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같은 남의 집 이야기
일흔여덟 번째
※본 소설은 픽션이며 완전 허구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름을 제공해주신 '다희'님께 감사인사를 전해드립니다.
※본 회차 관람 전 아래의 링크에서 <저택의 청소부들 (2)>를 관람하시면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저택의 청소부들 (3)

   속았다.


   지영은 우울하게 사무실을 안내하는 도윤을 뒷모습을 응시했다. 청부살인이라니! 자신은 청부살인은커녕 청부의 ㅊ자도 관련이 없는 사람인데, 이런 위험한 일에 선뜻 휘말려도 되는 것인가. 아니 애초에 블랙 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이렇게 쉬운 일이어도 되는 것인가. 전에 있던 회사의 부장을 저주한 것이 문제인지, 아님 오랜 실직에 분별력이 없어진 것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울고 싶었다.


   그저 실업 급여가 끝나는 것에 맞춰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청부살인에 가담하게 되었다. 자신의 인생에 이렇게 허무하게 빨간 줄이 그어진 것이다. 물론 아직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었으므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이 막돼먹은 불법 업체를 경찰에 신고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방금 전에 건넨 도윤의 협박과 괴상한 일이 마음에 걸려 지영은 오도 가도 못하고 멍하니 그를 따라가야만 했다. 


   겉모습 번지르르한 레스토랑 건물 아래에는 지하 통로가 있었다. 주방에서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며 지영은 자신이 청부살인부에 취직이 된 것이 아니라 실은 장기를 털리러 가는 것이라는 착각에 혼란스러웠지만, 우려와 달리 지하의 시설은 멀쩡한 사무실이었다. 청부살인업체면서 정상적인 모양새를 하고 있는 건물의 모습에 기가 막혔으나, 그러니 암암리에 일을 저지르는 것이겠지 생각하면 이내 마음이 꺾였다.


   사무실에는 3명의 사람이 오피스 테이블에 앉아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근무복은 조리복인지 모두가 비슷한 스타일의 이상한 팀복을 입고 있었고, 이전에 봤던 레스토랑의 매니저 같아 보이는 사람 또한 있었다. 저 사람도 청부살인부라니. 관상은 정말 믿을 것이 못 된다. 지지부진한 생각을 이어가며 멍하니 걷던 지영은 갑작스레 걸음을 멈춘 도윤과 부딪히고 말았다. 아, 이대로 기절하면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여전히 부정하고 싶은 지금은 현실이었다. 


   “첫날이라 정신없죠?”

   “네…….”


   불법적인 일을 하는 주제에 건네는 말은 순 일반적인 회사의 사수였다. 저 그럴싸한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저지르는 건달이라는 것에 학을 뗀 지영이 얌전히 도윤의 안내에 따라 그의 옆에 섰다.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된 서지영 씨입니다.”


   일을 하고 있던 직원들이 지영과 도윤이 들어온 것을 눈치채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지영은 가뜩이나 낯설고 무서워 눈치만 보는데 박수까지 받으니 몸이 굳어버려 가만히 부동자세로 박수 세례를 받았다. 지영이 눈을 찔끔 감았다.


   “드디어 우리 부서에 신입이!”

   “이러다 일만 하다 죽나 싶었는데 신입이 들어오긴 하는 거였군요.”

   “…….”


   순서대로 밝은 갈색 머리에 단발을 한 여성과 피곤에 찌든 뿔테안경을 낀 남자가 차례로 대답했다. 지배인으로 보인 중년의 남성은 아무 말없이 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들어오면 안 될 곳에 들어온 승냥이를 보는 눈빛이라 지영은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아르바이트 전단을 보고 왔다고 했을 때 당황하는 것을 보고 나갔어야 했는데. 아니 시체 잘 보냐는 질문에서? 아니면 사람 죽인 적 있느냐고 물어본 것에서? 그러나 후회해 봤자 결국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잘 부탁드려요….”


