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가 보이지 않을 경우 펼쳐보기를 눌러 확인하세요!
@unsplash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자, 두 아이의 엄마다. 그리고 최근 추가한 항목이 있다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집을 많이 가진 여자’라는 것! 살아보지 않은 ‘도’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지역에서 살아본 나는 곧 열아홉 번째 이사를 앞두고 있다. 결혼 10년 만에 이사를 스무 번 넘게 한 나는 올해만 해도 두 번의 이사를 했다. 경주에서 계룡 그리고 다시 파주로! 잦은 이동은 뿌리내리지 못하는 헛헛함을 연상하게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타고난 기질도 한몫했지만, 나는 머무는 지역마다 내 삶에 온기를 더하는 다정한 친구들을 잘 사귀었다. 유한한 지역살이, 예고된 이별 때문에 사람들에게 정을 붙이지 않을 법한데도 나는 꿋꿋하게 낯선 지역에서 인생 친구들을 만났다. 나보다 열 살은 족히 어린 수영 친구부터 위로 40년은 족히 넘는 할머니뻘 친구까지 말이다. 이쯤 되면 나의 다정함은 일종의 생존력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 말이 인간관계를 가식적으로, 작정하고 확장했다는 뜻은 아니다. 곧 이사 갈지도 모른다는 조건이 오히려 내게는 간절함으로 다가왔다. 어차피 떠날 사람에서 곧 떠나갈 아쉬운 친구, 떠나도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는 다정한 인간으로 남기를 바랐다.

문득 내 이런 의지는 어디에서 비롯한 건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곧 떠날 나를 반겨주고 응원해 주는 친구들의 다정한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단순히 ‘정’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감정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궁금하던 찰나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무엇이 우리를 다정하게 만드는가>의 저자 스테퍼니 프레스턴은 우리가 누군가를 돕거나 다정하게 다가갈 때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서술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타인을 돕는 것은 우리 몸에 심층적으로 내재된 ‘본능’이다. 새끼를 잘 돌보기 위해 인간의 신경계와 호르몬 체계가 발달해 오면서 이 회로를 통해 타인을 돕고 희생하거나 보살핀다는 것. 인간이 새끼를 돌보는 본능은 보상체계의 신경회로 덕분인데, 이 회로가 내 새끼만 돌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새끼와 비슷한 다른 대상도 돕게 만든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알고 보니 아이를 기르고 연약한 동물을 돌보는 것, 사회적 약자를 돕거나 몸이 아픈 가족을 살피는 것은 실제로 상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일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에게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양의 행복호르몬이 나오기 시작한다니! 아이 혹은 타인을 돌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접촉’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unsplash

이를 입증하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로제토 마을’ 이야기다. 이탈리아에서 먹고살 길을 찾아 이주해 온 광부들이 정착한 이 마을을 휴양차 방문했던 의사 스튜어트 울프는 이곳에 심장마비 환자는커녕 알코올과 약물 중독자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1950년대 후반 미국은 심장마비로 인한 65세 미만 남성 사망자가 급격하게 늘어나 골머리를 않고 있었다. 

그렇게 발견한 비결은 음식도, 운동도, 유전인자도 아니었다. 연구를 시작한 지 45년 만에 발견한 비밀은 바로 ‘다정한 마을’이었다는 것이다. 주민이 2000여 명 남짓한 마을에는 낚시, 사냥, 독서 등 22개나 되는 단체가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를 존중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가난한 사람과 어린이, 노약자는 이들이 특히나 세심하게 보살피는 대상이었다. 한 지붕 아래 3대가 모여 사는 집도 많았고, 틈날 때마다 이웃들과 경조사를 함께 보내며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낯선 사람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는 우리에게 로제토 마을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다정함이 우리의 본능이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이 욕구가 ‘완벽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동물들이 지닌 본능’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정한 사람의 뇌를 들여다본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와 로제토 마을의 일화가 우리 안에 내재된 다정함의 회로를 끌어올리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길. 로제토 마을의 이웃처럼 살갑게 다가와 춤춰 주고 수영하고 맛난 걸 나눠 먹으며 인생의 고민을 듣고 공감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준 친구들에게 또다시 이별을 고하게 됐지만, 나 또한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다정할 수 있기를. 우리는 서로에게 다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


Writer 전지민
전 에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그린 마인드〉 편집장. 지금은 가족과 함께 서울을 벗어난 삶을 산다. 여성과 엄마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은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을 썼다. 
- <엘르> 2023년, 12월호 발췌


Dear my blue_+보이스

나의 서늘한 불안과 공포에게. <나의 피투성이 연인>의 감독 유지영이 끊임없이 던진 질문.

