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준비청년과 좋은 어른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연결합니다.

성실한 용재의 단단한 생각

“저는 빈칸이 있는 사람이에요

용재는 고민은 깊게 하고, 실행은 빨리 하는 청년입니다.

결정을 했다면,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죠.

무엇이든 해보고, 경험해봐야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

용재의 단단한 생각은 언제나 반짝반짝 빛납니다.

Q1. 용재의 독립하던 날이 궁금합니다.

긴 시설 생활을 끝내고 자립을 준비하는 제 머릿속에는 자유에 대한 뜨거운 기대와 책임이라는 차가운 걱정이 동시에 존재했어요. 하지만 복잡 미묘했던 그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자립은 기대했던 것보다 자유롭지 못했고, 걱정했던 것보다 걱정스럽지도 않았어요. 퇴소하고 독립한 다음날부터 '뭘 챙겨 먹을까'하는 미지근한 생각들로 하루하루 채워졌던 거 같아요.

Q2. 용재가 처음 허들링에 참여한 건 20235월에 진행된 랄랄라 운동회였죠. 3월부터 시작되는 허들링에서는 좀 늦은 참여였는데 왜 가입하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지원 사업에서 만난 친구가 사업에 와서 노트북으로 뭔가 열심히 하길래 뭘 하냐고 물어보니깐 허들링에 관한 작업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허들링은 어떤 지원 사업이냐고 물어보니, 그냥 만나서 놀고, 다양한 걸 한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재밌을까 궁금해서 당장 지원했어요. 사실 호기심 뒤에는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던 것 같아요.

Q3. 허들링에 기대했던 마음과 현실은 어떻게 달랐고, 어떤 점은 기대 이상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기대는 없었어요. 그저 허들링에 내 몸 하나 소속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허들링에 들어와서 새롭게 느낀 건데요. 우리에게 관심과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어요. 허들링에 치어빌더라는 어른들이 있고, 그분들이 우리에게 관심이 있고 많이 도와주고 싶어한다고 들었을 때는 의심이 있었죠. 어떤 사람들이, 왜 우리한테 관심을 갖나. 숨은 의도는 뭘까, 이런 마음이 있었어요. 의심이 풀렸던 게 치어빌더님들도 우리를 도와주고 좋은 얘기를 해주려고 오셨는데 그 속에서 진심으로 새로운 걸 깨닫고 있다는 순간을 보여줘가지고. 이런 거 나 몰랐어라며 솔직하게 말해주는 모습을 보고 저분들도 나쁜 의도가 아니고 우리랑 즐기려고 있는 거구나 느꼈어요.

 

다른 지원 사업들은 1년 동안 하더라도 사업이 끝나면, 만날 일도 없으니까 굳이 억지로 친해질 필요가 없다 생각하고, 내 프로젝트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해야 할 것만 하고 집에 가면은 되니까 굳이 속마음을 말한다거나, 고민을 나누지는 않아요. 그런데 허들링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믿음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어차피 내년에도 허들링은 그 자리에 있을 거고, 제가 한 해 하지 못해도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정서적 고향 같은?


독립하기 전에 자립생활관에 있었고, 거기에서 잘 지내고 오래 지내기도 했지만 다시 돌아가기가 좀 그래요. 시간이 지나면 모두 독립해서 나가고, 아는 친구들도 없고. 물론 허들링도 사람들이 바뀌기도 하겠지만, 남아있을 사람은 남아있고, 드라마틱 하게 사람들이 사라지고, 바뀌고 그건 아니니까요. 친해진 애들한테 연락할 수 있고, 계속하는 친구들은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쌤들도 언제나 허들링에 계시고요.

