×한쪽가게’는 처음에 ‘즐거운커피’라는 이름의 카페였다고 해요. 단골손님들이 만든 수공예품이나 작품을 카페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테이블 하나를 따로 빼서 운영하기도 했는데 그 이름이 ‘한쪽가게’였고요. 그리고 카페 시절부터 책을 매개로 한 독서모임 등을 활발하게 운영하셨다고 해요. 그렇게 부천에 있다가 대전으로 내려오면서 책방을 함께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어차피 카페의 일부가 무언가를 판매하는 ‘한쪽가게’였으므로 두 이름을 합쳐서 커피와 책이 있는 공간이 된 거죠. 인스타그램의 소개를 볼까요.
한쪽가게(즐거운커피)
읽는 사람을 위한 작고, 조용한 공간.
책과 커피가 있어요.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느낌이 왔습니다. 따뜻한 공간이다. 가게를 잠깐 둘러보는 중에도 잘 꾸며놓은 곳곳에 눈길이 갔어요. 적절한 위치에 자리 잡은 작은 조명들, 체리 원목 톤으로 칠해진 가구들 사이에 놓인 아담한 식물들, 안쪽 서가 바닥의 널빤지 마루, 조용히 앉아 책 읽기 좋은 작은 책상과 의자들, 그리고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 주인장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꾸며졌지만 단순히 그 취향을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을 반기는 마음이 듬뿍 담긴 곳이었습니다. 환대의 공간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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