Q. 11 15일에 개봉한 <나의 피투성이 연인>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갈등을 다룬 영화입니다.

A.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에서 갈등했던 제 30대를 투영했어요. 주목받는 신인 작가 ‘재이’(한해인)와 성실한 영어 강사 ‘건우’(이한주)에게 찾아온 뜻밖의 임신을 주제로 아이를 원하지 않는 여자와 가족의 미래를 꿈꾸는 남자, 두 주인공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에요. 출산이라는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연인의 모습이 현실적으로 펼쳐져요.


Q. 자전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서 어떤 것들을 많이 생각했나요?

A. 무언가를 창작할 때 우선 저 자신에 대해 알려고 해요. 가장 많이 고민하는 주제나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생각해보고요. 이번 작품의 시나리오를 쓸 때는 결혼과 육아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예술, 영화 산업에서 일하는 제 또래들이 불확실한 미래와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비혼주의자가 아닌 데도 결혼을 후순위에 두는 경우를 많이 보았거든요. 저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게 때로는 작업에 방해된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지속된 고민과 미래가 겹쳐 보인 순간,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확신했죠.

〈나의 피투성이 연인〉 스틸 컷


Q. ‘이기적이면 되나요?’라는 재이의 대사는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를 담고 있어요. 커리어를 우선하는 여성의 선택이 이기심으로 치부되는 차별적인 시선에 당당히 맞서는 한마디기도 합니다. A. 문장 앞에 괄호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원하는 것을 하는데 그게 이기적인 거라면, ‘이기적이면 안 되나요’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어요. 재이가 끊임없이 딜레마를 겪고, 변화를 겪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이 질문만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사회나 개인이 가진 관념과 압박에 의해 선택이 좌절되더라도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Q. 영화를 보면서 같이 고민해 보면 좋을 같은 질문은?

A. ‘삶이 내가 원하던 방향대로 흘러가고 있는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진정한 욕망을 알지 못한 채로 무작정 걸어가다가 잘못된 방향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인지 고민된다면 잠깐 멈춰 서서 지금의 삶을 돌아보시길 바라요.


📢📢 안내 사항 📢📢
구독자분의 피드백에 따라 여러 차례 글자 크기를 크게 조정하였으나 일부 메일 플랫폼의 경우 자체적인 규격 기준이 있어, 해당 사항이 반영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모바일의 경우 디바이스의 글자 크기 조정 or 웹의 경우 메일 플랫폼을 변경하여 (구글, 네이버 등) 이용 부탁드립니다.

🔊지난 주 구독자 보이스🔊
매주 여러분의 목소리 중 일부를 전해드립니다. 모든 분의 소중한 피드백 하나하나 귀 기울이고 있으니 오늘의 <엘르보이스>가 어땠는지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 

- 지금 제가 고민하는 부분을 어쩜 이렇게 꼭 집어서 뉴스레터로 보내주시는지.. 에세이 읽으면서 깜짝 놀랐고, 위로도 용기도 얻었습니다. 일과 육아에서 갈팡질팡하는 저에게 큰 용기를 주어 다시한번 저를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았어요. 조금 더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31년 롱 런!_+보이스 베스트룩 화보가 너무 멋져요!

- 이번 호 내용도 너무 좋아요! 늘 보면서 잠시 힐링의 시간을 갖습니다. 에세이 등 내용을 아껴서 조금씩 봐요. ㅎㅎ 도현경 작가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다섯 가지 조언을 마음속에 새겨요.
💌  님, <엘르보이스> 83번째 레터 어떠셨나요? 
님의 감상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아래 링크에 남겨주시면 정성껏 읽고 다음 레터 준비하겠습니다💕
👋 엘르보이스를 이웃에 소개해주세요! 
더욱 다양하고 반짝이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담길 <엘르보이스>, 나만 볼 수 없죠?
동시대를 살아가는 님의 이웃에게도 <엘르보이스>가 널리 읽힐 수 있도록, 아래 링크를 공유해주세요 🙋
📝 구독자 정보를 바꾸고 싶어요!
엘르보이스 속 다양한 이벤트는 구독 시 기재해주신 정보를 통해 안내 및 제공되어요.  님의 구독 정보를 바꾸고 싶다면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허스트중앙 유한회사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 156 HLL 빌딩 02-3017-2580
수신거부 Unsubscribe

제휴/광고 문의 - kang.junyoung@hll.kr