<달리기 모임 '허들런' 멤버인 짜응, 용재, 유랑이 마라톤을 준비하는 달리기 연습하고 인증샷!>
Q4. 허들링 활동 1년이 용재의 독립과 일상에 도움이 되었나요? 활동하고 난 이후의 변화도, 어떤 점이 좋았는지도 궁금합니다.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고, 고민을 나눌 좋은 어른들이 있어 안정감이 있어요. 내가 그동안 했던 독립의 방식이 사실 고립으로 가는 길이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허들링에는 다양한 친구들과 치어빌더님들이 있고, 그들과 하는 얘기는 SNS 속 꾸며낸 일상 이야기가 아닌 정말 살아있는 세상 얘기라 우물 밖의 모습을 슬쩍 엿볼 수 있어요. 정서적 고향이 생긴 것 같아 좋아요. 언제든 잡을 수 있는 좋은 어른이 곁에 있기에 한순간 지나갈 나쁜 어른에게 의지할 이유가 없어졌고요.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서핑할 때 서프보드와 서퍼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 발목에 차는 끈을 리시(leash)라고 하거든요. 리시는 파도에 휩쓸려서 서프보드를 잃어버리는 것도 막고, 서퍼들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데요. 저는 수영을 못해서 서핑을 할 때 이 ‘리시’라는 줄에 의지했었어요. 이 줄이 있어서 적어도 내가 죽지는 않겠다. 진짜 바닷물을 마시더라도 깊은 곳에 가서 파도에 휩쓸려서 뒤집혀지고 내가 바다에 빠지더라도 리시를 잡아당기면 어쨌든 보드 위로 올라올 수 있으니까 안심이 되는데, 허들링이 제겐 ‘리시’ 같아요.


허들링 단톡방에 있기만 하더라도 뭔가 내가 살다가 죽고 싶거나 뭔가 사기를 당하거나 이러면 어디가 부러져서 다치거나 이러면 다쳤더라도 쌤들한테 연락해서 다시 이 보드 위에 올라올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있어요.

Q5. 허들링 활동을 하면서 용재는 많은 친구들과 다양하게 친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 1년 동안 허들링 친구들과의 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저는 어색한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을 싫어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조급하게 친해지려 하지 않아요. 그러면 괜히 역효과가 나니까요. 저는 허들링 친구들 곁에서 두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냥 귀만 열고 지켜봤어요. 그러다가 혼자 피식할만한 생각을 툭하고 뱉은 딱 그 정도의 역할만 했는데 그런 저에게 대부분 경계를 풀어주고 마음을 열어주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허들링 모임 때마다 친구들과의 어색함이 줄어갔고, 팀을 나누어 활동할 때에도 항상 심심하지 않고 좋았던 것 같아요.


허들링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친해지려면 조급함 없이 천천히 다가가야 되는구나 한 번 더 느꼈죠. 괜한 욕심내지 말아야겠다. 매번 모임 때마다 누구랑 친해져야겠다 뭐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오늘 한 번 더 얼굴을 보고 한 마디라도 해서 어색함만 없어지는 정도로 다가갔어요. 팀 활동이나 밥을 먹을 때 친한 친구랑 앉을 수도 있지만, 매번 다른 사람이랑 앉기도 하는데 어색함이 없더라고요. 어색함이 없으니까 또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도 있고. 예전엔 그걸 몰랐었는데, 이젠 좀 친해지는 관계에 대해 알 거 같아요.

<용재와 장난스럽게 사진을 찍은 허들링 친구들>
Q6. 허들링이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필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하나요? 특히 어떤 점에서 그런 건지 궁금해요. 허들링에 무한애정을 갖고 있는 마음이 느껴지는데, 그 마음도요.

요즘은 지원 사업이 많아져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사업 안에서 많은 멘토들을 만날 수 있어요. 여러 지원 사업에 참여하다 보면 어떤 사업은 너무 급하게 만들어졌거나 노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업도 있어요. 혹은 활동 보고서를 위해 실질적 자립에는 도움 안 되는 활동을 하기도 하고, 멘토 자격이 의심되는 사람들의 멘토링을 듣고 있으면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활동 기간 동안 친하게 지냈어도 사업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도 아쉬웠고요. 그럴수록 허들링에 대한 애정이 커졌던 거 같아요.


노력하는 CM 친구들과 치어빌더님, 조용히 도와주시는 후원자분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어주는 소이프 가족들. 우리가 하고 싶은 활동으로 채워가고 사업 기간의 끝을 두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고, 평생을 함께 달려간다는 마음으로 활동하는 것이라서 허들링에 대한 애정은 날로 커질 수밖에 없었어요. 물론 모든 자립준비청년에게 필요하다고 말하진 않겠지만 그동안의 지원 사업이나 일상에 염증을 느끼는 친구라면 적극 추천하는 활동이에요.


