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경 방북 초청' 조선학생위 결성 63주년
2020년 이후 활동상 '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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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 금지령을 무시하고 도쿄와 베를린, 모스크바를 경유, 지난 1989년 6월 30일 혼자 평양에 도착한 한국외국어대학의 임수경 양이 환영인파에 둘러싸여 있다. 1989.7.1 (평양=연합뉴스) <저작권자 ⓒ 2003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본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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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북한 대학생 단체인 '조선학생위원회'가 20일 결성 63주년을 맞이한다.
조선학생위원회는 1960년 5월 20일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조직된 대학생 중심의 정치조직이다. 북한은 학생들을 인재와 유능한 간부로 양성하기 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단체는 1989년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밀입북한 임수경 양을 초청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1989년 7월 1일∼7일 열린 평양축전에 참가한 임수경은 판문점을 통해 귀환한 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가 19대 국회의원(2012∼2016년)이 됐다.
당시 검찰의 구속영장에 따르면 조선학생위원회 등은 1988년 12월 28일 평양방송과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전대협에 초청장을 보내 "최근 그대들이 평양축전에 참가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시대와 역사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확고한 의지의 발현이라고 인정"한다면서 환영했다.
평양축전(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주도한 조선학생위는 전대협과 함께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관한 북남청년학생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은 조국통일은 남북 청년학생들의 삶과 투쟁의 최우선 목표라고 천명했다. 이어 ▲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 ▲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 남북 불가침선언 채택 ▲ 남북교차승인과 유엔 동시가입 등 2개의 한국정책 배격 등 8개 항을 담았다.
당시 한양대 총학생회장으로 전대협 3기 의장이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 전 의원의 방북 사건을 주도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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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 전대협 대표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문규현 신부의 판문점 통과 전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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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에는 조선학생위가 주도해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결성을 전대협과 공동 결의했다.
1992년 5월 말 조선학생위 위원장인 문경덕(현 평안북도 당 책임비서)은 전대협 6기 출범식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북한은 평양방송을 통해 전대협 측과 베를린에 있는 조선학생위 대표가 국제전화로 20여분간 공개적으로 남북·해외동포 청년학생들이 참가하는 범청학련 결성 등을 논의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후 조선학생위는 전대협 후신인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과 전화 회담을 했다. 공안정국에서 1993년 5월 한총련의장단 11명 전원에 구속영장이 발부되기도 했다.
1997년 6월 조선학생위는 한총련이 검찰에 의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규정되자 맹렬히 비난하면서 조직 사수와 재건 투쟁을 선동했다.
2000년 6월 15일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훈풍을 타고 조선학생위는 2002년 10월 남북해외청년학생 통일대회를 금강산에서 공동개최했다.
하지만 2002년 11월 주한미군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 후 미국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하면서 남한 내 반미 운동을 부추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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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금강산 문화회관서 열린 남북대학생 상봉모임의 조선학생위원회 기(좌)
[연합뉴스/사진공동취재단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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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생위는 2003년 9월 평양 청년중앙회관에서 남북 청년학생 상봉모임을 진행하고 이듬해 3월에는 금강산에서 남북 대학생 '통일토론회' 행사를 가졌다. 남북대학생 금강산 상봉행사는 2005년 5월, 7월에도 이어졌다.
학생위는 2007년 1월 박종철 열사 20주기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북핵문제 악화와 남북관계 경색으로 이후 조선학생위의 남북 대학생 상봉행사는 중단됐다. 2020년 이후에는 북한 매체에서 조선학생위도 제대로 언급되지 않고 활동상이 감감하다.
조선학생위는 사회주의적 성향인 국제학생동맹에 가입해 1967년부터 부위원장국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sungjin@yn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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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중앙이 밝힌 새시대 농촌혁명강령을 빛나게 실현해서 농업생산에서 근본적인 변혁, 실제적인 변화를 이룩할 열의안고 모내기로 들끓고 있는 사회주의전야 그 어디서나 령도업적 단위들이 앞장에 서 내달리고 있습니다. 한평생 인민들의 먹는 문제 해결을 위해 그토록 마음 써오신 위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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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감행되는 전쟁도발책동의 끝은 어디인가 조선중앙통신 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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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반도정세가 폭발직전의 단계로 거침없이 육박하고있다.
