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단발머리를 한 명랑한 선임의 이름은 이다희. 예명은 찹스틱이었다. 그리고 다크서클에 뿔테 안경을 낀 선임의 예명은 스포크로 자신을 정우라고 소개했다. 레스토랑의 지배인으로 착각했던 중년의 남성의 이름은 김성화로 키친의 부장이자 나이프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예명은 스푼이 되었는데, 이는 이전에 스푼의 닉네임을 쓰던 사람이 키친에서 나가게 되어 물려받게 된 이름이었다. 그들은 스푼의 공석으로 인해 일 무덤에 파묻혔던 지난날을 토로하며 지영을 성대하게 환영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자기소개를 마친 지영에게 도윤은 앞으로 그녀가 일할 자리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는 혼란스러운 지영에게 키친과 저택에 관해 여러 정보를 알려 주기 시작했다.
키친은 평상시에는 일반적인 식당으로 운영하나 그렇다고 아무 손님이나 받지 않는 철저한 예약제 레스토랑이다. 이곳은 주로 기밀이나 지령과 같은 비밀스러운 명령을 받고 정보를 공유할 때 이용하는 장소였는데 청부살인에 관한 명령을 지시하는 것은 ‘저택’의 주인이라고 했다. 키친이 소속된 기업 ‘저택’은 블랙 기업이지만 청부살인만을 업으로 삼는 블랙 기업이 아니었다. 저택에서는 다양한 불법적인 일이 자행되었는데(…) 마약이나 도박과 같은 유흥업부터 무기 밀매, 사채까지 그 가짓수가 상당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저택의 주인을 위해 자행되는데,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오직 저택의 간부들 밖에 없다고 도윤이 덧붙였다.
“포크도 저택의 주인을 본 적은 없는 건가요?”
“저택에는 몇 가지 괴담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저택의 주인의 얼굴을 본 사람은 사지 멀쩡히 돌아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지영이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다물자 도윤은 설명을 이어갔다. 키친은 청부살인을 담당하는 부서인만큼 실제 살인 의뢰를 받기도 하지만, 그 단계가 까다로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키친의 주된 업무는 공간을 관리하고 간부와 직원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도윤과 정우는 셰프로 음식을 만든다. 그럼 바텐더인 성화가 와인을 비롯한 다양한 칵테일 및 음료를 제조하고, 다희가 서빙한다. 서빙은 보통 이인조로 구성되지만 스푼의 공석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다희 홀로 서빙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지영 또한 다희와 함께 서빙을 진행하게 될 예정이다.
서빙하는 메뉴는 지령의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메뉴는 손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닌 각각의 지령에 따라 달라진다. 지영이 해야 할 일은 손님이 말해주는 코드를 듣고 그에 알맞은 음식과 음료를 서빙하는 일이었다. 언뜻 보면 가벼워 보이는 일이었지만 은근히 종류가 많아 외우기 까다로웠는데, 도윤은 어차피 다음 주부터 실무에 투입될 예정이니 천천히 외우라고 그녀를 독려했다. 도윤은 초면에 무례하게 대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지영의 업무에 대한 설명만큼은 소상히 알려주었는데 지영이 그 이유에 대해 묻자 도윤은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여기가 아무리 접대만 받는 레스토랑이라고 해도 한 번 실수했다가 어떤 무서운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자세하게 알려줘야죠.”
그 말에 지영이 의지를 불태우며 메뉴를 외우자 도윤이 또다시 크게 웃어대기 시작했지만 지영은 그것을 무시하고 억지로 메뉴판을 외웠다.
“아, 참고로 청부살인 업무에 배당받았을 때, 지영 씨는 시체 처리 업무를 주로 하게 될 것입니다. 처리하는 방법은 추후 의뢰가 들어오면 알려드리도록 하죠.”
지영은 어쩐지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 또한 그녀의 운명이었으니 눈물을 머금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외에 업무 체계나 시스템에 관해 전달을 받자 어느덧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되었다. 정신적으로 몰린 상태여서 그런지 첫날이라 그런 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어떠한 문제없이 수월하게 인수인계가 진행되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아 보였던(?) 성공적인 첫 출근이었지만 어쩐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내일부터 무단결근을 하고자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후환이었으니. 결국 지영은 암담한 기분을 느끼며 역으로 비실비실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