자립준비청년들이 특성상 집에 고립되는 친구들이 많을 거예요. 허들링이라는 활동으로 이렇게라도 고리가 걸려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수면 위로도 올라오고, 카톡 단톡방에 정보를 하나라도 더 보고, 정보를 보고 사업에 신청도 해보고. 물론 정보를 올려주는 오픈 채팅방도 있는데요. 정보만 올라오고, 서로 대화는 없다 보니까 정이 없잖아요.


허들링은 정이 있어요. 허들링 단톡방은 다 각자 사는 얘기도 하고, 선물 이벤트도 있고, 농담도 하고, 이모티콘으로 감정 표현도 하고 단톡방에 올라오는 이야기들을 관전하는 것도 재미있어요. 어떻게 보면 허들링은 저한테 유일하게 편한 공간인데, 활동을 잘 안 하면서 분위기를 해치는 친구들이 있으면 스트레스 받으니까 청정구역으로 문화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친구들이 활동하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고요.

<2023년 생애 첫 해외 여행을 일본으로 떠난 용재>
Q7. 용재를 떠올리면 성실함, 추진력, 계획 등의 단어가 떠올라요. 용재는 처음부터 그랬는지, 변한 건지, 이렇게 되기까지 어떤 시간들을 보냈는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때 시설에서 지금 제가 엄마라고 부르는 분을 만난 이후로 그 뒤부터는 좋은 사람을 계속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당시에 선생님이 이제부터 말썽이나 사고 치면 후원을 안 해준다고 해서 그 뒤로 사고를 안 쳤고요. 그 뒤로 친구들이랑 싸움도 안 하고 조용히 지내다 보니까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그전에는 사고도 치고 말썽도 부렸거든요. 어릴 때는 진짜 개구쟁이였어요.


고등학교 때는 학교가 기숙학교였거든요. 기숙사에서는 엄청 활발했죠. 전학년이 저를 다 알 정도로. 학교에서 축구로 좀 유명했어요. 축구 잘할 것 같이 생겼으니까 친구들이 같이 놀자, 축구하자고 그러면 함께 놀고.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가고 가벼운 친구들이랑은 거리를 두게 되고, 또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고 대학에서는 조용히 지냈어요. 과 친구들이랑 잘 안 맞기도 했고. 남자애들이 많은 전기과라 여자는 4명뿐이었는데 저는 군대를 안 가니까(시설에서 5년 이상 생활한 청년들은 군입대 면제입니다) 여자친구들과 잘 지내긴 했는데 근로 장학생하고, 아르바이트하느라 바빠서 학교 애들이랑 연락도 잘 안 했고요.


스물셋이나 넷까지는 20대 초반이니까 ‘그래 나 목표 없어도 돼. 비전 없어도 돼’ 이랬는데 나이를 더 먹으니까 어른들을 만나면 ‘뭐 하고 살래, 어떤 일하고 싶냐’ 이런 말을 듣게 되고, 미묘하게 또래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니까 저도 삶의 방향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근데 생각을 안 해보고 살았으니 갑자기 방향을 잡을 수가 없는 거죠. 아직까지는 해놓은 게 없다고 느꼈고, 과거에는 공부도 안 했었고, 그동안 뭔가 하나에 몰두했던 적이 없어요. 작년에 산업안전기사 자격증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열심히 공부했던 거고 재미도 그때 느꼈어요. 공부하는 게 재밌고 내가 이뤄낸 내가 노력하면 성과가 나온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실행력, 추진력은 참을성이 부족해서, 바로 하는 거예요. 생각을 오래 안 하고. 참고 기다리지 못하고 그냥 바로 하는 거예요. 성실함은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나오는 힘이에요. 그래서 독서 모임이나 러닝 모임, 경제공부 모임 같은 강제성이 있는 모임에 속하는 것을 스스로가 원해요. 의도적으로 남들 눈에 띄어서 제 몸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장치를 만드는 거죠. 남들 눈에 벗어나면 다시 고장 날 수 있다는 걸 제가 알거든요.


