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소식> 7호 - 나의 가치에 대한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오늘의 희소식]

자존감에 대한 오해와 상태 자존감
자존감 추구에 따르는 대가
존재의 가치는 상태 자존감과 별개

출처: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은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2'에 등장하는 주인공 라일리는 사춘기가 되면서 머릿속을 괴롭히는 한 가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I’ m not good enough”.

'나는 부족하다'라는 생각인데요.

스스로가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일까 봐,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닐까 봐 전전긍긍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라일리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스스로를 사랑받을 만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평가하는 주관적인 느낌을 심리학자들은 '자존감'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내 자존감이 조금만 더 높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을 거예요.

자존감에 대한 오해와 상태 자존감

높은 자존감, 즉 자기 자신을 전반적으로 가치 있게 평가하는 것이 기능적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자존감이 높을수록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긍정적인 정서도 더 많이 경험하게 되죠. 자존감이 높을수록 스스로를 똑똑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일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초기 자존감 연구자들은 자존감을 높여주는 게 많은 혜택을 가져온다고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이 생각이 실증적으로 증명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낮은 자존감이 저조한 학업 성적 혹은 학교 폭력의 원인이라고 밝혀진 연구는 찾아보기 어려워요. 오히려 8–9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자존감 부스팅 운동이 아이들의 나르시시즘을 더 강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죠.

'자존감은 무조건 높여야 해'라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자존감의 유형을 구분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자존감은 특성 자존감(trait self-esteem)과 상태 자존감(state self-esteem)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특성 자존감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기질이나 성격처럼 비교적 안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자존감을 가리키는 반면, 상태 자존감은 개인이 평균적으로 지니고 있는 자존감 수준에서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면서 수시로 달라지는 자존감을 말해요.

우리는 누구나 일상 속에서 자존감의 변화를 수시로 겪을 수밖에 없어요. 시험을 잘 봤거나 승진을 했을 때처럼 긍정적인 사건을 겪으면 일시적으로 스스로의 가치가 더 높아진 것처럼 느끼겠죠. 하지만 면접에서 떨어졌거나 좋아하는 상대에게 고백을 했는데 거절을 당했다면 한시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가치를 낮게 평가할 겁니다.

상태 자존감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Jennifer Crocker 교수는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미국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자존감이 대학원 입시 결과에 따라 변동되는지 조사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대학원을 지원하면 그 결과가 두 달여간에 걸쳐 발표가 되는데, 이 기간 동안 합격 통보를 받은 날에는 학생들의 자존감이 상승했고,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에는 자존감이 평소보다 하락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는 학생들이 대학원 합격 여부를 단순히 긍정 혹은 부정 경험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반영하는 결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죠. 이처럼 사람들은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역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자신의 가치와 직결시키고, 자존감을 유지하거나 고양시키기 위해 성공 혹은 실패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이처럼 자존감을 추구하는 것은 성취를 위한 동기를 크게 활성화해 줍니다. 성취를 통해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로 느껴진다면 그건 우리를 무척 행복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받는 인정과 칭찬은 나의 존재를 더 가치 있게 느끼게 해주죠. 문제는 이러한 기쁨이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자존감 추구에 따르는 대가

Jennifer Crocker 교수는 자존감을 추구하는 것의 ‘어두운 면’을 수십 년간 연구해오면서, 자존감을 쫓는 행위를 마치 마약 중독자가 계속해서 약물을 찾는 행위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자아 가치’, ‘자존감’이 궁극적인 목표가 된 이상, 자존감을 고양시키고 유지하기 위한 끝없는 레이스가 이어지게 되는데요. 단기적으로는 자존감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 추구의 동력이 되고, 성취 이후에도 정서적 혜택을 제공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대가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자, 이제 '자존감 추구에 따르는 대가' 3가지를 소개해 볼게요.

