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기계 대신 손을 사용한다는 뜻일까. 조금 느리게, 서로 다른 물건을 만든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사람이 손으로 만든 물건은 모두 핸드메이드일까. 전문가와 아마추어 사이에 나타나는 직관의 차이는 자신이 축적한 패턴의 수에 있다. 전문가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많이 보고, 너무 많이 반복해서 이제는 생각하는 과정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핸드메이드 작가의 손도 그렇다. 오래 일한 손은 흙을 만진 뒤 수분을 계산하지 않는다. 나무를 두드린 뒤 밀도를 분석하지 않는다. 천을 잡아당긴 뒤 장력을 측정하지 않는다. 만지는 순간 안다. 조금 더 말려야 하는지, 여기서 멈추어야 하는지, 힘을 더 주어야 하는지, 오늘의 재료가 자신의 의도를 어디까지 허락하는지도 안다. 우리는 그것을 감이라고 말한다.


“감이 좋으시네요.”


하지만 감이라는 말은 너무 가볍다. 그 감을 얻기까지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재료를 망쳤는지, 얼마나 많은 밤을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보냈는지, 얼마나 많은 실패를 손끝으로 기억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장인의 손은 기억한다. 머리는 실패를 잊어도 손은 힘을 주어야 할 때를 기억한다. 눈이 차이를 발견하지 못해도 손은 미세한 두께를 기억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어도 손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손재주가 아니다. 손의 지능이다.


대량생산은 손의 자리를 기계로 옮겼다. 인공지능은 그 기계에 판단력까지 더하고 있다. 인공지능도 학습한다. 수많은 글과 그림, 데이터를 읽고 그 안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낸다. 사람이 평생 보지 못할 만큼 많은 것을 짧은 시간에 학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학습과 장인의 학습은 무엇이 다를까. 둘은 모두 반복 속에서 배운다. 그러나 같은 방식으로 배우지는 않는다. 인공지능이 오류의 기록을 읽는다면, 장인은 오류가 일어나는 순간을 몸으로 통과한다. 흙이 무너지고 나무가 갈라지며 실이 끊어지는 순간, 불이 계획을 거스르고 자신의 손마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순간의 저항을 몸으로 겪는다.재료는 화면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명령을 입력한다고 해서 언제나 같은 결과를 내놓는 것은 아니다. 어제 잘 통했던 방법이 오늘은 통하지 않고, 같은 흙도 날씨에 따라 달라지며, 같은 나무도 결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쪼개진다.


그래서 핸드메이드 작가는 재료를 지배하지 않는다. 재료와 협상한다. 오늘의 흙에게 묻고, 나무의 결을 읽고, 불이 허락하는 만큼 기다린다. 재료가 자신의 계획을 거절하면 다시 계획한다.


손은 재료에 힘을 가하지만, 재료도 손을 가르친다. 사람이 물건을 만드는 것 같지만, 물건을 만드는 동안 재료도 사람을 만들고 있다. 처음 만드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재료에 강요하기 쉽다. 머릿속의 모양을 그대로 만들려고 한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재료가 나쁘거나 도구가 부족하거나 자신에게 손재주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만들어 온 사람은 다르다.


그 사람은 만들기 전에 듣는다. 이 재료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무엇이 되어서는 안 되는지, 어디까지 자신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살핀다.

그 차이는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숙련되지 않은 작업에서는 사람의 의도가 재료의 성질보다 앞서기 쉽다. 숙련된 작업에서는 재료의 성질까지 드러난다. 뛰어난 작업에서는 사람과 재료 가운데 누가 먼저 말했는지 알 수 없다. 사람의 생각과 재료의 성질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물건은 제작자의 주장만 담지 않는다. 재료의 시간과 지역의 기후, 손의 습관과 반복의 역사까지 함께 품는다.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솜씨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태도가 된다. 핸드메이드 브랜드의 차별성은 여기서 시작된다. 손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손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서 시작된다. 손으로 만든 물건에는 작은 차이가 있다. 흔히 우리는 그 차이를 핸드메이드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모양이 조금씩 다르고, 표면이 고르지 않으며, 미세한 자국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가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서투른 결과도 제각각이고, 실수와 불량도 저마다 다르다. 핸드메이드의 불균일함과 품질 부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장인의 물건이 조금씩 다른 것은 똑같이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서로 다른 재료를 똑같이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무의 결이 다르니 다르게 깎고, 흙의 상태가 다르니 다르게 누르며, 불의 움직임이 다르니 매번 다른 순간에 멈춘다. 대량생산의 일관성은 차이를 제거하면서 만들어진다. 핸드메이드의 일관성은 차이를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핸드메이드 브랜드의 품질 기준은 모든 제품이 똑같은가에 있지 않다. 모든 제품에 같은 태도가 담겨 있는가에 있다. 형태는 조금씩 달라도 기준은 같아야 한다. 표정은 달라도 철학은 같아야 한다. 한 사람이 만드는 브랜드라도 어제와 오늘의 약속은 같아야 한다.