제가 저를 잘 아니까 저를 가만히 안 두는 거죠. 어렸을 때는 이런 게 단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르게 보면 장점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서서히 변하고 있어요. 유랑 쌤이 성실하다고 하시니, 들어보면 제 장점에 성실함도 있으니까 그냥 꾸준히 하다보면 돈 많이 벌 수 있고, 성실함이 발휘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Q8. 용재의 요즘 일상이 궁금합니다. 용재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요즘 새로운 일을 하고 있어요. 청소업을 시작했는데, 새로운 일을 잘 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가능성을 좋아해요.

<2024년 3월 코리안오픈레이스
마라톤 10km 완주 후 세레모니>
<2023년 달리기 모임 '허들런'과 함께 뛴
손기정 평화 마라톤>
Q9. 용재는 운동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꾸준히 하려고 노력도 하는 거 같고요. 용재에게 운동은 어떤 의미인가요?

시설에 있으면 또래 친구들이 많다보니깐 축구를 많이 하게 됐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독립하기 전까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땀이 옷을 전부 젖을 만큼 축구를 했어요. 독립하고부터는 친구들과 마땅한 장소를 정하기 힘들어서 자연스럽게 축구는 못하게 되었어요.


독립을 하니깐 약간 우울증이 왔어요. 어떤 날 옆으로 누워서 하루 종일 유튜브만 봤는데 그때 좋은 문장을 발견했어요. ‘우울은 수용성이라 땀과 샤워에 씻겨 내려간다’는 문장이 있는데요. 돈이 가장 적게 들면서 혼자서도 언제든 할 수 있는 운동이 달리기더라고요. 그래서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솔직히 달릴 때 생각 정리는 잘 안 돼요. 달리다 보면 힘들고 그냥 멈출까라는 생각만 들어요. 그런데 러닝을 하기 전과 후의 감정의 차이를 느끼게 된 후에 공식처럼 적용해버렸어요. 내가 우울하다, 그럼 러닝 하자, 그럼 괜찮아진다. 이렇게요. 우울한 감정이 들더라도 바로 해독할 수 있는 ‘달리기’라는 약이 생긴 거예요.


클라이밍이나 크로스핏은 뭔가 마음대로 안 되면 악을 쓰는 그런 게 있잖아요. 내면에서 악을 써봐야 고통이 안에 갇히게 되니까 답답하기만 해요. 외부로 감정을 내보낼 수 있는 자전거나 달리기가 좋은 것 같아요. 땀 흘리고 나면 정신이 맑아지고, 우울했던 감정 전으로 돌아온다는 걸 아는 거죠. 달리면 걱정의 부피가 줄어들고 우선순위가 정해져요. 나이를 숫자로만 남겨두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남들에게도 계속 전파하는 거 같아요.


허들링에서도 같이 마라톤 준비하고, 함께 뛰기도 했잖아요. 솔직히 저는 어려서부터 뛰어놀기도 하고 운동하는 게 익숙하니까 나한테 별로 힘들지 않아서 남들한테 ‘너 왜 못 뛰어. 뛸 수 있어.’ 그러면서 압박식으로 하다 보니까 안 했던 사람이 하면 힘든 거예요. 제가 했던 것보다 더 힘든 거죠. 그런데도 끝까지 다 함께 뛰고, 저를 따라 같이 뛰어줬다는 마음이 좋고요. 뭔가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마음이 너무 좋았어요. 작년에 러닝 모임 ‘허들런’ 멤버들과 마라톤에 같이 나가서, 서로 응원하고 함께 환호성 지르는 순간에 도파민이 폭발하더라고요.  

<짜응과 소이프 유랑과 함께 만나 스물아홉이 된 것을 축하한 순간>
Q10. 올해 스물아홉이 된 용재를 보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알아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게 기특하기도 하고, 응원하고 싶어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들이 많은 것 같은데 용재의 생각이 궁금해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저는 옛날에 초등학교 때 어렸을 때부터 걱정이 많았어요. 내가 서른이라는 나이가 됐을 때 아무 능력 없을 지도 모른다. 그때 생각했던 게 지금의 제 모습이에요. 아무것도 안 하고 나이만 서른이 되었다면 그때는 진짜 자살하고 싶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초등학교 때 그랬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한 대 맞았어야해요.