   지영이 소심하게 대답하자 도윤이 웃음을 터뜨렸다. 딱 죽고 싶었다

•••

   갈색 단발머리를 한 명랑한 선임의 이름은 이다희. 예명은 찹스틱이었다. 그리고 다크서클에 뿔테 안경을 낀 선임의 예명은 스포크로 자신을 정우라고 소개했다. 레스토랑의 지배인으로 착각했던 중년의 남성의 이름은 김성화로 키친의 부장이자 나이프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예명은 스푼이 되었는데, 이는 이전에 스푼의 닉네임을 쓰던 사람이 키친에서 나가게 되어 물려받게 된 이름이었다. 그들은 스푼의 공석으로 인해 일 무덤에 파묻혔던 지난날을 토로하며 지영을 성대하게 환영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자기소개를 마친 지영에게 도윤은 앞으로 그녀가 일할 자리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는 혼란스러운 지영에게 키친과 저택에 관해 여러 정보를 알려 주기 시작했다.


   키친은 평상시에는 일반적인 식당으로 운영하나 그렇다고 아무 손님이나 받지 않는 철저한 예약제 레스토랑이다. 이곳은 주로 기밀이나 지령과 같은 비밀스러운 명령을 받고 정보를 공유할 때 이용하는 장소였는데 청부살인에 관한 명령을 지시하는 것은 ‘저택’의 주인이라고 했다. 키친이 소속된 기업 ‘저택’은 블랙 기업이지만 청부살인만을 업으로 삼는 블랙 기업이 아니었다. 저택에서는 다양한 불법적인 일이 자행되었는데(…) 마약이나 도박과 같은 유흥업부터 무기 밀매, 사채까지 그 가짓수가 상당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저택의 주인을 위해 자행되는데,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오직 저택의 간부들 밖에 없다고 도윤이 덧붙였다.


   “포크도 저택의 주인을 본 적은 없는 건가요?”

   “저택에는 몇 가지 괴담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저택의 주인의 얼굴을 본 사람은 사지 멀쩡히 돌아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지영이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다물자 도윤은 설명을 이어갔다. 키친은 청부살인을 담당하는 부서인만큼 실제 살인 의뢰를 받기도 하지만, 그 단계가 까다로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키친의 주된 업무는 공간을 관리하고 간부와 직원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도윤과 정우는 셰프로 음식을 만든다. 그럼 바텐더인 성화가 와인을 비롯한 다양한 칵테일 및 음료를 제조하고, 다희가 서빙한다. 서빙은 보통 이인조로 구성되지만 스푼의 공석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다희 홀로 서빙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지영 또한 다희와 함께 서빙을 진행하게 될 예정이다.


   서빙하는 메뉴는 지령의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메뉴는 손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닌 각각의 지령에 따라 달라진다. 지영이 해야 할 일은 손님이 말해주는 코드를 듣고 그에 알맞은 음식과 음료를 서빙하는 일이었다. 언뜻 보면 가벼워 보이는 일이었지만 은근히 종류가 많아 외우기 까다로웠는데, 도윤은 어차피 다음 주부터 실무에 투입될 예정이니 천천히 외우라고 그녀를 독려했다. 도윤은 초면에 무례하게 대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지영의 업무에 대한 설명만큼은 소상히 알려주었는데 지영이 그 이유에 대해 묻자 도윤은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여기가 아무리 접대만 받는 레스토랑이라고 해도 한 번 실수했다가 어떤 무서운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자세하게 알려줘야죠.”


   그 말에 지영이 의지를 불태우며 메뉴를 외우자 도윤이 또다시 크게 웃어대기 시작했지만 지영은 그것을 무시하고 억지로 메뉴판을 외웠다. 


   “아, 참고로 청부살인 업무에 배당받았을 때, 지영 씨는 시체 처리 업무를 주로 하게 될 것입니다. 처리하는 방법은 추후 의뢰가 들어오면 알려드리도록 하죠.”


   지영은 어쩐지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 또한 그녀의 운명이었으니 눈물을 머금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외에 업무 체계나 시스템에 관해 전달을 받자 어느덧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되었다. 정신적으로 몰린 상태여서 그런지 첫날이라 그런 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어떠한 문제없이 수월하게 인수인계가 진행되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아 보였던(?) 성공적인 첫 출근이었지만 어쩐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내일부터 무단결근을 하고자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후환이었으니. 결국 지영은 암담한 기분을 느끼며 역으로 비실비실 걸어갔다

작가의 말  
벌써 3회! 감사합니다.  
베스트 댓글  
ㄴ 두바이 나그네(ID) 
심상치 않은 저택 내부가 궁금해요 🫨
ㄴ 서교동 붙박이(ID)
나 진짜 지영이었으면 도망갔다 아… 아니다 무서워서 그냥 지영이처럼 일했으려나 근데 음료랑 음식이 먹는 거(…)는 맞는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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