제품마다 생기는 차이는 개성이 될 수 있지만, 그 차이를 다루는 기준은 브랜드의 약속이다.손의 흔적은 품질을 대신하지 않는다. 품질 위에 사람을 남긴다. 인공지능이 보편화될수록 완 성도 높은 결과물은 더 많아질 것이다. 더 빠르게, 더 정교하게, 더 저렴하게 일정 수준 이상 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왜 손으로 만든 물건을 선택할까. 조금 비뚤어졌거나 세상에 하나뿐이기 때문 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물건 속에 담긴 만든 사람의 시간을 만나기 위해 핸드메이드 브랜드를 선택할 것이다. 이 물건을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재료를 선택했는지, 무엇을 포기하지 않았 는지, 얼마나 오래 같은 일을 반복했는지를 알고 싶어 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패턴을 모아 새로운 결과를 만든다.

장인의 손은 수많은 실패를 견디며 하나의 기준을 만든다.

그러므로 인공지능 시대에 핸드메이드 브랜드가 지켜야 할 것은 불완전함이 아니다.

기준이다. 그 기준을 손이 기억하게 하고, 물건이 증명하게 하며, 사용자가 느끼게 하고, 시 간이 확인하게 해야 한다. 손은 물건을 만든다. 그러나 오래 일한 손은 물건만 만들지 않는다.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고, 태도를 만들고, 마침내 브랜드를 만든다.

핸드메이드 브랜드는 손으로 만든 브랜드가 아니다.

손의 지능으로 만든 브랜드다.

정효선 작가는 풍경을 그대로 옮겨 그리지 않는다. 눈앞의 풍경이 작가의 기억과 감정을 통과하고 나면 실제와 닮았지만 어딘가 다른 그림이 된다. 그림 속에는 수원 화성의 성곽과 오래된 골목, 계 절에 따라 달라지는 나무와 가게가 있다. 같은 장소를 다시 그리면 그림도 달라진다. 풍경이 조금 씩 변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풍경을 한 장의 그림으로 붙잡는 사람. 정효선 작가는 그림보다 기억을 남긴다.

오래전부터 바라본 풍경

언제부터 그림을 좋아했습니까?

어릴 적 사진을 정리하다가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팔달산에서 제가 직접 그린 성곽 그림을 들고 서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고 알았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 풍경 을 좋아했구나.’ 그때는 몰랐는데, 돌아보니 오래전부터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창문을 열면 수원 화성이 보이는 집에서 자랐다고 들었습니다.

어릴 때는 그냥 당연한 풍경이었습니다. 매일 보니까 특별한 줄도 몰랐습니다. 국사 선생님께 사도세자와 영조의 비극,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마음과 수원 화성 축성에 관한 이야 기를 들었습니다. 눈앞에 장면이 그려지는 것처럼 생생하고 인상 깊었습니다. 그 이야기의 배 경이 되는 수원 화성이 실제로 우리 집 창문 너머에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창밖 풍경이 제 기억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나무가 자라 성곽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풍경도 그렇게 조금씩 변해 갑니다.


어반 스케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창작을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안정 적인 직업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림이 아닌 다른 일도 해 봤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힘들 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제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디 지털 작업과 달리 결과물이 손에 남는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그림 한 장을 완성하면 마음의 빈 곳이 조금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상품을 만들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펜과 수채 물감으로 지금 눈앞에 보이는 풍경 을 그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보고 그렸는데도 실제와 똑같지는 않았습니다. 제 내면의 필터를 거친 것처럼 어딘가 다른 풍경이 그려졌습니다.


그림은 불안을 막아 주는 방패다

그림 한 장을 완성했을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무엇입니까?

강한 몰입입니다. 평소에는 바쁘게 일상을 보내면서도 한 사람의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땅속으로 꺼지는 것처럼 불안감이 밀려옵니다.

그런데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하면 그 불안에 휩쓸리기 전에 단단한 방패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림에 집중하고 몰입하면서 마음이 안정됩니다.


손으로 그린다는 것은 단순한 제작 방식입니까?

손으로 그리는 일은 제가 살아온 시간과 지금 느끼는 감각을 남기는 방식입니다. 그림은 사진처럼 대상을 정확하게 복제하는 일이 아닙니다.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다르고, 남기고 싶은 부분도 다릅니다. 완벽함은 이미 사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림에는 그린 사람이 보고 느낀 것이 남습니다. 고객들도 제 그림에서 완벽함보다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 같습니다.