미제와 괴뢰호전광들은 력대 최장기의 《프리덤 쉴드》합동군사연습과 사상최대규모의 《쌍룡》련합상륙훈련에 이어 우리를 겨냥한 형형색색의 반공화국전쟁연습을 끊임없이 감행하면서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엄중히 위협하고있다.
《쌍룡》훈련이 끝나기도전인 4월 3일 조선동해상에 미해군의 핵항공모함 《니미쯔》호,이지스구축함 《디케이터》호,《웨인 이.마이어》호와 일본해상《자위대》의 구축함 《우미기리》호,괴뢰해군의 각종 함선을 전개해놓고 《북잠수함에 대한 공격》을 모의한 음파탐지,추적,파괴절차를 숙달하는 련합해상훈련을 광란적으로 벌리였다.
5일에는 《확장억제실행력제고의 행동화》를 줴쳐대며 괌도에 전진배치된 핵전략폭격기 《B-52H》와 《F-35A》,《F-35B》스텔스전투기들을 괴뢰지역상공에 띄워놓고 전쟁광기를 부렸으며 14일에도 핵전략폭격기 《B-52H》를 또다시 투입하여 련합공중훈련을 감행하였다.
17일부터 28일까지 방대한 전략무력이 동원되여 하늘과 바다에서 동시에 벌어진 전쟁연습은 올해 상반기의 력대 최대규모로서 조선반도와 지역의 정세를 더욱 격화시켰다.
미제와 괴뢰들은 한개 전쟁을 치를수 있는 각종 항공타격수단들을 투입하여 이른바 《련합편대군종합훈련》을 감행하였으며 같은 기간 조선동해에서는 미해군과 일본해상《자위대》의 이지스구축함들인 《벤폴드》호와 《아따고》호,괴뢰해군의 이지스구축함들이 동원된 련합해상훈련이 벌어졌다.
이어 미특수전사령부와 괴뢰륙군특수전사령부가 동원된 특수고공강하훈련,괴뢰군단독의 지상협동훈련,기동 및 실탄사격훈련 등 미처 손꼽을수 없을 정도의 전쟁연습이 쉴새없이 벌어져 조선반도정세는 더욱 위태로운 지경으로 치달았다.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제와 괴뢰들의 침략적인 군사적압박소동은 《워싱톤선언》의 공표와 때를 같이하여 《확장억제력》의 《실행력제고》라는 간판밑에 더욱 로골적이면서도 위험천만한 형태로 진화되고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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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최후멸망의 날》을 재촉하고있다 조선중앙통신 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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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문제평론가 김명철이 19일 발표한 글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최후멸망의 날〉을 재촉하고있다》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1년전 우리는 우크라이나위기는 곧 미국의 위기이며 종국적패자는 바로 미국이 될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미국의 대로씨야압박전략의 직접적산물인 우크라이나위기가 발생한지 450일이 지난 현시점에서 우리는 미국과 서방집단이 리성을 잃고 넘지 말아야 할 최후의 한계선을 넘고있는 모습을 목격하고있다.
우크라이나위기의 발생초기 그 무슨 《방어용무기지원》을 운운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장비지원에 《조심성》을 보이던 미국은 우크라이나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이 확실해지자 드디여 본성을 드러내고 대대적인 무기지원열을 고취하고있다.
어제는 《재블린》과 《스팅거》와 같은 휴대용반장갑,반항공미싸일제공이 기본이였다면 오늘은 자칭 《첨단병기》라고 일컫는 《HIMARS》방사포와 《패트리오트》요격미싸일체계가 우크라이나전장에 쓸어들고있으며 《에이브람스》 미국제 주력땅크도 조만간 흉악한 형체를 드러낼 전망이다.