지금은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나이보다는 신체적 건강이랑 정신적 건강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내 신체 나이를 20대로 유지하려고 하면 할 수 있을 거고요. 정신적인 부분은 뭔가 내 생각 하나만 고집부리는 게 아니고, 여러 친구들의 얘기도 담을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그런 갈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일방적으로 생각을 닫아버리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는 서른이 돼도 능력이 없으면 자살하려고 했었다고 했는데 그때는 정말 불확실함이 두려웠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서른이라면, 뭔가 인생 다 산 것 같고 그때부터는 되게 어른인 것 같고, 안정기로 접어들 나이여야 되는데 뭔가 그때도 방황하고 있고, 그때 도전한다고? 난 그거 못 버틸 것 같애. 그래서 서른이라는 나이가 진짜 무서웠었나봐요.  


지금까지는 머리가 힘들었는데 앞으로는 몸이 힘들고 싶어요. 올해 목표와 바람은 이거예요.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최대한의 고통을 주세요. 새해 소원, 생일 소원이 내가 버틸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에요. 매일매일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하는 건 힘들죠. 근데 이런 힘든 과정도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이것도 제 공식인데요. 모든 경험은 교훈이 되는 좋은 경험이다. 좋은 경험으로 남기려면 기록이 필요하다. 경험으로만 소비하면 나중에 그냥 휘발되더라고요. 일기를 보면 과거에도 똑같은 경험이 있어요.


근데 왜 나는 몇 년 뒤에도 똑같은 고통을 겪을까 좀 생각을 해보면 기록을 안 하고, 안 하다 보니까 잊게 되는 거 아닐까. 지금 또 이렇게 힘든 걸 기록하지 않으면 다음에 또 그럴 수 있다.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자기 전에 오늘 하루 기록할 게 없더라도 날짜라도 적어놔요. 날짜 적어놓고 내일은 열심히 쓰자. 그렇게 교훈이 될 경험들을 쌓아두는 거죠.

<허들링에 참여하는 치어빌더님들과 함께 '라이프전'을 보던 날>
Q11. 용재에게 좋은 어른이란? 힘든 어른이란? ^^;

의도를 숨기지 않는 어른이 좋은 어른, 본인의 만족과 이득을 위해 접근하는 어른이 힘든 어른 같아요! 시설에서 눈치만 보고 자랐기에 그 사람이 뭘 숨기고 있는지 아닌지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판단이 빨라진 거죠.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걸 아는 순간부터 불편한 관계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따르는 어른들은 만날 때마다 다른 의도가 없어요. 순전히 저를 위해 주세요. 용재가 맛있는 거 잘 먹었으면 좋겠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걱정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냥 단지 그게 이유인 분들이더라고요.

Q12. 나의 40대를 생각한다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은?

7년 전 일기에 쓰여있는 현재의 고민과 깨달음, 매년 똑같은 새해 목표, 큰 차이가 없는 일상을 보며 사람의 인생 기울기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느껴요. 노력하지 않는다면요. 초등학생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이 서른이면 뭔가 잘 갖추고 있는 능력으로 안정감 있게 잘 살고 있겠지.’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강해졌어요.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저의 40대에도 큰 변화는 없을 것 같아요. 언젠가는 도달할 40대의 나와, 40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에게 부담이 되는 기대는 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Q13. 소이프에는 빌더라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자립준비청년에게 관심이 각별한 빌더들에게 한마디 전해주신다면?

관심은 좋아요. 하지만 그 관심의 방향이 정말 우리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만족을 위한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본인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에게 부담이 되지 않게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많은 추억을 쌓았던 2023년 허들링 제주도 캠프>
Q14. 허들링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는 친구들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면?

주저하고 있는 모두를 해소해 줄 수 있는 한마디를 해줄 수는 없지만, 저는 ‘재미없거나 맞지 않으면 그냥 나오지 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왔어요.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어떻게 극복했는지 얘기를 들어보거나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허들링에는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고요.

Q15. 용재는 OOO이다. 한 단어로 자신을 말한다면? 이유는?

나는 ‘빈칸 같은 사람’이다. 아직 빈칸을 못 채운 사람이다. 아직, 빈칸으로 남고 싶어요.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까요. 나 자신을 정의하지 못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불안하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담겨 있어서 빈칸이 좋아요. 저는 빈칸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야기 기록한 이. 유랑流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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