손이 먼저 기억하는 감각

머리보다 손이 먼저 기억하는 감각도 있습니까?

오래 그릴수록 물과 물감의 농도, 붓에 물감이 스며드는 느낌에 예민해집니다. 그 미세한 차이가 그림의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꾸기도 합니다. 물감은 그날의 온도와 습도에도 반응합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계속 물과 종이의 상태를 살피게 됩니다. 이런 감각은 설명을 듣는다고 바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복해서 그리고 실패하는 동안 손이 먼저 기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하루는 어떻게 시작됩니까?

날씨가 좋으면 그림 도구를 챙겨 야외로 나갑니다. 미리 생각해 둔 장소에 가서 캠핑 의자를 펴고 자리를 잡습니다. 그렇게 눈앞의 풍경을 그립니다. 그림이 완성되면 작업실로 돌아와 스캔한 뒤 컴퓨터로 편집합니다. 이후 엽서나 굿즈로 만들 그림은 인쇄소에 제작을 의뢰합니다.

밖에서 풍경을 관찰하고 손으로 그리는 일부터 하나의 상품으로 완성하는 과정까지 모두 제 작업입니다.   


오랫동안 사용하는 도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화려한 도구보다 손에 익은 도구가 좋습니다. 연필과 만년필, 붓, 팔레트, 수채화용 종이 패 드, 캠핑 의자와 물통을 주로 사용합니다. 몇 년째 모나미 만년필과 미젤로 물감을 쓰고 있습 니다. 비싼 도구라서가 아니라 오래 사용해 제 손처럼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손에 익은 도구 는 안정된 감각을 줍니다. 가끔 낯선 도구로 실험적인 시도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 가장 오래 사용한 도구로 돌아오게 됩니다. 좋은 도구보다 오래 손에 익은 도구를 더 믿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오래 걸리는 과정은 무엇입니까?

펜 작업을 끝낸 그림에 수채 물감으로 색을 입히는 과정입니다. 수채화는 물을 다루는 작업이라 한 번에 끝낼 수 없습니다. 젖은 종이 위에 물감을 떨어뜨리기에 좋은 순간이 있고, 표면이 마른 뒤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물감을 물에 풀어 색과 농도를 조절하고,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색을 겹쳐 올립니다. 그렇게 색을 켜켜이 쌓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습니다. 시간을 줄이기 어려운 과정이지만, 그 기다림까지 그림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풍경은 사라져도 그림은 남는다

왜 수원의 풍경을 계속 그립니까?

제가 가장 오래 살아온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장소를 해마다 다시 찾아가 보면 꽃이 달라지고, 가게가 바뀌고, 길도 조금씩 변합니다. 풍경은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매일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라진 풍경도 많습니까?

많습니다. 전시했던 갤러리도 없어졌고, 그림으로 남겼던 가게도 사라졌습니다. 드라마 촬영지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모습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그림은 남더라고요. 그림을 다시 펼치면 그때의 시간과 감정이 함께 떠오릅니다.


작가님은 풍경을 그리는 사람입니까, 기억을 남기는 사람입니까?

생각해 보니 기억을 남기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매향동 골목을 그린 그림을 보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산책길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며 구매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그림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했던 시간을 다시 꺼내 드리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요.


여행은 끝나도 기억은 남는다

사람들은 작가님의 그림을 왜 가져갈까요?

그림보다 시간을 가져가는 것 같습니다. 수원을 여행했던 하루, 행궁동 골목을 걸었던 기억, 햇빛이 좋았던 오후를 집으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여행했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그림은 그날의 기억과 느낌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의 기억을 한 조각 간직하기’라는 문장을 쓰셨습니까?

네. 그 문장이 제 작업을 가장 잘 설명합니다. 저에게 브랜드란 멋진 로고나 이름보다 고객의 삶에 남는 기억에 가깝습니다. 제가 만든 상품을 통해 수원에서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기억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소중해질 수 있도록 상품의 완성도도 높이고 싶습니다.


작가님의 작업을 가장 잘 설명하는 풍경은 어디입니까?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하나 고르라면 방화수류정입니다. 방화수류정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고 성곽길을 산책하는 장면이 제 작업을 가장 잘 설명합니다. 특히 여름날 방화수류정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행궁동을 걷다 보면 드라마 속 한 장면 같은 풍경을 마주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순간을 엽서 한 장에 담습니다. 누군가 제 그림을 보며 그 장소를 떠올리거나 직접 찾아가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좋겠습니다.


필요한 것만 만들기 위하여

작품과 굿즈를 만들 때 재료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합니까?