수만명에 달하는 우크라이나고용병들이 미국제로 무장하고 미국식으로 훈련되여 또다시 피비린내나는 전장에 내몰리우고있으며 미국이 파견한 교관들이 직접 우크라이나고용병들을 지휘하고있다.
세계최대의 채무국으로서 곧 국가채무불리행위기에 직면하게 될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현 미행정부는 450억US$분의 대우크라이나긴급안보지원을 책정하였으며 저들의 추종세력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에 나서도록 추동질하고있다.
현재까지 미국주도의 나토성원국들은 《레오파르드-2》,《챌린져 2》를 비롯한 주력땅크 230여대와 장갑차 1,550대,무인기와 직승기,대구경포,각종 구경의 탄약들을 포함하여 710억US$에 달하는 살인무장장비들을 우크라이나의 손에 쥐여주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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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人] ⑥김용화 "탈북모자 아사 사건 후 4년간 달라진 게 없다"
'아시아 빠삐용' 탈북난민인권연합회장 "탈북민 소식 끊기면 신속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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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발급받은 주민등록증을 든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 [촬영 최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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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현석 기자 = "2019년 탈북여성 모자 아사 사건 이후로도 지난 4년간 정책적으로 달라진 점이 없다."
김용화(70)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은 지난 11일 오전 서울 강동구 길동 건물 지하의 사무실에서 만나 이같이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서울 양천구에선 보건복지부·지자체·통일부 세 기관의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된 40대 탈북민이 백골 상태 시신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탈북 모자를 중국에서 데려왔던 김 회장은 "탈북민들에게 정보가 원활하게 전달되도록 정부가 탈북자 단체를 하나로 연결해줘야 한다"며 "소외된 이들의 소식이 끊겼을 때 빨리 대응할 수 있는 체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탈북난민인권연합은 소외되고 위축된 탈북민의 외부 활동을 유도하기 위해 2012년부터 매달 2회씩 '사랑과 희망 나눔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날도 단체 사무실에선 50여명의 탈북자가 찬송가를 부르고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를 한 뒤 농마(녹말)국수와 가줄(전통과자), 낙지자반(오징어무침) 등 북한 음식을 나눠 먹고 있었다.
김 회장은 18년째 이 단체를 이끌고 있다.
다음은 문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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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상대로 연설하는 김용화 회장 [촬영 최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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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 동기와 과정을 말해달라. ▲ 사회안전성(경찰청) 철도보안국에 근무했는데 1988년 7월 러시아에서 평양으로 가던 군수열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열차 호송 책임자인 내가 당성 부족으로 동지재판(동료들이 죄를 묻고 처단하는 행위)에 회부될 위기에 처하자 중국으로 탈출했다. 중국 옌지에서 11개월간 걸어서 선양, 톈진, 쿤밍을 거쳐 베트남 하노이까지 갔다. 베트남 하이퐁항에서 한국 무역선에 오르려다 체포돼 2년간 수감된 뒤 북송 직전 탈옥했다. 라오스로 밀입국했다가 체포돼 9개월 수감된 뒤 탈출해 중국 산둥성 하이양현으로 갔다. 한국인 지원으로 0.3t짜리 쪽배를 산 뒤 18일간 노를 저어 1995년 6월 25일 태안에 도착했다.
-- 한국에 도착한 후 생활은 어땠나. ▲ 위조 중국 신분증 때문에 24차례 재판에도 탈북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3년간 서울구치소, 성동구치소 등을 전전했다. 1998년 보석으로 나와 신원보증을 해준 국회의원 건물에서 거주했는데 경찰관 17명이 잡으러 와서 차를 후진해 뚫고서 명동성당까지 갔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보호해 주고 수녀들이 자금을 지원해줘 진도로 가서 그해 4월 배를 타고 일본으로 밀항했다.
-- 한국 국적은 언제 취득했나. ▲ 일본 오무라수용소에서 3년간 옥살이를 했지만, 변호사 4명의 도움으로 영주권을 갖게 됐다. 일본에서 '아시아 빠삐용'으로 소문났다. 일본인 2천400명이 김대중 당시 대통령에게 탄원 편지를 써 한국 입국이 허용됐지만 공항에 내리자 중국 한족으로 분류됐다. 김 추기경의 소개로 나를 알게 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2001년 의원들을 통해 중국 당국으로부터 탈북자 증명원 등을 받아왔다. 덕분에 국회에 가서 드디어 주민등록증을 받았다.