자존감 추구에 따르는 대가 1. 스트레스

자존감 추구의 대표적인 대가로는 스트레스가 있어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역에서 실패한 경우, 이것은 단순히 “나는 실패했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는 실패했고, 그래서 나는 쓸모없는 존재이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고자 하는 동기가 강할수록 사람들은 실패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학업 성적으로부터 자존감을 얻는 학생들은 학업 스트레스를 훨씬 더 크게 경험합니다. 학업에서의 실패가 자기 존재의 가치를 위협한다고 느끼는 이들은 압박감을 더 많이 지각하며 실패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느끼게 되는 것이죠.

또, 실패를 하지 않겠다는 목표가 부각되다 보니까 내적인 동기가 약화되어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한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런 압박 속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실제로 성적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불행히도 결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학업으로부터 자존감을 찾는 학생일수록 공부하는데 더 오랜 시간을 들이지만 반드시 더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어요.

자존감 추구에 따르는 대가 2. 배움과 성장의 저해

이는 자존감이 목표가 될 때 학습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면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여기는 영역에서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것은 존재의 가치에 대한 위협과 도전이죠.

따라서 사람들은 학습하는 과정에서 저지르게 되는 실수와 실패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 정보를 마주할 때 이를 무시하거나, 축소하거나, 잊으려고 합니다. 대신 자신이 잘하는 것, 즉 자존감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긍정적인 정보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자신의 결함이나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은 부족한 점을 개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만 자존감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 됩니다. 심지어는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어려운 과제에 시도하기를 아예 피하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 느껴지지만 이런 방어적인 모습은 특성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관찰되는데, 이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실패를 했을 때 자존감에 더 큰 타격을 받을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존감 추구에 따르는 대가 3. 타인과의 관계 방해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받습니다. 자존감이 목표가 될 때에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타인과 비교를 하게 됩니다. 즉,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우월하다고 생각함으로써 자존감을 고양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마인드셋에서 타인의 존재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과 기회를 빼앗아갈 수 있는 잠재적인 경쟁자이자 적이 되어버립니다. 세상을 제로섬 게임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죠.

실제 연구 결과를 보면 자존감이라는 목표가 두드러질 때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에 몰입한 나머지 타인의 요구나 감정에 신경을 덜 쓰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상대방에게도 전달이 되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자존감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을 배려심이 없고 매력적이지 않다고 평가합니다.

존재의 가치는 상태 자존감과 별개

자존감 연구의 대가인 Jennifer Crocker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존감은 우리가 추구하지 않을 때, 우리의 레이더망에 자존감이 없을 때 오히려 적정 수준을 찾는다”

우리는 어떻게 자존감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기쁨, 불안, 우울과 같이 여러 정서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 모두를 통합하여 수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가진 다양한 자아의 모습도 그대로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스스로 똑똑하고, 성실하고, 아름답고, 성공적일 때 가치 있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고 성실하지 않다면, 가치가 없는 존재일까요? 어쩌면 우리의 존재 가치는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우리의 감정, 역량, 인기와는 무관한 것이 아닐까요?

온도계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자존감의 상태는 인간으로서 가지는 우리의 가치를 판단하기에 적합한 시그널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간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해소되지 않는 갈증과도 같은 자존감을 추구하기를 멈출 수 있다면, 아이러니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오히려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의 희소식 주제는 고려대 사회심리 전공 최은수 교수가 작성하였습니다. 개인의 정서 경험, 웰빙, 다양한 사회문화적 맥락과의 상호작용에 대해 연구해요. 오늘의 주제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희망연구소 메일로 소통해 주세요! 👉🏼 ihr@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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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Buunk, B. P., Collins, R. L., Taylor, S. E., VanYperen, N. W., & Dakof, G. A. (1990). The affective consequences of social comparison: either direction has its ups and down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59(6), 1238.
Crocker, J., & Park, L. E. (2004). The costly pursuit of self-esteem. Psychological bulletin, 130(3), 392.
Crocker, J., Canevello, A., & Lewis, K. A. (2017). Romantic relationships in the ecosystem: Compassionate goals, nonzero-sum beliefs, and change in relationship qualit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2(1), 58.
Crocker, J. (2022). 41 Chasing Self-Esteem. Pillars of Social Psychology: Stories and Retrospectives,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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