창작을 지속하는 일뿐만 아니라 환경의 지속 가능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림과 굿즈를 만들 때 종이를 주재료로 사용합니다. 플라스틱이나 비닐 소재보다 환경에 부담을 덜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종이라고 해서 아무런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물건을 많이 팔수록 이익을 얻는 구조에서는 필요하지 않은 상품까지 만들어 내기 쉽습니다. 그래서 필요하지 않은 상품까지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지 창작자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기후와 쓰레기 문

제는 이제 외면하기 어려울 만큼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오래 창작하려면 제작자로서의 양심과 책임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만들지 않기로 결정한 상품도 있습니까?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마그넷과 키링은 제작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최근 많이 만들고 판매하는 상품이지만, 버려질 때 재료를 분리하기 어렵습니다. 가격을 맞추려면 대량으로 생산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재질이 딱딱하고 미끄러워 손으로 만졌을 때의 느낌도 제가 원하는 방향과 달랐습니다. 잘 팔릴 수 있는 상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그리기 위한 현실

소량 생산을 유지하면서 창작을 지속하려면 어떤 현실적인 기준이 필요합니까?

상품의 가격이 너무 낮으면 아무리 많이 판매해도 창작자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의 종류를 넓히는 동시에 창작자에게 안정적인 수입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상품도 개발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그림을 오래 그리려면 창작의 가치와 현실적인 수익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저에게 지속 가능성은 환경에 관한 문제인 동시에 계속 그림을 그리며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반 스케치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혼자 그리는 것도 좋지만 같이 그릴 때가 더 즐겁습니다. 같은 풍경을 보고 그려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누군가는 건물에 집중하고, 누군가는 나무나 사람을 먼저 봅니다. 어반 스케치는 그림을 잘 그리는 것만큼 함께 그리고 공유하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면 제가 보지 못한 장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을 때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함께 그리는 사람들은 단순한 고객이나 마케팅을 위한 공동체가 아닙니다. 같은 가치를 나누며 서로에게 새로운 시선을 열어 주는 사람들입니다.


AI가 그림을 그리는 시대입니다. 그래도 사람의 손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공지능은 빠르고 능숙하게 그림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명령을 내리는 사람의 생각이 필요하고, 그때그때 판단하며 고쳐 나가는 섬세한 작업에는 아직 사람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앞으로는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저도 호기심에 AI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거나 조언을 구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세세한 답을 얻기도 했지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창작품은 한 사람이 자신의 몸으로 생각하고 살아온 궤적을 담은 결과물입니다. AI는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지만 제가 살아온 시간을 대신 그릴 수는 없습니다. 같은 풍경을 보아도 사람마다 기억하는 장면이 다릅니다. 그 차이는 기술이 아니라 삶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AI가 작가님의 그림을 완벽하게 모방한다면, 끝내 따라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그 풍경을 바라보며 살아온 시간입니다. 어릴 때 창문 너머로 바라본 수원 화성, 팔달산에서 성곽을 그렸던 기억, 해마다 달라지는 골목을 걸었던 시간이 제 그림 안에 들어 있습니다. 겉으로 비슷한 그림은 만들 수 있겠지만, 왜 그 장소를 바라보았고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었는지까지 똑같이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끝까지 자기 손의 힘을 믿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나 많습니다. 하지만 제 그림은 지금의 제가 그릴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림입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제 그림을 계속 그리는 사람, 자신만의 시선과 개성을 잃지 않은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제 그림을 보고 말해 준다면 좋겠습니다.

“이 풍경 속에 한 번 가 보고 싶다.”

“이곳에서 살아 보고 싶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정효선 작가는 풍경을 그린다. 그러나 그림에 남는 것은 건물과 골목만이 아니다.

창문 너머로 바라보던 수원 화성, 여름날의 방화수류정, 행궁동을 걸었던 한낮의 햇빛,이제는 사라진 가게와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 함께 남는다.

풍경은 달라지고 장소는 사라진다. 사람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흐려진다.

그래서 정효선 작가는 오늘의 풍경을 손으로 그린다.

완벽하게 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보고 느낀 시간을 남기기 위해서다.

정효선 작가는 그림을 파는 사람이 아니다. 여행이 끝난 뒤에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기억 한 조각을 건네는 사람이다.

타스의 브랜드 편지는 시즌 1 [유니타스브랜드], 시즌 2 [엔텔러키 브랜드], [아내가 창업을 한다], [브랜드의 탄생], [거리에서 브랜드를 배운다]를 비롯해 지금까지 발행한 브랜드 관련 서적과 자료, 그리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작성됩니다.

브랜드를 쉽게 이해하고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구독자님의 브랜드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혹시 궁금한 점이나 더 깊이 알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그림은 AI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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