-- 과거 횡령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받았는데. ▲ 2015년 횡령 사건이 터지고 실무자가 내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2019년 징역 1년을 살았다. 그러나 회원들은 당시 실제 횡령한 실무자한테 내가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회장직을 유지하는 데 모두 동의했다.
-- 탈북 이후 가족들 소식은 들었나. ▲ 가족들이 요덕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됐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 후로 어떻게 됐는지 알지 못한다. 부인과 세 아이. 세 누나, 남동생 모두 살던 지역에서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용서가 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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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바닷가에 밀려온 북한어선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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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계기로 단체를 설립했나. ▲ "받은 만큼 돌려주라"는 김 추기경의 말씀을 듣고서 '다시는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탈북자동지회에서 만난 홍순경 이사장과 중국에서 떠도는 탈북자를 적극적으로 살려보자는 취지로 2005년 5월께 탈북난민인권연합 전신인 '탈북난민인권협회'를 설립했다.
-- 그동안 탈북자를 몇 명이나 구출했나. ▲ 약 6천명의 탈북자를 구출했다. 평양시 인민위원회 생산지령 처장(서울시 부시장급) 출신으로 중국에서 외화벌이하던 북한 주민을 데려온 게 기억에 남는다. 중국으로 팔려 갔다가 병에 걸리자 버려진 여성을 현지에서 6개월간 치료한 뒤 한국에 데려왔다. 현재는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잘 살아가고 있다.
-- 탈북민의 정착에 필요한 부분은 무엇이 있나. ▲ 서울시가 탈북민 임플란트 치료를 지원하고 있었는데 최근에서야 알았다. 우리 등록회원이 1천300명에 달하지만, 작년 파주에서 열린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체육대회 공문을 아무도 받지 못했다. 정부와 남북하나재단, 지자체, 탈북단체들이 수시로 만나며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탈북민의 고충을 듣고 해결해줄 수 있는 법률자문단 등도 시급하다. 독신으로 사는 탈북민이 아프거나 사망했을 때 방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와 탈북민 단체가 함께 빨리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2019년 탈북여성 모자 아사 사건 이후 대책이 마련됐나. ▲ 탈북여성이 굶어 죽기 2~3개월 전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는데 구청에서는 (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지원이 안 된다고 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사건 이후 달라진 점을 체감할 수 없다. 오히려 사건 이후 남북하나재단과 통일부 정착지원과 간 소통 과정이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졌다. (다른 탈북자들은 하나원 교육 이후 재단이 정착을 지원해 주는데 얼마 지나면 딱히 정보를 주는 건 없다고 말했다.)
-- 최근 약 6년 만에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통한 가족 단위 탈북이 이뤄진 배경은 뭐라고 보나.(지난 18일 추가 질문) ▲ 황해도와 강원도 상황이 최악이기 때문에 해안가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넘어오는 것 같다. 북한이 바로 붕괴하지는 않겠지만 본격적인 탈북 재개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본다. harri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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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 이후 북한과의 교역이 활발해진 가운데 북중 4월 교역액이 전달보다 26% 증가했다. 지난 18일 중국 해관총서(세관) 발표에 따르면 4월 북중 교역은 1억9천998만달러(약 2천678억원)로 집계됐다. 북한 수입은 1억6천578만달러(약 2천220억원)로, 전달보다 20.2% 늘었고, 북한 수출은 3천421만달러(약 459억원)로, 전달보다 66.5%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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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국경 봉쇄 여파로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수는 67명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버타 코언 북한인권위원회(HRNK) 명예 공동의장은 18일(현지시간) 민주주의기금(NED)과 후버연구소, HRNK가 공동 주최한 북한 인권 콘퍼런스에서 "강제 북송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3만3천여명의 탈북민이 중국 및 동남아를 거쳐 한국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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